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셋째 ‘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는 살아남은 자의 의미를 짚어
11월 24일, 임영태의 <좌우 가른 깊은 골, 그 어둠이 기억 - 학살>로
문자향 서권기文字香書卷氣(글 향기, 책 기운)를 찾아 연구공간 파랗게날(대표연구원 이이화李以和)은 매달 마지막 토요일 지리산․덕유산․가야산 어름 어딘가에서 문학․역사․예술․철학 등 다채로운 인문 감성과 만난다.
지난달 “가장 영화다운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 이명세 선생과 영화 속으로 깊이 빠져든 데 이어, 이 달은 한국 현대사 전문가인 임영태 선생과 함께 11월 24일 오전 10~12시엔 거창사건추모공원 역사교육관(경남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506)에서, 오후 2~4시엔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 역사교육관(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722-6)에서 <좌우 가른 깊은 골, 그 어둠의 기억 - 학살>이란 주제로, 국가 권력이 뒤틀릴 때 국민에겐 어떤 참상이 닥쳐오는지 죽음과 삶의 경계를 짚는 여든세 번째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강좌’를 마련한다.
“대대로 살아온 것 죄가 되는가? 흙 파고 씨 뿌린 일 죄가 되는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은 하늘과 같고 역사는 정의의 편에 있으며 인명은 절대의 가치로 있음을 확인하면서, 산발한 채 원혼으로 반세기 떠돌아다닌 산천, 이제 냇물이 제 소리 내며 흐르고 노을과 이슬 저희 허리 펴고 다니니, 살아남은 자에게 떠맡긴 것은 진정한 자유와 번영의 소중한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임영태 선생은 현대사 전문가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하며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무자비한 고문과 인권침해의 적나라한 실상을 들여다보았고, 이는 책 ≪한국에서의 학살 - 한국 현대사, 기억과의 투쟁≫으로 나왔다. 일제로부터 해방후 1946년 10월 민중항쟁(대구폭동), 여순사건, 제주4.3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 부역혐의 학살사건, 후방지역 민간인 학살, 국민방위군사건, 좌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 미군에 의한 학살사건 등을 다뤄, 민간인 학살의 역사적 맥락을 폭넓게 제시하고 사안별 조사 결과와 자료들을 꼼꼼하게 인용하고 있다. 1959년 거창에서 나 동국대 행정학과를 마치고, 노동운동,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팀장을 거쳤고, 지금은 평화박물관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에서의 학살≫, ≪대한민국사1945~2008≫, ≪두 개의 한국현대사≫ 등이 있다.
1950년대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에서 사람의 생명이란 벌레의 것만도 못했다. 낮과 밤의 통치자가 바뀌는 세상에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생지옥이었다. 1951년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을 목적으로 창설된 육군 제11사단 9연대의 제1대대는 함양, 제2대대는 하동, 제3대대는 산청과 거창을 관활하였는데, 그들의 목적에 이르는 작전은 손자병법의 ‘견벽청야堅壁淸野’였다. 나무건 집이건 서 있는 것은 모조리 불살라 어떠한 장애물 없이 적을 한눈에 소탕한다는 것이다.
뱀사골과 백무동에서 빨치산에게서 타격을 입은 제11사단 9연대 3대대는, 설 이튿날인 1951년 2월 7일, 지리산 엄천강 유역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휴천면․유림면에서 마을주민인 민간인 705명을 공비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대량 학살했다.
“아! 아! 꿈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그 순간의 비명소리! 저 하늘이 울고 저 신령이 통곡하던 그 날! 시냇물이 오열하고 산새가 울부짖던 그 날!” (산청군 내대리의 난몰주민위령비)
이어 3대대는 2월 9일 거창군 신원면에 들어서서 11일까지 덕산리 청연골에서 주민 84명, 대현리 탄량골에서 주민 100명, 과정리 박산골에서 주민 517명 등 민간인 719명을 학살했다.
“오호! 통재라!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런 비극은 원치 않노라!” (박산위령비 내력문)
2월 하순 어느 날,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로 남녀노소 구분없이 가족단위의 알 수 없는 사람들 800여 명이 소정골로 끌려왔다. “아저씨, 좋은 곳으로 살러간다더니 이리 가면 우리 죽는 거지요?”라며 울부짖는 그들을 하나씩 구덩이 앞에 세워놓고 처형하여 단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아 실체도 남기지 않았다. 2000년 5월 발굴추진위 모임이 총 6개의 구덩이 중 1개를 발굴하자 1미터도 파지 않아 무더기로 나온 150여 구의 뒤엉킨 유골들 속에는 어린아이의 것도 있었다. 정권이 바뀌어 진상규명 작업은 중단되어, 나머지 5개의 구덩이는 하얀 나무판만 세워 두었다.
“산 사람 밤마다 옛 님 그리워 울다가 지쳐서. 오 내 간장 녹였네. 이제는 밝은 광명 천지 비추니. 바람티끌 가셔지고 화락한 고장. … 비노니 그 응어리 깨끗이 풀고 극락세계 훨훨 날아 이제는 안정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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