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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세이스트 조 앤 비어드의 대표작.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알 수 없는 아홉 개의 글에서 저자는 일상의 작고 빛나는 순간과 삶과 죽음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을 동시에 포착한다. 그리고 마치 과학을 탐구하듯 한 사람에게 일어난 가장 끔찍한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기억하고, 미처 기억이 닿지 않는 곳에선 상상력을 발휘해, 영원히 잊지 못할 이야기로 재탄생시킨다. 사랑하는 반려견의 죽음, 불타는 건물 안에 갇힌 남자, 암 투병 끝에 존엄사를 선택하는 여자, 그리고 죽어가는 친구와 배신한 남편을 마주한 채 공포와 격투를 벌이며 지난 여행의 순간들을 떠올리는 이야기까지. 기억의 엄격함과 소설적 상상력을 결합한 대담한 도전 앞에서 이 이야기들의 장르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좋은 삶과 죽음, 사랑과 우정, 새로운 글쓰기,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 등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밤을 새워 토론할 작품.
삶의 고통과 비통함을 현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지금 가장 특별한 작가 조 앤 비어드
현대 미국 에세이의 경로를 바꿔놓은 작가, 슬픔과 사랑의 경계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을 끌어내는 작가, 고통을 품고 빛을 말하는 작가,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꾼, 문장의 결을 다루는 세밀화가.
이는 모두 조 앤 비어드라는 작가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 조 앤 비어드의 책이 마침내 한국에 처음으로 출간된다. 『축제의 날들』은 저자의 대표작이자,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허물며 자신만의 서사 방식을 구축해온 비어드의 문학적 정수가 집약된 작품집이다.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의 글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단순한 기록이나 증언으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직접 취재하고 목격한 사건들을 탁월한 서사적 구성과 심리 묘사로 재구성하며,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 결과 에세이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한 편의 소설처럼 정교하고 감동적인 드라마로 완성된다.
죽음과 병, 화재, 관계의 상실, 반려동물과의 이별 등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비어드의 문장은 그것을 결코 비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고통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오랜 시간 함께 머물며, 그 속에 스며있는 인간성과 사랑의 흔적을 고요히 비춰낸다. 다시 말해 『축제의 날들』은 읽는 이를 끌어당기는 어떤 빛을 지닌 책이다. 현실의 어둠을 피하지 않되, 끝까지 인간적인 존엄과 연대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 이 목소리는, 한국 독자에게도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감정의 깊이를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의 출간은 단순한 번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조 앤 비어드라는 특별한 작가를 한국의 작가와 독자에게 처음으로 소개하는, 한 편의 문학적 사건이다.
기억의 엄격함과 소설적 상상력의 결합으로
위대한 사랑 이야기가 완성되다
이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의 작품 중 「셰리」는, 영국에서 단행본으로도 출간될 만큼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남긴 글이다.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인 셰리 트렘블의 존엄사 결정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에세이로, 한 편의 소설처럼 서사적 완성도가 뛰어나 깊은 정서적 충격과 감동을 전한다. 유방암 투병, 유방 재건 수술로 인한 장애, 존엄사, 자기결정권 등 윤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그러한 과정을 겪는 주인공의 심리를 밀도 높게 묘사해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조 앤 비어드는 셰리 트렘블의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을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셰리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로 엮었고, 사실이 닿지 않는 지점에서는 소설적 상상력으로 그 틈을 메워 이야기의 완결성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하나 가족의 동의를 구해가며 이뤄졌을 정도로, 작가로서의 윤리 또한 철저히 지켜졌다.
“나는 셰리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삶을 뒤로해야 하는 셰리의 마음, 그런 어머니와의 이별을 감내해야 했던 딸의 마음을 떠올리며, 나는 그 과정을 끝까지 상상해보고 싶었다. 그 상상의 결과가 이 작품의 결말이다. 셰리는 믿을 수 없이 강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했던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셰리가 갈 수 있는 곳까지 함께 걸어주었고, 그녀가 원했을 때, 용기를 내어 사랑으로 그녀를 보내주었다. 나는 그 위대한 사랑을 그려보고 싶었다.” 작가의 이 바람은 「셰리」에서 오롯이 실현되었다. 이토록 현실적이면서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가 또 있을까. 에세이와 소설의 한계를 넘어선, 진짜 이야기의 탄생이다.
P.15
마지막 밤
식사 중, 아니면 식사 직후였던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그녀는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하더니 멈추질 못했다. 부엌에서도, 차 안에서도 동물병원 진료실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벽에 기대어 서서 그녀와 함께 바닥에 앉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울고 있었지만, 의사는 못 본 척했다.
P.15
˝저한테 부탁하신 적 있죠.˝ 의사는 파일을 훑어보며 말했다.
˝때가 된 것 같으면 말해 달라고요.˝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뇌에 일종의 이상이 생긴 것 같아요. 무언가가 자랐거나 변형되었거나, 우선 증상이 더 심해지는지 하루 이틀 정도 지켜보죠.
하지만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의사는 말을 멈췄다.
P.21
워너
워너 회플리치는 센트럴파크를 마주 보는 널찍한 아파트에서 열린 케이터링 행사에서, 화이트 와인 스프리츠를 만들고 보드카와 콜라를 섞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난초와 두꺼운 러그, 털이 길고 금빛인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이후 늦은 밤이 되어서야 워너는 지하철역에서 내려 철책과 자물쇠로 가득한 어퍼이스트 사이드 거리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그가 사는 구역의 나무들은 영향력 없는 고모들처럼 앙상하고 꼿꼿했다.
P.21
어느 날엔가 워너는 그중 한 나무 위에서 왼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길 반복하며 그를 내려다보는 잉꼬 앵무새를 본 적이 있다. 앵무새는 나뭇가지에 부리 양쪽을 날카롭게 갈더니 한참 위에 있는 창틀을 향해 발작하듯 갑작스레 비행했다. 그에게 은유적인 순간들은 대부분 그림처럼 다가왔다.
P.22
거리 쪽에서는 워너가 사는 집 건물이 한 채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서로 꼭 붙어 있는 쌍둥이 주택이 앞뒤로 연결된 형태였다. 워너는 왼편에 있는 입구로 들어간 후 뒤쪽으로 걸어가 5층까지 올라갔다. 거기서 워너의 고양이 투가 그를 맞이했다. 투는 신나게 앞장서서 부엌으로 달려가, 펼쳐진 은박지 위에 놓일 얇은간 파테와 반투명한 생선회 몇 점을 기다렸다.
P.23
그날 밤 마침내 잠든 워너는 마치 심해 바닥까지
1패덤씩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선이 마침내 점화되어 건물 위로 화염을 올려 보내기 시작했을 때, 워너는 아마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을 향해 손을 뻗기엔 그를 짓누르는 물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다.
P.25
아주 희미하지만 익숙한 향기가 났다. 어릴 적 오리건 숲속에서 캠프파이어를 할 때 맡았던 냄새였다. 따뜻한 커피, 축축한 양말, 무릎 위에 활을 놓고 그루터기에 앉은 채로 얼어붙은 워너.
˝사슴은 말이야.˝ 누군가가 말했다. ˝적어도 두 가지 감각을 이용해 확실한 위험 상황인지 판단한다. 시각, 청각, 후각 중 두 가지를 함께 쓴다는 거지. 그래서 확신이 없으면 그냥 거기 그대로 서있는다더라.˝
P.26
시간은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워너의 방은 코딱지만 했고 비좁았다. 천장에 달린 전구 때문에 고문실처럼 값싸고 선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는 창가로 가는 길에 전구의 줄을 당겨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창틀을 들어올리려고 애썼다. 여닫이창 위쪽에 달린 환풍기 때문에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 환풍기 창살 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잡아당겨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화염처럼 그를 집어삼키려 하는 공황 속에서 끄떡 않는 환풍기를 뜯어내려 하는 자기 모습이 잠시나마 짐승같이느껴졌다.
그는 손을 놨다.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P.33
일꾼들은 마치 기어다니는 거대한 곤충의 집게발을 움직이는 존재들 같았고, 두껍고 울퉁불퉁한 케이블은 근육질 팔 같았고, 도르래는 기다란 말 얼굴 같았고, 한데 묶여 있는 철 기둥은 불쏘시개 더미 같았고, 콘크리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철근은 거대한 곱슬머리처럼 굽이쳤다. 외로움과 황홀경에 젖은 워너는 그 모든 것을 그림에 담았다.
P.36
이제 입자들 사이에 산소는 전혀 없는 듯했다. 아무것도 나올게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산소가 생명이라면 무산소는 죽음일 테고, 연기는 독이 섞인 무산소였다.
멈춘 채로 숨이 막혀오는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불현듯 터져 나와 소용돌이치는 검은 기둥에 창백하게 걸렸다.
뛰어내려야 했다.
P.37~38
워너는 어떻게 할지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했다. 그러다 더는 고민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드레날린이 머리끝까지 솟구친 상태였다. 워너는 투를 왼팔에 끼운 후 상체를 최대한 바짝 붙여 안전하게 고정하고는, 오른손 관절을 아래로 향하게 한 다음 열린 창문의 나무 창틀 위에 놓았다.
워너는 투에게 말했다.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그러고는 한 번에 올라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발가락이 창틀을 휘감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창틀 위에 발가락이 올라오긴 했지만 제대로 휘감지는 못한 상태였다. 발가락이 창틀을 완전히 휘감은 후, 워너는 도약했다.
_「워너」
P.44
새벽 5시의 응급실에는 개미 한 마리 없었다. 뚜렷한 침묵이 지나간 후, 여덟 명의 사람들이 워너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들은 그를 찔러대고 만져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구급대원은 워너가 불타고 있던 건물에서 불이 나지 않은 다른 건물로 뛰어 들어간 덕분에 스스로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동요했다.
˝뉴스에 제보해야겠네요. 의사가 말했다.
˝아뇨.˝ 워너는 그중의 누군가를 쳐다보는 대신 그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처나 치료해주세요.˝
젊은 레지던트는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일한지 꽤 오래됐다. 극한의 상황들을 겪어봤다. 안 좋은 상태의 환자들을 봤다. 머리에 총을 맞은 환자도 봤다, 기타 등등. 응급실에실려 온 환자에게 무슨 얘기까지 들어봤는지 상상도 못 할 거다.
˝하지만 당신 얘기가 가장 놀라워요.˝
레지던트는 감탄했다. 프로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사람 좀 여기서 내보내주세요.˝ 워너가 말했다.
의료진은 차가운 소독제로 워너의 얼굴을 닦아줬지만, 얼굴을 뺀 나머지 몸은 여전히 그을음과 흙과 말라붙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P.47
기절할 것 같았다. 자가 익사가 가능하다니. 그는 성배를 들 듯 창밖으로 투(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이제 보니 모든 것이 순간의 연속 같았다. 그 순간과 바로 그 전 순간, 연기는 옆으로 퍼져나가며 건물을 휩싸고 있었다. 마치 검은 천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연기가 멈췄고 찰나의 공허함이 지난 후에 검은 기류가 위로 솟아 올랐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그것은 천 같은 게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쓰고 버려진 엔진오일처럼 검고 끈적거렸다. 그러니까 그들은 기체가 아니라 액체를 들이마셨던 것이다.
P.56
워너는 자신이 유리로 만들어진 듯 실체가 없고 거미줄처럼 얇고 가볍게 느껴졌다. 여전히 약에 취해 있었지만 충분치 않았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잇몸까지 아팠다. 고통이 사라지려면 오래 걸릴 터였다. 중환자실과 중간 치료실 복도의 길이보다,
소리를 잔뜩 키운 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수염 난 남자들로 가득한 병동 복도의 길이보다 더 긴 시간일 터였다.
P.57
본질적으로 구조적인 듯한 통증과 잔류 통증은 일종의 날것 그대로의 강제적인 행복처럼 수개월 동안 워너를 괴롭힐 터였다. 그가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완벽히 분리될 수 있을 때까지. 두개골 위쪽에 가해진 타격으로 인한 이명은 오래도록 워너 안에서 덜커덩거리며 잠시라도 워너가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혼동하게 두지 않을 터였다.
P.57
2주 후, 건물 관리인 프랭크는 워너를 데리고 건물 뒤쪽으로 가서 화재의 잔해를 헤치고 건물 사이 틈으로 들어갔다. 워너는 무릎을 꿇고 프랭크가 발견한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폐쇄된 출입구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고양이는 몇 미터나 되는 자갈과 잔해를 뚫고 안전한 장소까지 자기 몸을 끌고 가 그곳에서 죽었다. 워너는 회색과 갈색 띠를 이룬 꼬리를 알아보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P.59
셰리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삶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아무 관련 없는 기억들이 하루에 한두 개씩 무작위로 떠오른다. 그 장면들은 뇌의 밑바닥에서 난데없이 나타나, 저프루더 필름처럼 강렬하고 고요하게 상영된다. 그녀는 그 장면들을 그냥 지켜볼 뿐이다.
P.67
몹쓸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자기 자신이 죽어가는 동물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축사와도 같다. 더러움, 냄새, 그리고 소의 몸 안에 갇혀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비틀거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느낌까지. 몸이 특히 더 나쁜 오후, 셰리는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자기 목소리를 듣는다. 겁에 질린 소 울음소리 같은 것이 깊고 길게 울린다.
P.82
항암 치료 덕분이 아니라,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삶 덕분에 나아진 것이다. 과일, 커피, 산소, 그리고 다정한 말들. 당신은 사랑받고 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은 살 수 있다. 다른 이들도 살았다.
P.86
동네 거리의 나무들은 오후 햇살 아래 생기가 넘치고, 시들어가는 나뭇잎조차 너무나 찬란하다. 전에 한번도 본 적 없다고 생각하게 할 만큼의 광경이다. 가을,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풍경, 그리고 오후마다 마시는 우유와 꿀을 넣은 녹차 한 잔, 두껍고 하얀 머그잔에 담긴, 그 단출한 차 한 잔조차도, 따뜻하다. 머그잔을 감싼 그녀의 손, 그 옆에 놓인 반으로 접힌 신문, 또 그 옆에는 파란 접시에 올려진 반쪽자리 오렌지, 모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P.100
11일 후면 다 끝난다. 11일! 방 안에 혼자 남겨진 셰리는 끔찍한 슬픔에 신음한다. 이제 그녀는 불타는 배를 버리듯 자신을 버려야 한다. 세리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상상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상상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이 떠나고 없는 지금의 세상을 그려보는 것, 하지만 그걸 그리는 사람도 여전히 그녀 자신이다.
P.113
이제 때가 되었다.
사라와 케이티는 울부짖으며 무너진다. 손과 입, 얼굴과 머리카락, 눈물이 뒤엉킨 혼란 속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어느 순간엔가, 두 사람 모두 셰리의 무릎 위에 몸을 웅크린 채 그녀를 끌어안고 있다. 울음소리가 너무나 격렬하고 절박해서, 다들 두 사람을 조용히 달래려 하지만, 그들을 위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간신히 몸을 떼어내고 문 쪽으로 향하려다가도, 두 사람은 다시 셰리에게 돌아와 매달린다. 셰리는 두 사람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조용히 속삭이며, 그들을 진정시키려 한다. 이제 산소통은 32분 치 남았다.
_「셰리」
P.116
넋이 나간 듯, 그녀는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의 젊은 얼굴을 올려다보며 보낸다.
셰리?
여전히 어머니를 바라보며, 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는다.
주삿바늘은 차갑고, 순식간에 그녀는 감각을 잃는다.
두꺼운 얼음층이 그녀와 남자들을 분리한다.
셰리는 비좁은 공기주머니 속에서 천천히 호흡하고,
머리 위로 화려한 스케이트를 신은 아이들이 모여든다.
그녀는 얼음 밑에 볼을 댄 채 잠시 거기 머문다.
그러다 곧 누군가의 손이 내려와 그녀를 아래로 밀어 넣는다.
P.117
아마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일
그녀는 그저 아이였을지 모른다. 그렇게 온순한 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어느 날 오후 그녀는 온순한 연상의 사촌 둘과 함께 밖에서 놀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기 역할인 그녀를 돌보는 척하는 놀이에 세 아이는 지나치게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옹알이를 했고, 그들은 그녀의 매끈한 민머리에 리본을 매주고 그녀를 손수레에 태워 밀었는지 모른다. 용변이 급해졌을 때, 그녀는 어쩌면 양해를 구하고 손수레에서 내려 화장실로 가는 대신 정말로 아기 역할을 충실히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바지에 실례를 했는지도 모른다.
P.118
어쩌면 아기가 아니었던 아기는 아기였을 때처럼 우유 상자위로 올라가 창문으로 엄마와 이모를 쳐다봤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엄마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 비닐 식탁보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서 이 이야기 속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사람들보다더 오래 살아남을 분홍색 멜맥 컵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는 자주 피우던 담배를 이모에게 내밀었을 것이고, 비닐장갑을 낀 채 염색약을 섞고 있던 이모는 그럴 때마다 담배를 받아 한 모금씩 빨아들였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와 이모가 좋아했던 술이 담긴 납작한 술병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애들이 죽으면 안 되니‘ 술에 커피를 섞었을 것이다.
P.119
그때 우유 상자가 기울어져 그 위에 있던 아이가 뒷문 옆 흙바닥에 내던져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 바람에 아이의 오른쪽 무릎에자갈이 박혀 동그란 모양의 창백하고 파란 상처가 생겼고, 아이는 두 개의 점 근처에 생긴 그 상처를 보며 무릎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비닐 식탁보를 어깨에 두르고 있던 엄마가 한쪽 벽을 짙은 녹색으로 칠한 거실을 가로질러 전화기를 향해 걸어갔을 가능성도 크다. 이모는 거기 그대로 앉아서 염색약 그릇과 염색약을 바르던 도구를 내려놓았고, 덕분에 엄마가 전화를 받은 다음 ‘여보세요‘라고 말한 후 상대방의 말이 들리길 기다리는 동안, 장갑을 벗고 뒷문으로 나가 날카로운 돌 위로 넘어져 통곡하고 있는 아이를 안아 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날 오후 이모는 바지에 실례를 한 아이를 안아 들고, 아이가 무릎의 피가 멎었는데도 여전히 우는 이유를 몰라 아주 오랫동안 혼란스러웠을 가능성이 크다.
P.121
레슬링의 무덤
조앤은 삽으로 침입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원래는 고속도로의 방해물을 치우려고 자동차 트렁크에 보관하던 것이었다. 뉴욕 외곽에는 거북이들이 갈대가 우거진 연못을 떠나 느릿느릿 시골을 떠도는 시기가 있었다. 거북이들은 도자기 파편처럼 도로에 흩어져 있었다. 상자거북은 손으로 집을 수 있지만, 늑대거북을 도랑으로 옮기려면 삽이 필요했다. 다행히 마침 트렁크에서 삽을 꺼낸 참이었다. 퇴비 문제 때문이었다. 조앤의 이웃이 퇴비 통에서 나는 악취가 너무 심하다며 불평한 것이다.
토마토와 옥수수 속대,커피 찌꺼기가 섞여 발효되며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배수로 청소용 호스의 부착물을 빌려주러 온 이웃은 삽을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와 흙을 조금씩 번갈아 넣으라고 제안했다. 그런 연유로 삽은 부엌으로 난 문 바로 옆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P.122
낯선 남자는 조앤에게 등을 돌린 채 서서 냉장고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조앤의 인기척을 느끼긴 했지만 아직 돌아서지는 않은 찰나, 벌새가 먹이통을 공격적으로 빨아대는 기계적인 윙윙 소리가 들렸다. 벌새들은 성격이 나빠서 언제나 나팔꽃 덩굴과 먹이통 주변에서 서로를 쫓아내려고 쪼아댔다. 그들의 엄지손가락만 한 몸뚱이는 악의로 번쩍거렸다. 낯선 남자를 얼마나 세게때려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를 때리는 것이 너무 끔찍한 일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멋진 일처럼, 불가피한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삽으로 내리쳐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녀가 목이 졸린 것만으로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다시 그녀를, 아니면 개를 공격하러 돌아올지도 몰랐다. 그는개들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몸집이 큰 필그림은 그를 공격했다가몇 차례나 발로 차였다. 마치 그저 별 생각 없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듯 잔인하고 일상적인 움직임이었다.
P.123
조앤은 결심했다. 낯선 남자가 목덜미 털을 눈에 겨우 보일 정도로 곤두세우며 냉장고에서 몸을 돌려 그녀를 향하려는 그 찰나의 순간을 노려 그의 머리를 내리치기로. 그녀는 가냘픈 여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옛날에는 그랬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은 중년 같았다. 그녀의 팔다리는 여전히 탄탄했지만, 몸통은 휴지심 같았다. 조앤의 아름다움은 그녀 자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옛날 사진들을 보던 조앤은 자신이 늘씬하고 감정이 풍부한, 머리칼에 윤기가 흐르는 여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시절에는 스스로가 푸석푸석하고 벌레 같은 얼굴에 볼품없이 깡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P.124
온 힘을 다해 내리치기에는 망설여졌다. 그것은 그녀의 본성과 반대되는 일이었다. 우선 그녀가 여자라는 것부터 그랬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삽은 커녕 주먹으로조차도 누군가를 때려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전력을 다할 경우 혹은 전력을 다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온전히, 철저히 힘껏 내리치는 게 이치에 맞았다. 그러지 않으면 잠시 기절시키거나 화나게 하는 데 그칠 수도 있었다.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수년 전 미술관에서 일할 때 배웠던 지렛대 원리를 떠올리고는 삽의 손잡이 맨 끝을 붙잡았다.
P.136~137
그는 무엇을 더듬어 찾으려는 듯 몸을 뒤로 기울였다. 그 바람에 그의 정강이뼈가 그녀의 위쪽 팔을 강철봉처럼 짓눌렀지만, 소리를 지를 수는 있게 됐다.
미친 것 같았다. 죽기 전 마지막 한마디가 개 이름이라니.
필 그 림!
낯선 남자는 벽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던 자로 그녀의 목을 짓눌렀다.
목구멍은 파이프가 아니다.
필그림은 집 바깥의 뒤편 울타리 옆 마멋 굴에서 머리와 어깨, 앞발, 그리고 몸통을 빼냈다. 필그림은 코를 치켜든 채 여름 저녁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가 흙투성이 얼굴을 레이더처럼 돌려 집을 바라봤다.
_레슬링의 무덤
P.178
말하자면, 나는 글쓰기는 몰라도, 읽는 건 잘 알았다. 그리고 논픽션 글쓰기 교육에 관해 얘기하자면, 솔직히 작가가 편집자나 선생님이나 다른 작가의 비평으로부터 배우는 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에 대한 배움은 출판된 작가들뿐 아니라 동료가 쓴 글을 읽는 데에서 온다. 읽은 것을 자신의 통찰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분석하고, 왜 그것이 성공적인 글인지, 또는 성공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부족한지 짚어내며 이루어진다. 지식은 그렇게 얻어진다. 느리고, 답답하며, 모호하고, 산만한 일이다. (중략)
모든 에세이, 모든 학술 강연, 모든 글쓰기 시도는 관찰과 세부 묘사를 통해 깊이가 생길 수 있고, 좋은 생각을 환기할 수 있으며, 우주 먼지와 발광하는 조각과, 어두운 영역을 내포할 수 있다.
P.182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을,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일깨우고 감동시키고 영감을 주는 무언가로 바꾸는 것은 고귀한 목표다.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부터가 영웅적인 일이다. 그래서 나는 논픽션 워크숍은 칭찬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시도 그 자체로 칭찬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_「문단속」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작품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이다.
.......
좋은 에세이는, 좋은 단편, 좋은 회고록,
좋은 소설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디어에 달려 있다. 그래서 좋은 작품은
명목상 주제를 넘어
보편적인 무언가를 조명하면서
스스로 고양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은 교훈을 준다.
작가는 독자보다 더 현명하고
더 많은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논픽션 워크숍에서 내 노력의 절반은
아이디어와 문제를 끌어내는 데 쓰인다.
P.223
조앤은 아빠 곁으로 의자를 끌어당겨 그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푸른색, 구름, 이따금 미끄러지듯 나는 새들. 어느 순간 그녀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는 조앤이 무슨 말을 하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적이고는 계속 밖을 바라보았다.
P.230
다이앤은 코트를 어디에 둬야 할지 물었고, 아리는 닫힌 문을 가리켰다. 때때로 빛이 들이쳤다. 집 안은 따뜻했고, 사람들이 내뿜는 분위기는 마치 조앤의 집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곳은 황홀경의 몸짓으로 움직이는 우주였다. 사실 두 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녀는 발을 내디뎌 오른쪽(right)의 잘못된(wrong) 문을 열었다.
_「당신이 찾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P.235
글은 이렇게 쓰는 거다. 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기억과 이미지, 언어가 주도권을 잡게 두는 거다. 작가는 당신이니까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고,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쓸 수 있다. 나는 앞서 말했듯 치마를 걷어 올린 로라 스미스가, 듣기로는 학생들을 세게 때릴 수 있었던 로라 스미스가 더 이상 장례식장 뒤편에 있는 비올라 공동묘지의 흙에 불과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로라 스미스를 저 먼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무대 위에 세울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녀의 이름과 업적은 그녀의 마지막 레이업슛보다 한참 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_「지금」
P.242
이 글을 얼마나 길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생각을 다음 생각으로 잇고, 하나의 이미지를 다음 생각으로 이어가면 영원히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중략) 독자 또한 이야기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바란다. 이것은 단순히 사유하는 것이며, 집중된 사고다. 단어는 기억에 연결되고, 기억은 이미지에 연결된다. 그 이미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핵심에 있는, 아직은 흐릿하고 잡히지 않는 생각을 형성한다. 나는 그 생각을 배경에서 떼어내지 못한다.
P.246
원래 흐릿한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렌즈를 돌릴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늑대의 선명한 윤곽보다 배경이 더 중요한 건지도 모른다.
P.312
‘아기처럼 우는 것’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막상 그걸 자신이 하면 결코 진부한 일이 아니다. 이제 그 울음은 마치 비처럼 멈추지 않고 흐른다.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그치지 않고 내려, 땅을 흠뻑 적시며 나무를 쓰러지게 할 정도다. 비가 그치면 모든 것이 더 나아지고, 씻기고, 반짝인다. 상처받은 감정이 그대로 떠오르게 두자. (“네 얼굴은 참… 열려 있어, 조.”) 왜냐하면 내 생각에는 그게 더 나으니까. 그리고 더 현실적이니까. 그래, 나무들은 쓰러진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에 새로운 삶을 느낄 공간이 생긴다. 누군가의 판단에서 벗어날 자유, 그들의 규정에서 벗어날 자유, 나를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억압에서 벗어날 자유. 이제 나는 다른 존재가 아니다. 진정한 나 자신(one)이다. 그리고 일(one)은 가장 외로운 숫자다.
_「축제의 날들」
P.324
필사적으로 어떤 생명을 지키려 애쓸 때는, 가끔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자신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적어도 그 일부가 뭔지는 알게 된다. 사무실을 한 칸씩 지날 때마다 한 남자는 조금씩 다른 행동을 했다. 멈춰 서서 이어폰을 뺐다 끼거나, 듣고 있는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거나, 바지 속으로 손을 뻗어 옷매무새를 고친다. 그러다 보면 깨닫게 된다. 아, 맞아. 삶이란 그런 거지.
_「축제의 날들」
언젠가 어느 날
너의 얼굴을 바라보면
축제의 날들이 남긴
슬프고도 사연 어린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었지
낸드 차두베디, <잔인한 축제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