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고통들이 있습니다.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신 인간사 고통중에 대표적인 것이 원증회고((怨憎會苦)와 애별리고(哀別離苦)입니다.
원증회고((怨憎會苦)는 미움과 증오와 스트레스가 가득 하지만 이 미운 사람을 볼 수 밖에 없는 고통을 말합니다.
애별리고(哀別離苦)는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고통입니다.
살면서 주변에 미운사람이 있지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컥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가막힌 운명으로 그 사람을 매일 보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국에는, 그 사람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해야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80세 할머니가 같은 고령의 신랑, 남편을 해(害)하고 경찰에 구속된 뉴스가 나왔습니다. 오죽했으면 그 고령의 나이에 그런일을 저질렀겠습니까? 평생을 고통속에 지내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한순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한것이지요, 이런일들은 가족간, 친구간, 직장, 군대, 인간사 여기 저기에 허다 합니다.
반면, 애별리고의 고통도 있습니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별이 있습니다. 잠시의 헤어짐에서 다소 긴 헤어짐,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사이트를 방문해보니 교통사고로 먼저 하늘에 간 신랑을 그리는 홀로남은 여성의 애절한 글이 있더군요. 아름다운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마치 동화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신랑이 퇴근하면 문뒤에 숨어 숨바꼭질도 하고 그야말로 서로 서로 너무나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랑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그 여성은 명상으로 마음을 수년간 달래고 있다고 합니다.
티벳을 담은 차마고도란 프로그램에서도 죽은 자식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긴 여정을 떠나는 부부가 나옵니다. 빛바랜 자식의 사진을 보며 울음을 쏟아 냅니다. 생과사의 고통을 끊기 위해 여정을 떠난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원증회고, 애별리고 살아가면서 겪어야할 인간의 고통입니다. 또, 모든 사람이 결국, 생을 다하기 때문에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겪어야 합니다. 미운 사람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야하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지구, 물질계, 법계에 태어난 이상 겪여야 되는 이 원증회고와 애별리고가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의 집착과 애착이 만들어낸 업보, 카르마의 프로그램이라고 하네요. 이러한 고통을 끝내는 방법이 곧 해탈입니다.
암튼, 해탈은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미움과 이별로 마음에 멍이 들었다면...또 그 스트레스가 계속되고 기약 없어 보인다면... 이 모든것은 내가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자각하고...받아 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어차피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면 뭔가 진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겠지요. 전혀 쉽거나 즐겁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태어난 숙명입니다.
그래도 괞찮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술도 있고 맛난 안주도 있어 버틸 수 있고 종교도 있고 재미난 것들이 많아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첫댓글 회자정리-만나몀 반드시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