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조카 외 1편
조숙진
어둠과 적막으로 소음방어 센서를 달았는데
청각은 더 파랗게 자라 올랐다
노인의 틀니를 앗긴 말소리가 급격히 늙어간다
토씨까지 흘러드는 물컹한 발음은
저쪽 보청기 없는 까만 잠을 향해
힘껏 뻗어 보는 날카로운 손짓이다
촌수의 턱을 넘고
시간의 벽을 타고 넘은
두 세월이 오랜만에 묻는 안부다
이미 친구가 된 장롱 속 이름들이 하나씩 불려 나와
잠시 들썩이다 퇴장했다
내수용 문장들은 날개를 달고
엉겼던 매듭도 풀리는 말랑말랑한 시간이 흐르는데
창문 밖에서 찾아온 희미한 불빛과 방 안의 웅크린 어둠처럼
갈증 난 말과 헛헛한 웃음이 쉽게 섞였다
두 퇴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마른 목을 축이는 것일까
다 털린 깻대 같은 육신의 고통보다
아무리 털어도 떼어낼 수 없는 외로움의 응집일 거라는,
정신 줄은 절대 놓지 말자는 허약한 말이 들리는 듯하다
몸살 난 그리움으로 부풀어 가는 대화는
언덕에서 숨을 고르고
내리막길에서 목줄을 풀어 놓는다
소음의 물꼬를 단단히 막았던 내(川) 저쪽
접은 시간을 깔고 앉은 눈치 밖 신선놀음을
나도 모르게 기웃거리고 있다
오디
조숙진
장맛비가 잠시 허리를 펴는 시간
키 큰 아파트 너머에서
환청인 듯 들려오는
뻐꾹 뻐꾹
뽕나무밭 사이엔 흰 수건이
배고픈 아이들 풀어 놓고
땅에 스며들 듯 여름을 솎아내었는데
밭 아래 갈지자 하얀 길이 자라고
미끄덩 뒤집어진 검정 고무신과
깔깔대는 자매들이
골짜기의 적막을 깨곤 했는데
배고픈 한나절
나도 따 먹고
너도 따 먹고
손톱도 옷도
활짝 웃는 입안에도
진한 고딕체로 그려낸 그림
뻐꾹
지워지지 않는
까만 추억이
우리 사이로 배어 온다
----박용숙 외, 애지사화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조숙진 2023년 「애지」 등단. 여수문인협회, 애지문학회 회원, 이메일 1106cs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