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요아힘 마이스너 Joachim Meisner 추기경(1933-2017년)은 정년퇴직 후 언론인 구드룬 슈미트 Gudrun Schmidt를 자주 만났다. 선종하기 한 달 전까지 추기경은 당신 생애의 많은 경험담과 사건들을 이 언론인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2017년 7월 5일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추기경은 직접 그 원고를 수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여 나온 그 책 《순응하는 사람은 떠날 수 있다 Wer sich anpasst, kann gleich einpacken》에 다음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1975년 5월 17일 성령 강림 대축일 전 토요일에 에르푸르트의 대성당에서 나의 주교서품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성령 강림 대축일, 나는 그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그날의 모든 일 중에서, 내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이 있었다. 그날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 속에서 바로 내 앞에 앉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입은 옷을 보면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나는 일의 실상을 규명하길 원했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장엄 미사를 마치자마자 급히 제의실로 가 제의를 벗고서, 그 사람들을 보려고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거기서 그들을 발견하고는 나는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면서, 그들이 카자흐스탄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거의 울면서, '오늘 우리는 36년 만에 처음으로 성당에 다시 들어와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목말라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들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에르푸르트에 온 것 같았고, 일요일 아침에 미사에 참례하려고 그 일행들과 갈라진 듯했다. 그때 그들 중 한 남자가 이렇게 물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신앙의 진리를 가르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 평생에 그렇게도 분별력 있고 훌륭한 질문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신약 성경과 가톨릭 교리서를 선물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석하게도 거절했다. '종교 서적을 러시아로 가져가는 것은 무기를 밀수하는 것보다 더 최악일 것'이라며 나의 선의를 거절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묵주는 가져갈 수 있는지 물었다. '예, 그것은 장신구인 양 목에 걸 수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그들은 묵주 기도 방법에 대한 내 설명을 주의 깊게 경청했다. '묵주의 첫 시작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로 우리는 사도신경을 바칩니다. 사도신경은 신앙 교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에 더 이상의 교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세 개의 구슬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기도합니다. 살아가는 데 그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다음은 신약 성경 전체에서 뽑아낸 신비의 말씀입니다. 환희의 신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일을, 고통의 신비에서는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수난당하신 일을, 영광의 신비에서는 그 일의 성취인 완결입니다.'
그러자 그들 중 한 형제가 묵주를 손에 들고는 외쳤다. '이제 나도 완전한 가톨릭 신앙을 내 손안에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 서품받은 주교로서의 나의 첫 임무가 성령 강림 대축일 장엄 미사 후에 카자흐스탄에서 온 사람들에게 묵주를 마련해주는 일이 되었다.”
요아힘 마이스너 추기경은 늘 묵주를 가리켜, "우리 신앙의 축소판 휴대 양식" 또는 "기도하는 손만이 알 수 있는 신비로 짜인 기도 사슬"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이 검증된 선수이자 열정적인 사제가 평생 묵주를 너무나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묵주를 몸에 지니고 다녔고, 생의 마지막 날까지 묵주 기도의 신비 20가지를 모두 바쳤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는 길을 잘 아는 동반자가, 의지할 수 있는 발판이, 목적지로 데려가는 경로가 필요하다. 묵주 기도가 바로 그 모든 역할을 할 수 있다. 묵주 기도는 요람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우리와 함께할 수 있다."
이렇게 요아힘 마이스너 추기경은 2013년 5월 12일 마리아의 파티마 발현 기념일 전날, 쾰른 대성당에서 집전한 미사 강론에서 아주 공공연하게 말했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죽겠지요. 그때 참사 회원들이 와서 내 손가락에서 주교 반지를 빼내고, 십자가도 떼어내고, 주교 지팡이도 인수해 갈 것입니다. 나는 그 모든 게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내 유언장에 써 두었습니다.
'묵주만은 내게 남겨주어야 합니다!' 라고. 나는 그것을 관 속에 넣어 가져갈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어머니께 내 묵주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 당신의 복되신 아드님 예수님을 제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나는 17세기 가톨릭 신자인 황제의 최고 지휘관 틸리의 화살기도를 매일 바칩니다. 그는 언제나 이런 기도를 바쳤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제 손에 묵주를 잡고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제 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어머니 마리아, 그런 행운을 제게 주소서. 아멘."
<Triumph des Herzens nr. 184>에서 이선영 옮김
(마리아지 2025년 1•2월호 통권 249호에서)
☆ 영성 잡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마리아지를 구독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리아지는 격월지로 1년에 6권이 출판되며 1년 구독료는 18,000원입니다.
주문처 : 아베마리아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