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고: 본 칼럼에는 화장실과 밀접히 관련된 사물에 대한 묘사가 빈번하므로 그 사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거나, 나아가 식욕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는 독자는 읽기를 피하기 바랍니다.
십오년 전,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소문난 가난뱅이였고, 아버지는 십오년째 공사판에서 시멘트를 나르고 있었다. 따라서 화장실도 당연히 재래식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집 화장실의 구조는 매우 단순했다.
허름한 집과 허름한 담 사이에 더 허름한 목조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거적대기가 하나 덮여 있었다. 그 거적대기를 들추고 들어가면 반 평도 안 되는 공간에 커다란
항아리가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우리 온 가족이 애용했던 변기였다.
오래 사용하다 보니, 정이 드는 듯한 기분이긴
했지만, 그 화장실을 사용하는 데에는 늘 애로사항이 따랐다. 애로사항이 워낙 여러 모로였기에 계절별로 파트를 나누어 소개할까 한다.
우선 겨울.
만물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에는 그나마 화장실의 변내가 심하지 않아 코가 덜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만물이 꽁꽁 얼어붙다보니, 변(便) 또한 만물의 하나인지라, 꽁꽁 얼어붙었다. 물론 얼어붙는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변이 차곡차곡 쌓이며 하나의 변탑을 이루어 갔다는 데에 있었다. 하나가 쌓이고, 얼고, 또 하나 쌓이고 얼고... 그렇게
하다보면 굳건한 탑이 항아리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이었다.
차곡차곡 쌓이며 이루어진 탑은
어느덧 엉덩이와 매우 밀접한 위치에까지 솟아올랐고, 더러는 엉덩이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늘 나와 동생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했던
일이 바로 '변탑 무너뜨리기'였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은 우리에게 장애가 될 수 없었다. 물론 변탑 역시 '공든 탑'이기는 했다. 그
탑이 만들어지기까지 우리 식구들이 그 얼마나 공을 들였겠는가. 특히 변비로 고생하던 누나는 그 탑에 한 칸을 쌓기 위해 매일같이 30분을
화장실에서 공을 들여야 했다. 그래서 화장실을 나오는 누나의 이마에는 늘 송글소글 땀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당장 엉덩이를 위협하는 변탑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형제는 늘 개구리 잡는 데에나 어머니께서 회초리가 없거나, 부지깽이도 없을 때 대용으로
사용하는 기다란 작대기를 들고 화장실로 가서 변탑을 후려쳐야 했다.
어떤 때는 서너번 치면 우루루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날이 추울
땐 수십 번을 내리쳐도 끄떡없었다. 그럴 땐 하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발을 항아리 밑으로 내려 변탑을 걷어차야 했다. 지금도 발끝에 그
묵직하게 와닿던 변탑의 중량감이 발에 선하다.
그리고 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변에도 무수한 생명의 씨앗을 뿌렸다.
그래서 늘 봄이면 변은 살아움직였다. 꿈틀꿈틀... 볼일을 보다보면 발등을 간지르며 변에 사는 생명들이 열심히 다리 위로 기어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생명들은 변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어엿한 파리가 되어 우리를 괴롭혔다. 그러나 여름에 비하면 그 고통은 차라리
즐거움이었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변은 오뉴월 개의 뭐시기처럼 완전히 그 응집력을 상실해서 흐물흐물 해졌다. 그렇게 물러지다보니,
큰 거만 떨어지면 변은 이런 소리를 냈다.
툼...
누나는 그 소리를 '똥~'이라 표현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
소리는 분명한 '툼~'이었다.
툼...
그리고 약 1.5초 후면 '...벙'하는 소리를 내며 변은 엉덩이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렇다. 여름이면 변은 거의 액체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에 중량이 무거운 변이 떨어질 수록 거칠게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는 엉덩이에
영광의 흔적을 남기고 다시 잠수하곤 했다. 그 때의 그 고역이란 겪어본 자만이 안다. 교문이 잠기면 개구멍이 생기고, 프로그램에 날짜 제한이
있으면 크랙이 나오는 법, 그러한 고역이 반복되자,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지라, 우리도 나름대로의 대책을 강구했다.
첫번째 대책은
일명 '일동기립'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어지던 편법으로, '툼~'하고 변이 변에 떨어졌을 때, '...벙' 소리가 나기 전에 재빨리 엉덩이를 위로
치켜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뒷처리도 하지않은 엉덩이를 올리는 일은 변액과 엉덩이가 만나는 일만큼이나 찜찜한 일이었고, 그래서 다른 방법이
강구되었다.
두번째로 나온 것이 '좌로 굴러' 혹은 '우로 굴러'라 불리어진 편법으로, '일동기립'에서 한 단계 발전한 형태였다.
방법인즉슨, '툼~' 소리가 나는 즉시 좌측이나 우측으로 엉덩이를 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액이 튀는 각도가 변화무쌍했던지라, 결코
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바로... 어머니께서 수십년전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던 작은 가마솥의 뚜껑을 들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툼~'소리가 나는 즉시 솥뚜껑으로 엉덩이를 가린다. 솥뚜껑은 적의 침입을 발견해내는 레이더처럼 변액의 침입을
일거에 감질했고, 보호막처럼 엉덩이를 하얗고 뽀송뽀송하게 보호했다. 그렇게 사용되던 솥뚜껑은 아예 아버지에 의해 가운데가 손바닥 만하게 뚫려
아예 항아리 위에 올려져 상주하며 변의 공격을 막아냈고, 그에 따라 우리는 여름이 되어도 마음놓고 화장실을 갈 수 있었으니, 그 가마솥 뚜껑의
용도와 생김새를 고려하여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불렀다.
종일사랑은
복무 시절 <람보>를 비롯한 숱한 전쟁 영화들에 등장했던 기관총 'M60'을 실제로 다루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20Kg이 넘는
군장을 메고, 또 그 위에 무게 10.432Kg에 달하는 그 놈을 어깨에 지고 발전체에 물집이 잡히도록 행군해야 했던 훈련 내내 들었던 생각은
그 놈의 전쟁영화에서 얼마나 '쌩구라'를 치고 있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람보는 그 얼마나 가볍게 M60를 들고 쏴대던가. 그 놈이
들고 쏘던 M60은 스티로폼으로 된 M60이 아니었을까. 기억은 잘 안 나지만, M60 두 정을 양손에 권총처럼 들고 쏴대는 영화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놈들 팔은 초강력 합금 소재로 된 짱가 팔이란 말인가. 궁시렁 궁시렁... 그런 생각 속에 숨은 점점 가빠왔고, 차라리 이대로
다리가 부러져 기절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영화 <툼 레이더>의 라라를 보며 종일사랑은 다시금 그 때
시절의 '궁시렁 궁시렁'이 떠올렸는데, 과연 실제로 저런 상황에 빠져서도 저만큼 침착하고 여유만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 먹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툼 레이더>는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이겁니다.
게임을 향한 할리우드의 끈질긴 도전, 이번에는?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과 게임을
영화화하는 것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원작이 유명할수록 그만큼의 인지도를 등에 업고 관객들을 불러모으기가 용이하다는
것이며, 또한 그로 인해 원작의 팬들의 머리에 형성되어 있던 주인공의 이미지에 영화 속 주인공이 부합하지 않을 경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음은
물론 흥행에서도 쫄딱 망하기 십상이라는 것이고, 차이점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닥터 지바고> <쥬라기
공원> 등등의 소설을 소재로 한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경우가 심심치 않되, <슈퍼 마리오> <스트리트 파이터>
<모탈 컴뱃> <윙커맨더> 등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 치고 흥행에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또 한편의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가 그 전례를 깨고자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그것이 바로 <툼 레이더>이며, 지금까지의
결과만으로 볼 때는 충분히 그 도전이 성공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 일등공신은 안젤리나
졸리입니다.
안젤리나 졸리, 안젤리나 졸리, 안젤리나 졸리!
<툼 레이더>가 이처럼 게임을
원작으로 한 다른 영화와 달리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요인은 뭐니뭐니 해도 게임 속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를 절묘하게 실사
영화로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툼 레이더>라는 게임을 해보지 않은 사람도 머리를 한 갈래로 묶고 동그란 썬글라스를 즐겨 쓰며, 엄청난
가슴 크기와 더 엄청난 개미 허리를 자랑하며, 탱크 탑에 핫팬츠를 즐겨 입고 맨 허벅지에 권총을 달고 다니는 라라 크로프트라는 게임 주인공을
한번쯤은 본 적 있을 것입니다. 게임과는 별도로 그녀의 그러한 섹스어필이 세인들의 굉장한 이목과 성적 상상을 불러 일으켰던 게 사실이며, 그녀를
소재로 한 누드 혹은 포르노물이 언더그라운드 계열에서 무수하게 나돌았던 것이 그 사실을 반증하지요. 그러한 그녀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할리우드의 지극히 일반적인 상술입니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게임 속의 라라 크로프트에 버금가는, 혹은 게임 속 라라를 능가하는
육감적인 매력을 안젤리나 졸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개미 허리였던 게임 속의 라라에 비해 허리가 28인치에 이르고, 가슴이
38인치나 되지만 라라에는 못 따라가서 패드를 넣고 촬영에 임해야 했다지만, 과거 <배트맨>을 찍을 때 주인공 마이클 키튼이
배트맨으로 안 어울린다며 벌떼같이 들고일어났던 팬들에 비해 라라의 팬들은 매우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만 보아도 안젤리나 졸리가 얼마나 라라
역에 딱 들어맞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종일사랑 개인적으로 필자도 안젤리나 졸리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졸리의 팬이라면 영화 <툼
레이더>는 그녀의 매력을 실컷 배가 터지도록 맛볼 수 있는 진수성찬입니다.
이건 게임이야
세 개의
행성이 일렬로 서는 밤, 라라는 비밀 서재에서 아버지가 발견한 유물 시계를 찾게 되고 그와 관련된 트라이앵글 조각이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열쇠가 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를 이용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비밀 조직에 맞서 우주를 구해야 하는 사명감에 불타 오르게
되는데...
영화 <툼 레이더>는 게임입니다.
물론 관객들이 게임에 참여할 수야 없지만, 관객들은
오락실에서 앞 사람 오락하는 걸 구경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벌어지는 거대한 로봇과 라라의 한판승부는
그야말로 <철권>이나 <파이널 판타지>에서 일대일로 벌이는 결투를 연상시킵니다. 볼거리는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지요.
라라의 저택에서 라라가 그야말로 '날아다니며' 저택에 침입한 일당들을 번지 발레로 해치우는 장면은 부드러운 곡예를 연상시키며, 사원에 침입한
라라 및 그 일당들이 사원의 수호병들과 싸우는 장면도 매끄럽게 연출되었습니다. 특히 가부좌를 틀고 있던 석상이 용트림을 하며 일어나 라라와
일전을 벌이는 장면은 CG가 이룩해낸 장관입니다.
다만, 감독 사이먼 웨스트는 이 영화가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다 이 영화를 아예 게임으로 착각해버렸는지, 영화는 영화가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할 기복이 거의 없이 계속 수평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클라이막스가 클라이막스 같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뭔가를 기대했던 관객에게 상당한 허무감을 안겨줍니다. 사이먼 웨스트여, 왜 모른단
말인가. 게임도 마지막에는 항상 무지막지한 대왕이 나와줘야 한다는 것을...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절대절명의 상황에서도 전혀 진지하지 못한
라라의 여유로움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와의 동일시를 막고 있습니다. 관객은 말그대로 구경만 하게 된다는 겁니다. 적어도 <인디아나
존스>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여하튼 감독 사이먼 웨스트는 절반은
성공했습니다. 우선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치곤 흥행에 꽤 성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게임 원작 영화는 안된다'는 전례를 깬 것이고,
이를 시작으로 <바이오 헤저드>로 알려진 게임 <레지던트 이블>의 영화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게임 속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가져와 이미지의 '손상' 없이 실사 영화에서 재현해낸 것 또한 높이 살만합니다.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와 그녀의 친아버지 존
보이트를 처음으로 한 영화의 한 화면에 함께 출연시킨 것도 흥미롭구요.
그러나 영화가 1인칭 3D 게임을 원작으로 한 것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안젤리나 졸리를 카메라에 담는 데에 급급하여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의 개성이 너무도 희미하다는 것과 앞서 지적한 내용상의
문제점은 <툼 레이더>가 몇몇 관객에게 지루하고 시시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게다가 안젤리나 졸리의 두툼한 입술과 다소 둔해
보이는 몸매에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완전히 쥐약입니다. 이 영화는 안젤리나 졸리를 빼면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허나 종일사랑은 <툼 레이더>가 그간의 게임 원작 영화 중 그 어느 것보다 빼어난 작품이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보고
난 후에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뭐 보는 동안에는 그래도 시원시원하고 재미 있지 않습니까. 그 역시 이 영화와 게임의 공통점이기도
하구요.
끝으로 사적인 한마디. 영화를 보고 난 후 종일사랑은 생각했습니다. 라라처럼 필자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쳐도 절대, 절대 20Kg이 넘는 군장을 메고, 또 그 위에 무게 10.432Kg에 달하는 그 놈을 어깨에 지고 발전체에 물집이 잡히도록
행군해야 했던, 그것도 모자라 그 모든 걸 짊어지고 산까지 올라야 했던 군 시절로 시간을 되돌리지는
않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