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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너에게로 가는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인간문화재
우표로 본 오늘~ 10/07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2005 - 로열티 없는 새품종 장미 60가지 개발
국내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는 장미의 99%를 점유하고 있는 일본, 독일 등 외국산 장미 품종을 대체할 수 있는 새 품종이 한 연구원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개발됐다.
충북농업기술원 화훼연구팀 김주형(38) 박사는 7일 7년여에 걸친 연구 끝에 국내 토양에 맞고 병충해에 강하면서도 상품성이 뛰어난 장미 60품씬?선보였다. 2500차례가 넘는 품종교배 끝에 교배에 성공한 700여종의 종자를 골라내 기르면서 품종개량을 거듭해 온 결과다.
김 박사는 진천지역 꽃 재배 농민 등과 3차례에 걸친 협의 끝에 60품종 가운데 6품종을 뽑아 이달 안에 국립종자관리소에 품종 등록할 계획이다. 장미 이름도 대간, 다홍이, 연인, 시나브로, 맥 등 우리말을 쓰기로 했다.
김 박사가 개발한 품종은 꽃 모양과 색, 향기, 병충해 예방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이 독점했던 장미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시험 재배장과 새 품종을 둘러 본 농민들은 벌써부터 주문을 하는 등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김 박사는 시험 재배한 장미 품종을 내년까지 진천지역 장미 재배농가 6곳에 무상 분양해 번식시킨 뒤 2007년 초부터 종묘상을 통해 전국의 장미 재배 농가로 확산시킬 생각이다. 장미 재배 농가는 그동안 포기당 2300원선에 장미 묘목을 수입하면서 절반이 넘는 1유로(1200원)씩 장미 로열티를 지불하는 등 연간 50여억원을 장미 로열티로 지급해 왔다. 원예연구소에서 2년 전 새 장미 품종을 개발했지만 시장 점유율은 1%미만이다.
김 박사는 “품종 선별 등의 과정에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농민들을 참여시켜 우리 실정에 맞게 개발했기 때문에 상품성과 경쟁력은 충분할 것”이라며 “새 품종은 장미 가격을 떨어뜨려 재배농가는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2005-10-08
2005 - 노벨평화상에 IAEA와 엘바라데이 공동수상 발표
올해 노벨 평화상에 국제원자력 기구, IAEA와 엘바라데이(ElBaradei, Mohamed, 1942~ ) 사무총장이 공동으로 선정됐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국제원자력기구와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핵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큰 역할을 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벨위원회 발표 : "핵을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고 평화적으로 사용되게 하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는 지난 57년 설립된 국제연합 기구로 핵무기 확산을 막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지난 97년부터 IAEA를 이끌어 온 엘바라데이 사ッ記揚?이집트 외교관 출신으로 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이런 온건한 입장 때문에 이라크 대량살상무기나 이란 핵문제 해결 방법 등을 둘러싸고는 강경한 입장을 가진 미국과 심하게 대립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일본 원폭 투하 60년이 되는 해이기때문에 반핵활동에 꾸준히 공헌해온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강력한 노벨평화상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가 국제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노벨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평화적 핵 이용을 목표로 하는 IAEA의 활동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KBS
- Norodom Sihanouk
2004 - 캄보디아의 국왕 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 퇴위
시아모니왕자, 캄보디아의 왕위 계승(10월 14일)
캄보디아 국왕선출위원회는 지난 7일 퇴위한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뒤를 이어 그의 둘째 아들 노로돔 시아모니왕자가 차기국왕으로 선출되었다고 14일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9명으로 구성된 이 국왕선출위원회는 지난 7일 시아누크 전 국왕이 퇴위하면서 발족된 기구로, 신임 시아모니 국왕의 이복형인 라나리드왕자와 훈센총리도 포함되어있습니다.
주요외신들은 전 시아누크국왕이 라나리드왕자와 실세정치의 최강자인 훈센총리를 설득해 시아모니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도록 했다고 전했습니다. 라나리드왕자는 이날 프놈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훈센총리가 시아모니왕자이외 다른 왕자가 왕이 되는 것을 결사반대했다면서, 그래서 자신이 시아모니왕자에게 왕위를 계승할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형식적인 선출절차를 통해 아버지가 60년 넘게 지켜온 자리를 물려받은 시아모니는 한때 후계자로 거론됐던 라나리드왕자가 치열한 권력투쟁을 거쳐 국회의장에 오르는 등 당파싸움을 벌인 것과는 달리 예술에만 몰두했던 인물입니다.
시아모니 국왕은 생애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만든 영화 ‘어린 왕자’에서 주연을 맡아 14세 때부터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8년간 체코 프라하에서 고등학교 정규과정을 포함해 발레, 음악, 연극 등을 배우며 8년을 보냈습니다. 특히 그는 1976년부터 1년간 북한에서 영화를 배웠습니다. 이후 파리로 유학간 뒤, 무용수 겸 안무가, 영화촬영 등으로 활약했습니다. 지난달까지, 그의 공식직함은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캄보디아대사였습니다.
이날 시아모니 국왕이 만장일치로 선출됨에 따라, 올해 81세로 폐기능 이상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시아누크 전 국왕은 양위과정의 잡음을 최소화하고 자신과 왕비의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13세기 앙코르 왕국으로부터 이어지는 왕정을 자신의 사후에도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와 관련, 미국 헤리티지 재단연구소의 아시아전문가인 데이나 딜런(Dana Dillon) 선임연구원은 캄보디아의 권력이 평화적으로 이양된 것을 환영하면서도, 합헌군주제인 캄보디아에서 국왕의 역할은제한적이기 때문에 향후 동남아시아지역의 정치역학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The role of king in the constitutional monarch is very limited. I don't think it's very significant overall on the politics of the region."
딜런 선임연구원은 시아누트 전 국왕이 북한의 김일성과 돈독한 관계를 가졌지만, 이 두 사람의 친분이 신임 국왕통치하의 캄보디아와 북한과의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The relations will continue to be friendly, but not productive."
그는 그 이유로 경제적인 차원에서 캄보디아는 북한과의 관계보다 남한과의 관계에 더 우선시 해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1997년에 정식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남한의 캄보디아 투자는 점차 증가세에 있다면서, 딜런 연구원은 그러나 북한은 오히려 캄보디아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지난 8월에 북한에 머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캄보디아 최고 훈장 2개를 주며 대를 이은 후대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던 시아누크 전 국왕이 자신이 지목한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데 성공한 것과 관련, 최근 평양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김 씨 가문의 3세대 세습과정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장명화 기자 /자유아시아방송 2004.10.15
1998 - 김대중 대통령 일본 방문 (7~10일)
김대중대통령 및 영부인의 일본방문에 대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각하 및 영부인은 수행원과 함께 10월 7일 (수)부터 10일(토)까지 국빈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일본체재 중 천황 황후 양 폐하는, 대통령 각하 및 영부인과 회견을 가진 뒤, 궁중만찬을 마련한다.
김대중대통령 각하는 일본체재중 오부치 총리대신과 공식회담을 가지며또 한 영부인과 함께 오부치 총리대신내외 주최 만찬에 참석한다.
김대중 대통령 각하 및 영부인의 이번 방문은 일본과 대한민국과의 친선 관 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으로 일본정부는 이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1998년 9월 11일
1993 - 미국의 흑인 여류소설가 모리슨,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1993년 10월 7일 미국의 흑인여류작가 토니 모리슨(Morrison, Toni, 1931~ )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토니 모리슨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환상의 힘과 시적 함축으로 특징지어지는 소설을 통해 미국의 현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정수를 살려냈다"고 밝혔다. 한림원은 또 "토니 모리슨이 서사시적 힘을 갖고 있으며 대화에 올바르게 귀를 기울였고 미국 흑인을 풍부하게 묘사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가장 푸른 눈'으로 문단에 등장한뒤 '사랑하는 사람' '재즈' 등 6편의 소설과 다수의 수필을 남겼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토니 모리슨은 여성의 시점으로 미국 흑인의 역사와 삶을 그려왔지만, 흑백문학을 통틀어 미국의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혀왔다. 미국작가로서는 10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리슨은 지난 1970년 소설 '가장 푸른 눈'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1987년 '사랑하는 사람'으로 퓰리처상을 받는 등 이미 미국문단에서 스타급 작가로 대접받았다.
문학사에서 흑인의 언어와 정서가 미친 영향을 제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연구 시각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모리슨의 소설은 미국 흑인문학의 살아있는 대명사로 불렸다. /조선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기념, 1984
1989 - 교황 요한 바오로2세 방한 (7~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두 차례나 방한하는 등 한국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1984년 5월 3일,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무릎을 꿇어 한국 땅에 입을 맞추는 ‘친구(親口) 의식’을 행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날 한국 가톨릭 200주년 기념식 및 김대건(金大建) 신부 등 순교자 103위에 대한 시성(諡聖) 시복(諡福)을 위해 한국을 찾은 것. 교황의 해외 순방국가로는 21번째였다. 그는 도착 성명 첫머리에서 논어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인용해 한국어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가면 그야말로 큰 기쁨 아닌가”라고 인사했고 마무리도 역시 한국어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방한 전 로마에 있던 장익(張益·현 춘천교구장) 주교에게서 주 3회 한국어를 배웠다. 또 한우근(韓佑劤) 전 서울대 교수의 ‘한국통사’ 영역본을 읽고 “혹독한 시련에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한국의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황은 첫 방한 때 40여만 명이 모인 부산 강연에서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줄 것을 요구하는 등 당시 정치 상황에서 볼 때 민감한 발언을 했다. 또 그는 방한 마지막 행사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젊은이와의 대화 시간에 ‘군사정권의 폭압성을 알리겠다’며 일부 젊은이가 들고 온 ‘최루탄 상자’를 흔쾌히 받은 사실이 최근 알려지기도 했다.
교황은 그 뒤 1989년 10월 7일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집전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교황은 10월 8일 65만여 명이 운집한 서울 여의도광장 성체대회 미사에서 남북 화해를 바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교황은 그 후에도 한국에 큰 사건이나 재해가 있을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고,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및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때는 위로 메시지를 전해왔다.
교황은 북한 방문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0년 3월 로마를 방문한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이 교황을 만나 방북을 권유하자 교황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교황청은 평양에 대주교를 파견하고 북한에 수십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하지만 교황청이 방북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북한의 가톨릭교회 인정 △가톨릭 신부 입북 허용에 대해 북측이 소극적 태도를 보여 교황의 방북은 끝내 무산됐다.
서정보, 윤종구 기자 2005.4.3 /동아닷컴
- Dismantling of the Electronic
Surveillance System (Iron Curtain)
on the Hungary-Austria Border
1989 - 헝가리, 공산당 독재 종식
1989년 오늘 헝가리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당대회를 열어 헝가리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당제와 시장경제 도입을 내용으로 한 신강령을 채택한다.
1956년부터 33년 동안 1당 독재를 실시해 온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스스로 이 같은 강령을 채택함으로써 공산당 독재시대의 종식을 선포한 것이다.
헝가리는 같은 달 10월 18일 신헌법을 통과시키고 역시 같은 달 23일 국명을 헝가리공화국으로 바꾼다.
이로써 헝가리는 동구권 개혁의 선두주자가 된다.
헝가리 의회는 앞서 같은 해 1월 복수정당 설립을 인정하는 결사법과 집회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킴으로써 공산당 독재체제 종식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었다.
이듬해인 1990년 3월 25일에는 헝가리에서 43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총선거가 실시된다. /YTN
- 제30회 공군참모총장배 Space Challenge 2008 (2008.4.4.발행)
1979.10.7 - 제1회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 개최
공군은 모형항공기대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증가 및 항공인구의 저변확대, 국가적 정책사업으로 발전될 전망에 착안하여, 제1회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를 1979년 10월 (7일) 전국 남녀 초·중·고·대학생 및 일반인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하였다. ...
1979년에 실시된 제1회 대회는 4개 부문 24개 종목에 약 3,800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5개 지역에서 지역예선경기를 거쳐, 서울의 공군사관학교에서 본선경기가 개최되었다. ...
<참고문헌> 합동연감(합동통신사, 1960∼1980)
공군은 ‘국산항공기 생산’ 이라는 국가 목표에 부응함과 동시에 국민들의 항공분야에 대한 관심도 증대 및 기초 지식을 향상시켜 항공사상을 앙양하고자하는 취지아래 제 1회 공군 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 대회를 1979년 10월 (7일)에 개최하였습니다. 제 1회 대회는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5개 지역의 예선과 서울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본선대회에 걸쳐 3,800여명이 참가하여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이를 통해 향후 발전을 위한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제 1회 대회를 개최한 이래로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 대회는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항공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http://www.airforce.mil.kr/SCH/
공군사관학교 연혁
1949.01.14 항공사관학교 발족(김포)
1949.10.01 항공사관학교를 공군사관학교로 개칭
1951.01.25 제주도 모슬포기지로 이동
1951.05.01 진해 기지로 이동
1958.12.12 서울 캠퍼스로 이전
1966.04.11 본교를 '성무대(星武臺)'로 명명
1976.03.07 이학사와 공학사 학위 수여
1979.10.07 제1회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 개최
1985.12.21 現 청주 캠퍼스로 이전
1987.03.27 이학사·공학사·문학사 학위 수여
1995.02.07 공군의 비행교육 과정을 수료한 조종사에게 민간 항공조종사 자격 공인
1997.02.22 대학민국 최초의 여자사관생도
1999.06.10 입교개교 50주년
2001.03.20 제49기 졸업 및 임관식 및 최초의 여자생도 장교로 임관
2002.03.09 항공상징탑 제막식
2004.07.08 생도 최초 해외항법훈련(중국)
2005.03.08 군사학사 학위 동시 수여(53기 적용)
http://www.unn.net/UnivInfo/UnivinfoDetail.asp?idx=79
1969 - 소련 '워털루 전투' 영화 제작
1815년 엘바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에게 패배를 안겨준 워터루 전투 154년이 지난 1969년 오늘 월털루 전투가 영화로 제작됐다.
소련의 세르게이 본다르쉬프 감독이 제작한 영화 워털루 전투!
영화 '워털루 전투'는 소련 뿐만 아니라 유고와 이탈리아에서도 촬영돼 방대한 규모로 제작됐다.
수 백만 달러가 넘는 제작비, 수 천명에 달하는 제작인원과 엑스트라!
영화 '워털루 전투'의 전투 장면은 전쟁과 평화를 넘어서는 영상미로 평가되고 있다. /YTN
1968 - 박정희 대통령, 한글 전용 촉진 7개항 선언(10월 7일)
(10월 7일: 대통령, 한글전용 촉진 7개항 선언)
(10월 25일. 대통령, 한글 전용 추진 7개항을 총리와 관계장관에게 지시)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지 520년이 넘도록 한글을 전용하지 않고 주저하는 것은 비주체적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며, 한문을 모르는 많은 국민을 문화로부터 멀리하려는 행위다.
(1) 70년 1월 1일부터 행정·입법·사법의 모든 문서 뿐만 아니라, 민원서류도 한글을 전용하며, 국내에서 한자가 든 서류를 접수하지 말 것.
(2) 문교부 안에서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를 두어, 69년 전반기 내에 알기 쉬운 표기방법과 보급 방법을 연구 발전시킬 것.
(3) 한글 타자기의 개량을 서두르고, 말단 기관까지 보급할 수 있도록 할 것.
(4) 언론·출판계의 한글전용을 적극 권장할 것.
(5) 1948년에 제정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70년 1월 1일부터는 전용토록 할 것.("대한민국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한자를 병용한다"는 법조문의 단서를 뺀다.)
(6) 각급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앨 것.
(7) 고전의 한글 번역을 서두를 것.
1964 - 한국-우루과이, 국교 수립
우루과이는 1949년 한국을 승인하였으며, 1964년 10월 7일 국교를 수립하였다. 1966년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1992년 외무장관 그로스 에스피엘레, 1997년 부통령 바탈랴가 방한하였다. 1971년 문화협정, 1972년 어업협정, 1981년 무역협정, 1985년 경제·과학·기술협정, 1993년 사증면제 협정을 체결하였다. /naver
1957 - 한미우호통상 및 항해조약 비준서 교환
한미우호통상 및 항해조약은 1956년 11월 28일 서울에서 서명하고,1957년 10월 7일에 비준서가 교환된 한국과 미국 간의 조약.
전문(前文)과 25조로 구성되었고, 그 밖에 이 조약과 불가분의 일부로 인정되는 의정서가 있다. 이 조약은 양국간에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평화 및 우호의 관계를 강화하고, 양국 국민 간의 긴밀한 경제적 ·문화적 관계를 촉진하며, 상호간 유익한 투자를 촉진하고 상호간 유리한 통상관계를 조장하는 데 목적이 있다.
양국간의 통상 ·거주 ·항해 등에 관하여 서로 최혜국민(最惠國民) 대우 및 내국민 대우를 부여하기로 규정하였다. 다만 최혜국민 대우규정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의거하여 부여되는 특별편익(特別便益)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naver
한미우호통상-항해조약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한미관계가 125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하나, 20세기 초 35년 이상의 단절이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관계의 시작은 제2차대전으로 일본이 패망한 후인 1945년에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다만 소위 “에치슨 라인”에서 보듯이 냉전 초기 한반도는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경제적 가치가 없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시각이 바뀐 것은 한국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참전을 통해 미국인들은 한반도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 미국의 중요한 요충지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서명되고, 1954년에 비준, 발효됨으로써 미군의 한국주둔을 위한 제도적 장치 및 연합방위체제의 근간이 마련되었다.
또한 오늘의 한미 FTA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조약이 몇 년 후 체결되었다. 바로 1956년 11월 28일 한미양국이 서울 중앙청 회의실에서 서명한 한미우호통상항해조약이 그것이다. 당시 조정환 외무장관 서리는 “조약도 중요하지만 도의적인 우정을 더 한층 강화해 나가자”고 말했는데, 이는 19세기말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미국의 도덕적인 의무 불이행으로 체결된 지 20여년 만에 휴지조각이 되었음을 아쉬워하는 발언이었다고 보여진다.
조약은 전문과 25개 조항, 그리고 의정서로 구성되었으며, 평화 및 우의를 강화하고, 상호 유익한 투자 및 통상, 경제, 문화관계 촉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양국간의 통상 ·거주 ·항해 등에 관하여 서로 최혜국민(最惠國民) 대우 및 내국민 대우를 부여하기로 규정하였다.
양국은 1957년 10월 7일에 비준서를 교환했으며, 조약은 1957년 11월 7일 발효되었다. 흥미 있는 사실이 있다. 조약 체결을 기념하여 한국정부는 기념우표를 발행했는데, 당시 발행된 2종의 우표의 증정용 시트는 오늘날 세계 우표수집가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높은 수집 품목에 속한다. 미화 2,000불을 호가하니 일반인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이 우표는 우리의 우정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1884년 11월 18일 최초의 우표를 발행한 우리는 보통우표, 기념우표와 함께, 소위 견양 및 증정용 시트라는 이름으로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우표를 발행해왔다. 적게는 10매도 안 되게, 많게는 1,000매 정도만 인쇄하여 증정용으로만 배포했었다.
그런데 한미우호통상항해조약 체결 기념 증정용 시트부터 일반 우체국에서 구입 가능한 증정용 시트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이 증정용 시트는 2,000장만이 인쇄되었다. 이후 다른 증정용 시트의 발행수량이 늘어나 수십 만, 심지어 백만 매로 늘어나면서 최초의 시판용 증정용 시트의 인기는 날로 치솟고 있다. /주미한국대사관
http://www.koreaembassyusa.org/han_newspress/fta_whatsnew.asp?num=485&page=7&spec=4
- Election of V. Putin as President,
2000 May 7
- 러시아 대통령 북한 방문 기념 (2000.7.19)
1952 - 러시아의 정치가, 대통령, 총리 푸틴 (Putin, Vladimir) 출생
푸틴 [Putin, Vladimir Vladimirovich, 1952.10.7~ ]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1952년 10월 7일 ~ )은 러시아의 제2대 대통령이었으며,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바로 제10대 총리로 임명되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대통령 직을 맡았으며 현재 러시아의 총리 직을 맡고 있다.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15년간 KGB(국가보안위원회)에서 일한뒤 1998년에는 KGB의 후신인 FSB(러시아 연방보안국)의 국장으로 취임했다.
1999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 의해 총리로 지명되었으며 그해 12월 31일 옐친이 사임하면서 총리로서 대통령직을 대행했다. 이듬해 3월 26일 열린 정식 대선에서 러시아의 2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 3월 14일에는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되었다.
푸틴은 대통령 재임시 독립을 요구하면서 폭력항쟁을 벌이고 있는 체첸 반군들에 대해 강경책을 쓰는 한편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구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했던 공화국들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키우는데 힘을 썼다. 그러나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에서 잇따라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면서 러시아의 입지가 좁혀지기도 했다.
체첸 전쟁은 체젠반군들의 열렬한 저항으로 장기화되었으며 2004년 체첸인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베슬란 인질 사태를 맞기도 하였다.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으나 서방 세계와 대체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자신이 러시아 정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기독교인인 푸틴 대통령은 북한 평양시에 정교회성당인 조선정교회 장백성당을 건립한 계기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이 정교회 성화상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하면서 성화상을 모실 교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북한에서 이를 수락하면서 평양에 정교회 장백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2008년 2월 2일 실시 된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후계자로 알려진 메드베데프가 70% 득표로 당선되었다. 메드베데프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푸틴은 자신이 대통령 직에 물러난 후에도 총리직을 맡겠다고 공언해 왔다. 2008년 5월 7일 메드베데프가 후임으로 러시아의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메드베데프에게 총리로 지명받아 2008년 5월 8일에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전임 대통령 출신 현직 총리가 된다. /위키백과
- German Democratic Rep.,
10th anniv.
1949 -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수립
1949년 10월 7일 독일의 공산정권에 의해 '독일민주공화국' 헌법이 발효되었다. 이로써 1949년 5월 (23일) 서부지역에 독일연방공화국이 탄생한 이후 또하나의 독일이 탄생되었다. 독일공산당은 소련 점령기에 이미 중앙집권적 행정기구를 구축해 농지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민간소유의 산업기반을 박탈했다. 1949년 10월 인민의회에서 '독일민주공화국' 헌법이 발효됨으로써 공산정권이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으며, 공산당을 중심으로 개편된 '사회주의통일당'의 정치국이 최고 권력기관이 되었다. 서독이 국가수립 직후부터 마셜 플랜의 혜택을 받은 것과는 달리 통제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한 동독 경제는 소련과 폴란드 정부에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서독으로 도주하는 동독인의 수는 해마다 늘어났고 1961년 베를린 장벽을 쌓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이 구축된 후 동독은 노동력의 유출이 중지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되찾았다. 때마침 탈스탈린주의의 여파를 타고 '신경제체제'가 모색되었고 사회주의권 내에서 꾸준한 경제발전을 이루어갔다. 그러나 경제분야의 개혁과는 대조적으로 이데올로기면에서는 오히려 통제가 강화되었다. 결국 내부의 모순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한 동독은 51년 만인 1990년 서독에 흡수 통일되었다. /브리태니커
1934 - 스페인 좌익 폭동
1934년 오늘 스페인 아스투리아(Asturias)와 카탈루냐 지역에서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의 쿠데타와 함께 폭동이 일어난다.
전년도 11월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우익 정권을 뒤엎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광산 노동자들은 혁명 코뮌을 결성하고 무력폭동을 일으켰다.
이번 폭동은 진압되지만 이후에 사회당 계통의 노동총동맹(UGT)과 아나키스트 계통의 전국노동연합(CNT)이 제휴하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1936년 2월 16일 총선에서 사회주의 계열이 집권한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프랑코 장군이 우익 반군을 이끌고 내전을 일으킨다.
프랑코 장군은 국내에서는 교회의 지지를, 해외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원조를 받는다.
결국 프랑코 장군은 내전 발발 2년 반 만인 1939년 3월 내전에서 승리하고, 팔랑헤당의 1당 독재에 의한 파시즘 국가를 수립한다. /YTN
1931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공회 성직자, 인권운동가 투투(Tutu, Desmond) 출생
투투 [Tutu, Desmond (Mpilo), 1931.10.7~ ]
요하네스버그 출생. 광산촌에서 가난한 흑인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나 밴투노르말대학 졸업 후 교사생활을 하였다. 그 후 1958년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6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성공회신부로 서품되었다. 1967년 귀국, 흑인학교인 포트해어대학의 교목이 되었고 이어 요하네스버그 성공회의 사제장(司祭長:수석신부)이 되었다. 이 무렵 요하네스버그의 흑인도시 소웨토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주의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1976년 레소토의 주교가 되어 그 곳에서 2년간 근무하고, 197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200만 그리스도교도를 대표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교회협의회(SACC)의 사무총장이 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정책에 비폭력투쟁으로 대항, 흑인의식화운동의 기수가 되었다. 1984년 인종차별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도자로서의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naver
1912 - 페루 대통령 벨라운데 테리(Belaúnde Terry, Fernando,) 출생
벨라운데 테리 [Belaúnde Terry, Fernando, 1912.10.7~2002.6.4]
Fernando Belaúnde Terry (October 7, 1912 – June 4, 2002) was President of Peru for two terms (1963–1968 and 1980–1985). Deposed by a military coup in 1968, he was re-elected in 1980 after twelve years of military rule. During both terms, economic turbulence and the increase of guerrilla activities in the country led to human rights violations by both insurgents and the Peruvian armed forces. Nevertheless, he was admired for his personal integrity and his commitment to the democratic process. /wikipedia
1885 - 덴마크의 물리학자 보어(Bohr, Niels) 출생
1879 - 스웨덴 태생의 미국 가요작가, 노동운동가 힐(Hill, Joe) 출생
1849 - 미국의 시인 라일리(Riley, James Whitcomb) 출생
1849 - 미국의 시인, 평론가, 단편소설작가 포(Poe, Edgar Allan) 사망
1786 - 캐나다의 정치가 파피노(Papineau, Louis Joseph) 출생
1675 - 이탈리아의 초상화가, 세밀화가 카리에라(Carriera, Rosalba) 출생
1571 - 레판토 해전에서 신성동맹 함대, 투르크 함대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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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너에게로 가는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인간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