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장편소설.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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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계속해서 일을 해야 했다. 그녀는 거기가 녹음실이라고 내게 설명해주었다. 화면의 등장인물들은 말을 하는 것처럼 입을 움직이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목소리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그 녹음실 사람들이었다. 어미새들처럼. 그들은 등장인물의 목구멍 속에 소리를 심어주고 있었다. 순간을 놓쳐서 목소리가 제때에 나오지 않으면 다시 해야 했다. 그러면 멋진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서 살아 있을 때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단추를 누르자 모든 것이 뒷걸음질쳐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거꾸로 달리고 개들도 뒤로 달리고, 무너졌던 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시체에서 총알이 튀어나와 기관총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살인자들은 뒤로 물러서서 뒷걸음질로 창문을 훌쩍 넘어 나갔다. 비워졌던 잔에 다시 물이 차올랐다. 흐르던 피가 시체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고 핏자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며 상처도 다시 아물어버렸다. 뱉은 침이 다시 침 뱉은 사람의 입으로 빨려들어갔다. 말들이 뒤로 달리고 팔층에서 떨어졌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창문으로 돌아갔다.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을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 나는 튼튼한 다리로 서 있는 생기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렸다. 나는 좀더 시간을 거슬러올라 아줌마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132~133)
[가난해서 고통스럽게 산 사람들, 몸으로 먹을 것을 구해야 했던 사람들, 늙어서 남은 것이라고는 쭈글쭈글한 육신과 육신으로 인한 고달픔과 고통만이 남은 사람들. 그들을 젊게 만들고 더 젊어서 아름다움으로 충만했을 어린 때로 돌려놓자 눈물이 났다. 가엾은 사람들. 과거로 올라갔을 때 이들은 다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달라질 수 있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절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자 편안해진다. 모모는 늘 생각한다. 인간을 안락사시킬 수 없게 해서 사람들은 늙으면 죽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연이 늙은 사람들의 목숨을 천천히 앗아간다. 피가 마르고 뼈가 점점 가늘어지며 살이 다 말라서 피부가 뼈에 드러붙어 있게 된다. 그래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천천히 일을 진행시킨다. 하밀 할아버지도 나이가 많아서 읽지 않는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를 돌보아주는 이는 드리스 씨다. 회교도인들은 사람이 아주 늙어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면 그 사람에게 존경을 보낸다. 알라신에게 공로가 된단다. 어쨌든 늙어서 누군가에게 부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모모는 이제 열 살쯤 되었기 때문에 억지로 슬픈 자리에 오래 있을 필요가 없어서 하밀 할아버지 곁을 떠났다. 슬픔을 찾아 다닐 필요는 없었다. 작가 에밀 아자르는 66세가 된 1980년에 입안에 권총을 넣어 방아쇠를 당겨 생을 마감했다. 친구에게 "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명이었을 뿐이네."라는 말을 남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