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humb.egloos.net%2F460x0%2Fhttp%3A%2F%2Fpds23.egloos.com%2Fpds%2F201210%2F27%2F32%2Fa0044532_508bc97981b02.png)
사료들은 키르기즈인들이 붉은 머리칼에 하얀 피부를 가졌다고 전한다. 이는 그들이 슬라브족과 연관이 있었기 떄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현대의 키르기즈인들에게 이러한 특징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당서》는 이 시기 이미 키르기즈인들이 투르크화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서기 840년 경 이전까지 키르기즈인들은 정치적 연합체를 이루지 못하였다. 당시 키르기즈는 동쪽으로는 키막(Kimāk) 집단과, 북쪽으로는 카를룩과 토쿠즈 오구즈 집단과 접하고 있었다. 이 이후 성립한 키르기즈 국가는 몽골 고원의 우이구르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무슬림 사료들은 이 사건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키르기즈 집단은 10세기 초에 몽골 고원에서 밀려나는데, 이는 아마 당시 발흥하던 거란 제국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몽골 고원에서 몰려난 키르기즈인들은 남쪽으로 진출한다. 이때 키르기즈의 세력은 판출(Pančūl; 현재의 악수)까지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후 16세기까지 이 지역의 키르기즈에 대해서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1259년에 이 지역을 지나간 중국인은 키르기즈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으나, 실제로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키르기즈 집단의 본류는 여전히 예니세이 상류에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카라 키타이가 북중국에서 밀려난 이후 이 지역의 키르기즈인들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예니세이 강 상류에서 키르기즈인들은 점차 농경 문화를 수용하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10세기 후반에 쓰여진 《세상의 경계》(Ḥudūd al-ʿĀlam)에 따르면 키르기즈인들은 케미즈캇(Kemijkat)이라는 도시밖에 없으며, 이곳에 그들의 카간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에 쓰여진 라시둣딘의 기록은 키르기즈인들이 많은 도시와 마을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13세기에 예니세이의 키르기즈는 칭기스 칸의 몽골 제국에 복속된다. 몽골 제국이 몰락한 이후에 키르기즈는 모굴의, 칼묵의, 러시아의 멍에를 번갈아가며 썼다. 1607년에는 카자흐의 멍에를 쓰기 시작하였으나 1642년, 키르기즈인들은 카자흐의 세금 징수관을 죽여버린다. 이후 키르기즈인들은 러시아에 복속한다.
1703년, 칼묵인들은 러시아 제국과의 조정을 통해 키르기즈인들을 남쪽의 세미레치예로 이주시킨다. 당시 키르기즈 집단은 3~4000호 가량이었다고 전해진다. 위에서 언급하였듯, 이미 이 지역에는 일단의 키르기즈인들이 살고있었다.
칼묵인들은 이후 키르기즈인들을 또다시 세미레치예에서 몰아내 키르기즈인들은 페르가나와 카라테긴 지역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청나라가 1750년대에 칼묵 제국을 파괴한 뒤에 키르기즈인들은 세미레치예로 돌아온다. 이 시기부터 러시아인들은 키르기즈인들을 카라 키르기즈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러시아인들이 지금의 카자흐인들을 코삭과 구분하기 위해 키르기즈라 불렀기 때문이다. 또, 이 시기에 이르러서 키르기즈인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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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기의 키르기즈 집단은 군주나 귀족 계층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대신 장로인 마납(Manap)들이 있었는데, 마나프들은 개인의 영향력에 따라 선출되었다. 이 시기 키르기즈 집단은 계속해서 전쟁 중이었는데, 이 덕분에 카자흐 칸국과 달리 분열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에 키르기즈 집단의 세력권은 분열된 카자흐 집단들을 압도하게 되었다.
18세기 경에 키르기즈인들은 청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호칸드 칸국의 통제하에 들어갔다가 마침내는 러시아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통제 하에서 키르기즈인들은 그들의 유목지를 제외한 모든 땅을 러시아인들의 농지로 내줘야했다. 이 때문에 많은 키르기즈인들이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W. Barthold and G. Hazai, “Kīrgīz,” The Encyclopaedia of Islam, Vol. 5, ed. E. van Donzel, B. Lewis and C. Pellat, (E.J. Brill, 1997), pp. 134 - 36을 요약, 번역함.
이미지 파일은 모두 위키백과에서 빌려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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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키즈의 시원은 바이칼 서쪽 사얀산맥의 북단 예니세이강이 시원이라 한다.
거기서 사카(석가?)족,이란계 키르키즈족이 서남부로 이동한단다.
서쪽 흉노의 묵돌선우가 침략해 몽골고원에서 흉노의 속국으로 살다...후에 흉노를 밀어낸 돌궐과 위그르(魏,선비족?)를 밀어내고
현재의 파미르지역까지를 영역으로 했다가...몽골의 지배로 현 위치의 키르키즈로 고립됀다 한다.
재미있는게 그 역사가 돌궐과 선비족인 거란을 밀어낸 해동성국 발해의 흥망과 함께 한단 사실이다.
관련이 없을 수 없는게...발해는 고구려와 조선(예맥),그 북쪽 부여의 땅까지 다 합병한 부여의 북쪽 말갈족이기 때문이다.
대조영이 고구려 장수는 맞으나...그 주종족은 말갈족이란 얘기다.
말갈의 영역에 흑룡강이 있고...흑룡강 북단 북해(北海)..혹은 동해(東海)근처에 실위(室韋)가 있고...
그 종족 중...유독 머리가 노랗고 눈이 녹색인 황두실위(악라사)가 있었단건 모든역사가 이미 한결같이 증거한다.
부여의 북쪽 숙신의 남쪽에 몸도 털도 산천도 짐승도 하얀 백인(白民)들이 살았단 역사도 분명 존재하니...
아마도 그들이 황부인이나 흑부인등과 혼혈됀게 황두실위일 것이고...그들이 악라사인들의 선대란 예상을 당연히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우린 흔히 악라사라 하면...아라사요...러시아(魯西亞)로 직역하면서...
악라사인들은 현 러시아 중 서역의 백인족들이라 예단해 버리나...역사를 자세히 보면...
악라사(아라사)는...백러시아의 만리 동쪽 예니세이정도를 중심으로 존재하던 노랑머리 녹안의 거인족으로...
근세에나 코사크(카사르몽골)용병들의 힘으로 러시아에 정복당해 편입됀 시베리아 종족으로...
그 영역은 현재의 알래스카(알류사)까지도 이르고...
조선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북쪽에 연접한 악라사(아라사)가 곧 그들의 지배자인 러시아(露西亞,魯西亞)의 대명사니...
러시아를 아라사라고 서슴없이 대칭할 뿐...
아라사와 러시아는 근본지역이 다름을 알 수 있다.
흑룡강(黑龍江)...
물론, 현재의 아무르강은 절대 아니다.
아무르란...몽골어의 평안(平安)하다는 의미로...흑룡(黑龍)이란 한자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두환선생님 좋아하시는 음가상으로도 그렇다.
그렇다고해도...
아무다리아가 아무르강...?..고로, 흑룡강은 아무다리아...?
아무르강은...아무르 갈(江)...아무다리아는 아무 다리아(海)이다.
아무다리아가...아무르갈(江)이 아닌...아무다리아(海)로 표기됌은...멀잖은 예전엔 알알해가 지금보다 몇 갑절 커서...
아무다리아는 알알해연근해일 수 밖에 없었으니 그렇고...고지도에도 그렇게 나와있다.
그 물이 사막화로 확 말라붙어 바닷물은 빠지고 부근 은 갯벌의 소금끼 많은 검은 사막으로 변하고...
알알해 유입강줄기중 강줄기가 엄청 길어지며 생긴게 현재의 아무디리아 시르다리아 중하류 대부분인 이치다.
중세 고지도에도 그런데...
한나라시기 당나라시기에...아무다리아가 흑룡강였을 순 없는 이치다.
그리고...흑룡강 일대 숙신과 실위족들 나라는...말이 오줌을 누면 바로 얼어버리는 혹한의 땅이라고 역사가 한결같이 증거한다.
근세 소빙하기 이전엔 그바이킹족들의 린란드에도 농사가 돼고...러시아에도 열대식물이 자라던 때란다...
아무다리아는 당대엔 난대지방인 셈이다.
온난 대서양&지중해&흑해 카스피해 해양기후대에서 먼 내륙 동북부 몽골고원 북단 중앙 시베리아에나 혹한이 존재할 때다...
모든 역사고증은...그 당대의 기후...지형변화를 감안해야지...무조건 현재의 기후나 지명과 지형만을 드리밀면 낭패보기 쉽상이다.
그런 점에선...
그 5년에 한 번 얼어붙어 넘오온단 악라사인들이 넘은 북해(北海)의 위치를 현 북극해로 예단하신 존경하는 문무님도 실수가 시작돼시는 듯 싶다.
악라사인이 북해를 건너 서남쪽으로 청나라 동북부변방에 다다른단 연경에서 몇 만리 동북의 악라사가 서역 백러시아일순 없고...
거시서 북극해를 넘으면 북극점...거길 내려가면 아메리카대륙, 알래스카인데...어찌 악라사의 서남부의 청나라 연경에 도착하게 됀단 말씀이신지...?
북해(北海)...북해의 기준은 그 왕조의 중심과 시대에 따라 다 다름은 다음글에 논해 보겠습니다.
카자흐를 별칭해 키르키즈라 한건...당대 러시아군의 주력인 코사크(카사르몽골)기병들과...
그들이 정복해 정착한 점령지인 청나라의 서쪽땅인 독립타타르제국인 카자흐스탄을 구별하기 위해 그런 것이지...
카사크(카자흐스탄)과 코사크가 시원이 다른 민족이라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코사크가 지배 이동한 현 카사크(카자흐스탄)에...바이칼 인근 예니세이에서 이주한 키르키즈(길리길사,아라사)인들이 있었기에...
당연 카사크지역을 키르키스라고도 했던 것이지...그 키르키스의 본향이 예니세이였던것과는 아무 변화를 줄 해석요인도 없는걸...
앞뒤정황 다 자르고 해석히니 엉뚱한 설이 탄생하게 돼는 것이다.
악라사,실위,황두실위,숙신이 존재했단 흑룡강과 그 북단은...
연경을 중심으로 북쪽의 심양에서 동북으로 14000리의 영고탑(寧古塔)에서...
북쪽으로 1000리 근처에 있단 강이다.
연경에서 만리서역인 흑해가 흑수(黑水)...서쪽 근접지인 아무다리아가 흑룡강이 됄 순 없고...
조선의 북방연접지인 영고탑에 인접한 흑룡강 근처 북해(北海)가...현 북극해일순 없다.
정리하면...
예니세이이 인근 발해의 북쪽 실위족들과 황두실위들이...숙신(섹슨)족 이동하듯...
중앙아와 아랍,인도 지중해로 이주한게 사카(석가)족의 이동이요...아리안의 이동인 정황으로 해석해 본다.
무조건 알타이라 생각했는데..오히려 더 동쪽인 알타이의 동쪽 줄기인 동사얀산맥이 맞는듯 하다.
그들의 역사는 말갈& 발해의 북쪽속지(실위,황두실위)와 연관이 많고...몽골의 북쪽 속지(길리길사,아라사) 와도 연관이 많다.
그들이 넘나들었단 북해(北海)에 대해선 다음글에 논해 보고자 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아주 잘 보았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까지 확정된 주장이나 설은 없으며, 새로운 자료가 나올 때 마다 영역의 판도는 조금씩 다르게 주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료의 성격, 시기등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중앙아세아=조선>이란 주장에 대해서는 언급치 않겠습니다. 다른 분의 주장에 대해 언급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조선사를 연구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위키백과의 편집은 누가 하는 것인지요? 위키백과에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으나, 현재의 통설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곧 반도/식민사학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내용이란 점입니다.
실제 위키백과에 나오는 역사줄거리는 그동안 우리가 배워왔던 그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서양인들의 주장은 기존 통설을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있기 때문에 위키백과를 선호하는 분도 계시지만 그것은 현재의 역사이야기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북해에 대해서는 왕조, 시대적으로 다소 위치의 변경이 있을 수 있으나, 이것은 자료를 번역, 해설하는 분의 성향에 따라 바뀌는 것으로 판단되며, 황두실위 또는 황두여진이라는 <여진이나 실위>는 반도사학에서 흑룡강 북쪽의 대흥안령으로부터 바이칼호 사이쯤에서 시원한다고 합니다.이러한 이들이 시공을 뛰어넘는다는 시각이 문제입니다.
반도사학은 <실위>가 몽고인의 원류라고 합니다. 이 식으로 역사를 풀어나가면, 조선은 "반도 땅"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지요. <북해>를 바이칼호라고 하는 것이 바로 <반도사학>이며, 조선은 <반도>로 와야 합니다. 당나라의 시인들인 <왕유.고적.왕창령. 잠삼>등의 시 구절을 보면, 북해의 위치를 가름할 수 있으며, 특히 <잠삼>은 안서사진절도사 고선지장군의 휘하 장서기로서 우위위록사참군을 겸임하여 안서사진에 종군했습니다. 이때 쓴 글을 보면, 북해와 한해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차례 등장합니다. 조선 중기 "고죽 최경창"도 "북해평사"로 경성에서 근무했으며, "홍랑"과의 애절하고, 애타는 로맨스를 전합니다.
<북해>라는 곳은 분명 <에니세이와 오브강 사이의 땅(서시베리아 저지대) 또는 러시아 북쪽 바다인 "카라 해>중의 하나 일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주장이며, 다른 주장이나 설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조선의 최 변방지대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중앙아세아의 여러 지방 역시 확대되었던 조선의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 왕조시절의 변경지방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중앙아시아 지방이 "조선"이라고 한다면 "조선의 변경지방"의 지형지리, 기후, 특이지형등에 대해서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천지개벽이 또 일어났다면 몰라도.....말입니다. 따라서 여러 주장은 존재하며, 이것은 나쁜 일이 결코 아닙니다. 건강하세요
위키백과,를 생각하니 대륙조선사 연구회의 김홍필 원톱시대가 떠오르는군요.
지금이야 이영준을 위시한 1인 5역의 현란한 가면극이 펼쳐지지만요.
김홍필씨의 위키백과에 대한 집착과 신봉은 조선사편수회의 기록 이상이었습니다.
제도권의 날조사 지식을 옮기고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태도는 크게 이상할 것 없는 대다수 사람들의 습성이지만,
어쩐지 법망과 날조된 짝퉁 지식의 우산아래 안주하려는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뵙는 것 같군요. 위키백과는 사실 현재의 역사 통설에서 편집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면 "조선"은 <반도 및 그 북방일부지방>으로 안착됩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조선사"를 연구할 필요는 전혀 필요없는 것이 됩니다. 지금 제 책상위에 <신장의 역사. 돈황역사 몇 종류. 동방견문록.진시황릉.유라시아 초원제국사.유라시아 유목제국사.몽골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등등의 유라시아의 종족 연구사등>을 보아 왔는데 새로운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기존의 통설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외의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거의가 위키백과와 대동소이한 내용들이며, 반도학자들이 펴 낸 책들은 더합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이미 "조선의 강역, 세계의 종족사, 세계의 인종사"등은 큰 틀위에서 맴도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없습니다. 고고학적인 발굴이 된다해도 그 틀안에서 해설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의 모순점을 우리는 주장해야 되는데,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도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만 하더라도 굉장한 수확이라고 생각됩니다. 위키백과니, 기존 역사 통설, 반도사학등에서 반론을 하지 못할 몇 개의 사료는 건졌으니까요. 앞으로 많은 분들의 참여로 더 좋은 결과와 증거, 근거, 고증이 나온다면 미래는 밝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리며, 건강하세요
바이칼인근이라 함은...동쪽인 현 흑룡강 (무르강)이란 얘기가 아니고...
그 서쪽 셀렝게나 예니세이 정도를 이르니...그 한 참 남쪽인 현 중전체가 대륙조선영토란 얘기를 한 겁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현 반도사학의 실체를 말한 것입니다.
바이칼 호 주위 역시 많은 종족이나 인종등이 거치고, 정착하고를 되풀이 한 것임은 틀림없습니다만, 반도사학은 이곳이 "북해"라면서 한 무제 당시의 중랑장이었던 "소무"가 유배당했던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륙사에서나 조선사에서는 전혀 다른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칼 호 역시 조선 강역의 중요한 지방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맞다고 봅니다...한무제가 잠시 바이칼쪽을 공격했다가...바로 철수했다 보입니다.
바이칼 주변인 몽골 톨강,셀렝게와 예니세이엔...돌궐(거란,고구려?)의 오르혼비문이 있는데...
이 비문의 내용에도 비문을 틀림없이 돌궐(거란?)이 중국에 석공착출을 명령해 한족들이 만들었다 하고...
한자(만주문자?)도 분명 사면 중 한면에 쓰인것으로 보면...한무제가 잠시 숙신족들을 도우러 동흉노를 치러 바이칼까지 갔다가...무참히 깨지고 돌아갔다가 오히려 역으로 돌궐에게 조공을 한건 진실이라 봅니다. 극동북으로 갔다 했거든여...물론 해모수가 접수한 북부여땅이겠고여...
문무님 지론대로...주(周)황실과 한(漢)황실은...단군조선& 환인제국과 무관치 않습니다.
원시의 최초 영토와 발상지도...부여나 돌궐(동돌궐&고구려)과 유사할 것으로 봅니다.
역대 중원족들이...극한의 땅인 동북방의 숙신족들이 보낸 보잘것 없는 석노(흑요석,청석화살촉)를 조공받고...내내 보물모시듯 보관하며 자랑함도...극한의 땅까지 지배했단 자랑이전에...자신들이 그곳을 성지로한 그곳 출신이란 전설에 기인한것 아닌가 봅니다.
漢은 몰라도 周황실은...황두실위가 있었다 보이는...백민(白民)이 있었다고한...부여북쪽 숙신의 땅에서 부여족과 함께 이동한...아리안 사카족들과도 동족이라 봅이다.
고로 주황실(단군조선)의 상당수 지배층은...부여계 백민(백인)들과의 혼혈인종으로 보입니다.
그래 신장성과 감숙성의 주황실 무덤엔 백인 귀족유골이 많은 것이라 봅니다.
물론, 주나라 지역이 아닌...부여나 기자조선 고구려의 유적일 것이고...주황실은 신장성 서부와 카자흐스탄일 것이라 보이니...
고구려나 부여...즉 주나라나 기자조선 상당수 지배층들은...지금같은 완연한 황인종들이 아닌...백인과 황인들의 혼혈였다고 저는 보는 것이고...
백인 유골과 도구만 나오면 그게 지중해에서 이동한 서양인들이다 코카서스에서 이동한 백인종족이다...그래 조선의 중심은 지중해라,코카서스라 환타지들을 쓰시는 분들이 계신데...
엄연히 양키들도 지들 원류를 알타이서 이동한 섹슨(숙신)&아리안이라 하듯...
현 유럽을 지배한 백인들의 조상들 조차도...실상은 시베리아 중동부에서 이동한 알타리안(숙신,실위)들이란 얘기입니다.
한 무제는 오늘날의 바이칼 쪽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서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한 무제의 거병이가 이곳을 갔었다면 한해 역시 바이칼이어야 하며, "오르혼 비문'이 그곳에서 "출토"되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이곳에서 나왔다고 하니 모두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가면 "조선"은 반도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조선사를 찾으려 하십니까? 결국 종국에는 반도에 조선이 있게 되는 것인데요? 역사이야기는 이야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들이 존재해야 하며, 수천년, 수백년 전의 이야기기 때문입니다. 일백년 전의 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키르키즈란 본시 북해 주변에 있었다는 것을, 북해를 바이칼로 비정하다보니 그곳이 시원지가 됀 것인데, 이것은 반도사학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초원 유목사이며, 이 주장은 일인 학자의 주장을 따르고 있습니다.(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역사와 민속). 조선의 주류층들이 황인종이 아닌 백인게열이 많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주왕실은 중원대륙의 조선이었으며, 조선의 이칭이었다고 사료됩니다. 백인 유골들이 가끔 나오는 것은 교류사에서도 증명되는 것으로 이들은 소수이며, 주류일수 없다는 증명이 됩니다. 이동사에서도 등장합니다. 최소한 현 신강성 중부지방을 기준한다면, 그 동쪽지방은 황인종계열입니다.
역사서나 야사등에 등장하는 것들을 보면, 특이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은, 그 인물이 속해있던 사회에서 주류백성들과 외모의 차이가 특이하기 때문에 그것을 말한 것이지요. 똑같은 백인게열이나 흑인계열이었다면 그것을 표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선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상식(역사학계)이 통하는 사회에서 반평생을 보낸 것입니다. 중아아시아 조선을 주장하는 분들도 오류를 깨닫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야에서 활동하는 관계로 직접적인 이야기는 삼가하고 있지만, 비논리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왜 자꾸 조선을 백인게열로 둔갑하려시키려 하는지...?
조선의 주류 지배층들이 황인종이 아닌 타인종이었고, 백성들은 황인종이었다면 그에 대한 기록, 야사, 개인문집등등에서 수없이 다루어져 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우월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지배하는 자들의 통치술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중아지방의 이슬람화는 조선이 건국되기 전에 이미 깊숙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랍사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부디 조선사를 이리 저리 흔들어 이상한 왕조로 매도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 하서회랑 주위 및 그 북쪽과 신강 접경지대의 많은 호수(염호. 담호)등등에 대해서는 전회에 여러 번에 걸쳐서 설명드렸습니다. 호수를 海라 하고 둘레가 천여리등등 말입니다
이러한 큰 호소와 작은 호수, 늪지대등이 많았다는 것은 유목종족이나 이목종족에게는 다시 없는 좋은 곳이며, 정착한 종족들과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이어집니다. 종족이나 부족이 이동하여 새로운 곳에서 정착한다는 것은 일이십년이 아닌 수백년의 세월이 지나가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중원에서 중아지방으로, 중아지방에서 어느 날 갑자기 중원 땅으로... 이러한 역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신라라는 왕조만 하더라도 수백년을 이동한 연후에야 비로써 주위 왕조의 도움으로 겨우 정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동사가 얼머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며, 부족이나 종족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무님의 지도상 방향감각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바이칼이 숙신,말갈,실위가 있던 북해요... 그 서쪽이 말갈과 실위의 중심점이라는게...어떻게 한반도가 조선이란 반도조선학설이란 말씀이신지요?
기존 반도조선설은...현 두만강 북부 현 오츠크해부근 흑룡강 일대를 말갈과 실위의 중심으로 보는 학설입니다.
말갈,실위 숙신의 중심점이 바이칼이면...당연 그 남쪽의 조선은 중원대륙이 돼는 이치인데...
그게 무슨 반도조선설이라 하시는지요...?
그리고 어느 강단사학에서...바이칼인근 예니세이 부근이 말갈과 실위의 중심점이라 하던가요...?
키르키스의 활동 역사가 기록상의 황두실위의 주거지와 유사하니...
실위의 실제 중심강역은 바이칼 서부 예니세이일것이고...그 주변에 있었단 말갈,숙신도 외몽골북부지역에 중심했을 수 밖엔없단 얘기를 기존 반도사학자들이 했던가요...?
외몽골 바로 남쪽이 조선이란 설명인데...제가 반도조선설을 설파하고있는 겁니까...?
궐한님!
현 대륙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 그리고 세계 각국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하나같이 "바이칼"을 북해 주위로 보고 있으며, 선비는 그 동쪽 대흥안령등으로 보면서 그 후대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략 에니세이로부터 바이칼로 이주하여 바이칼 주변으로 부터 다시 서진, 동진하는 것이 이들의 주 해설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원전에서도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데, 원전은 전혀 다른 곳을 말하고 잇습니다. 궐한 님께서는 제가 드린 말을 자구 오해하시면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혹시나 서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 걱정되어 그만 하려 합니다.
다만 드릴 수 있는 것은, 조선사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인지, 수만리 떨어진 지방 우리와 관계없는 곳이나, 백인종이나 흑인종의 역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곳의 역사라면 우리가 그것을 파헤쳐 무엇에 사용하겠습니까. 또 조선의 선조들이 백인들을 사모하여 "조선! 조선!"외친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오해없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