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25사변 피난통에 폐렴을 앓았다. 고교 때는 장티푸스에, 또 그 재발로 인해 3달을 죽다 살았다. 대학 때는 자고 나면 언제나 등 자리에 식은땀이 축축했다. 하지만 병원이고 약이고 생각도 못했다. 그럴 돈 있으면 친구와 술 한잔 더 한다는 주의였다. 국립사대 의무발령 전에 국공립 병원(대구의 경우 적십자 병원)에서 무료 결핵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때서야 결핵으로 왼쪽 허파 상부에 구멍 3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자연치유가 되었다고 했다. 기록으로는 ‘비활동성 폐결핵’이었다. 비활동성이 다시 활동성으로 되는 경우가 있느냐고 물으니, 약 투여 없이 나았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없다고 했다. 돈 없어 약 못 먹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70을 바라보는 나이. 비쩍마른 나는 오늘도 분주 복잡하게 하루를 보냈다. 지난 늦봄에 기침과 함께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왔고, 왼쪽 가슴 상부가 우리이- 하게 아팠다. 동아대병원 암 전문의에게 가서 시티와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폐암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폐암은 아니지만 내 상기 병력이 나이가 많은 지금 어떤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하면서 좀 두고 보자고 했다. 2주정도 지나니 좀 괜찮아졌다. 하지만 산 넘어 또 산이다. 드디어 집사람에게 척추협착이 왔다. 할매의 푸석푸석해진 뼈로 만 2년을 노가다 일 한 댓가가 결국 온 것이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그저 고통의 신음만 계속이다. 병원 약을 먹고 진통주사를 맞아도 별 차도가 없다. 하루 24시간 내내 그토록 아프니, 나 역시 죽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나는 벼르고 벼르던 비뇨기과에 갔다. 몇 년 전부터 내 고환이 세 개인 것처럼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누구는 삭부랄이란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삭부랄이 뭔지도 모르면서 내가 바로 삭부랄인 가부다 생각하고 그냥 지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나인지라 혹시나 싶어 가까운 비뇨기과에 같더니,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하면서 얼른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진료의뢰서를 써준다. 와락 걱정이 든다. 하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는다. 10월과 11월 상순에 이사가 제일 많으니, 10월 내에는 꼭 일을 마쳐야 한다는 요청 때문이다. 그래서 비뇨기과 문제는 11월로 미루고, 주말이고 휴일이고 없이 시멘트콘크리트작업을 연거푸 10일정도 했다. 이제 집사람은 빠지고, 나 혼자 해야 하니 하루에 해내는 일 양이 얼마 못 된다. 이 판국에 또 가슴이 우리이-하기 시작하더니 다시 객담에 객혈이다! 완전 설상가상이다. 몇일 이내에, 하던 시멘트콘크리트작업을 마쳐야 하니 바로 병원에 갈 수가 없다. 미루고 미루다가 어제와 오늘 부산대병원에 가서 큰 돈 들여 기관지 시티촬영,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했다. 기관지 내시경 검사, 우화- 위 내시경 검사는 아무 것도 아니다. 무지하게 괴롭고 힘들었다. 오후 1시부터는 어제 저녁부터의 금식을 풀고 물,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간혹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니 이틀 정도는 몸조리 잘 해야 한다고 해서, 점심 묵고는 좀 누워 쉬려고 했다. 그런데 물과 식사로 좀 살 만하니, 멀리 나가서 하는 일이 바빠 미루어 두었던, 내가 살고 있는 고물 집의 이런저런 일들 생각이 나를 압박해왔다. 그것들을 어서 해치워야만 하루라도 빨리 내 공부방에 들어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쉬기를 생략하고, 저녁밥 때를 넘겨가며 열나게 뚝딱거렸다. 아침 일찍 병원스토리부터 시작해 오늘 온 종일 분주 복잡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다.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이제야 좀 쉬려고 하는데, 집 사람이 허리가 아파 꾸부정하게 과일을 들고 오면서 느닷없이 묻는다. “당신 오늘 무슨 날인지 아시우?” “날은 무슨 날… 와 카는데?” “노래 가사에 있지 안수 왜, ‘10월의 마지막 밤’이라고… 오늘이 바로 10월의 마지막 밤이유”. “아- 그래?” 하면서 식탁 바로 옆에 걸려있는 작은 달력을 보고는 나도 몰래 탄성이 나왔다. “아하- 그러네. 오늘이 바로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 바로 그 ‘10월의 마지막 밤’이네!” 순간 내 마음 한 구석에 삼삼한 정서가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하루 세 때 끼니가 힘들 때도 많았지만 우정에 배부르고, 사랑으로 가슴 설레던 기쁜 우리 젊은 날! 마치 꿈결처럼 떠 오르는데… 그런데 집 사람 왈 “10월에 당신이 한 게 뭐가 있수?” 어 이거 무슨 찬 물? 로맨틱이랄까, 멜랑콜리랄까 그런 삼삼한 정서가 싹 가셔진다. 잠깐 생각과 침묵.
다시 집 사람 왈 “옆에 그 신문 스크랩 한 번 보슈”. 나는 목을 오른 쪽으로 돌렸다. 순간 나는 “아- 하, 참 기가 찬다” 하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그 작은 달력의 여백과 조금 겹치도록 집게로 집어서, 고개만 달력 쪽으로 돌리면 바로 보이도록 해 둔 스크랩을 들여다 보았던 것이다. 거기 우리 구청신문 <내고장 사하>에 10월의 주요 문화행사가 나와있는데, 행사 일이 모두 14일이나 된다. 책과 필을 놓은 지가 오랜지라, 이번 10월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일 틈틈이 속살을 좀 찌워야겠다는 생각에 이것만은 반드시 참석할 결심으로 빨간 사인펜으로 표시를 해 둔 스크랩이다:
**10일, 을숙도 명품콘서트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17일, 김수우 시인의 <공감의 상상력을 위하여> **18일, 을숙도문화회관의 제9회 부산국제합창제 **31일, 정형진의 <고대문화 새로 읽기>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부끄럽고, 한심하게도 단 한 곳도 참석하지 못했다. 아니, 참석은 커녕, 그 스크랩을 드려다 본 기억조차 없다! “10월에 당신이 한 게 뭐 있수?” 이거 정말이다. 도대체 10월이 다 가도록 내가 무얼 했단 말인가… 이카다가는 늙어가민서 머리 속에 ‘10원짜리’로만 꽉 차게 되는데… 바로 좀 전의 그 삼삼한 정서와는 정반대로, 자괴감이 마음 깊수우- 욱이 들면서 복잡미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아름다웠던 젊은 날들이 꿈결처럼 피어 오르고, 뒤이어 낭떠러지 같은 느낌의 허탈함과 자괴감이 들었으며, 뒤이어 속절없이 그 스크랩을 떼 내어 휴지통에 넣으면서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에 든다. 그리고 무거운 궁금증이 뒤따른다. 몇일 후 객혈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과연 어떻게 나올지… 조만간 또 대학병원에 가서 붕알 정밀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별 것 아니어야 할 텐데…
아- 어찌 이리도 복잡 다난 미묘한 심상의, 오늘 10월의 마지막 밤이란 말인가! 젊은 날의 그 아리삼삼하던 10월의 마지막 밤이 엊그제 같은데… 대학 때 깡술로 피를 여러 번 토했으면서도 평생을 술로 살아온 내 인생인데… 오늘 같은 밤 어찌 한 잔 술생각이 없을 손가. 병원의 그 당부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소주 몇 잔을 기울인다. 역시 나에게는 술이 구원. 토셀리의 세레나데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가슴 저며오는 이 아름다움!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옛날을 말하는가 기쁜 우리 젊은 날 금빛 같은 달 빛이 동산 위에 떠오면 그 때 자미롭던 그 때 그 때가 꿈결과 같이 지나 가건만 내 마음 속 깊이 새겨진 그대 아- 그리워라, 사랑아…
과연 아름다운 감정은 활기(活氣)를 불러오는가. 느닷없이, 그냥 제목만으로 아는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가 생각난다. 그렇다. 내일이면 11월의 첫 해가 떠오른다. 이제 이삼 일이면 급한 일은 끝난다. 11월의 내 가을은 보다 힘차고, 아름다울 것임을 꿈꾼다. 구미에 사는 손아래 친구와 직지사 일대 단풍구경 하기로 했고, 또 서울.대구 동기들과 다맛하야 단풍으로 물든 문경세제를 걷기로 되어있고, 또 여기 부산동기들과 함께 가을산을 하루 즐길 것이고, 또 최근에 노처녀 막내딸 치운 서울 의형님이 마음 홀가분하다 하시면서 놀러 오신다 하셨고, 또 안동 친구집에 2박 하면서 청송 주왕산 일대 단풍구경 댕기기로 했고, 또 멀리 런던의 딸애가 대전에 일로 왔다가 집에 들린다 하고, 또 여름에 호사스럽게도 링컨컨티넨탈로 이 영감 할매를 2박3일 지리산 남부 일대 구경(나로서는 20년도 넘게 처음) 시켜주고 간 서울 손아래 친구는 중부지역 어디 단풍구경 가자고 날짜를 잡고 있는 중이고, 또 바로 옆에 을숙도문화회관에서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 정경화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있으니 꼭 가 볼 것이고… 이번 가을의 맨 끝자락, 11월의 마지막 밤에는 과연 어떤 결산이 나올까?
불현듯 내 기억 데로의 푸쉬긴 시가 떠오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과거는 항상 아름다운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그러나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2014년, 10월의 마지막 밤에 강 학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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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세월이 흘러 2024년 10월 13일 소생 모진 목숨 살아남아 집사람과 함께 낙동강을 따라 자전거 하이킹 했습니다(하단-호포, 왕복 5시간 30분). 화명생태공원을 조금 지나 점심 먹고는 푸른 가을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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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학순 잘있제?
일상의 고달푼 일상을 이렇게도 리얼하게 평소의 갈고 닦은 솜씨로 쓰내려 갔는지
아마 모진 목숨이 아직 살아
남아 있기에 솜씨를 발휘한모양일쎄!
고달푼 인생이지만 참고 견디면 좋은 소식이 찾아 울거로 확신하네
부디 살아 남아 영광된 날을
맞이 하기를 두손 모아 기원하면서 건투를 비네!
쌩큐, 따뜻한 격려 고마우이.^
푸른 보리처럼
늘 싱싱한 건강으로
경이롭도록 아름다운 자연
많이 실어다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