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가 암몬의 왕에게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전했지만, 암몬의 왕이 입다의 말을 무시하여 결국 이스라엘과 암몬이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다가 암몬과 싸우러 나갈 때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9절). 그저 분노에 차서 전쟁에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이끌림에 의해 전쟁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군가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役事)하실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암몬과 싸우러 나가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서원(誓願)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 서원은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과의 싸움에게 이기게 하시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돌아왔을 때 누구든지 자기 집 문에서 나와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31절).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러한 서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가 오해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번제를 원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人身祭祀)는 이방 사람들이 그들이 섬기는 신(神)들에게 행하는 악한 제사 행위였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암몬 족속의 몰렉(Molech)과 모압 족속의 그모스(Chemosh)에게 인신제사가 행해졌고, 바알(Asherah)과 아세라(Asherah)에게도 행해졌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암몬과의 전쟁을 행하면서, 암몬 족속이 섬기는 신에게 행하는 인신제사의 행습을 하나님께 행하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 그만큼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 숭배에 물이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입다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32절, 33절). 아주 대승(大勝)을 거두어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18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던 암몬 족속을 물리쳤으니 그 기쁨은 차고 넘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입다를 환영한 사람은 입다의 무남독녀(無男獨女)인 딸이었습니다(34절). 아버지가 이끈 군대가 암몬 족속에게 대승을 거두고 돌아왔으니 딸은 큰 기쁨으로 마중 나왔을 것입니다. 소고(小鼓)를 치며 춤을 추면서 마중나온 딸을 본 입다는 순간적으로 절망적인 탄식을 내뱉습니다(35절).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라고 탄식합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서원했는데,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그 대상이 자기 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한번 서원한 것을 돌이키지 못할 것이라고 한탄합니다.
그럼 도대체 그럼 딸이 아니라 가족이 아닌 사람이 나왔다면 괜찮다는 것일까요? 입다의 이러한 부분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자기가 전쟁에 승리하면 누리게 될 영광과 공명심(功名心)에 의해 불필요한 서원을 하나님께 드린 참혹한 결과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입다의 모습은 일그러진 입다의 신앙의 한 부분을 엿보게 합니다. 입다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온전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교묘하게 세상적 문화와 풍속이 약간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할 때 늘 우리가 행하는 것들과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분별력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입다가 이때라도 자기가 섣불리 서원했던 것에 대해 하나님께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열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입다의 딸은 자기의 아버지가 하나님께 한번 서원한 것이고, 그 서원대로 하나님께서 입다가 암몬 자손을 이기게 하셨으니 아버지의 서원대로 행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두 달 동안만 자기의 친구들과 산에 가서 애곡하다가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그렇게 행한 후에 돌아왔습니다(36절~39절). 입다가 하나님께 서원한 내용에서는 그 기간을 분명히 정한 것은 아니니, 두 달 동안의 유예(猶豫)한 것을 문제로 여기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39절에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입다는 자기의 딸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제사를 받으셨을까요? 분명히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제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믿기는 하나님께서 입다의 이 서원 때문에 암몬 족속을 이기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입다를 통해서 암몬 족속을 물리치기로 하셨기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 참담한 일이 행해졌고, 그 이후로 이스라엘 여자들은 해마다 참담하게 번제물로 바쳐진 입다의 딸로 인해 나흘씩 애곡하는 규례가 정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9절, 40절).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았을 것이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슬퍼할 일이라면 이 일은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러한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열정이 있어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의 생각에 따라 행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묻고, 또 물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경솔하게 행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열심과 열정이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서는 안 됩니다. 입다는 분명히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행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불필요한 서원을 하고, 그 서원을 이행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께 사용되었지만 경솔하게 행하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참담한 결과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큰 기쁨을 맛보았지만, 그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자기 딸을 번제물로 드려야 하는 엄청난 슬픔과 고통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내 열심과 열정에 따라 내 마음대로 하나님께 행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성령께서 주시는 분별력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