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질 거야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지난 주말 진안홍삼스파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며 한나절을 보냈다. 풀장이 깊어 손자에게 구명조끼를 입혔다. 수영을 못하지만 아이는 물속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사람은 원래 어미의 자궁 양수 속에서 열 달을 헤엄치며 자랐기에, 물을 좋아하게 마련인가? 우주선 속에서 움직이는 우주비행사를 보면 자궁에서 놀고 있는 태아가 생각난다.
아이가 물놀이에 너무 지쳤는지 기침을 하고 장염 증세를 보였다. 밤에는 열이 심하게 올라 소아과에 데려갔다. 마음속으로는‘괜찮아질 거야’하면서 스스로 조바심을 달랬다.
시집 와서 2년이 된 며느리가 쪼들린 살림을 꾸려가느라고 고생이 많은가 보다. 어떤 때는 우리와 함께 살자고 말하고 싶지만,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아들 며느리가 맞벌이를 하면서 손녀 육아문제 때문에 힘들어 했다. 얼마간 의견 차가 있었으나 이를 잘 극복하고 친정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나는 하릴없이 속으로만‘괜찮아질 거야. 세월이 약이니까.’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남의 식구가 우리 가족이 되는 데는 세월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조금씩 양보하며 이해하고 그날을 기다린다.
2년 전 아내가 갑상선암 같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잘 견뎌내어 이제는 깜빡 잊는 때가 있다. 어떤 친구는 전립선암을 수술하고 3년이 되었다고 했다. 어느 지인은 아내가 혈액암으로 항암치료를 받는다며 힘겨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괜찮아질 거야.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하시게.’할 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웃들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세상일이란 어찌 생각하면 마음먹기 나름이다. 겨울 추위로 어깨가 움츠러드는데, 나는 지난여름의 무더위를 생각하며 견딘다.
봄은 꽃이 피어 호시절이요, 여름은 녹음이 우거져 좋다. 가을엔 단풍이 곱게 물들고 겨울엔 눈이 펄펄 내려 포근하다. 그런 계절에도 봄에는 꽃샘바람이 불고, 여름엔 햇볕이 따갑다. 가을엔 태풍이 불어 농작물을 휩쓸고, 겨울엔 도로가 빙판길이 되어 자동차가 미끄러진다. 삼복더위엔‘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하며 넘기고, 매서운 추위가 몰려와도 괜찮아질 거야.’생각하며 지나친다.
새벽잠이 깨면서 뱃속이 편안하지 않았다. 서너 달 계속된 증세인데 특별한 원인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일어나 활동을 하고 배변을 하면 괜찮아지곤 했다. 낮 동안은 아무렇지 않다. 밤이 되면 은근히 걱정되면서 자정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다.
2년 전 위내시경검사를 해보았지만, 담당 의사는 위에 염증이 약간 있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저녁 식사를 적게 들고 한 시간가량 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전전긍긍했다. 내과의원에 가서 상담하니 위내시경검사를 권했다. 며칠 뒤 아침 식사를 들지 않고 서둘러 병원에 갔다. 원장은 고등학교 제자로 성실하고 인상이 좋아 환자가 밀려들었다. 수면내시경을 받아 두어 시간 잠을 잤다. 입안으로 기구가 들어갔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몸이 늙어가니 마취도 잘 듣나 보다. 잠이 깨어 일어나려니 다리가 휘청거렸다.
원장은 모니터에서 위와 십이지장을 보여주며 큰 이상은 없고, 약간의 염증이 보인다며 치료약을 처방해 주었다.
“돈을 받지 않으면 다시 안 오겠다.”했더니 마지못해 약간의 진료비를 청구했다. 가져간 수필 동인지 한 권을 건네며 고마움을 전했다. 보름 동안 복용할 약을 약국에서 받아 귀가했다.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걱정스러운 증상은 아니어서 두루 감사했다.
“괜찮아지겠지? 그렇고말고!”
혼자 중얼거리는 게 이제 버릇이 되었다.
(2014.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