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이 단어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나는 우주류란 단어를 보면 자연스럽게 다케미야 마사키(武官正樹) 9단이 떠오른다. 그의 바둑이 연상되면서 반상 위에는 시커먼 블랙홀과 새하얀 알래스카가 지나간다. 정말 다케미야의 바둑은 승패와 상관없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 광활한 중원의 꿈을 사랑하기에 우리들은 ‘우주류’란 수식어로 그의 바둑을 칭송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다케미야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우주류’를 이창호 9단이 구사한 것을 감상한 적이 있는가? 나는 이9단이 대세력 바둑을 구사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지금이야 전투 바둑도 마다하지 않고 기풍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이9단이지만, 90년대 중반 1인자의 아성을 자랑하고 있을 때만 해도 그의 기풍은 두터움을 가미한 실리파로 알려져 있을 때다. 당시 이9단의 바둑은 모험을 즐기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했기에 이런 극단적인 세력 바둑은 팬들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다음 기보를 보자.
showgibo('050831-sg1.ntf',350,'left'); 장면 (이창호의 우주류)
이 바둑은 1998년 10월 21일 제3기 박카스배 천원전 결승3국이다. 이창호 9단과 최명훈 6단(당시)의 결승5번기. 이창호 9단의 흑번으로 시작된 바둑은 3연성을 시작으로 광활한 중앙의 꿈을 그려나가고 있다. 흑은 초지일관 중앙을 향해 나가는 반면, 백은 4귀생을 도모할 정도로 철저하게 실리를 벌어들이는 대조적인 모습. 주목할 것은 부분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 전체 국면을 내다보는 흑의 포석을 바라보자. 하나의 거대한 추상화를 그려나가는 흑의 운석이 멋있지 않은가?
위의 기보를 보면 이9단의 초반 포석은 정말 감탄스럽다. 다케미야의 우주류 못지않은 중원에 대한 무한한 꿈!
하지만 이 바둑은 아쉽게도 이9단이 패하고 만다. 위의 장면도 이후부터 백은 중앙에 단기 돌입하면서 국면은 흑이 어떠한 공격을 하는가에 의해 승부의 명암이 가려지는데, 이9단은 정면 공격에 나서지 않고 느슨한 공격을 펼치다 백에게 중앙을 내어주고 만다. 최근엔 상대방의 도전을 피하지 않고 강하게 맞부딪쳐가는 이9단이지만, 당시만 해도 사활 승부로 승패의 명암을 구분 짓는 그런 극단적인 바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만약 다케미야 9단과 조훈현 9단이 이후의 수순을 진행했다면 중앙의 전투는 어땠을까? 재미있는 상상이다.
프로기사들이 우주류를 평가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조치훈 9단은 다케미야의 우주류를 극찬하는 기사 중에 하나인데, 정작 조9단의 기풍은 대세력 바둑과 무관한 스타일이다. 그가 말하길 ‘나와 같은 비관파에게 다케미야의 바둑은 꿈과 희망을 주는 바둑이다. 그의 바둑은 단순한 대세력작전이 아니라 세력 속으로 상대를 끌어들여 녹여버리는 바둑이다. 정말 호쾌하고 당당한 바둑이다. 그러나 그런 바둑을 구사한다는 것은 굉장한 인내심과 끝없는 결단이 따른다. 다케미야처럼 당당하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을 감행하는 자신감이야말로 우주류를 높이 평가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라며 그의 바둑을 평가한다.
80년대 다케미야의 전성기 시절, 대표적 트레이드 마크인 3연성 포석이 프로기사들에게 굉장한 유행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의 성적이 퇴보하자 프로세계에서 자연스럽게 3연성 포석을 기초로 하는 대세력 바둑은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무척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대세력 바둑이 또 하나의 유행처럼 번질 것이라 믿고 있다. 다케미야 이후 제2의 우주류란 무기를 장착해 프로세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기사가 언젠가 등장하리라 확신하는 것은, 바둑은 결코 하나의 흐름만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란 걸 그동안의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