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제작 / 극장판 / 요시우라 야스히로
이브의 시간이라는 카페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구별을 금지한다. 로봇은 로봇법으로 머리 위에 링을 띄우고 다녀야
하는데 이 카페에서는 링을 꺼두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꺼두어야만 한다. 링을 끄면 이게 인간인지 안드로이드인지 구분
이 되지 않는다. 로봇과의 협업이 불가피한 임계점이 2030년이라고도 하고, 2040년이라고도 하는데, 여하간 그 보다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tv로 방영했는데 내가 본 건 극장판. 1시간 46분.
로봇을 보는 시선은 몇 가지로 나뉘는데 작품에서는 로봇을 '새로운 종'으로 접근한다.
이건 아주 인간적인 시선임을 밝혀두고, 이미 섹스로봇이 출시되고, 일본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200만원 정도하는 가정용
로봇 페퍼가 자녀들을 대신하여, 간호사를 대신하여, 배우자를 대신하여, 두루두루 대신하여 보급된 지금,
로봇에 대한 사유는 곧 인간에 대한 사유이다. 무엇이 인간인가? 관계라는 것은 무엇이며, 너와 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인간다운 걸까? 그리고 인간답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
이브의 시간이 흥미로운 건, 역시 로봇을 새로운 종으로 접근하는 바, 이러한 인간적인 시선에서 빗겨나 있는 것이다.
교훈적이지 않고, 그래서 숨막히지도 않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보다는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햇살 잘 드는 카페에서 커피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숨이 넘어갈 듯 웃지만, 네가 로봇인것이 문제가 되지 않고 내가 인간인척을 해서도 안된다. 네가 8살에 성장을
멈추었거나 커피를 튜브로 먹어도 상관없다. 네가 이 사회에서 요구한 규범이나 기준에 맞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너는 너여도 된다.
피아니스트 로봇의 피아노 연주에 감동을 먹어버려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기로 결심한 리쿠오가 카페에서 연주한
'따뜻한 시간 속에서'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삶이고,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과학자 시오츠키
와 그의 AI, 그리고 시오츠키의 딸인 카페를 운영하는 나기가 만들어가고 있는 따뜻한 시간 속에서의 삶이다.
삼각형과 사각형에마저 감정을 이입하는 우리 인간들(프리츠 하이더 실험), 인간이기 지친 어느 날, 내가 나이기 지친
어느 날, 아, 겨울이라 사비시이 사비시이하다~~~ 면서 작품 속 인간 치에가 자신을 고양이라고 주장하듯, 고양이도
되어보고, 인간이면서 안드로이드인 척 하는 리나도 되어보고, 안드로이드인데 인간인척 하는 코지는 어떤 마음일까,
상상도 해 보고, 그러면서 나를 덜어내고 덜어내고 덜어내고, 내 시간을 덜어내고 네 시간을 담아내면
덜 사비시이~~~~~~~ 하다. 그것이 이브의 시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