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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목멱산자락, 낮
비탈을 따라 연이어 쇠공이 굴러오고 서주필과 사령들 사이에서 폭발한다.
사령들과 군졸들의 태반이 낙엽처럼 바닥에 쓰러진다.
이미 어깨에 상처를 입은 서주필의 얼굴에 낭패감이 엄습해 온다.
미처 군열을 정비하기도 전에 수풀사이에서 살주계원들이 달려나온다.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군졸들.
서주필 칼을 부여잡고 달려드는 살주계원 벤다.
살주계원들과 한성부 사령들이 뒤엉킨다.
내려다보는 양만오. 흑빛 창포검을 턱에 괴고 앉아 발군의 서주필을 본다.
상천 : 저 자로 계원들의 피해가 큽니다.
양만오 : (매서운 눈매로 끄덕인다)
S#2. 목멱산 다른 곳, 낮
멀리 병장기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박상규 절망감에 휩싸인 얼굴로 뛰어간다.
S#3. 목멱산자락, 낮
살주계원들에 사령과 군졸들 하나둘 쓰러진다.
막 살주계원 하나를 베어 넘어뜨린 서주필 앞에 훌쩍 상천이 가로막는다.
서주필 : (알아봤다) 네가 상천이로구나?
지켜보는 양만오 창포검을 뽑아 휘두른다.
상천 : (말없이 칼 휘두른다)
서주필 : (일그러진다) 천두와 황집사를 죽인 것이 네놈이냐?
상천 : ...
서주필 : (흥분한다) 네 놈이 법을 수행하는 한성부 사령을 해친 놈이냐!
내려다보던 양만오 창포검이 바람처럼 날아간다.
마치 서주필과 대적하듯.
상천의 검이 서주필의 목을 향해 바람처럼 날아간다.
서주필 겨우 막아내며 칼을 휘두른다.
둘 접전을 벌이지만, 상천의 검이 서주필 이곳 저곳에 상처를 낸다.
서주필 어렵게 상천의 칼을 막아내는데, 순간 상천의 수리검이 어깨를 뚫는다.
묵직한 신음을 흘리는 서주필, 수리검을 뽑자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상천 한 호흡 쉬려는 찰나, 서주필 그 틈을 노리고 달려든다.
검이 배를 관통한다.
울컥 피를 토하는 서주필.
서주필 : (견디며) 죽기 전에 한가지만 묻자.
상천 : (본다)
서주필 : 쥐망초 열매를 들이라 사주한 것이 박인빈 대감인 것을 알고 있다.
상천 : ...
서주필 : (무릎 꿇는다) 그 독 열매로 죽이려는 것은 누구냐?
상천 : ... (사자에 대한 예의다. 보면 양만오 끄덕인다) 소상히는 모르오나,
정승 판서 따윌 죽이려 그리 많은 사람에게 시험했겠습니까?
서주필 : ! (신음한다) 한 가지만 더... 그 계집은... 누구냐?
양만오 : (다시 한 번 끄덕인다)
상천 : 그 분은 (서주필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
박상규 달려와 멀리서 상천이 칼 꽂힌 서주필의 귀에 대고 뭐라 말하는 것을 본다.
상천 귀엣말을 마치고 떨어지자 서주필 황망한 얼굴로 쓰러진다.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달려가는 박상규.
상천과 살주계원들 칼을 뽑아 박상규를 향하려 하자, 양만오 고개를 젓는다.
상천과 살주계들 사라진다.
박상규 : 형님! 형님!
서주필 : (쓰러진 채 달려오는 박상규 안타깝게 본다)
박상규 : (끌어안으며) 안돼! 죽으면 안돼!
서주필 : (안타깝다) 그러했었어... 그러니 자네가 말을 못할 수밖에... (울컥 피 토하면서도 끄덕여준다) 자네 혼자서...
참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구만... 포기 말게... 저승에서... 이판과 내가 자넬 응원하고 있으이...(숨을 거둔다)
서주필을 안고 울부짖으며, 절규하는 박상규.
S#4. 검험실, 밤
사령들 시신을 옮겨와 놓는 사령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족들로 분주하다.
가족을, 동료를 잃고 원통해 울기도 하는 유족들과 사령들 사이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는 박상규,
서주필을 찾는 시선이 황망하다.
서주필 시신 박상규 옆을 지나가 놓여진다.
차마 볼 수 없어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울음을 참지만 눈물이 흐른다.
S#5. 도가, 밤
문을 닫아거는 도술.
다친 살주계원들을 눕히는 상천과 살주계원들을 돕는 기녀들.
지혈하는 움직임들 분주하나 부상자의 신음소리뿐, 다들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어디선가 커지는 신음소리, 부상자 하나 피를 토하고 숨을 놓는다.
그를 지혈하던 기녀 하나, 두려움에 울먹이다 이내 크게 울음을 터뜨린다.
다들 양만오의 서슬에 눌려 눈치를 살핀다.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양만오.
S#6. 검험실, 밤
대부분 빠져나가고 남은 몇몇의 사령들이 유족을 데리고 나간다.
울음을 참던 박상규, 그제야 서주필 시신 옆으로 다가간다.
삽입컷) #1-42씬 서주필 : 쥐망초 열매라는 독이야... 자네가 날 도와야겠어... 몹시 조심스러운 점이 있어...
삽입컷) #2-48씬 박인빈 : 알면, 감당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삽입컷) #3-38씬 이나영 : ... 저는 그런 분을 알지 못합니다.
삽입컷) #2-21씬 서주필 : 천두는 자네를 알고 있었어... 이판 대감이 그 독에 죽었네... 벽파의 핵심인 자네 부친은...
삽입컷) #2-48씬 박인빈 : 알려고 하지 마라. 네가 어찌해볼 자들이 아니니라.
삽입컷) #4-34씬 이나영 : 제게 죄가 있다면 오라를 채우십시오.
서주필 시신 옆에서 소리 죽여 크게 흐느끼는 박상규.
S#7. 도가, 밤
연기가 자욱한 골방.
상의를 풀어 헤친 채 병째 술을 마시는 양만오. 행동은 과격하나 표정은 냉정하다.
삽입컷) #3-4씬 도술 : 더 이상 계원들을 사사로운 일에 동원하지 말게.
삽입컷) #4-49씬 박상규 : 낭자를 모욕하는 것이다. 모르는가?
삽입컷) #4-17씬 박인빈 : 이 따위로 날 협박할 수 있다 생각했느냐!
삽입컷) #4-13씬 박행수 : 상인의 힘으로 민초들의 세상을 열자는 양행수께서...
삽입컷) #4-13씬 공행수 : 당장 올라간 쌀값을 감당 못해 굶는 이가...
삽입컷) #2-57씬 이나영 : 내가 원해서 하는 일... 상관 말고 돌아가시오.
삽입컷) # 2-54씬 이나영 : 정말인가? 축하하네, 정말 축하해.
곰방대 물고 만취한 기녀들 양쪽에서 양만오를 희롱하나 꿈쩍없이 또 병째 마신다.
그 옆을 지키는 상천.
S#8. 궐내 편전가는 길, 낮
심민구 가는데 강극수 허겁지겁 달려온다.
강극수 : 대감, 큰 일 났습니다.
심민구 : 이른 아침부터 왜 이리 호들갑이신가?
강극수 : 지금 체통 찾고 할 때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승정원에 교지를 쓰라 이르셨답니다.
(귀에 대고) 양위를 하신다 합니다.
심민구 : !
박인빈 : (오며) 어제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심민구 : (못마땅하다) 그래, 미리 알았으니 방책도 준비하셨는가?
박인빈 : ! 그거야...
심민구 : 알고 계신가? 예판은 그 다음을 준비치 않는 게 문제라는 걸 말일세.
박인빈 : (일그러진다)
S#9. 편전, 낮
임금 : (어이없다) 지금 뭐라 하시었소? 피바람이라니?
심민구 : 태종임금께서 상왕에 물러나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전하?
외척을 제거한다하여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키시지 않았습니까.
박인빈 : 화산 장용영 외영 군사들과 가까이 하심이 어찌 백성을 위함이라 말씀하십니까, 전하?
임금 : 청과 왜는 언제 또 우리에게 칼끝을 들이댈지 모르고, 양이들이 상선이 아닌 군선을 언제든 조선의 바다에
갖다 댈 것은 자명한 이치, 어찌 군사 조련을 문제 삼는단 말이오?
강극수 : 장사치들마저 청과 왜를 제집 드나들 듯 오가는 형국입니다. 양이를 경계하는 것은 청과 왜 또한 다르지 않으니,
양이들이 난을 일으킨다면 그들과 함께 퇴치할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 사료됩니다.
임금 : 나라를 지키는 군사를 길러내는 것은 응당 병권을 책임진 자가 앞장설 일이거늘, 한 나라의 병조판서라는 자가
타국에 원병을 청할 궁리만 하다니, 직무유기 아니오! 부끄러운 줄 아시오!
심민구 : 태종임금께서는 신료들과 은원이 있지 않았습니다.
부디 양위를 거두시고 신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두려움을 굽어 살펴주십시오, 전하.
신료들 : 굽어 살펴주십시오, 전하.
임금 : (화가 치민다) 답답하고 갑갑하오. 이리도 나를 믿지 못하니 내가 보위를 내어놓겠다는 게 아닌가!
내 보위에 오른 동안 언제 한번 제대로 임금으로 본 적이 있단 말이오!
도승지는 당장 교지를 궐문 곳곳에 보여 내 뜻을 알리도록 하라!
도승지 : 예, 전하.
신료들 : 아니됩니다, 전하...
서내관 : 전하, 대비전에서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임금 : !
S#10. 대비전 근처 궐문 안, 낮
대비가 탄 어가를 막고 엎드린 이재한.
이재한 : 아니 되옵니다, 마마...
박상궁 : 어서 궐문을 여시오.
이재한 : (엎드리며) 마마, 차라리 소신을 죽이고 가십시오!
임금 : (서둘러 오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이재한 : (일어나 예를 갖춘다)
임금 : 약방치료를 받지 않는 것은 제 몸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마마.
대비 : 용상의 주인인 금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왕실의 어른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한스러움에
출궁을 결심한 것이니 그리 아시오.
임금 : 할마마마마저 절 믿지 않으니 누가 절 믿고 따르겠습니까? 부디 가마를 돌리십시오!
대비 : (안타깝다) 금상이 이루고자 하는 대업은 보위에 계시면서도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임금 : 보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벌써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대비 : 안타깝습니다, 금상... 금상의 생각만이 옳다고 그리 주장하니
금상을 믿고 따르던 무리조차 하나 둘 등을 돌리는 겝니다!
임금 : 마마!
대비 : (창문 닫고) 가자.
가마 궐문을 빠져나간다.
임금 망연자실 그 모습 지켜본다.
S#11. 검험실, 낮
서주필 시신 앞에서 밤을 지새운 박상규.
한성부 주부 검험을 위해 들어온다.
박상규 : (벌떡 일어나) 어찌 됐소?
주부 : (찜찜한 표정) 검험을 하기 전에 우선 박도사 진술을 좀 들어야겠소.
박상규 : 주필 형님과 사령들을 습격한 살인마들을 잡으러 가지 않는가?
주부 : (의심스러운 눈빛) 박도사는 어찌 알고 그 시각 그곳을 가게 되시었소?
박상규 : (분하다) 무슨 말씀인가? 살주계들을 당장 응징해야 하지 않는가!
주부 : 형조의 지시를 따를 뿐이니 대답하시오. 요며칠 서주부와 박도사가 몹시 다투는 것을 본 증인들이 있소이다?
박상규 : !
주부 : 또 박도사는 서주부가 죽는 것을 보시었다 하지 않았소? 허면 살주계들 지척에 있었단 소리,
어찌하여 박도산 털끝 하나 다치지 않으셨소?
박상규 : (절망한다)
S#12. 내의원 전각 안, 낮
조상궁 : 잠시 궐밖에 다녀올 일이 있다.
이나영 : ?
조상궁 : (항심이 보며) 네가 같이 다녀 오거라.
S#13. 궐문, 낮
패(門牌)를 보여주고 이나영과 항심이 궐문을 나온다.
장부를 적는 군사와 장수1.
평상시와 달리 들뜬 항심이.
S#14. 도가, 낮
기녀들 도움 받으며 옷차림을 살피는 양만오.
도술 작은 함을 들고 와 놓는다.
도술 : 물건을 전하러 가는 길에 왜 그리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가?
양만오 : (함 열면 쥐망초 열매) 아마... 그분이 오실 겝니다.
도술 못마땅함을 참는다.
혼자 미소 짓는 양만오.
S#15. 도가 마당, 낮
도술 : (나오며) 표정 관리 좀 하시게. 계원들도 많이 상했고, 한성부 주부와 사령들이 절멸하지 않았나.
양만오 : (표정 굳으나 외면하며) 다친 정도가 심한 계원들은 치료 후 시전 상인으로 보직을 돌려주고,
죽은 한성부 사령들은 식솔들을 찾아내 굶지 않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도술 : 곧 수사가 시작될 것이니 조심해야 하네. 혼자 가도 괜찮겠는가?
양만오 : (의미심장하게 보며) 우리 외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다시 가며) 무리를 지어 다니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도술 : 도고를 염려하는 행수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네. 어찌하며 좋겠나?
서리 : (황급히 달려오며) 행수어른!
양만오 : (대문 앞에 무장한 채 포졸들을 대동한 박상규 본다) !
낭패감이 스치는 양만오 얼른 도술에게 눈짓한다.
도술 쥐망초 열매를 실은 나귀를 끌던 일꾼을 데리고 사라진다.
박상규 : (분노를 억누르며) 그런 짓을 하고도 달아날 생각을 않다니... 뻔뻔하기 이를 데 없구나.
양만오 :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박상규 : (이를 악문다) 죄는 금부로 가 물을 것이다!
양만오 : (찌푸리며) 다급한 일을 처리한 후에 자진 출두하겠습니다.
박상규 : 어서 끌고 가라!
양만오 : (포졸들 달려들자 당황한다) 실수하시는 겝니다. (끌려가며) 도사 나리!
S#16. 절 불당안, 낮
항심이 대웅전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불상을 향해 허리를 숙인다.
이나영 의외라는 듯 항심 본다.
항심 :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너도 이리와 소망을 빌어봐.
이나영 : (씁쓸하다) 소망...
항심 : (보며) 왜? 사람을 죽이는 망나니한테는 소망도 없을 것 같니?
이나영 : ...
항심 이나영을 위해 자리를 내어준다.
이나영 머뭇거리다가 불상 앞에 선다. 잠시 허한 시선으로 불상 본다.
항심 : 망나니는 정작 자신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어.
이나영 : (돌아본다)
항심 : 망나니 일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또 다른 망나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거야.
산사 입구를 향해있는 항심의 옆모습.
다시 불상을 향하는 이나영. 무슨 소망을 빌어야하지 몰라 합장한 손만 쳐다본다.
항심 : 저 자인가?
이나영 나가보면 도술이 주변을 살피며 급히 오고 있다.
S#17. 빈청 근처, 낮
강극수 : (찜찜하다) 어허... 가뜩이나 상점들이 철시해 도성 저자가 어수선한 판에 시전 총행수를 옥에 가두다니오!
홍만기 : (걱정스럽다) 심문 중에 무슨 쓸데없는 소린 안하겠지요?
박인빈 : (나온다) 대비마마의 출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형국이 될 듯싶은데 어이들 그러십니까?
강극수, 홍만기 : (딴청 피운다)
박인빈 : 이상들 하십니다?
강극수 : (떨떠름하게) 금부도사 박상규가 시전 총행수를 잡아갔다 합니다.
박인빈 : !
홍만기 : 모르셨습니까? 어허... 큰일이로고...
S#18. 의금부 고문실, 낮
양만오 : 간밤에 저는 행수들과 함께 기루에 있었다 하지 않습니까? 무슨 증거로 이리 절 박대하시는 겁니까.
박상규 : (다가오며) 무릎위에 백 근 돌이 놓이고 사금파리가 살을 파고들어도 허위 진술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겠다.
양만오 : (차갑게) 무엇을 말하라는 겝니까? 도사어른 부친의 명으로 독 열매를 들여온 것입니까?
아니면 그 분이 유림을 시켜 임금을 죽이려했다는 사실입니까.
박상규 : (이를 악물고) 네놈이 무엇을 말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조정 중신들에게 뇌물을 상납한 도가의 장부 또한 곧 발견할 것이다.
양만오 : ?
박상규 : 허위로 이중장부를 썼든, 분식회계를 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네 놈은 심문 도중 형신을 이기지 못해 그 죄를 실토하고, 곧 숨을 놓을 것이다.
허면 어느 힘센 관료라 하더라도 죽은 자를 위해 손을 쓰겠느냐?
양만오 : (차갑게) 제법 세상 사람다워지셨습니다, 나리.
박상규 : 네 놈에게 배운 것이다.
양만오 : (미소) 허나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제 수하가 충주 강재순의 식솔들을 데리고 있습니다.
박상규 : !
양만오 : 제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그들은 금부로 올 것이고, 박대감께서는 물론 나리께서도 무사치 못할 것입니다.
아! 모친께서도 계시지요?
박상규 : (일그러진다)
양만오 : 자신 있으십니까?
박상규 : (쏘아본다)
양만오 : 아씨를 구해 낼 자신은 또 있냐 이말입니다.
박상규 : !
양만오 : 일개 행수를 맘대로 잡아 가둘 순 있어도, 아씨는 궐에서 구해내지는 못할 게지요? 겨우 금부도사가 아닙니까?
박상규 : 이 놈...
양만오 : 나리께서는 이미 제 상대가 아니 되십니다. 저를 이기시려면 저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시든지,
아니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계셔야지요.
박상규 부들부들 떠는데 포졸과 나장들 압슬형 형틀과 돌을 들고 들어온다.
박상규 : 오냐, 죽고 난 다음에도 그리 큰소릴 칠 수 있는지 보자.
양만오 기둥에 묶여 사금파리 뿌려진 위에 무릎이 꿇려진다.
양만오 그 고통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고 바지저고리는 순식간에 피로 물든다.
포졸3 끔찍하다는 듯 외면한다.
박상규 : 돌을 올려라.
포졸3 머뭇거리자 박상규 성큼 다가가 직접 돌을 올려놓는다.
양만오 나직이 고통스럽게 신음 토한다.
포도대장 : (다급히 달려오며) 박도사, 박도사! 아니, 이게 무슨 짓인가?
박상규 : (허리를 숙인다)
포도대장 : 어서 돌을 치우게. 압슬형은 선대왕께서 금하신 형벌이네. 몰랐는가?
박상규 : ...
포도대장 : (나장들에게) 내 금부 제조께 이미 말씀을 드렸네. 어서 양행수를 의원에게 보이도록 해라. 어서!
(나장들 양만오 부축해 간다) 아니, 이사람! 대체 무슨 증거로 시전 총행수를 잡아다 형신을 가하는 겐가?
게다가 나라에서 금한 형벌을!
박상규 : 죄가 있으니 형신을 가하는 겁니다.
포도대장 : 그러니까 무슨 죄? 증거가 있냐 이 말일세! 자네 이러다 자네가 다치는 수가 있어!
박상규 : (씰룩댄다)
S#19. 포도대장 집무실, 낮
포도대장 : 저자거리 왈패 중에 수리검을 들고 다니는 자가 부지기수야. 수하중 하나가 그걸 들고 다녔다 해서
주인을 잡아들이면, 옥에 아니 갈 자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 시각에 양행수와 기루에 함께 있었다 증언하는 자들은 또 뭔가?
박상규 : (또 참는다)
포도대장 : 이보시게, 박도사. 어명을 받았으면 그 일에나 충실해야지. 가뜩이나 자넬 미심쩍은 눈초리로 본다 들었는데,
왜 한성부 일에 자꾸 끼어드는가?
박상규 : (못 참겠다 O.L) 대감께서도 저자에게 받은 것이 있지요?
포도대장 : (화들짝) 뭐? 내가 저자에게 뇌물을 받았다고?
박상규 : 아니면 어찌 이리 저잘 두둔하시는 겁니까?
포도대장 : (억지로 참는다) 감히 누구더러 뇌물을 받았다 이러는 겐가?
내 포청 생활 십 수 년 간 은수저 하나 받은 일이 없거늘. 증거 없이 형벌을 가하질 않나,
근거 없이 명예를 훼손하질 않나, 그러시면 아니 되네, 주상전하의 총애를 받는다고 그러시면 아니 돼!
박상규 : (쏘아본다)
포도대장 : 나가시게. 당장 나가! 밖에 아무도 없는가? (대답없다) 야! 아무도 없어?
박상규 : (벌떡 일어서며) 제가 나갑니다!
박상규 팩 돌아나간다.
포도대장 : 저런 예의 없는 인사를 보았나. 감히 날더러 뇌물을 받았다고? (억울한 듯) 아무리 만만해 보여도 그렇지.
금부도사가 포도대장인 나한테 이럴 수가... (갑자기 뒤돌아 벽에 대고) 이럴 수가 있습니까?
박인빈 : (뒤에서 나오며) 저 놈이 그래도 거짓은 말하지 않는 놈이오.
포도대장 : (화들짝) 아니, 대감? 무슨 그런 말씀을?
S#20. 포청 마당, 낮
박상규 허탈한 얼굴로 쭈그리고 앉아있는데, 양만오 온다.
시선이 마주치는 둘.
잠시 생각하다 다가와 옆에 앉는 양만오.
양만오 : (통증을 참으며) 기세가 대단하셨습니다, 나리.
박상규 : (이를 악물며) 언젠간 네놈 죄 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반드시!
양만오 : (미소) 모르셨습니까? 없는 것들이야 쌀 한 되를 훔치면 곤장을 맞고 옥에 갇히지만,
금은보화를 쥔 자들은 살인을 하고도 보석으로 걸어 나가는 세상입니다.
박상규 : (노려본다)
양만오 : (진지하게) 왜 모르십니까? 서주부가 끝까지 설치었다가는
저뿐 아니라 나리 부친께서도 무사하지 못하실 게 아닙니까?
박상규 : (일그러지며 외면한다)
양만오 : (심각하게) 그 자는 아씨께도 몹시 위험한 자였습니다.
하긴... 그냥 두었으면 제가 아니어도 아씨를 부리는 자들이 그냥 두지 않았을 테지요.
박상규 : (쏘아보며) 누구냐, 그 자가?
양만오 : (웃으며) 찾아내 잡아들이는 것은 도사나리의 일이 아닙니까? (간다)
박상규 : 말해 줄 순 없겠느냐...
양만오 : (돌아보며) 청탁을 하시려면 더 예를 갖추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상규 : (부르르 떤다)
양만오 : (정색하고) 심상치 않은 자들입니다. 아씨를 구하시려면 그들이 누군지 서둘러 찾아내야 할 겝니다. (웃는다)
박상규 : 낭자를 구해내어 비단 옷과 기와집을 보인다 한들, 네놈이 저질러 온 짓을 알면 낭자가 네게 마음을 열 듯 싶으냐?
양만오 : (다시 다가와) 크고 중요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방법이 다소 그를 수도 있지 않은지요?
나리께서도 저를 잡아넣으려 불법을 자행하시지 않았습니까?
박상규 : (이를 악문다) 나는... 너와 같지 않다...
양만오 : (차갑게) 도사나리, ... 아씨 역시 살인자입니다?
박상규 : !
양만오 : (간다)
S#21. 검험실, 낮
늘어선 사령부 시신들 사이를 황망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걷는 박상규.
서주필 시신 앞에 가 선다.
박상규 : 형님... 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형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친을 발고할 수는 없습니다,
나영 낭자를 구금할 수도 없습니다. 형님의 한조차 풀어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털썩 주저 앉는다) 형님... 전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놈입니까...
형님, 제가 뭘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엎드려 오열을 참는다)
S#22. 절 마당, 낮
감격에 겨운 양만오.
당혹스러운 이나영.
도술이 항심을 안내해 어디론가 간다.
미심쩍은 듯 돌아보며 가는 항심이.
이나영 : (복잡하다) 열매를 들여온 자가 양행수이셨습니까?
양만오 : 아씨께서 그 열매를 사용하시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나영 : 황집사를 그리 한 것도 양행수 짓입니까?
양만오 : (털썩 꿇으며) 아씨께서 위험에 처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 자가 아씨를 겁박하고 감시하는 듯하여,
아씨를 안전히 모시기 위해 그리한 것입니다. 부디 이놈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아씨.
이나영 : (차갑게) 일어나십시오. 오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양만오 일어서는데 무릎 아래 도포자락에 피가 배어난다.
놀라는 이나영.
S#23. 불당 안, 낮
이나영 양만오 다리에 붕대를 한다.
양만오 감격스럽다.
이나영 : 급한 대로 약초가 될 만한 것을 발라두었으나, 의원에게 보이는 게 좋을 겝니다.
양만오 : 아씨...
이나영 : 열매를 전해 주고, 양행수는 더 이상 이 일에 관여치 마십시오.
양만오 : 이놈을 염려치 마십시오, 제가 아씨를 살펴야지요.
이나영 대꾸 않고 일어선다.
양만오 : 가마를 준비했습니다. 아씨께서 원하시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아씨를 숨겨드릴 수 있습니다!
이나영 : 소용없는 짓입니다.
양만오 : 저를 믿지 못하십니까?
이나영 : (쓸쓸히) 나도 내 앞날을 알지 못합니다.
양만오 : (애가 탄다) 임금을 죽이고는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습니다, 아씨.
이나영 : ! (돌아본다)
양만오 :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십시오.
이나영 : 마치...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듯...
양만오 : 앞으로... 제가 아씨를 모시겠습니다.
이나영 : 제 갈 길은 오직 하나인 듯합니다.
양만오 :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이나영 : (멍하게 본다)
어느새 온 항심이 불당 안을 들여다본다!
S#24. 이나영 옛집 앞, 낮
가마를 타고 가는 이나영.
호위해서 가는 양만오와 도술.
도술 : 당도하였습니다.
이나영 가마에서 내리면 자신의 옛집이다!
놀라 양만오 보면 미소짓는 양만오.
항심 앞에서 아는 체 할 수 없는 이나영.
도술 : 물건은 안에 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항심을 데리고 들어가는 도술.
이끌리듯 안으로 향하는 이나영.
S#25. 이나영 옛집 마당, 낮
옛집에 들어서며 탄식하는 이나영, 눈빛이 흐려진다.
꿈결처럼 대청위에 환하게 웃고 서 있는 이참판과 모친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양만오 그런 이나영의 모습에 감격한다.
양만오 : 아씨를 모시기 위해 집을 매입하고 정성을 다해 손을 보았습니다.
이나영 : (감동해 양만오 본다)
양만오 : (흡족해) 언젠가 아씨를 뵈올 날, 꼭 보여드리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이나영 : (시선 돌리며) 풀과 나무며 문틀 하나하나가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양만오 : 오늘에서야 6년 숙원을 풀었습니다.
이나영 : (대청마루 만져보며) 오직 변한 것은 나뿐인 듯합니다...
양만오 : 아씨... 저를 믿고 따르시면 그 마저도 예전과 같이 돌려놓겠습니다.
이나영 : (쓸쓸하게 미소) 집이 과거의 모습을 되찾듯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 돌아오실 수 없겠는지요...
양만오 : 아씨...
이나영 : 누구든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나도 이미 다른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양만오 : 아씨, 저의 세상을 함께 보십시오.
제가 이룬 세상, 어릴 적 아씨와 함께 꿈꾸며 소망했던 세상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이나영 :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이리 마음을 써주어 고맙습니다. (고개 저으며) 허나...
양만오 : (단호히 O.L) 아씨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든 저는 세상 끝나는 날까지 아씨를 지키는 자가 될 것입니다.
부디 제 청을 거절치 말아주십시오!
이나영 : (차분하게) 오랜 열과 성으로 이룬 총행수의 자리일 터, 더 이상 이 일에 관여치 마시오.
혹여 양서방에게 화가 미치지는 않을까 저어되오.
둘을 보며 오는 항심! 쥐망초 열매가 든 함을 들고 도술과 온다.
애써 이나영을 모른 체하며 예를 취하는 양만오.
양만오 : (안타깝다) 물건은 확인하셨는지요?
항심이 : (허리 숙이며) 그럼 이만 궐로 돌아가겠습니다.
항심의 눈초리와 양만오의 마음을 외면하는 이나영.
S#26. 내의원 전각, 낮
조상궁 함을 열면, 쥐망초 열매.
조상궁 : (이나영 보다가) 어찌 이리 늦었느냐?
이나영 : 양행수라는 자가 의금부에 끌려가는 바람에 풀려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조상궁 : 그뿐이냐?
이나영 : 예?
조상궁 : (쏘아보다가) 뒤를 밟히거나, 다른 일은 없었느냐?
이나영 : 예...
조상궁 : (의미심장하게) 큰일을 함에 그 누구도 함부로 믿어선 아니 된다. 항심이년을 항시 조심해야 할 것이야.
이나영 : ! (혼란스럽다)
S#27. 박상규 집무실, 낮
박상규 : (침울한 표정으로 적으며) (E) 이조판서의 죽음은 도성에서 발생한 여러 건의 살인 사건과 서로 연관되며
그 범인은...
박상규 종이를 북북 찢어 던진다. 서안 아래 찢어진 종이들 수북하다.
박상규 붓을 놓고 멍하니 창밖을 본다.
화창한 바깥의 풍경에 더더욱 자신의 처지가 괴롭다.
포졸1 : (E) 형님, 접니다.
박상규 : 나중에 오너라. 지금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포졸1 : 경상감염에서 오늘 길입니다요, 형님, 도사 나리.
박상규 벌떡 일어나 집무실 문을 연다.
포졸1, 2 놀란 듯 박상규 보고,
박상규 포졸1, 2 안으로 들인다.
포졸2 : (바닥에 떨어진 종이들 보며) 얼래? 우릴 그 먼 곳에 보내놓고 몰래 연애라도 하시는 겝니까요?
(하나 주워서 펴보려는데)
박상규 : (얼른 빼앗으며) 그래, 어찌 되었는가?
포졸1 : (뿌듯하게) 최근에는 의녀를 추천한 일이 없었다 합니다.
박상규 : (다급히) 허면?
포졸2 : (뻐기듯) 저희가 판공비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 돈으로다가 감영 이방한테 대포 한 잔 사주면서
넌지시 물었지요, 그랬더니! 나영이란 관비는 일 년 전에 면천됐대요.
박상규 : 누가 면천을 시켰느냐?
포졸1 : (품에서 서찰 꺼내며) 여기 면천을 요청하는 서찰을 필사해왔습니다요.
박상규 얼른 받아 펴면 세로로 쓰인 언문 서찰.
박상규 : (떨며) 이자가... 이 모든 사건들의 배후가 바로 이자이더냐!
하는데 문 왈칵 열리며 한성부 주부와 사령들 들이닥친다.
포졸1 : 어메 간 떨어지겠네.
포졸2 : 아니 금부도사 집무실에 한성부 주부가 이리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거여?
주부 : (무시하고) 박도사, 잠시 한성부로 가주셔야겠소.
박상규 : (일그러지며 조심스럽게 서찰을 접어든다) 내 급한 일이 있으니 나중에 오시오.
주부 : (날카롭게 서찰 보며) 그리는 아니 되겠소. (사령들 보며) 끌고 가라.
사령들 문 앞을 막아선다.
당황하는 박상규와 포졸들.
S#28. 빈청, 낮
심각한 고민에 빠진 심민구. 신료들 논쟁하다 다툰다.
한두희 : 이런 때일수록 각자 소임에 충실해야 하거늘 대체 언제까지 예들 계실 참이십니까?
강극수 : 금상의 실정으로 왕실의 최고 어른께서 궐을 나가신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한가하게 도감 일이 눈에 들어옵니까?
신성두 : 뭔 일이 터지기만 하면 매번 장외투쟁이다 하고, 이 무슨 경우 없는 행동들이시오!
홍만기 : 아니, 경우가 없다니, 경우가 없다니! 지금 어디다 대고 그런 막말을 하는게요?
한두희 : 대비전과 전하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으면 신료들이 중재함이 마땅하거늘,
어찌 싸움을 부추길 궁리들만 하는 거요?
강극수 : 뭐요? 듣자듣자하니까? 누가 싸움을 부추긴다는 거야?
홍만기 : 야! 자꾸 말 그따위로 할 거야? 부추기긴 누가 부추겨?
신성두 : 야라니? 그따위라니? 야! 너 말 다했어? 누군 말 그렇게 못해서 참고 있는 줄 알아?
S#29. 박상규 집무실 앞마당, 낮
주부들에게 오라에 묶여 끌려가는 박상규.
당황해 뒤따르는 포졸1,2.
박상규 : (사정한다) 풀어주시게. 주필형님과 나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까웠던 사이였네.
왜 나에게 얼토당토않은 죄를 뒤집어씌우는가?
주부 : (차갑게) 상관의 명이오.
박상규 : 국가의 녹을 먹으며 어찌 상관의 명이 중한 것을 모르겠는가? 판윤 대감껜 내 직접 말씀드리겠네.
대꾸 않는 주부.
갈등하다 분노해 마침내 상방검 들어 보이는 박상규.
박상규 : (서슬 퍼렇게 질러댄다) 썩 비켜라. 이 상방검이 무엇인지 모르느냐? 이 몸은 만인지상 전하의 명을 받았다!
주부 : (움찔한다)
박상규 : 감히 어명을 받은 자의 앞을 가로막다니 목이 열개라도 된단 말이냐!
주부 : (고민하다 고개 숙이고) 풀어드려라.
사령들 오라를 푼다.
포졸1 : (고소하다는 듯 웃어 보이며) 와, 형님, 도사나리. 대단하십니다!
포졸2 : 하이고, 도사형님, 예전의 우리 형님이 아니시네!
박상규 : (허탈하게 상방검 본다)
S#30. 궐내 전각, 낮
조상궁의 굳은 얼굴.
상방검과 포졸1이 가져온 서찰과 쥐망초 열매를 놓고 앉은 박상규.
박상규 : 그 의녀를 궐내에 들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상궁 : 내가 모르는 것을 박도사는 알고 계신 듯합니다만?
박상규 : (다그친다) 함양문 수문장에게 낮에 의녀 둘이 나간 기록을 확보했습니다.
그들이 시전 총행수로부터 쥐망초 독 열매를 들여온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조상궁 : (꿈틀하나 냉정을 찾으며) 이것이 독이고 이것을 들이는 계집을 보셨는데 왜 그냥 두시었소?
박상규 : (멈칫한다) 그것은...
조상궁 : (차가운 미소) 박도사께서 그 계집을 만나러 몇 차례 입궐한 것을 아옵니다만?
박상규 : ! (어디까지 아는가?) 저는...
조상궁 : 박도사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 의금부에 달려갔어야 옳지 않소? 내게 온 연유를 모르겠소?
박상규 : 저는... 그 누구도 다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조상궁 : (미소) 그 누구가 대체 누구누구란 말이오? 그 계집 외에 누가 더 있습니까?
혹여 박도사와 연관되는 다른 누군가가 있습니까?
박상규 : (각오하고) 저는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이 의녀를 놓아달라는 것입니다.
조상궁 : (크게 웃는다) 순진한 게요, 아니면 멍청한 게요? (비웃듯) 사내가 계집을 좋아하는 것이 별난 일은 아니지요...
박상규 : (신음한다)
조상궁 : 내 재미난 얘기를 들은 셈 치지요. 이 관비를 의녀로 보내라 문서를 보낸 것은 당시 내가 약방상궁이었기 때문이고,
의술이 뛰어난 관비를 의녀로 올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도 아니외다.
박상규 : (일어선다) 이틀 말미를 드리겠습니다. (가려다 문득 상방검 들어 보고 내어 보이며 협박하듯) 이 서찰을 들고
의금부가 아니라 전하를 찾아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간다)
조상궁 : (미소 띤 얼굴이 차갑게 굳는다)
S#31. 희정당, 낮
이나영 헝겊을 들고 앉아 곤여만국전도에 자꾸 눈이 간다.
엎드린 임금 등과 목, 머리의 종기를 살피는 최의원.
조상궁 들어와 이재한 옆에 서며 노려보면 정신 차리고 집중하는 이나영.
임금 : (태연하게) 어떻소?
최의원 : (진물을 닦아낸 헝겊을 나영과 바꾸고) 등에만 있던 종기가 이제 목을 타고 머리까지 번졌사옵고,
일부는 터져 고름이 흐릅니다. 탕약을 올리겠사옵니다.
임금 : (각오한 듯 의미심장하게) 심한 종기는 탕약으로 해결되지 않소. 환부를 째고 뿌리를 뽑아 없애야만 치유될 것이오.
이재한 : 사가에서도 병이 있다하여 함부로 몸에 쇠붙이를 대지는 않사옵니다.
하물며 만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할 왕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조상궁 : (이재한을 유심히 본다)
임금 : (미소지으며) 이대로 뒀다간 온 몸으로 퍼질 것은 자명한 일이로군.
이재한 : 연기을 쏘여 종기를 치료한다는 자가 있다 들었습니다. 사람을 시켜 그 자를 알아보라 일렀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조상궁 : (알 수 없는 강한 눈빛)
최의원 : 맥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만이라도 옥체를 쉬셔야 합니다.
임금 : ...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병마마저 내 발목을 잡는구려...
서내관 : (들어오며) 전하, 사헌부 대사헌이옵니다.
채승환 : (따르며) 도승지가 대비께서 계신 옥류동 사저로 갔으나, 대문을 지나지 못했다 합니다.
임금 : 내 직접 옥류동에 가봐야겠소.
이재한 : 아니 되옵니다, 전하. 혹 궐 밖에서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길까 두렵사옵니다.
채승환 : 망극하옵니다, 전하. 차라리 저를 버리시고 서둘러 대비마마를 궐로 모시시옵소서.
임금 : (이나영 보며) 저 아이를 데려 가겠소. 허면 지난 번 같은 일이 재발하여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조상궁 : !
이나영 : !
S#32. 매향루 별당, 밤
서주필의 죽음이 괴롭고, 무능력한 자신이 괴롭고, 변해가는 자신이 괴로운 박상규.
박상규 : (취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주필 형님이 돌아가셨다.
월향 : * 바람에 흔들리고 눈보라에 시달린 만큼 깊이를 갖는 나무의 상처, 그 상처를 믿고 맘 놓고 새들이 집을 짓지요.
박상규 : (자작하며) 나는 나무도 아니고... 나는 사람도 아니네.
월향 : 나리...
박상규 : 살인범을 알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으려 모르는 척했다...
월향 : (알면서도 짐짓)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박상규 : (비틀 일어서며) 알면... 자네 마음속에 자리한 연모의 정이 하나 남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월향 : 나리...
박상규 : (전립과 상방검 들고 비틀거리며 일어서 나가는데)
월향 : (따라 나서며 끌어안듯이 붙잡고) 나리... 사랑채에 자리를 보라 이르겠습니다. 잠시 몸을 뉘었다 가십시오.
박상규 : 나는... (돌아보며) 자네에게 사랑받을 놈이 못되네.
월향 : (뜨겁게 본다)
박상규 : 못나고, 또 못나고,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 바로 나이니... 더 이상은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시게...
비틀거리며 간다.
월향 그 모습 가슴아프게 본다.
* 박두순 시 ‘상처’에서 인용.
S#33. 나룻배, 밤
선두에 횃불이 배 위를 비춘다.
서내관 노를 젓는다. 주위는 온통 어둠에 잠겼다.
임금 : 너도 내가 양위를 하면 중신들의 말대로 칼을 휘둘러 내 생부의 복수를 할 것 같으냐?
이나영 : 비천한 계집이 어찌 그걸 알겠습니까...
임금 : 무릇 아비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법...
이나영 : !
임금 : 나는 생부가 저들의 간계로 죽어가는 것은 똑똑히 보았다. 그리 억울하게 죽었기에 임금의 시호도 받지 못했고,
내 비록 보위에 올랐으나 내 모친은 대비가 아닌 홍씨라 불리고 있다.
이나영 : (임금의 처지를 비로소 느낀다)
임금 : 보위에 오른 나를 틈만 나면 죽이려는 시도들을 겪으며, 나는 하루에도 수백수천번 결심했다...
언젠가 저들의 목을 모두 베어 이 수모를 갚으리라. 그들의 피로 조선팔도를 적셔 생부의 원혼을 달래보리라...
이나영 : 망극하옵니다...
임금 : 허나... 그런 나를 다독여 복수의 날을 접게 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이가 있었다.
그이로 인해 난 복수가 허무한 것이라 깨닫게 되었고, 조선의 미래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이나영 : (나의 복수는 어떠한가) ...
임금 : 오늘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다. 이 나라 조선의 운명을 가르는 날이라 할 수 있겠지.
(이나영 보며) 나는 비록 땅 속에 있지만 그에게 힘을 달라 청하려 한다.
이나영 : (나의 운명은 어떠한가) ...
S#34. 박상규 집 뒤뜰, 밤
안절부절 못하는 엄씨, 어쩌지 못하고 숨어 지켜본다.
상방검 쥔 채 나무 기둥 붙잡고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또 쓰러지는 박상규.
박상규 : (나무에게) 차라리 몸이 묶인 것이라면 이리 괴롭지 않았을 겁니다. 뭐가 좋은 세상이고 뭘 소망한단 말입니까...
박인빈 헛기침 하면 엄씨 놀라 돌아보고 얼른 허리 숙이고 간다.
박인빈 : (오며) 쯧쯧, 집에 왔으면 의당 문안을 여쭙는 것이 도리 아니냐.
박상규 : 어찌 지내시는지 뻔히 아는데 무슨 문안을 여쭈라는 겁니까, 마님?
박인빈 : (발끈하나 참으며) 관직을 내놓고 외가에 가 있거라.
박상규 : (피식 웃는다)
박인빈 : 금상께는 내 잘 말씀드릴 터이니, 세상이 조용해질 때까지...
박상규 : (O.L) 조상궁이 그리하라 시켰습니까?
박인빈 : (놀란다)
박상규 : 위세가 대단하더군요? 범죄를 사주한 증거를 보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박인빈 : 조상궁을... 만났느냐! 네 놈이 뭘 어찌하겠다고!
박상규 : 거래를 하자며 비열한 수작을 부렸습니다!
박인빈 : (불안하다) 안되겠다. 오늘 당장 떠나 몸을 숨겨라. 그것이 살 길이다.
박상규 갑자기 상방검 뽑아 나무 기둥에 박는다.
박인빈 흠칫 놀란다.
박상규 : 걱정마십시오. 대감께서 이르시지 않아도 전 떠날 것입니다!
박인빈 : 상규야!
박상규 : 대감께서도 주변을 정리하셔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제가 정리를 해드릴 지도 모릅니다.
성큼성큼 가는 박상규.
박인빈 심난하게 나무에 박힌 상방검 본다.
멀지 않은 곳에서 계속 지켜보던 엄씨, 겁먹은 얼굴로 자리 뜬다.
S#35. 도가 앞, 밤
양만오 목에 칼을 들이댄 호위무사.
도술 : 이게 무슨 짓입니까... (긴장해 다가서려는데)
호위무사 도술을 벨 듯 다른 칼을 뽑아 겨눈다.
도술 매섭게 본다.
양만오 : (도술 제지하며) 무슨 일이십니까?
한상궁 : 갈 곳이 있으니 순순히 따라오시게.
양만오 : 말씀으로 하시어도 갈 것이거늘... (여유 있게 손으로 칼 치우는데)
호위무사 칼 바투 잡고,
그 바람에 양만오 손에 피가 흐른다.
한상궁 : 예서 피를 볼 참인가?
양만오 : (심각해진다)
한상궁 : (나직이) 금부 도사가 찾아왔었다. 그 일을 해명해야 할 것이야!
양만오 : (도술에게)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한상궁 :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는 가 봐야 알 것이야.
눈짓하자 호위무사 양만오 눈을 가린다.
한상궁 : (도술 보며) 본시 짐승도 새로운 우두머리가 정해지면 알아서 무리를 떠나거늘...
한 무리에 우두머리가 둘이 있어서야 쓰겠는가. (간다)
도 술 : 양행수... (모멸감에 떤다)
S#36. 산자락, 밤
묘지기를 앞세우고 산길을 오르는 임금과 이나영, 서내관.
묘지기 : (이나영 힐끔 보며) 오늘은 따님도 모시고 오셨습니다.
임금 : (미소) 따님이라...
이나영 : (고개를 숙인다)
묘지기 : 다른 묘들은 지난 홍수에 쓸려나가도 했지만, 워낙 터가 좋아서요. 다 왔습니다.
보면 앞이 탁 트인 곳에 두 기의 묘가 나란히 자리했다.
임금 : (엽전 쥐어주며) 내 잠시 둘러보고 내려가겠네.
묘지기 : 밤길이 험하니 조심해 내려오십시오. (내려간다)
임금 횃불을 들고 묘 주위에 난 잡풀을 뽑는다.
임금 : 네 부모는 어디에 묻혔느냐?
이나영 : 부친은 모르옵고, 모친은 제가 있던 감영 뒷산에 계십니다.
임금 : 이들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절을 해줄 수 있겠느냐?
이나영 : 예, 전하.
이나영 절한다.
그 모습 보는 임금의 표정이 측은하다.
임금 : 누구의 묘인지 묻지 않느냐?
이나영 : (본다)
임금 : (하늘을 보며) 나의 벗이자, 스승이오, 또한 나를 죽이려 했던 자와 그가 아끼던 한 사람의 묘이다.
이나영 : ?
임금 : (무덤을 향해) 나에게 힘을 주시오. 경과 함께 꿈꾸고 소망하던 세상이 바로 눈앞에 있소이다. (눈물이 고인다)
금 회한 가득해 무덤 보고,
이나영 임금과 무덤 번갈아 본다.
S#37. 박상규 집 엄씨 방, 밤
엄씨 : (여전히 취한 박상규 등을 퍽퍽 쳐대며) 니놈이 미쳤어? 어디서 칼을 뽑아들어, 칼을! 아이고 세상에, 천하에 몹쓸 놈!
(상방검 쥐고) 차라리 같이 죽자, 같이 죽자고, 이놈아!
박상규 : (상방검 빼앗아 구석에 힘껏 던진다) 엄마가 죽긴 왜 죽어요? 내가 죽어야지!
엄씨 : (코 팽 풀며) 아이고, 이제 대감마님을 무슨 낯으로 뵌단 말이냐. 아이고!
박상규 : 그만해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뼈가 부서져라 일하면서 사람대접이나 제대로 받아왔어?
이런 빌어먹을 집구석이 뭐가 그리 좋아?
엄씨 : 대감마님 아니면 네가 어떻게 세상에 나왔어? 대감마님 아니면 네가 어떻게 하루세끼 꼬박 챙겨먹고 글공부를 했냐?
하나부터 열까지 대감마님 덕 아닌 게 어디 있냔 말이여!
박상규 : 엄마, 우리 이 집 아니어도 먹고 살 수 있어. 좀 춥고 배고파도 우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데로 가자.
여긴 사람 사는 곳이 아니야.
엄씨 :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사람 사는 곳이 아니면, 개돼지가 사는 데여? 왜 또 이래, 상규 너?
맘 잡고 마님 말씀도 잘 듣던 네가 왜 또 이 모양이 됐어?
박상규 : 몰라... 나도 모르겠어. 그냥 파락호로 살걸... 그냥 포졸 놀이하며 술이나 마시며 살 걸...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엄마... 이러다 나... 미쳐버릴 것 같애, 엄마...
엄씨 : (보다가 가슴 치며) 아이고 우리 아들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된 거야,
차라리 너 가졌을 때 모랠 씹어 먹고 죽어 버릴 걸... 아이고...
박상규 : (울먹) 그래... 차라리 그리 하지 그랬어? 난 이 집에 어울리는 놈이 아니잖아...
엄씨 : (기어코 울음 터트리며) 아이고 상규야...
박상규 : ...
S#38. 삼청동 저택 방안, 밤
양만오 눈을 가린 띠가 풀린다.
어두운 실내, 정면에 조상궁.
조상궁 : 금부도사가 어찌 열매 독이 궐로 들어온 것을 알고 있느냐?
양만오 : 한성부 주부가 죽은 일로 절 잡아들였던 것입니다. 열매 독은 문초한 일이 없습니다, 마마.
조상궁 : (의심하며) 너는 황집사는 물론이고 애꿎은 관리들까지 추살을 하였어.
(호위무사 본다) 네 쓸모는 여기까지인 듯싶다.
호위무사 스릉 칼 뽑아든다.
양만오에게 다가간다.
양만오 : 전하께서 양위를 선언하셨다 들었습니다.
조상궁 : ! (멈추게 한다)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게냐.
양만오 : ... 죄를 물으려 이리 부르신 것이어도 목을 내놓을 것이고, 저를 요긴하게 쓰겠다 하시어도 목을 내놓을 것입니다.
조상궁 : (작게 웃는다) 그래... 양위 다음은 어찌 되겠느냐?
양만오 : 죽은 자와 산 자가 남을 것입니다.
조상궁 : 어찌하면 산 자로 남겠느냐?
양만오 : 도성내 최대 병력인 오군영을 손에 넣어 맞서지 못한다면
전하의 친위대인 장용영 장수들 칼에 목이 달아날 것입니다.
조상궁 : 방도가 있느냐?
양만오 : (엷게 웃으며) 방도를 갖지 못했다면 예서 살아나갈 수 없음 또한 알고 있습니다.
S#39. 화성 훈련장, 밤.
임금과 채승환이 지켜보는 앞에서 최인우 선발된 군사들 무술 시범을 지휘한다.
무장한 군사들 검, 창, 타격기 등 무예도보통지의 무술을 선보인다.
만족스러운 임금과 채승환.
임금 : 고생들 많으셨소.
최인우 : 장용영 외영 군사 중 특히 무예가 뛰어난 자들을 뽑았습니다.
내외로 소란한 이때, 전하를 최측근에서 보좌할 것입니다.
임금 : (우울한 얼굴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채승환 : 소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전하!
임금 : 잠시 동안이오. 국정이 안정되면 다시 부를 것이니, 그 동안 화산을 잘 돌보고 계시오.
채승환 : 소신이 미욱하여 전하를 보필하지 못하니 송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부디 옥체를 강건히 하시고 성심을 잃지 마십시오, 전하...
임금 : (속삭인다) 혹여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명이 없이는 절대 군사들을 움직여서는 아니되오.
채승환 : 전하?
착잡한 임금.
결연한 최인우.
S#40. 옥류동 사저 앞, 밤
관복차림의 신료들과 등짐을 맨 하인들을 대동한 선비들이 대문 앞을 서성인다.
임금 불편한 얼굴로 그 모습 본다. 서내관 함께 있다.
박상궁 : (허리 숙이며) 송구하옵니다, 전하.
임금 : (마땅치 않다)
박상궁 : 대비께서 사저로 납시어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어떻게든 줄을 대어 보겠다 몰려든 자들 같사옵니다.
허나 대비께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계십니다.
임금 : 침소에 드셨는가?
박상궁 : 안채에서 시름에 잠겨 밤하늘만 바라보고 계십니다.
임금 : 가자.
S#41. 안채 대청, 밤
대비 안색이 파랗다.
단호한 표정의 임금.
대비 : 다시, 다시 한 번 말씀해보시오. 내가 진정 금상의 말을 들은 것이오?
임금 : 제 소신은 분명하옵니다.
대비 : 입궐을 하지 않으면 어찌하시겠다고요?
임금 : 화산의 최인우를 부르겠습니다. 대화와 타협이 통하지 않는다면, 차선의 방책을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비 : 진정... 피를 보시겠다 이 말씀이시오?
임금 :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찌 사사로운 복수심에 사로잡혀 종사를 피로 얼룩지게 하겠습니까.
화산의 군사들이 오면 그 두려움에라도 저를 따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대비 : 군사를 옆에 끼고 금상이 은원을 풀지 않으리라고 누가 믿는단 말이오!
임금 : 모두가 저를 신뢰치 않는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할 건 해야겠습니다.
역사가 저를 정당하게 평가할 것입니다.
대비 : 이보시오, 금상...
임금 : 말씀대로 채승환은 왕실을 능멸한 죄로 벼슬을 빼앗도록 할 것이고 내의원의 진맥 또한 받을 것이니,
입궐하셔도 할마마마의 존엄에 흠이 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절하고 일어나 간다)
대비 : (넋이 나갔다)
S#42. 내의원 행랑채, 밤
이나영 심란하다.
삽입컷) #5-32씬 임금 : 나의 벗이자, 스승이요, 또한 나를 죽이려 했던 자와 그가 아끼던 한 사람의 묘이다.
앞에 놓인 칼집 없는 장도를 꼭 쥐는 이나영.
조상궁 : (E) 안에 있느냐?
이나영 : (장도를 넣고) 예, 마마님.
문 열리고 조상궁과 봇짐을 들고 들뜬 항심이 들어온다.
조상궁 : (차분하게) 의금부 도사 박상규를 아느냐?
이나영 : !
조상궁 : (매섭게) 그잔 네가 궐로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까지 알고 있다.
이나영 : 마마님! 죽은 죄를 지었습니다!
조상궁 : 양화당 사건 이후 그자가 연이어 너를 찾은 이유가 무엇이냐?
이나영 : 그것은... 생명의 은인이라 하여... 그저 저를 마음에 품은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건을 빼앗지도, 발고할 자도 아님이 분명하기에 목숨만은 연명하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조상궁 : 네 년 역시 그 자를 마음에 품은 게지.
이나영 : ... 아닙니다, 마마님...
조상궁 : (시선 거두며)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 잔 너희를 놓아주지 않으면 발고를 하겠다 거래를 놓고 갔다.
이나영 : 제 불찰입니다. 제게 벌을 내려주십시오.
조상궁 : 짐을 싸라.
이나영 : 마마님?
S#43. 궐 뒷문, 밤
작은 가마 둘 놓여 있다.
봇짐을 꾸린 이나영과 항심이 나온다.
조상궁 : (차분하게) 도성 문을 나가면 가마를 돌릴 것이다. 의녀가 달아났으니 추쇄꾼이 따라붙을 수도 있다.
허나 그들이 너희들을 잡는 일은 없을 것. 좋은 사내를 만나 남들처럼 살거라.
항심 : (감격에 겨워) 마마님...
조상궁 : (부드럽게) 어서 떠나라. 너희가 아니어도 대사를 치를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시신으로 도성을 나가지 않는 것을 천운으로 여겨야 할 것이야.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나영 혼란스럽다.
항심 : 어서 가자. 여길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야!
이나영 : 하지만...
항심 : 마마님 말씀 못 들었어? 궐에는 우리 같은 계집들이 얼마든지 있어. 어서.
이나영 : (주저한다)
항심 : (애가 탄다) 그럼 나 먼저 갈게.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당부하듯) 또 무슨 일을 당하기 싫으면,
여기서 있던 일은 절대 누구에게도 발설해선 안 돼! 절대! 모든 걸 잊고 사는 거야. 내 말 알아들었지?
서둘러 가마에 오르고, 가마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나영 주변을 둘러본다.
장승처럼 서있는 가마꾼과 가마, 그리고 어둠.
삽입컷) 박상규 : 좋은 세상에 대한 소망을 한가득 품고 계시던 낭자가 아닙니까?
제게 좋은 세상에 대한 소망을 한가득 나누어주신 낭자가 아닙니까?
삽입컷) 양만오 : 저의 세상을 함께 보십시오. 아씨가 소망했던 세상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가마꾼 : 어서 가마에 오르시오. 도성 문이 닫히기 전에 빠져나가야하오.
이나영 : (가려다가 멈칫한다)
삽입컷) 죽은 이참판, 죽은 모친.
이나영 : (멍하게) 돌아가시오... 나는 갈 곳이 없소이다.
가마꾼 : (짜증) 거 무슨 말씀이시오?
이나영 :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소...
가마꾼 : 이거야 원... (다른 가마꾼에게) 가세. 우리야 시키는 곳에 가마를 놓기만 하면 되지 않는가?
이나영 : ?
가마꾼들 빈 가마를 이고 간다.
이나영 의문에 휩싸인다.
돌아가려 보면 싸늘한 표정의 조상궁 서 있다.
S#44. 강가 절벽, 밤
가마꾼들 절벽 앞에 가마를 세운다.
항심 : 도성을 빠져 나왔소?
가마꾼 : 잠시 쉬어 가는 것이니 안에서 기다리시오.
가마꾼들 서로 눈짓하고 서둘러 가마를 떠난다.
항심 : 나는 충주가 고향이오... 하지만 그곳으로 돌아가진 못하겠지요...
허나 발붙이고 산다면 조선 어디가 내 고향과 다르지 않겠소...
호위무사들 소리없이 가마로 다가온다.
스르릉 칼을 뽑아들더니 가차없이 가마 안을 찌른다.
짧은 신음 소리, 가마 밑으로 검붉은 피가 흐른다.
가마 문이 열리고 피투성이의 항심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호위무사들을 본다.
호위무사들 가마들 들어 언덕 아래로 던진다.
강물로 떨어지는 가마...
S#45. 내의원 행랑채, 밤
조상궁 : 왜 가마에 오르지 않았느냐?
이나영 : 저에게 할 일이 남아있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상궁 : (차가운 미소) 그 일이 너를 살린 게야...
이나영 : ! 하오면... 항심이는...
조상궁 : (차갑게) 말하지 않았느냐. 쓸모를 다하면 필요가 없어진다고.
이나영 : (소름 끼친다)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조상궁 : 너 역시 신분이 노출되었으니 쓸모가 없어졌다 할 수 있다.
이나영 : !
조상궁 : 허나, 네 신분을 알아낸 자를 제거하면 될 터.
이나영 : !
조상궁 : 의금부 도사 박상규를 제거해라.
놀라는 나영에서 엔딩.
*출처 : 대본과시나리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