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코흘리개 아이들도 알만한 이 말의 주인공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숏다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들어서 아는 풍월인지라 나폴레옹이 ‘숏다리’라는 사실은 당연한 진실인 양 머리에 저장돼 있는 게 보통이다. 이로 인해 나폴레옹은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는 희망이자 자부심의 상징으로까지 자리 잡기에 이른다. 그래서 초등학생급 상식으로 통하는 ‘나폴레옹 숏다리’설(說)이 실은 잘못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대체로 ‘정말일까?’ 하며 의문부호까지 날리게 된다.
천재적인 전략과 용병술로 유럽의 지배자가 될 뻔했던 나폴레옹에게 이런 오해가 덧씌워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나폴레옹을 호위하는 황실 근위병 때문이다. 프랑스 황제로 거듭난 나폴레옹을 최측근에서 호위하는 황실 근위병은 프랑스의 최정예 부대였다. 이 때문에 이들은 당시 성인 남자의 평균 체격을 크게 웃돌아 그들 사이에 낀 나폴레옹이 작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에 대한 오해를 낳은 실질적이고 근원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후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돼 살다 죽은 나폴레옹을 부검했을 때 그의 키는 5.2피에, 오늘날의 수치로 환산하면 167.6cm로 밝혀졌다. 당시 프랑스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이 164.1cm였으니 나폴레옹의 키는 당시로서도 작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이 쓰는 ‘피에(pied)’ 단위를 자신들이 쓰는 ‘피트(feet)’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고 계산한 영국인들에 의해 나폴레옹은 158.5cm의 ‘숏다리’로 둔갑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경우처럼, 주위를 둘러싼 조건들로 인한 착시현상이나 잘못된 기준을 선택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이나 진실이 뒤바뀌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버젓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4대강 사업이 이러한 오독(誤讀)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사업이라고 하지만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며 내놓은 ‘전 산업 분야에 34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은 국민들에게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켜 현재의 선택이 미래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위축시키는 사고 마비 현상까지 낳고 있다. 또한 여당조차,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사업의 실효성과 결과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는 현실이 이 사업이 지닌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정부가 ‘수질개선’을 위해 4대강 사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내놓은 ‘물그릇론(물그릇을 키워야 수질이 좋아진다는 주장)’도 ‘착시 효과’에 다름 아니다. 특히 정부가 4대강 사업 이후에 수질이 개선된다는 근거로 제시한 수질예측 모델링 결과는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인 모델이 아닐 뿐만 아니라 바다 환경에 맞게 제작된 모델이어서 연구의 신뢰도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아가 정부가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며 내세운 하천생태계를 살리고 강을 아름답게 한다는 논리는 그것이 지닌 일방성과 편협함으로 인해 논리적 타당성과 근거마저 잃고 있다.
사순시기를 보내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새롭게 무장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경제성, 합리성, 경제제일주의 등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배금주의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언젠가 거짓 안에 갇혀 거짓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잘못 각인된 나폴레옹에 대한 인상은 늦게나마 되돌려 세울 수 있지만 한 번 파괴된 자연은 쉽게 복구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때다. 그리고 실천해야 할 때다.
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