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풍경의 에피소드 ●지은이_이창윤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3. 3. 23
●전체페이지_208쪽 ●ISBN 979-11-91914-37-5 03810/국판(145×210)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6,000원
현실의 고난을 딛고 나아가는 삶의 나침반 같은 이야기
이창윤 시인의 첫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이 산문집에 범상치 않은 가족사와 현실의 고난을 딛고 살아온 자서전적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며, 바람직한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시선으로 일상의 생활과 세상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는 콧물을 흘리지 않았는데도 왼쪽 가슴에 흰 손수건을 달고 학교로 향했다. 아이를 따라 학교에 가는 일은 엄마들 몫이라고 정해진 것마냥 아버지들의 발길은 드문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집 나설 작정도 하지 않는 것이어서 나는 말도 건네지 못한 채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고 혼자만의 쓸쓸한 입학식을 치렀다. 초, 중, 고, 입학식과 졸업식 전체를 통틀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나만의 행사였으니 얼마나 혼자에 익숙했었던가.
―「변함없는 부재의 기억」 중에서
시인은 만 4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의 도주 이후 집안의 풍비박산, 이십 대에 아버지를 잃는 등 가난과 불행을 겪으며 고통스런 성장기를 거쳐 왔다.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처럼 엄마를 잃었고, 엄마의 부재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치유할 수 없는 상실감에 지배당하며 살아”온 시인은 우여곡절 청년기를 지나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지만 스스로를 “먹이고, 입히고, 보살피”는 “나의 엄마인 나”라고 명명한다.
1980년대 초반이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와 남동생이 사회생활을 하게 된 이후에는 생계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일손을 완전히 놓지 않고 소소하게나마 경제적 능력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부천 월세방으로 이사한 후 일터를 마련하지 못하자 돈벌이를 영영 못 하게 되었다. 소일거리 없이 지내던 아버지는 추석 연휴가 지난 어느 날 쓰러지셨고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손쓸 도리 없이 반신불수가 되었다.
―「아, 아버지」 중에서
“병원에서 퇴원한 후 작은언니의 병수발을 받으며 보름가량 누워계시”다가 “목숨을 끊기로 작정했는지 며칠 동안 곡기를 거부하다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역시 시인에게는 “행복보다는 우여곡절 많았던, 참으로 기구하고 애처로운” 존재다.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시를 썼다. 고난을 견디고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나를 치유하여 해방시키기 위해 시를 쓰고 있다. 시는 나의 주치의이며 처방약이다. 시를 쓰는 일은 누가 강요해서도 아니고 내 스스로 강요하지도 않는다. 시가 오면 받아쓰고 오지 않으면 기다린다. 시가 오지 않으면 시가 올 때까지 산문을 쓰며 기다릴 것이다. 생을 마칠 때까지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형편이 닿는 대로 쓸 것이다. 너무 목숨 걸지 않고 일상을 살듯 시를 쓰는 것 즉 시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다.
―「시를 쓴다는 것」 중에서
삶이 어찌 평탄하기만 하겠는가. 시인 역시 결혼 후 IMF를 겪으며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지만 삶에 대한 열정과 용기로 극복하고 시와 그림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환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고백하듯 시인에게 시는 “높은 제단에 바쳐져 피 흘리는/순결한 제물이기보다는/마음의 결박 풀어주는/해방구”(「시를 품고 날다」)로서 “주치의이며 처방약”으로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맞잡듯 과거와 현재의 내가 교류하며 바람직한 삶의 마무리를 향해 나아갈 때 간혹 허무감 느낄지라도 포기의 유혹 뿌리치기를 간절히 원한다. 거대한 바윗돌을 언덕 꼭대기로 매번 들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되풀이되는 일상의 고난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막다른 골목을 뛰어넘듯 역경을 겪더라도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는 진실 깨닫게 되기를 나는 또 다른 나에게 연거푸 일러주고 있다. 내게 있어 삶이란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고 살아 있는, 또는 살아가는 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나라는 타인」 중에서
시인은 “외롭고 쓸쓸해도 어느 한 곳 기댈 곳 없어 바람 불 때마다 갈대처럼 휘청거리던” 자신을 일으키고 토닥이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또 다른 나”라고 한다. 그래서 “시간을 겪을수록 시시각각 재설정되는 변화의 존재”로서 소박하고 평온한 삶을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불행했던 시절을 녹여내고 있는 『풍경의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들 역시 현실 삶을 반추하며 잔잔한 용기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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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작가의 말·04
제1부 너머를 넘어
변함없는 부재의 기억·11
비바람과 눈 폭풍·17
아버지의 괘종시계·26
아, 아버지·34
아주 특별한 그 사람·43
스승의 날을 맞아·47
아찔했던 무작정 무전여행·51
끈질긴 생명력으로·57
난곡동 그 집·64
추억 속 만두 빚기·69
살아 있는 날들의 소중함·73
두 장의 사진·77
제2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예수님과 부처님·83
얼마나 더 행복한가·90
옥순이의 하늘나라·94
누룽지와 보리 혼식·99
아이들은 죄가 없다·103
학벌이 무엇이기에·108
촌지가 관행이었다니·112
결혼이 필수인가·117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층으로 살기·121
여성으로 산다는 것·126
IMF 외환 위기를 아십니까·132
만성 위염과 아버지의 냉수·137
제3부 그림같이 아름다운 향기
시를 쓴다는 것·143
사람 그 섬·148
지우지 말고 새기기·152
맑은 샘물·157
변소에서 화장실까지·162
살아 있는 전설 속의 가왕·167
밥도 짓고 난방도 하고·171
때리면 친구가 아프잖아·177
개에게 영혼이 있다면·182
일상의 숨구멍 대구수목원·187
눈은 구백 냥·193
나라는 타인·198
꿈을 이루었는가·202
■ 작가의 말
지난날을 돌아보며 산문의 형식에 담는 까닭이 있다. 그것은 수많은 형태로 살아 있는 나와 대상을 불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하는 나는 말하는 자이고, 대신해 쓰는 자이다. 나는 무의식과 의식이 공존하는 세계 안에 묶였던 매듭을 풀고 분리시킨 후 망각의 세계로 영원히 보내려는지 모른다. 분리된 모습들은 더 이상 나의 내부가 아니며 해체된 그들 스스로 각자 생명력을 지닌 단독의 개체들이다.
나는 지우려는 동시에 살리려는 자이다. 무수히 많은 과거의 내가 이룬 공동체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거울에 비춰 지우고 미래의 나로 나아가는 일, 그것이 앞으로 남은 일이라면 거부할 까닭이 없으므로 나는 말하지 못하던 말을 글로써 말하려 한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과거는 때로 고통이거나 상처다. 그러나 되새김의 과정을 통해 승화시키면 뚜렷한 삶의 궤적으로 남는다. 산, 강, 바다 등 자연처럼 풍경이 된다. 일상의 모습이 다양하듯 풍경 속에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운율로 풀어내면 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산문으로 풀어내면 수필이 되고, 거기다가 허구의 서사를 포함하면 소설이 될 것이다. 삶의 이야기는 문학작품의 훌륭한 제재가 된다. 따라서 기록하는 자에 의해 호명된 대상은 생생히 살아날 것이고, 내용의 성격에 따라 쓰는 이의 사상과 본질로 드러날 것이다.
떠내려갈 듯 풍랑 같은 세월이었다. 세찬 물살에 깎이면서도 삶의 무게는 살아온 날들만큼 무거웠다. 지워지기도 하고 끊임없이 재인식되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부끄럽지만 더 흐려지기 전 어루만지고 다듬어 골격 단단한 쇠사슬의 기억을 내놓는다. 이것은 솔직담백한 인생사의 고백이며 마음의 테두리를 벗어난 해방구다. 신(神)이 있다면 부여했을 운명, 최선을 다해 살아냈을 뿐이다. 속살을 벗는 순간 내가 아니며, 그 누구도 아닌 또 다른 나의 얼굴이다. 나는 바람 같은 자유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2023년 봄
이창윤
■ 표4
아버지가 쓰러져 눕자 밥 줄 사람이 없는 괘종시계는 멈춰선 채 벽을 지키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새로 장만한 탁상시계가 서랍장 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시간을 가늠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쓰러진 지 한 달도 안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장례를 치른 후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쓸모없어진 괘종시계를 버리고 이삿짐을 쌌다. 그리고 영등포 월세방에서 한동안 모여 살다 나중에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그렇게 수십 년 세월이 지났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괘종시계는 아버지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괘종시계 태엽을 날마다 감아주던 아버지. 보자기에 괘종시계를 싸 들고 전당포로 향하던 아버지. 괘종시계를 소중한 보물처럼 다루던 아버지. 아버지와 떼어내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괘종시계는 댕댕 종을 울리며 이승 떠난 아버지 곁을 여전히 지키고 있을 것만 같다._본문 중에서
■ 이창윤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예사조』로 등단하고 시집으로 『놓치다가 돌아서다가』가 있다. 현재 대구경북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댓글 이창윤 시인의 첫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큰 사랑과 관심(지금 바로 교보문고, 알라딘 등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산문집에 대해 자세하고도 정성스러운 해설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퇴근길 지하철에서 읽고 있습니다.
눈시울 불거지는 때 많아서....책장 덮고...집에 가서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