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20권 언제 나와요!!!'를 '선두'로 '19권 스토리 돌아가는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요'라던가 기존의 그림체와 견주어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고... 여하간 '작품 전체'가 그렇겠지만 '19권'은 스토리의 진행과 누적으로 인해 점점 더 '주목'을 받게 되는 것만큼은 틀림 없는 사실 같습니다.
다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컨대 일관성이 드문 드문 상실되는 것이야(물론 스토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스토리 '외적'인 부분에 국한해서 이야기입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뭐 '레모네이드처럼'이나 '푸른 포에닉스' 같은 경우야 그런 '우려'를 할 필요가 '전혀' 없겠습니다만) '역사 논쟁'과는 '그렇게까지야' 관련이 없는 '상식적인 문제'에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에 저로서는 다소 '당혹'스러운 느낌마저 있습니다.
"그럼 네가 뭔데 다들 좋다는 바람의 나라에 이의를 제기하느냐?"
무지허니 좋은 질문이십니다.
자 그러면 이제 함께 제가 이렇게도 '험하게(?)'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제19권을 보면 '최 리' 왕이 '동한 낙랑군' 사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산지에 도읍하고 창해(동해)를 지고 살다보니..."
이야기인즉 최씨 낙랑국이 강원도에 있다는 말입니다.
함경남도에 (동) 옥저가 있었고 경상북도와 강원도 남부에 신라가 있었으니(최소한도 국사 교과서에 따른다면) 그럴듯하죠?
그렇지만 역사를 떠나서 상식적인 개념을 살펴보아도 1권부터 19권까지 나오는 내용들을 서로 비교 대조해보면 최씨 낙랑국이 강원도에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제12권에 보면 추발소가 호동에게 동굴에서 이러한 말을 합니다.
"우리 나라는 산이 많아 척박하고 그 덕에 '조석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이어지는 말입니다.
"해서, 저 옥저 땅을 지나면 낙랑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땅을 앗아,
바라는 이들에게 주고 싶어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만약 강원도가 최씨 낙랑국이라면 발소의 이러한 말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구려의 발견을 굳이 읽어보신 분들이 아니더라도 강원도는 교통이 발달했다는 오늘날에 조차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산들이 깊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산이 깊다는 말은 그마만치 '쌀 생산'을 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지요.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동아시아와 북부 아시아 그리고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국력의 기초'는 '벼농사'였고 그 '생산량'이 줄어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살필 때 무휼이 낙랑을 원한다는 것은 낙랑이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만큼' '나라 자체'가 '작황'이 '풍성'하다는 것임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학문'이 '아닌' '상식'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적어도 최씨 낙랑국이 고구려의 식량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을만치 '풍요로운' 나라가 아니었다면 무휼이 최씨 형제(충, 운)와 굳이 줄다리기를 해가면서까지 고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작황이 풍성하여 국력이 충실한 나라이기에 무휼도 최씨 낙랑국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웠겠지요.
한데 강원도는 12권에서 제기된 이런 '전제 조건'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땅임에는 분명합니다.
물론 '강원도'가 '제4권'에 나오는 '충의 독백'에서 일컫듯
"고구려의 거친 산을 넘고 옥저를 지나면 강산 아름답다고 이름이 낙랑인 그곳이 있다.
그곳엔... 꽃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수려한 궁과 보석 같은
못..."
이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 없을 것입니다.
하나 고대에는 '아름다움'과 '밥'이 공존하는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제4권 아름다움의 조건과 제12권 '식량'의 조건을 모두 만족 시킬 수 있는 땅이 있다면 왜 굳이 강원도를 고집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됩니다.
우선 '백제'가 버티고 있는 '한강 이남 지역'은 일단 제외하고 그 이북에서 농사가 잘 되는 지역을 고르라면 대략 세 군데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평안남북도 지역 즉 평양 지역입니다.
두번째는 요동 반도 남부 지역입니다.
세번째는 황해도 지역입니다.
한데 4권에서 말하는 수려한 궁을 지으려면 당연히 많은 나무들이 필요하겠지요?
그렇다면 고구려의 발견에서도 보이듯 일단 황해도 지역은 제외가 됩니다.
둘 중에서 최씨 낙랑국이 어느 쪽에 있었는가는 논쟁거리겠으나 여기서는 역사학보다 상식을 말하는 것이니만큼 생략하려 합니다.
여하튼 제 주장은 최씨 낙랑국이 강원도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을 한다면 아마도 또 다른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야! 강원도라고 다 농사가 안 되냐! 철원은 왜 빼!"
철원. 드라마 '태조 왕 건'에서 '김 궁예' 왕이 세웠던 '수도'로 유명한 곳이죠.
한 해 풍년이 들면 7년을 먹고 산다는 옥토가 철원의 자랑거리니까요.
하지만 여기서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역사학'이 '걸림돌'이 됩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권 제23, 시조 온조왕 기록을 봐주시면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나옵니다.
"38년(서기 20년) 봄 2월, 왕이 지방을 순무하여 동으로는 주양(
춘천 지방)에 이르고..."
"43년(서기 25년) 겨울 10월, 남(동)옥저의 구파해 등 20여 가구가
부양(강원도 평강)에 와서 백성이 되기를 청하니..."
철원이 하필이면 백제 세력권인 춘천과 평강 사이에 끼어 있음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바캉스 지도나 사회과 부도에서 쉽게 찾으실 수 있습죠. 녠 녠 녜에 (__) 납작!).
이렇게 샌드위치 된 상황에서 최씨 낙랑국이 이곳에 과연 수도를 정했을까요?
그리고 당시 남쪽의 '패왕'이었던 온조왕이 그 좋은 '노른자 땅'인 철원을 그저 손가락 핧아가면서 내버려 두었을까요?
더구나 세 번째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바로 '상업'에 관한 것입니다.
같은 바다라도 당시의 황해(서해)와 창해(동해)는 경제적 가치가 엄청나게 달랐다는 점입니다.
바다에 접한 나라는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더더욱이나 하늘이 내려준 보물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평안남북도(혹은 요동반도 남부)와 강원도의 항구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강원도를 가만 살펴보면 해안선이 단조로와서 유식한 말로 양항만(良港灣) 즉 좋은 항구의 발달이 미약하다 합니다.
게다가 동해안에는 당시 무역할 나라라고는 신라와 일본 정도였고 그에 비해 서해안은 동한과 당시 동한 식민지였던 베트남 그리고 백제 등과도 '폭넓은 교역'이 가능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최씨 낙랑국 = 강원도라는 공식은 그리 많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고 봅니다.
만약 동해를 끼고 '육로'로 한 군현과 '제한된' 무역을 할 정도의 최씨 낙랑국이었다면 무휼이 그리 신경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황해를 활용하고('최씨 낙랑국'이 요동 반도 남부에 있든 평안남북도에 있든) '자체 생산력'도 '풍부한' 나라라면 문제는 아주 어마어마하게 달라집니다.
즉 그 나라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웃 국가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점에서도 최씨 낙랑국이 강원도에 있었다는 것은 그리 쉬이 납득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러고보면 스토리 외적인 설정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한 수정이 요청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김 진 화백님께서도 '어떻게든' '수정의 필요성'을 인정하셨고 상당히 '고심'하신 흔적도 엿보이니 만큼 이런 글을 써도 좋은가 하는 갈등도 적잖이 생기는데다가...
어차피 '바람의 나라'라는 작품은 '인간 관계'에서 엮어져 나오는 '재미'를 감상하면 그만...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간단한 문제인데 그냥 심심해서 되도 않는 소리 길게 주절거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