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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기차를 타고
지금부터 10년 전 쯤이다. 통화에서 백하 가는 열차에 올랐다. 간도의 대평원을 지나 백두산 산림지대를 관통하는 풍경을 난 잊지 못한다. 삼림의 바다 속내 깊숙히 빨려 들어간다고 햘까.
우국지사들도 마찬가지였을게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경의선 기차에 올라 신의주까 갔을 것이다. 왜놈에게 쫒긴 선조를 생각했을까. 미련은 조국에 남긴 채 입록강을 건너 단동까지 왔을 것이고 거기서 기차에 몸을 싣고 봉천(심양)을 지나 이 철로를 이용해 북간도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지금 내가 보는 풍경이 80년전 우국지사들도 봤던 그 장면이다. 이미 한국은 침대차가 사라졌지만 땅덩어리 넓은 중국은 침대차가 일상화다. 웬만한 거리는 하루를 훌쩍 넘는다. 철도야 말로 대륙경제의 핏줄이라고 할까? 땅이 넓은 중국은 도로보다는 철도가 효율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철로는 이어졌다.북쪽도시 장춘에서 홍콩 옆인 광주까지 가는 기차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그 먼 곳을 기차로 달릴 수 있단 말인가? 아마 3일은 꼬박 걸릴 것 같다.
김대건 신부가 6개월을 걸어서 간 길이란 말이다. 이번 구정 때는 36억명이 움직인다고 하니 만약 기차에 없었다면 가능한 일일까.
예전에는 차량도 낙후되고 또 중국인의 열차내 흡연 때문에 눈이 따가웠던 적이 있었다. 해바라기 씨앗은 물론 가래침마저 밷는 모습에 우리 따라오려면 한참 걸린다고 눈살을 지프렸지만 올림픽을 겪은 후 이곳이 중국이 맞나 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그러나 가끔은 예전 무질서한 모습이 그리을 때가 있다.갑갑한 일탈속에서 해방되어 불량아처럼 나도 그 행렬에 동참해보고 싶은 충동이랄까. 이번 중국여행때 내심 그 기차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중국의 고속열차의 속도만큼이나바뀌었다. 요령성 대련 북역을 보고 나는 눈이 뒤짚힐 뻔했다. 거의 웬만한 공항보다 더 컸고 해상 도시 답게 파도가 일렁이는 디자인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시설도 깔끔한데다가 프렌차이즈 맛집까지 품고 있어 여러모로 즐겁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면 득달같이 달려와 물을 내려준다. 툭하면 연착이었던 기차시간도 이젠 정확하다고 보면 된다. 이것이 만만디의 중국이란 말인가?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이 고속열차다. 화해호(허세하오)~달나라에 우주선을 쏘아올린 중국 과학의 결정체라고 할까? 기차도 늘씬하고 매끄러운 것이 KTX보다 더 좋아 보인다. 시속 350km로 대륙을 쏜살같이 달린다.
대련역을 출발해 요령성 심양, 길림의 장춘을 지나 흑룡강성의 하얼빈까지 1,000km를 5시간에 주파한다. 그 전에는 20여 시간이 걸렸는데 가히 교통의 혁명이라 하겠다. 그것도 1시간에 한번씩 기차가 있다.
가격도 5만원선으로 우리네 ktx의 절반가격이라고 할까. 평일에도 거의 만석이니 이런 가격이 나올 것 같다.
인구가 많아서 그런가 죄석은 5열로 배열되어 있고 무궁화호처럼 앞뒤로 돌릴 수 있다. 조금은 갑갑하지만 앞뒤 간격이 넓어 견딜 만하다. 옆에 짐을 놓는 선반도 있다.
전기코드가 있어 노트북의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어 좋다.
난 칭따오 맥주 한 병에 신강의 대추를 안주 삼아 차창밖 대륙의 풍경을 즐긴다. 위도가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진다. 심양부터는 온통 눈세계다. 설국열차가 따로 없네.
이번에는 연길서 침대차를 탔다.한글이 있어 얼마나 친근한지 모른다. 아마 세종대왕은 자기가 다스린 땅이 아닌 곳에서 한글을 사용하니 무척이나 흐뭇해 할 것 같다. 조선족 자차구인 연길은 모든 간판은 중국어와 한글로 병기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조선족 자치구지만 이미 조선족 인구 50%가 무너진지 이미 오래다. 젊은이들이 돈벌이를 위해 한국으로 또는 대도시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가다간 30년 후면 한글간판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 동포여. 애 좀 낳으셔요.
연길역 2층 대합실에 오른다.백두산 부조가 벽면 가득 차지한다. 백두의 영봉과 파란 천지물이 가슴을 벅차게 해준다. 백두산이야말로 동포를 하나로 묶는 상징물이 아닐까.
세계 어디를 가든 아이들은참 예쁘다. 진한 화장을 한 아이는 인형 그 자체다. 역사에서 난 중국 동포를 만났다. 하얼빈에서도 북쪽을 향해 버스 타고 4시간을 더 들어가야 고향인 하양산이 나온단다. 한때 조선족이 300 가구가 넘는 대규모 마을이었는데 20년 후 찾아갔더니 단 한 사람의 조선족이 없다고 한다. 이는 조선족 마을의 와해를 의미한다.
조선족 학교에 다니면서 설움도 많았다고 한다. 한족 아이들이 돌을 던지고 괴롭혀 수업을 마치면 20명이 뭉쳐서 다녔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고향이 경상도라고 하는데 그 먼 곳에서 꿈을 찾아 이 추운 곳까지 왔으니~~그 자체만이라도 경이롭다.
한족의 외압속에서 설움숙에서 살아왔지만 지금 조선족은 큰소리를 치고 산다고 한다.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와 고향에 와서 땅도 사고 차도 굴리고 사니 한족들이 부러워한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대한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우리를 건사못하고 내쫒아 버리고 이제 다시 고향이라고 찾아 갔더니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 아주머니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 돌아가 식당에서 중국 교포를 만난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야겠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에 우린 이들에게 빚을 졌다. 또한 어느날 북한의 긴박한 변동사항이 온다면 우리 민족을 위해 힘을 보탤 줄 사람들이 바로 이분들이기도 하다.
18시간이란 긴 시간을 보내기전에 단단히 준비하자. 빙천맥주~~상표가 한글이어서인지 내 입에 맞는다. 라면은 물론 안주거리와 간식거리까지 준비 끝
연길에서 낮 1시 차를 타면 발해만 끝자락 도시인 대련에 아침 7시에 도착한다. 연길-안동-길림-장춘-사평-심양-대련까지 소설 토지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이다. 구멍사이로 큼직한 바람이 부는 곳에 쪼그리고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복받쳐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연길역. 분위기가 한국의 조치원 역을 닮았다. 할머니의 배웅을 받고 부산행 기차에 오른 적이 있었지.
18시간 중 15시간은 설원이 펼쳐진다. 만주땅이 눈이 많다는 것을 절로 실감한다. 무림의 고수들이나 마적떼들도 이런 길을 걸었을 거야. 하루종일 아이스크림 같은 눈을 접하니 내 마음도 정화되는 듯하다.
차창 밖 설경을 안주 삼아 빙천 맥주 한 잔 들이켜따. 설원에 취한 것인지 빙천이가 아이스맥주로 돌변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죽비로 등짝을 맞은 기분이랄까.
칭따오 맥주 공장에서 갓뽑은 생맥주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앞으로는 만주 벌판을 바라보며 삼키는 빙천맥주가 최고라고 난 말 할 것이다.
가뜩이나 예쁜 셜경에 일몰까지 더해진다. 큼직한 케익에 촛불이 하나 더해졌다고 할까 기울어 가는 태양에 내 지친 영혼을 슬쩍 얹어보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지막 빛이 사그라질 때까지 난 저길 응시했다.
중국 침대 기차를 타면 특이한 것이 있다. 바로 차장이 기차표를 회수하고 카드로 바꿔준다는 것이다.물론 내릴 때 다시 돌려준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졌어도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제도 때문이 아닐까.
1층과 2층보다 3층은 불편하며 천장에 머리가 닿을 수 있어 갑갑하다 그래서 가차삯도 조금 싼 편이다. 아무 방해 받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지난난의 여행을 정리하기엔 이런 다락방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기차내에서 잠옷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중국인은 나타나 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것이 중국의 일상이니 받아들이자. 다음여행때는 기차내에서 내복바람으로 활보하리라. 3층이 편한 이유는 옷을 다 벗을 수 있다는데 있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자유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이 친구 어찌나 코를 골던지 ~~참다 못해 이어폰 끼고 잠을 자야만 했다. 4시쯤인가 화장실에 가려고 눈을 떴는데 이 분과 눈이 마주쳤다.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손으로 코를 대더니 마지막 한마디
"크르응~~" 코골이 고수가 한 바탕 붙었단 말야.
꿈나라 속에서 수나라를 물리쳤던 을지문덕 장군이 되어 버렸다.
연길과 대련간 기차는 한민족 기차다. 조선족이 반 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길사람들이 한국을 가려면 대련에서 인천가는 배를 탈 수 있고 또 저렴한 비행기( 25만 원 전후)가 대련에서 수시로 뜨기 때문에 무조건 대련을 간다.
연길발 인천도착 대한항공은 1주일에 3번. 항공료도 백만원에 육박한다. 그러니 모두들 대련으로 가는 수밖에~ 조선족 승무원도 반갑다. 과음하는 우릴 보고 걱정이 되었는지 한 말씀 던지고 지나간다. "너무 술 많이 드시지 마셔요. 짐 조심하시구요." 투박한 어투지만 동포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고맙기 그지 없다.
대련에 사는 언니를 만나러 가는 처녀는 예쁘기도 하지만 마음씨도 고운 것 같다. 중국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고 음미하는 모습이 천사 같았다. 중국에서 기독교 신자를 만나기 쉽지 않는데~~
사는 곳은 북한과 마주한 도문이란다. 한국의 k-pop 가수도 나보다 더 잘 안다. 지드레곤을 좋아한다는데 ~~난 지드레곤이 빅뱅 멤버인 것을 우리 동포한테 들었다. 중국인들은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내가 다가가면 그렇게 잘해준다. 우리 기차에 있는 동포들은 다 찾아 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애환과 삶을 들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쁜 아가씨는 대련에 왜 갑니까" "대련에는 돈벌러 갑네다." "가면 바로 직업을 구할 수 있어요?' "어케 되겠지요" "제 말이 투박하지비?"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어투가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그저 이렇게 말이 통하는 자체만으로도 고맙기 그지 없다. 내가 이끼던 얼큰밥을 선물로 줬다. "이렇게 다 나눠 먹어야 사람 사는 정이라요.' 나도 북한 사투리 한번 써 먹었다.
이 여인네는 한족 여인이다. 너무나 참하게 생긴 1년차 새댁이다. 재미난 것은 남편이 조선족이란다. 한국말은 못하지만 남편덕에 내가 하는 말은 대충 알아듣는 것 같다. 자신이 먹을 빵까지 꺼내 내게 권한다. 어째 이걸 받기만 하겠는가? 멸치면 드렸네~~난 미인에 약해서 탈이야.
기차타고 대련까지 가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7시간동안 발해만을 횡단해 산동성 위해까지 간단다. 오로지 남편을 만나기 위한 횡단이다. "이렇게 예쁜 아내를 얻은 우리 동포가 부럽습네다."
66명 타고 있는 이 기차 한량에 가중국인, 동포, 조선족의 아내, 한국인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있구나. 한국으로 돈 벌러 가는 동포, 한국에 남편을 만나러 가는 아줌마, 대련에 아들 만나러 가는 아저씨, 취직하는 처녀 등 기차에 올라탄 사연은 제각각. 단 그것이 한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어떤 아줌마는 한국TV를 즐겨보는데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줄거리를 꿰뚫고 있었다. 어떤 이는 내가 한국서 왔다고 했더니 지나가다가 멈춰 내게 악수를 청한다.
"저 용정 삽네다." 핏줄은 어쩔 수 없나보다. 18시간 동안 난 한민족의 후예들과 함께 거친 대륙을 달렸다. 근 100여년동안 다른 환경에 살아왔지만 이렇게 우리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렇게 행복한 사람들과 말이다.
예전보다 먹거리 많이 바뀌었다. 컵라면 이 많다.
아주 오래전 프랑스에서 스위스 넘어갈 때 한 밤중 역사에서 여권검사를 하고 스위스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어떻게 국경을 기차로 넘어가지 ~
그러고보니 우린 섬 아닌 섬나라에 살고 있었다. 부산에서 침대 열차를 타고 서울을 거쳐 평양을 지나 신의주에서 국경을 넘어 만주로 넘어가는 꿈을 꿔 본다. 그럼 1천km가 된다. 카스맥주를 마시다가 중국에 넘어서면 빙천맥주로 바꿔야지
내 살아 있는 동안 그 날은 오겠지~ |
첫댓글 반가운 얼굴 언제 한번 뵙고 싶네요 잘 지내시지요
그 꿈이 이루어지길 온 국민이 간절히 빕니다.
한번쯤 함께 이렇게 여행하고 싶은 1인 입니다.
오랜만에 소식 보면서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건강하세요^^
한밤의 코골이 고수혈전이네요. ㅎ ㅎ 이기셨으니 축하드립니다. ㅎ ㅎ
부산에서 만주로의 기차여행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의 이민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와 재미있는 철도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여행... 부럽네요.^^
중국의 야간 기차여행이 좋은것은 다음날 여유있게 일정확보가 가능하다는데 있어요.낮에 이동하면 하루는 공쳐야해요
중국에서는 기차를 타고 하는 여행도 즐겁습니다.
사진과 글을 읽어보니 문득 지도 대장님과 함께 여행한 기분이듭니다, 언젠가 모놀에서도 이곳을 접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참 좋습니다~^^*
잘 정돈된 여행기 보고 있읍니다.
감사 합니다
오겠지요...올해도 건강하시고 좋은 여행지 많이 보여주세요..
진짜 섬이 되어 버린 우리나라 언젠가 기차로 대륙을 가로질러 유라시아까지 여행하는 꿈을 꿉니다
글 그림 잘보았습니다.
소중한 여행기 즐감 합니다....ㅎㅎ
언제나 꿈만 꾸는 곳을 이렇게 쉽게 보네요....
기차 여행에 난 트라우마가 있지만..그래도 다시 하고 싶어지네요.
갑자기 훌쩍 떠나고 싶습니다. 소설 토지의 무대라 더 감회가 깊네요 ^^
정말 우리 조선족을 만나면 왠지 짠한 마음이 들어요.
언젠가 만주 벌판을 한 번 달려가 보고 싶어요.
18시간 타는 그 기차여행 나도 하고 싶어요~
우리말이 통하는 사람들의 사연도 들어보고....
눈덮인 드넓은 만주벌판을 누비며 독립운동 했을 우리선조들께 경의를.....
참, 첫번째 사진이요
혹시 밥줘 아닌가요? ㅎㅎ
모든 장면이 부럽습네다.....!
까페지기님...!어찌하면 무난히 여행에 동참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