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시댁을 즐거운 마음으로 찾는 며느리는 드물다. 며느리들은 몇 번 되지 않는 명절 방문조차 부담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시댁은 며느리들에게 여전히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시부모님을 편하게 대하는 며느리도 간혹 있지만, 대체로는 조심스럽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절이 다가오면 직장 출근을 자청하는 며느리도 있고,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방문을 피하려는 작전을 펴기도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시댁을 성실하게 챙기는 며느리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얼마 전, 시댁 가는 날을 “여행하는 날처럼 행복하다”고 말하는 분을 만났다. 우리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인데, 마침 같은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말이 너무 인상 깊어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분은 시부모님이 친정어머니처럼 정이 깊고 따뜻하다고 했다. 말씀하시는 음성과 표정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시댁 형제들도 늘 잘해 주어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시댁에서 가져왔다며 김치와 파김치, 대봉감을 내미셨다.
그래도 ‘시댁 가는 날이 여행 같다’는 표현은 여전히 낯설었다. 며느리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봤지만, 시댁을 그렇게 다정하게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시댁 식구들이 좋은 분들인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 관계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며느리 역시 귀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나온 지 7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지켜본 바로는, 그분은 관계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분이었다. 인간관계는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그것을 감사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다면 기쁨은 자라지 않는다. 고마움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관계는 힘을 잃는다.
이 모습은 교회 생활과도 닮아있다. 어떤 이들에게 예배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자리다. 의무처럼 발걸음을 옮기고, 빠질 수 있는 이유를 먼저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환경이나 상황 이전에, 이미 주어진 은혜와 사랑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이미 풍성한 사랑을 베푸셨다. 다만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빈 마음으로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든다. 가까이에 있는 은혜를 보지 못하면, 삶은 늘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직장도, 가정도, 교회도 늘 즐거울 수는 없다. 현실이 주는 무게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은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꼭 머물러야 할 안식처’라는 시선으로 오늘의 자리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시댁을 여행처럼 누린다는 말은, 환경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관계를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이 다르다는 고백일 것이다. 모자란 부분에만 시선을 두지 않고, 이미 주어진 선물에 먼저 눈을 두는 태도 말이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도, 그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쩌면 그곳은 짐이 아니라 쉼이 되고, 의무가 아니라 은혜의 여정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