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래의 人香萬里 ❺ '한강'을 앞서 산 예술혼,허날설헌과 클로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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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예술혼, 허난설헌과 클로델
스웨덴 한림원이 오는 10일(현지시각) 소설가 한강에게 노벨 문학상을 시상한다.
한국인을 넘어 동양인으로서도 최초인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은 여러 면에서 깊은 의미를 갖는다.
개인의 영광을 넘어 시대와 사회적 장벽에 가로막혀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과거 여성 예술가들의 염원을
대변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되며 많은 상상을 자극한다.
노벨문학상이 오랫동안 서구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만큼 이번 수상은 여성 작가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고 가능성을 확인하는 신호탄이 됐다.
특히 동양 여성 작가로서 이 권위있는 상의 주인공이 됐다는 것은 편견과 억압 속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과거 여성 예술가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의 허난설헌과 프랑스의 카미유 클로델은 재조명받아야 할 대표적 예술가들이라 할 수 있다.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만약 오늘날과 같은 자유롭고 평등한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재능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으며 노벨문학상이나 예술의 정점에 서는 영예를 누렸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렇기에 한강의 수상은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실현한 하나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편견과 억압”...비슷한 인생 여정
허난설헌(1563~1589)과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살았다.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을 지녔지만 시대와 사회의 장벽에 가로막혀 꿈을 이루지 못한 공통된 운명을 지녔다.
허난설헌은 조선의 유교적 사회 구조 속에서 천재적인 시적 재능을 발휘했지만,
당대의 편견과 한계로 인해 그 빛을 온전히 발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카미유 클로델은 남성 중심의 조각 세계에서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예술세계를 펼쳤으나
그 열정은 억압과 고독 속에서 타다남은 재처럼 서서히 꺼져갔다.
이들 두 사람은 생전에는 외면받았지만, 사후에는 재평가되었다는 점도 닮아있다.
시대의 장벽을 넘지 못한 두 예술가는 비록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작품과 정신은 후대에 깊은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불행 속에서 피어난 조선의 천재시인 허난설헌
조선시대의 천재시인 허난설헌은 유교적 가부장제 속에서 찬란한 재능을 피워냈지만 비극적 운명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의 시는 조선을 넘어 중국과 일본에서도 찬사를 받았으나, 정작 고국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녀는 당시 여성들에게는 상상조차 어려운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타고 났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지은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신동으로 주목받게 했고,
1608년에는 작품이 명나라에 전해져 ‘난설헌집’으로 간행돼 큰 호평을 받았다.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시집이 발행될 정도로 동아시아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적 성취 뒤에는 끊임없는 불행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남편과 시댁과의 갈등, 사랑하는 자녀들의 잇단 죽음은 그녀를 끝없는 슬픔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그녀는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남긴 시편들에는 고독과 좌절, 비애와 절망의 흔적들이 절절이 묻어난다.
그녀의 동생이자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 균은 비운의 삶을 살다 간 누이를 애도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옥(玉)이 깨지고 별이 떨어지니 그대의 한평생은 불행했네.
난설헌의 침실은 고독만이 넘치고, 난초가 싹을 틔웠건만 서리 맞아 꺾였네.”
짧은 생애동안 누이가 겪었던 깊은 고독과 좌절이 탄식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에게 누이는 단순한 가족 이상의 존재였으며, 한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였다.
허난설헌은 그러나 끝없는 불행 속에서도 예술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절망의 바다를 건너게 한 마지막 버팀목이었을 지도 모른다.
붓을 놓지 않았기에, 그녀의 작품은 시대의 한계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깊은 감동을 전하며 재평가되고 있다.
그녀의 문학은 비극을 넘어 영원히 빛나는 유산으로 남았다.
‘로댕의 연인’ 낙인에 가려진 천재조각가 클로델
클로델의 재능은 시대를 초월했고 예술가로서 독립된 길을 걷고자 했으나,
당대의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 속에서 타고난 재능을 펼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당대의 유명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의 관계가 인생을 뒤흔들었다.
그녀는 로댕의 작품을 돕기도 하고 모델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영감을 주며 작품 세계를 발전시켰다,
클로델은 로댕에 버금가는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로댕의 연인’이라는 사회적 낙인에 갇혀 여성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사랑과 예술, 독립과 억압 사이의 갈등 속에 그녀는 가난과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했고,
30년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유부남 스승을 만나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사쿤탈라’와 ‘중년’ 같은 조각은 오늘날에 와서야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후대 비평가들은 그녀의 작품이 단순한 조각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를 형상화한 예술이라고 재평가한다.
허난설헌과 클로델의 예술적 유산
두 예술가의 삶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들의 예술혼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맞물려 여성 예술가들에게 창조의 자유와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오늘날 두 예술가의 작품은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그들이 남긴 작품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예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유산으로 읽힌다.
그들의 고통과 번민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의 원천이 되어,
인간의 내면과 예술적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찬란한 증거가 된다.
결국 진정한 예술은 시대와 이념, 국경을 초월해 인간의 고통과 행복,
그리고 자유를 향한 끝없는 갈등을 담아내는데 있는게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궁극적인 사명이며, 허난설헌과 클로델이 우리에게 남긴 값진 유산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