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송이 꽃
우리 집에 들여놓은 서양란이 시린 겨울을 이겨 내며 꽃망울을 맺고 있다. 봄기운에 힘입어 하나둘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더니, 대구에 다녀오는 사이 아홉 번째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을 바라보며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다. 보잘것없는 작은 생명도 이토록 숭고하게 꽃을 피워 내는데, 마치 황혼길에 선 내 삶에도 다시 불씨가 살아나는 듯했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기분이다. 그 밑바탕에는 스스로 삶의 변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익숙한 안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길로 나섰기 때문이다.
우리는 숫자 아홉을 좋아하지만, 히브리인들은 열을 완전한 수로 여긴다. 지금도 한 망울이 금세 터질 듯 부풀어 있다. 머지않아 고통의 시간을 이겨 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낼 것이다. 세상은 잠들어 있지만, 저 난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꽃을 피워 내고 있으리라.
문득 저 난의 모습에 내 인생을 겹쳐 본다. 나 또한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홍역의 고비를 넘겼고, 청소년기에는 장티푸스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지천명에 이르러서는 삶의 궤도를 수정해야 했다. 늘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삶 속에서 활력을 찾아 헤맸고, 결국 신앙과 문학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이순을 넘어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비로소 삶의 여유가 생겼다. 파크골프와 테니스 같은 취미활동에 힘을 쏟으며 동호회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을 즐겼다. 그러나 그것도 매일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무료함이 스며들었다. 아침 운동과 낮 시간의 파크골프를 마치고 나면 남는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 라우어 타운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물설어 외롭기까지 했지만, 사람과 환경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삶의 지평도 넓어졌다. 학군단 동기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국민체조 단장과의 인연은 또 다른 삶의 문을 열어 주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삶의 궤적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하루의 일을 일기처럼 적어 내려가며 삶의 체험을 이웃과 나누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민체조이다. 매일 아침 입주민들이 함께 모여 체조를 하며 건강을 다지고, 서로 소통하고 정을 나누고 있다.
나는 저 난이 차례로 꽃을 피워 내는 모습을 보며 삶의 길을 배운다.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질서 있게 피어나는 꽃처럼, 삶도 그렇게 살피고 더듬으며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혼돈과 무질서를 질서와 조화로 바꾸어 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이곳에서의 삶 또한 그러한 길 위에 있다. 그래서 오늘도 작은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그 삶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