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 엘리자베스 아펠]
마침내 그날이 왔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짧은 시에 인생의 본질이 담겨 있다. '안전한 곳에 머물기'와 '불확실성에 뛰어들기'는 언제나 중요한 화두이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다로 나아가야만 한다. 폭풍우 치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더 위험한 일은 항구에 정박한 채 녹슬어 가는 것이다.
내 삶에도 전환점이 몇 차례 있었다. 만약 안전한 영역에 머물기로 선택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 나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며 단단히 갇힌 봉오리였다. 만약 내가 계속 안전한 영역에 머물러 있기로 선택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여행과 경험과 만남은 희망 사항에 불과했을 것이다. 왜 신은 안전선 밖에만 성장의 보물들을 숨겨 놓는 것일까?
봉오리는 준비 기간이지만 시간제한이 있다. 그 시간은 생명의 질서가 정해 놓은 것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 꽃을 피우지 않으면 봉오리는 그 상태로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봉오리의 안전함은 사실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안전한 곳이지만 차츰 매우 위험한 곳이 된다. 고치 속에서 가늘게 숨 쉬고 있다고 해서 나비의 삶을 말할 수 있는가? 전사의 위대함은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는 프랑스 출신의 미국 작가 어네이스 닌의 시로 전파되어 오프라 윈프리나 디팍 초프라 등도 그렇게 소개했지만 미국의 무명 작가 엘리자베스 아펠의 시인 것이 후에 밝혀졌다.
봉오리인 채로 나이 먹어 가는 사람들을 나는 안다. 인간의 아픔은 아름답지 못한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개화를 시도하지도 않고 평생 봉오리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변화는 고통을 의미하지만. 봉오리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더 고통스럽다. 가슴께 어딘가가 아프다면 꽃 피우지 못한 봉오리가 있는 것이다. 그때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시간이다. 봉오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것보다 더 큰 환희가 어디 있는가?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정원사라 해도 봉오리를 외부에서 열어 꽃이 되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안에서 스스로 껍질을 깨면 새가 되지만, 밖에서 껍질을 깨면 그 알은 새가 되지 못하고 생명이 끝난다.
잠시라도 귀를 기울여 듣는다면, 세상의 수많은 꽃들이 우리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꽃들 역시 봉오리의 상태를 떨며 통과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존재를, 그 개화를 격려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봉오리를 열어 자기 존재의 아름다움을 세상과 나누는 것이 모든 꽃의 의무이다.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