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선으로 갚으라(삼상 24:16-17)
아브라함 링컨은 유머가 풍부하고 말 안 듣는 관리들을 잘 이끈 지도자로 유명합니다. 링컨에 대해서 험담을 많이 한 사람 중에 스탠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링컨을 “긴 팔 원숭이”라고 부르면서 외모를 가지고 험담을 자주 했습니다.
또 링컨의 출신지를 들먹이며 ‘비천하고 교활한 시골촌놈’이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링컨과 스탠턴의 사이는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서 그를 육군장관에 임명하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링컨에 대해 악담을 퍼붓는 사람을 어떻게 장관에 임명하느냐는 비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탠턴은 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국가에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임명을 강행하였고 스탠턴은 그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 온 힘을 다해 링컨을 돕는 사람이 됩니다. 이후 링컨이 총격으로 죽었을 때 스탠턴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의 통치자 중에서 가장 완벽한 통치자가 여기 누워있다” 원수가 말하는 악담과 비난들에 흔들려서 복수하려고 했다면 링컨은 링컨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악담에 대해서 지혜로, 악의에 대해 선의로 응답하여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악을 선으로 갚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도 다윗에게 임한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안의 전쟁도 승리하라
사무엘상의 전반부에서 정점을 이루는 사건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폭력으로 괴롭히고 탄압하던 블레셋이라는 폭력을 하나님은 어린 소년 다윗을 들어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외부의 강력한 적을 물리침으로써 이제 이스라엘은 모든 일에 잘되고 번성할 일만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다른 적이 나타납니다. 사무엘상 후반부는 바로 이 적과의 다툼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적은 바로 내부의 적입니다. 그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무엘상의 기록은 바로 이렇게 우리 안의 적과 싸우면서 어떻게 영적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외부에 있다면 쉬운 적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숨어있는 불신과 시기 질투의 적은 아주 어려운 적입니다.
골리앗은 돌멩이 하나로 물리칠 수 있는 적이었지만 내부의 적은 수십 년이 걸려야 했습니다. 내 안에 물리쳐야 할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나의 게으름, 타락한 욕망, 범죄함 등이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도 있습니까? 사탄은 그때를 노립니다우리 안에 우리끼리 다투고 경쟁하도록 조장합니다. 우리 안의 적을 맞아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공했다고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사울과 다윗은 다시 쫓고 쫓기는 다툼을 벌입니다. 힘이 없던 다윗은 도망치다, 엔게디 광야에 있는 굴속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웃을 수 없는 우스운 일이 벌어집니다. 왕이 굴속에 들어와서 생리현상을 치른 것입니다.
다윗과 군인들은 처음에는 놀랬을 것입니다. 갑자기 사울이 굴속으로 들어왔으니까요. 이제 들켰구나 생각했는데, 왕이 자신들 앞에서 옷을 벗더니 생리현상을 치릅니다. 바로 눈앞에 사울 왕 혼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부하들이 말합니다 4절을 보면,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사무엘상 24:4) 부하들이 다윗에게 우리의 원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울만 죽이면 이제 도망 안 다녀도 됩니다. 하나님이 눈앞에 이렇게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생각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지도 않은 말씀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며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혜로웠습니다. 그는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만일 다윗이 여기서 사울을 죽였다면, 그는 왕이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쉬운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암살로 왕이 된 사람. 그래서 항상 후대에 동일하게 자신을 암살할 사람이 없을지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큰 뜻보다 사울처럼 하나님의 뜻이라고 정당화하며 자기 뜻을 펼쳤을지도 모릅니다다윗은 그 자리에서 사울의 옷자락만 벱니다.
그리고 사울이 저 멀리 갔을 때 큰 소리로 부릅니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사무엘상 24:11) 다윗은 사울을 죽였더라면 쉽게 갔을 길을 오히려 ‘내 아버지여’ 라고 부르며 충성을 다하느라 도망자의 길을 다시 가게 됩니다 .
다윗이 바보라서 쉬운 길을 몰랐던 게 아닙니다. 압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가는 길이 정도가 아니며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어렵지만 돌아가는 길이지만 다시 도망가야 하는 힘든 길이 되겠지만 그 길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라
다윗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악의를 가지고 자신을 찾아온 원수 같은 사울 왕에게 악을 갚지 않고 선으로 대합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원칙에 따라 반드시 복수를 해야 속이 시원한 세상 속에서 그는 세상의 원칙이 아닌 하나님의 원칙을 따릅니다.
그래서 힘든 신앙의 선언을 합니다. 12절,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사무엘상 24:12)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대담하게 말합니다. 차라리 다시 도망자가 되겠습니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악을 선으로 갚은 것입니다.
잠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25:21-22)
‘원수에게 선으로 응대하면 원수는 뜨거운 숯을 머리에 쌓아 올리는 것처럼 부끄럽게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약해서가 아닙니다. 선으로 부끄럽도록 복수하는 것입니다. 선의 복수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자신의 억울함을 반드시 갚아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12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는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사무엘상 24:12) 정의로운 공의로운 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어서 이를 갚아주실 것을 믿는다는 선언입니다. 결론 맺겠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좁은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사울을 죽이는 쉬운 길이 눈앞에 있었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음으로써 그는 이후 훈련과 연단의 기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시간 때문에 그는 위대한 왕이 됩니다.
시간의 훈련과 준비 없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돌아서 가야 하는 어려운 선택을 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 분들에게 다윗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