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극 -- B.Brecht의 서사극 이론
서론
현대연극에서 서사극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서사극이라는 '연극의 분지'는 1920년대 독일에서 발생한 것으로, 그것의
이론적 연극적 개화는, Bertolt Brecht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서사극이라는 개념도 그것 자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것 자체의 완결과
미결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서사극이라는 '연극의 분지'에 대한 것을, 미숙하지
만, 포괄적으로 알아볼 것이다.
글의 순서
1.서사란 무엇인가
2.서사극에 대한 개설적 개념
3.서사극의 발생 : 독일의 표현주의 연극과 그것의 대응으로서의 서사극
4.Brecht 이전의 서사극 : Piscator의 서사극
5.서사극의 목적 :Brecht의 서사극을 중심으로 하여
6.서사극의 주요 범주
7.서사극의 주요 기법
8.서사극과 리얼리즘
위에서 언급한 여러사항들은 서사극을 파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개
념들이지만, 이 글에서는 Bertolt Brecht의 서사극이론을 중심으로 하여 파악하기로
하겠다. 그것은 서사극이라는 '연극의 분지'가 Brecht에서 거의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Brecht 이후의 서사극이 발전되어 각별한 모습을 독일을 비롯한 서구와,
제3세계에서 이루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그렇다. 이 중 서구의 서사극이 Brecht
서사극의 형식적 부분의 계승이라는 측면이 강하다면, 제3세계의 서사극은 Brecht
서사극의 정치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수용되었다고 할 것이다. 제3세계에서는 사회주
의 극작가인 Brecht의 연극이 그 지역의 사회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거나
현재 수행하고 있다. 이런 다기한 서사극의 발전이 있지만, 발전의 기저를 이루는
것이 'Brecht의 서사극과 리얼리즘'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서사극에 대한 파악은
Brecht 서사극에 대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본론
1.서사란 무엇인가
서사 : Epic에 대한 개념을 먼저, 가장 친숙한 용어인 서사시에서 시
작해보기로 하자. 본래의 서사시란 민족적 영웅의 행위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을
그린 장중 웅대한 결구의 운문시지만, 문예의 기본형태로서 문제가 되는것은 일반으
로 사건전개를 객관적 서술 형식으로 표현하는 종류의 작품전체이다. 문예학에서
는 이것을 서술예술이라고도 한다. 이 이름이 표시하듯이 서사시적 문예는 서정시와
는 반대로 주관적인 상태의 표백이 아니라 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사건 서술을 주로
한다. 또한, 범인류적이고 무한한 다양성을 가진 서사물은, 현실 또는 허구의 사건과
상황들을 하나의 시간연속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각별히, 서사극에
서의 이 용어는 독일 고전주의 시대의 산물로서, 그 시대의 주도적 시인들 - 괴테와
실러 등 - 은 자신들의 극 개념을 정의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자리에서 ... 극의 이야
기 방식의 차이점에 대해 상당량 언급했다.
"서사(이야기)시는 사건들을 과거의 그곳 그때에 발생했던 것들로 제시한다."
이상에서 본다면, 서사는, 하나의 이야기 방식으로, 사건을 객관적이고, 감성
적이지 않게, 역사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런 개념의 일
부분은, 뒤에 기술하는 생소화 효과와 연관된다.
2.서사극에 대한 개설적 개념
여태까지의 극이 Aristoteles적인 극이라고 한다면 서사극은 비Aristoteles적
극이다. 즉, Aristoteles가 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감정교류,
동화작용, 그리고, 카타르시스, 사건의 시작과 그 결말에 반해, 서사극은 극에서의
이성, 판단, 객관성을 주장했다. 서사극은 관객이 극중 사건이나 인물 속에 적극적으
로 몰입되는 것을 반대, 극과의 거리, 불연상태를 주장하여 Verfremdung(영어로는
alienation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뜻은 못된다.), 즉, 유리작용을 내세웠다. 관객은 무대
에서의 사건이나 등장인물과는 밀착해서는 안되며, 유리적 입장을 취해 객관적으
로 냉정하게 무대를 대해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길러
야 한다는 것이다. Brecht는 무대에서의 사건이나 어디까지나 그것이 '연극적인 것'
이지, 사실 그 자체나 현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관객은 현실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
니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예'를 객관적이고 냉정한 태도로 보
며,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도록 하며, 그러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사건의 원인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다. 이러한 객관성,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력에 감정적 몰입이나 교류는 금물이다. 배우
들 역시 Stanislavsky가 주장하는 극중인물과의 동화작용을 배제, 전통적인 의미의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물의 모습을 예시 : 시위(demonstrating)하는 행위를
하여야 한다. Brecht는 연극에 있어서의 Verfremdung, 즉 유리작용을 위해 극의
내용도 가능하면 현재의 것이 아닌 과거의 것을 택하여, 이른바 '역사화'하여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냉정한 객관적 태도로, 만약 내가 그 당시에 그러
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판단력을 기를 수 있다고 보았다. 관
객은 한걸음 더 나아가 과거의 모습을 보고 현대에 있어서의 가능한 사회개혁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3.서사극의 발생 : 독일의 표현주의 연극과 그것의 대응으로서의 서사극
독일의 표현주의 연극은 그 주제의식이나 형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단명하였다. 사회 정치문제에 촛점을 두었던 이 표현주의 연극이 쇠퇴하자 대신 등장한
것이 서사극이었다. 이 표현주의 연극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었는데, 우선, 표현주의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하기로
하겠다.
20세기에 나타난 여러 연극형식에 관련해서 아직 체계적으로 정립되지는 않았지
만, 표현주의 희곡에 대한 공통적인 요점은 그것이 매우 엄격한 반리얼리즘 (Anti-R
ealism) 연극이라는 것이다. 표현주의는 아주 거친 신낭만주의로 시작되어 변증법적
리얼리즘으로 발전되었다. 또한 이런 출현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1910년대의 젊은 독
일 극작가들의 극과도 많은 연관을 갖고 있고, 이 사조에 반기를 들고 나온 오늘날
의 서사극에서도 표현주의의 강한 영향력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사상적으로 초기
독일 표현주의 연극은, 일종의 저항극으로서 1차대전 이전의 가족제도와 관료제도의
권위, 확고한 사회질서, 종국적으로 산업사회와 삶의 기계화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
되었다. 이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의 권위에 대한 자유의 항거를 담은 격렬한
극이었다. 당시의 예술은 시민세계 전체와의 대결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미적 규범들도 반시민성을 전제로 삼고 있었다.
Brecht의 초기 작품세계 역시 '반시민성'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서는 그 당시의 표현주의 예술과 일맥상통하지만, 사물의 '본질'이나 '인간' 그 자체
에만 관심을3 집중했던 표현주의 작품들과는 달리, 가장 초기의 작품에서부터 이미
역사적, 사회적 요소들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표현주의 작품세계와 다른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 '몰락'의 모티브나 새로운 인간과 사회를 주제로 삼고 있
는 점에서는 표현주의 작품과 Brecht 초기 작품이 비슷하지만, Brecht 초기 작품세계
는 단순히 관념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언어적 측면에서도 표현주의
작품들과는 현격히 다른 리얼리즘적 특징을 보여준다.
Brecht는 표현주의의 시대를 거쳐왔지만,3 표현주의가 지니는 '모순'과, '변덕',
'혼란', 그리고, '무기력한 자들의 저항'을 비판했다.
"표현주의란 조악화를 의미한다. ... 알레고리가 다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정신과
이념적인 것의 축출과 과장이 주제가 된다. 그리고, 이 문학에서는 (우연히) 새
의회는 있되 새 의원은 없는 정치에서와 마찬가지의 경우가 되므로 이념에 대한
환희는 있되 이념은 없고, 그래서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운동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외적인 것에 집착했다. 즉, 육체를 정신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색색으로) 정신을 위한 껍질을 사들였고 육체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의심을 품고 추
측하기를 : 오인된) 영혼을 제시하는 대신에 영혼을 조악화하고 정신을 물질화하기
까지도 했다."
서사극은 표현주의 연극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각별히, Brecht의
경우는 자신의 서사극과 표현주의 연극과의 차별성을 리얼리즘의 성취정도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표현주의적 기법을 구사하는 작가의 경우도 리얼리스트일 수 있으며,
리얼리즘적인 수법을 구사하는 작가라도, 그가 작품속에서 만들어내는 현실이 리얼리스틱하지
않을 경우는, 표현주의 작가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의 비판을 한 것이다. 결국, Brecht에게
있어서, "문제는 리얼리즘이었던 것이다."
4.Brecht 이전의 서사극 : Piscator의 서사극
맑시시트 연출가인 Erwin Piscator(1893~1966)는 좌익'선동'을 위한 표현주의 연극을
발전시켰다. 연극에 처음 입문할 당시 Brecht와 함께 일했던 Piscator는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공개적인 광장으로서의 연극형식을 구상했다. 그들은 이 새로운
형식의 극을 서사극 : epische theater이라고 불렀다. Piscator는 1919년에서 1930년 사이
서사극 양식의 토대를 마련한다. 서사극이란 용어는 그것을 쓰는 연출가에 따라 그
뜻을 달리해 왔는데, Piscator는 이 용어를 Aristoteles적인 개념으로 시간과 장소의 일치를
지키지 않고 이야기되는 설화로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사극은 리얼리즘 연극의 제약과,
특히 견고하게 '잘 구성된 연극'이 갖는 제약으로부터 탈피한 자유로운 공연을 의미하게 되었다.
서사극은 감정이입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이며, 사회적 정치적 주제에 대한 보고서이어야 하며,
리얼리즘으로부터 자유롭고, 그 내용은 완전히 공개되어 관객의 검토를 가능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서사극의 양식과 개념을 구축해가던 Piscator는, 새 양식에 걸맞는 새로운 기법들을
실험해갔다. 그 기법들은 후에 서사극을 완성시킨 Brecht에 의해서도 거의 수용되는 것들이
었다. 그 기법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는 극의 주제에 관한 글을 담은 두툼한 프로그램이
제공되었다.....독립된 설명적 장치로서 영화가 이용되었으며,....여러가지 영상이미지....
환등기와 플래카드 그리고 게시판 등이 극의 분위기를 위해 혹은 배경으로 사용.....
회전무대, 콘베이어벧트, 트레드밀,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전동화된 다리, 상하이동식
무대 등을..... 증폭된 음향과 음악.....확성기와 서치라이트를 관객쪽을 향해 설치하기도 하였다."
Piscator의 이런 연극적 실험은 그가 의도한 바, 정치집회장으로서의 극장을 만들기 위하여
쓰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Piscator는 자신의 무대가
'연극기계'가 되기를 원했다. Piscator가 실험한 이런 서사극에 대한 유산을 이어받은 Brecht는,
Piscator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과, 자신의 서사극과 Piscator의 서사극과의 차별성을 이렇게
말했다.
"비Aristoteles적 희곡이론과 생소화 효과의 정립은 극 쓰는사람-Brecht 자신을 의미한다.-의
업적으로 보아야겠지만, 그 중 많은 부분은 이미 Piscator가, 그것도 상당히 독자적으로 사용
하였네. 무엇보다도 연극이 정치로 전향한 것은 Piscator의 업적이네. 이와 같은 전향이
아니었다면, 극작품 쓰는 사람의 연극이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네."
그러나, Brecht는 1928년 [쉬베이크] 공연을 계기로Piscator와 결별하게 된다. 그것은,
Piscator의 괄목할 만한 개혁이 무대의 전력화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그가 사용한 각종 기법은
형식적인 적용에 머물러서 희곡창작이나 극장을 생산수단으로 관장하는 정책에 이르지 못했다는
Brecht의 판단 때문이었다.
5.서사극의 목적
Brecht의 서사극을 중심으로 하여 서사극은, 사회비판과 사회의 개혁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비판과 개혁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예술적인 대안으로서 서사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비판적인 태도가 예술적인 태도일 수 있다는 것이 서사극 이론의
요점이며, 비판적인 태도는,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집행성을 띤 비판을
의미한다. 서사극은, 복잡한 내용과 사회적인 목표를 가진 지극히 예술적인 연극인 것이다.
"인간은 돌을 내던질 때 왜 그것이 달리 안 떨어지고 그렇게 떨어지는가를 알고
있지만, 그 돌을 던지는 인간이 달리 안 던지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네."
따라서, Brecht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동기에 대한 인식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일어난 사회적 사건에 대한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감한 것도 보여주어야지요."라고 말한다.
즉, Brecht가 지니는 낙관적인 역사관과, 그가 지닌 맑시즘에대한 관념에 비추어,
연극은 예술적인 수단을 통해 세계상을 도안해 내고, 인간 공동사회생활의 모형을 만들어,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사회적 환경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지
배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연극은 줄거리에
서 보여주고 있는 인간관계의 역사적 현장이 허용하고 있는 감정이나 통찰, 충동만을
가능케 하는 연극이 아니라, 사고와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역사의 현장을 변경시키는
데에 기여하고 있는 연극이다. 이것이 Brecht가 만들어낸 서사극의, 목적이었다. 이
것을 떼놓은 서사극은, 이미 서사극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비판의식을 상실
한 채 형식과 기법만이 남은 '서사극', 그리고, 정치의식만이 난무하여 예술성을
상실한 내용만이 껍데기로 남은 '서사극'은, 이미 서사극이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서사극은 Brecht가 추구하는 바 사회비판과 실천에 대한 지향과,
예술에 대한 지향이 통일된 결과물로서 남는 것이다. 따라서, 서사극은 당연히 자체
의 예술적인 완결을 위해, 그리고, 예술적 실천을 위해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었다. 서론에서 언급한 제3세계의 서사극이 지니는 의미가 이제는 좀더 명확해질 것이다.
카페 게시글
연극을 봤어요(소감)
<필독>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마당세실 식구들, 숙제예요^^
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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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0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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