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 (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복음 묵상 (루카 2,41-52) (이근상 신부)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2,48-51)
성가정 축일이다. 성가정은 독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세 분이 모여있는 모습, 그것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따뜻한 일치의 표상. 그런데 성가정은 한편에서 보면 문제가정이다. 먼저 주님은 두 부부의 사랑의 결실이 아니다. 주님은 선물이지만, 독특한 선물이다. 마리아와 요셉은 부부로서의 일치의 결합과 거리가 있다. 누구보다 일치하고 있으나 그 역시 독특한 일치다. 사랑은 있으나 한몸은 아닌 사이. 교회는 부부사이의 육체적 결합을 거룩한 혼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이해하고 있다. 혼배성사는 미사에서 완성되는게 아니라 둘이 한몸이 될 때 비로소 온전하게 성립하는 독특한 성사라고 교회법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가정은 이런 요소들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어찌보면 결함이 가득한 관계로 이루어진 가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가정을 가장 온전한 가정, 가장 모범적인 가정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온전한 관계란 결함의 유무가 아니라 관계를 잇고 있는 삶의 헌신, 알 수 없는 것, 알 수 있는 것, 잡고 싶은 것, 잡을 수 없는 것, 모든 결함과 함께 사랑하고 품어주는 관계를 뜻하는 것이라 성가정이 가르쳐주고 있다.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는 고백은 아름답지만 짜안한 삶의 선택이다. 알 수 있거나 확신하거나 뭔가 믿을만한 것을 품었다는 말이 아니다. 알 수 없었으나,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어느 순간, 우리는 받아들이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그 때, 그 막막한 날을 살아내셨다는 말이다. 거기서 웃고 울으며, 빨래하고 밥을 먹으며 살아냈다는 말씀. 즐겁게... 아니 기쁘게 살아내셨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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