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론을 보면) 선정은 단지 심신의 寂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입정 중의 침묵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연설하는 설법의 의미도 모두 같은 것이라 하고, 침묵과 설법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진실로 깨우친 자(覺者)는 단지 선정의 적정심에 떨어져 자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혼탁한 세상에 나와서 스스로를 낮추어 직접적으로 중생을 교화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히 중생을 위하여 설법을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정에 들어간단 것(입정)은 단지 좌선에 의한 심신의 적정만 얻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동중정과 정중동의 적정으로 나타나는 것, 즉 혼탁한 세상 한가운데서 증극한 지혜를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선정에 들어가실 때나 중생을 교화시키기 위해서 선정에서 나와서 설법을 하실 때도 본래 아무런 차별도 없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113
그런 의미에서 깨우친 자의 입장에서 보면 선정과 교화의 설법도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원효는 바로 그러한 점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113-114
요컨대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에서 논하고 있는 여러 佛道와 교학은 그와 같은 의미로 통합되어 있고 해석되어 있다. 즉 불교의 다양한 敎義와 중생 교화의 무애행은 본래 하나로서, 가르침과 불도를 바로 배우고 증득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동일한 것으로 보고 원융하게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가 선정을 닦아 적정에 들어가서 무상각을 얻은 후에도, 다시한번 더 스스로 그 경지를 뛰어 넘어 혼탁한 세상 한가운데에서 중생을 위한 구제행과 교화행을 실천할 수 있고 무애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14
신라원효의금강삼매경론연구/서영애/민족사 2007
첫댓글 구제행, 교화행, 무애행 모두모두 보현행~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보현행에 대한 말씀이군요~~
마하반야바라밀_()_
그렇군요. 원효스님은 보현행원을 보지 않으셨어도 화엄의 진실한 뜻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깊은 삼매, 선정에 드는 것이 불자들의 로망일수도 있지만 중생구제의 서원없는 삼매와 선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론 이미 우리 모두 삼매에 들어있는데 또 다른 원하는 마음 낸다는 것은 또 다른 망상이기도 하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