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방학중에 중학교 교사로 있는 j군이 미국에 갔다 왔다. 중등교사들이 국비로 다녀온 해외 연수다. 미국 여행중의 이야기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렷더니 한 학생이 댓글을 달았다.
선생님을 격찬하는 내용으로.
용기를 얻어 2탄을 올렸더니 '선생님, 그만하세요. 치가 떨여요'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j는 홈피에 글올릴 용기가 사라졌다. 귀국하고 나서도 미국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않는다.
내가 어릴적에 해외 여행은 상상도 못한 일이다. 전 재산 다 팔아도 미국에 갈 수가 없었다. 요즘 한겨레 신문에 박범신이가 쓴 '나마스테'란 연재 소설을 보면 그때의 우리 나라 상황을 생각하게 한다. 네팔을 비롯한 동남아인들에겐 한국이 천국이고 지옥이다.
천국인 것은 한국의 부와 행복이고 지옥인 것은 해외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민족적인 탄압이다.
지금 미국에 갔다온 한국인은 너무 많다. 그렇지만 임진왜란 적의 황윤길과 김성일처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다. 미국을 천국처럼 이야기 하는 이도 있고 살기 힘든 나라로 말하는 이도 있다.
아무튼 미국에 갔다온 이야기가 별 관심을 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해외여행 자랑하는 것 같은 이야기에 신물을 내는 이들이 어찌 그 중학생 뿐이겠는가.
그렇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미국여행이다. 해외 여행이다. 내 경우는 오래전에 중국여행, 이년전에 일본 여행을 했다.
후꾸오까 현청 앞에는 공원이 하나 있었다. 출근시간에 그곳에서 일본 사람들의 출근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수백명 현청 직원들이 공원길을 걸어서 출근을 하고 있었다. 한 여름 와이샤스 차림으로도 땀이 흐르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정장 차림이었다. 더러는 윗도리를 들고 가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공원에는 팔각정 비슷한 햇볕을 가리는 집이 있었다. 거기에 노숙자가 취사도구를 차려 놓고 잠자고 있었다. 이 곳 뿐이 아니었다. 관공지 절 안에도 노숙자가 절 축담위에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인사이동이 있고 난 뒤라 새로 부임하는 이들인지 몰라도 승용차에서 내리는 이들에게 꽃다발을 전하는 것도 보았다. 물론 그 승용차(택시)는 그곳에 주차하지 않고 돌아가버렸다. 그 현청과 경찰청에 주차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청사 바로 앞은 도로였고 울타리도 없었다.
부산의 길보다 좁은 길이지만 길가에 주차한 차는 볼 수가 없었고 차들도 드물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들도 많았다. 도서관에 갔더니 한글로 신간도서란 글을 써 놓은 패도 있었다. 한글로 된 책은 보기 힘들었지만.
벱부 온천에 갔는데 타일이 떨어진 곳이 많았다. 시골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목욕탕 휴게실 벽에는 이 목욕탕에 관한 신문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었고 이 목욕탕에 관한 백일장 대회로 상을 준 글도 적혀 있었다.
J씨의 말로는 미국의 교사들의 보수가 우리나라 교사들과 비슷하다고 했다. 미국의 소득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것에 비교하면 물가가 몇배나 되는 것에 비하면 대우가 퍽 좋지 않다는 뜻이다.
미국 사람들은 한 가지 직업을 갖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 직장의 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그들을 안내한 jack라는 이는 네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란다.
지금 세계 여행을 하고 온 많은 이들의 말을 듣는다. 영국이나 프랑스도. 그렇지만 그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한국 사람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뛰어 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 나라는 경제가 엉망이라고 곧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닐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 더러 있다. 얼마전 서면에 있는 CGV 극장가를 갔다. 거의 대부분이랄 정도로 상가가 샷터를 내리고 있었다. 아니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불경기를 체감했다.
하지만 아직 부산엔 이른바 먹자 골목은 네온 사인으로 밤을 밝힌다. 이름난 식당가에는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식당 자체가 보기 힘들었다. 우리처럼 대형 병원도 없었다. 구멍같은 병원뿐이었다.
하까다 역앞 호텔에서 창밖을 내려다 보면 거리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번화가 바로 뒷길일텐데 차들이 간간히 다닐 뿐이었다.
살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지금의 우리 나라는 오쳔년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때다. 언제 이 나라 백성이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경제의 부를 누렸다는 말인가. 가는 곳 마다 헝청 망청 먹고 마시는 곳이고 춤추고 노는 곳이다. 거 뭐시랑가. 모텔은 온 세상을 다 덮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성같다.
며칠전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노 아무갠가를 무척 욕을 하였다. 그래서 어느 때가 살기가 좋았느냐고 하니 박정희 때란다. 허허.
박정희. 긴급조치, 위수령, 계엄령으로 최루탄 가스가 온 나라를 뒤덮고 날이면 날마다 좌경용공으로 고문하여 사람을 죽이고 가두지 않았는가. 모든 공무원은 박정희 선거운동을 해야 하지 않았는가.
선거에서 여당의 표가 적게 나오면 당해 경찰서장, 구청장 군수, 시장 도시자 모두가 목아지였지 않았는가. 박정희를 비난하면 그대로 지옥행이었지 않는가.
김영삼이 국회에서 "박정희는 독재자다"라고 한 말이 정치 현안이 되어 나라가 온통 난리였고 김영삼이 국회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국민은 알 수도 없었다. 여론 조사나 헌법에 대한 찬반 토론을 입에만 담으면 잡아갔던 박정희.
전남대 송기숙 교수나 성내운 교수 들이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했다고 그들을 잡아 가두고 파면 시켰지 않았는가. 박정희가 이 나라 경제를 살리고 보릿고개를 넘겨 주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박정희 시절에 지은 건물, 남아 있는게 뭣인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그렇다. 초가를 스레트로 바꾸고 논둑길을 리어카가 다닐 정도로 만들었지.
Y교수는 박정희 덕분에 고등학교교사를 하면서 경부 고속도로로 서울의 대학게 다닐 수 있었다고 감사한다.
어느날 지하철에서 어느 중년 신사가 고함을 치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 못됐다고. 박정희가 잘 살게 해 주었는데 그것도 모른다며. 그리고 자기가 월남가서 돈 벌어 경부 고속도로 만들었다고 큰 소리쳤다.
박정희. 월남에 우리 군인 보내고 그들의 월급을 떼어서 그 돈으로 경부 고속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 자기 돈을 그것도 피를 판 돈을 대통령이 떼어 먹으면, 아니 그 돈으로 국가 경제를 경영한다면 무어라 할 것인가.
빚을 내 주는 나라가 없어서 박정희가 생각한 것이 우리 나라 광부를 간호원을 서독에 팔아 먹는 것이었다. 돈을 먼저 받아쓰고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으로 보낸 것이다. 그 돈을 박정희가 챙긴 것이다.
월남전에 참여한 한 친구는 고엽제 후유증인가 무슨 병인가, 보훈 병원에 가서 적당히 진단서 떼내서 보춘처에 바치면 연금이 나온다고 한다. 죄는 박정희가 짓고 뒷치닥거리는 김대중이 했다.
김대중은 그들에게 연금주고 욕 얻어먹고 박정희는 그들의 돈 떼어먹고 치사 받는다. 온 나라가 박정희의 군사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떠들썩 했고 민주인사들이 피를 흘렸다. 그 덕이든 아니면 김재규 적이든 이 나라는 이제 과거에 짐작도 못한 인권과 자유가 숨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데모나 하든 놈들이 정치를 뭘 알아. 386이 어떻고 저떻고. 박정희 시대가 가장 살기 좋았다고. 박정희가 가장 인기 좋은 대통령이란다.
허허 참, 지금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 백성이 가장 행복을 느낄까.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스위스. 이런 나라들일까. 아니다.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말하자면 국민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명이 굶주려 죽는 방글라데시라고 한다.
부끄럽게도 박정희 시절 우리 나라는 북한보다 못살았다. 그런데도 박정희 때가 그립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가 억장이 막히고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
70년대 교육장이하 교육청 직원들이 일선학교에 도시락 검사를 나오던 때가 생각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장학계장이 나왔다. 그 녀석이 혼분식 도시락 검열부를 검사하다가 우리 반 부를 보고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며 "선생님은 대통령 각하 지시도 듣지 않는데 교감이나 교장 말을 듣겠느냐?"고 호통이었다.
장학사가 출석을 부르다 환갑이 다 되어 가는 노교사가 미처 대답을 하지 않자 학무과장이란 분이 "골짝으로 쫓겨가고 싶나?"라고 호통이었다.
반상회 날이면 면 사무소로 불려가서 면 사무소 계장님에게 절을 올렸다. 반상회 공무원 예비교육이다. 우리들 교사들을 죽 모아 놓고 교육을 한다면서 강사로 나온 계장님에게 절을 하라고 면서기가 구령을 걸었던 것이다.
길을 가다가 보면 김대중 시절이나 요즘 만든 국도는 박정희가 만든 고속도로 보다 낫다. 전두환이 만든 88고속도로보다 시골길이 더 잘되어 있다.
군사독재를 찬양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과연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를 아느냐고.
박정희가 시해되던 1979년의 이 나라 국민소득은 1,640달러였다. 지금은 13,000달러다.
박정희 시절 우리 월급은 3-4만원이 고작이었다.
어떤이는 말한다. 그때는 그때란다. 잘 살고 못하는 것을 비교하자면 시대적으로 공간적으로도과 비교해야 한다. 박정희 때는 미국보다 100년 뒤떨어졌고 일본보다는 50년 뒤떨어졌다고 하였다. 조선 사람과 명태는 두들겨 해야 한다고 했고 한국 사람은 모래와 같아서 단결을 못하기 때문에 축구와 같은 구기는 안되고 혼자 하는 복싱이라야 한다고 했다.
국제 경기에서 메달을 따면 그는 박정희 덕분이라고 했다. 박정희에게 감사를 올렸다.
시험쳐서 10점 먹던 아이가 20점을 먹으면 100% 진보다. 그러면 100% 발전이라고 그 아이를 칭찬해야 할까. 10점 먹던 아이가 50점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기적이겠지.
90점 먹던 아이가 95점 쯤 먹으면 별거 아닐까. 겨우 5점 올랐으니. 100점 먹어 보았자 겨우 10점 오른 것이니 칭찬받을 수 없겠지.
김영삼은 1만달러 넘던 국민소득을 하루 아침에 IMF를 맞게 해서 절반으로 줄어 들게 했다. 그뒤 김대중은 그것을 1만달러로 회복시켰다. IMF사태는 건국이후 최대 환란이라고 했다. 6 25이후 최대 환란이라고 했다.
그 환란을 극복한 사람은 인기가 없고, 우리 국민이 인건비를 떼어먹고 빼앗아 가고 모든 권리와 자유를 빼앗아 간 박정희는 인기가 있다. 이것이 정상인가.
방송금지, 옷입는 것도 간섭, 장발도 단속, 밤 7신가 몇신가만 넘어도 청소년 통행금지, 책 내는 것도 출판금지. 보도지침으로 일일히 검사 받아서 신문을 내어야 했고, 법정에서 변호를 하던 변호사를 붙잡아 가고 하던 박정희 시절이 이 나라 오천년 역사에서 가장 살기가 좋았다니 이거 제 정신이야, 뭐야. 아아 대한민국.
엔지 도사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고른 세상님! 그간 잘 있었는지요? 여기를 드나드는 다른 친구들의 의견이 그러하니 이런종류의 글은 앞으로 좀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고른세상님은 교대 8회도 맞지만 저랑 한 방에서 하숙도 했던 고등학교 동기임을 밝혀 드립니다. 그게 무슨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요.
첫댓글 홈페이지 주인님, 여기는 진주교육대학을 나온 8기회 동기들이 교육을 걱정하고 토론하며 웰빙을 느끼는 공간이 아닌가요?
엔지 도사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고른 세상님! 그간 잘 있었는지요? 여기를 드나드는 다른 친구들의 의견이 그러하니 이런종류의 글은 앞으로 좀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고른세상님은 교대 8회도 맞지만 저랑 한 방에서 하숙도 했던 고등학교 동기임을 밝혀 드립니다. 그게 무슨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