유월 첫날
화사한 봄꽃들이 저문 오월 산기슭 오동나무는 우아한 보랏빛 꽃이 피어 숨고르기를 했다. 이어 은물결로 일렁이던 아카시 꽃이 피자 꿀벌들은 몸살 나게 바쁘게 움직였다. 아카시 꽃도 시들어 지상으로 떨어져 뒹굴다 흩어졌다. 뒤이어 활엽수림 때죽나무에 하얀 꽃송이가 매달렸다. 그 꽃도 모두 저물고 유월로 들었다. 스치는 바람결 등을 부비며 뒤척이던 잎들은 녹음으로 우거졌다.
어느새 성큼 여름이 왔다. 우리나라는 북반구 중위도라 일 년 열두 달을 세 달씩 끊어 사계절이 뚜렷하다. 근래 와서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겨울과 여름은 길게 느껴진다. 그것도 겨울보다 여름이 더 길게 느껴짐은 지구온난화가 빨라져 우리나라는 이제 아열대기후대나 마찬가지다. 사과나 배 과수원은 남부에서 보기 드물게 되고 따뜻한 기후 적합한 감나무 재배지는 북상할 것이다.
유월의 산천은 온통 녹색이다. 어느 서책에서 색상 가운데 청색 계열이 눈의 피로를 적게 안겨줌을 알게 되었다. 지구가 푸른 별임은 신비로운 신의 한 수였다. 설경의 깨끗함이야 높이 평가되지만 오래도록 지속되면 눈이 부신다. 연분홍 꽃이나 알록달록한 단풍에서도 눈은 쉬 피로를 느낀다. 인상파 화가 고흐의 그림을 눈여겨 바라다보면 현기증이 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리라.
출근길 걸어서 다니는 나는 도심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한다. 날씨가 더워 며칠 전부터 반팔 셔츠 차림으로 현관을 나서고 있다. 아침이지만 햇살이 이마를 따갑게 해 밀짚 중절모를 썼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서 짙푸른 메타스퀘이어 가로수가 우뚝한 보도를 걸었다. 반송중과 트리비앙아파트 곁 생태하천 무성한 습지식물 속에 노랑꽃창포가 피어 눈길을 끌었다.
원이대로를 건너 창원스포츠파크를 지났다. 폴티텍대학 후문에서 정문을 관통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시설관리부서에선 잔디를 깎고 청소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실용성을 띤 기능대학으로 출발한 캠프서여서인지 교정의 수목은 그리 우람하지 않았다. 단정히 머리를 정리한 모범생처럼 가지치기가 잘 된 향나무를 비롯한 낮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너른 캠퍼스에 학생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창원기공에서 교육단지를 지나는 보도를 걸었다. 차도엔 자동차들이 꼬리를 이었다. 공단으로 출근하는 회사원들이 자녀를 학교로 등교시키려고 둘러가는 차량들이었다. 교육단지 보도는 봄날 벚꽃이 진 가지에 잎들이 무성하게 달려 그늘이 져 걷기 좋았다. 집을 나서 학교까지 걸으면 사십 분 남짓 걸린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한지도 석 달이 지난다. 봄 한 철이 금세 지나간 느낌이다.
올봄 근무지를 옮겨오기 전까지 창원천변을 따라 걸어 봉곡동 주택가 위치한 학교였다. 그때는 반송공원 북사면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지금도 철따라 바뀌는 풍광이 눈앞에 훤하다. 생태가 복원된 창원천엔 여러 새들이 찾아왔다. 왜가리, 중백로, 쇠백로, 휜뺨검둥오리, 고방오리, 원앙 등이었다. 그 가운데 이맘때 창원천 검불에선 흰뺨검둥오리는 새끼를 쳐서 물웅덩이에서 놀았다.
교육단지 보도를 걸으면서 지난날 창원천변에서 보았던 여러 종 새들을 떠올려보았다. 그 새들은 습지와 물가에 서식하는 철새들이었다. 일부는 그들의 본향으로 돌아가길 단념하고 이 땅에 눌러 사는 텃새가 되었다. 하천바닥 시멘트를 걷어내고 생태를 복원하니 하천과 습지에 사는 물고기를 비롯한 수서곤충이 늘어났다. 그러니 그런 먹잇감을 찾아 철새들이 찾아와 유유히 놀았다.
올봄 교육단지 학교로 근무지를 옮겨오면서 나는 그 철새들과는 작별했다. 고작 까치나 참새 지저귐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운동장이 천연잔디였다. 봄비가 잦으니 잔디밭은 습기를 알맞게 머금어 땅속엔 지렁이가 많았다. 여름 철새 후투티가 떼 지어와 먹이를 찾느라 부리로 부지런히 잔디밭을 쪼아댔다. 날이 저물도록. 1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