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雪嶽山)을 다녀와서!
시산제축문(始山齊祝文written preyer)
시산제란 새해에 많은 산악회들이 한적한 산을 찾아서
산악회원들 모두의 무사산행을 기원하기 위해 시산제를 올리는데
그때 낭독하기 위해 내용을 기재한 문서를 시산제축문이라고 합니다.
시산제축문을 읽을 때는 참가자들은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하는 것이
기본이며 회장이나 원로회원이 향을 피우고 산신께 좌, 우, 중앙으로
세 번씩 술을 붓고 재배를 합니다. 종헌을 마치고 나면 헌작이 이어
지는데 이때는 누구나 잔을 올리고 재배할 수 있습니다.
시산제축문은 산신령께 등산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고
소망을 비는 것으로 유세차 서기 O년 O월 O일을 적고 이 산제를 왜
올리는지에 대해서 이유를 밝히고 산에 대한 감사와 산악회의 기원
등의 내용을 씁니다. 한글과 한문을 혼용하여 작성하기도 하고 한문
으로만 작성하는 방법, 한글로만 작성하는 방법이 있는데 보통은
한글과 한문을 혼용하여 작성합니다.
▲ 화암사(禾巖寺)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설악산에 있는 절.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769년(혜공왕 5)
진표(眞表)가 창건하여 이름을 금강산 화엄사(華嚴寺)라고 하였다.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는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鉢淵寺)를,
서쪽에 장안사(長安寺)를, 남쪽에 이 절을 각각 창건했는데, 화엄사라고 한
까닭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가운데 31명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으며,
나머지 69인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진표는 이 곳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地藏庵)을 창건하여 이 절의 부속
암자로 삼았다고 한다. 그 뒤 941년(태조 24)월영암(月影庵)을 창건했으며,
1401년(태종 1)지장암을 동쪽으로 옮기고 미타암(彌陀庵)으로 이름을 바꿨다
. 1623년(인조 1) 불에 타자 1625년 중건하였다. 1628년에는 광명(廣明)이
지장보살상을 조성했으며, 안양암(安養庵)을 창건하였다. 그러나 1635년
산불이 일어나 다시 불탔다. 이에 동쪽 20리 지점으로 임시 이전했다가
1644년(인조 22)에야 옛터에 중건하였다. 1662년(현종 3)에도 화재가 있어
중건하였고, 1716년(숙종 42)에는 산적들이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승려들은
동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무릉도(武陵島)에 초옥을 짓고 거주하다가, 1721년
(경종 1) 옛 절터로 돌아와 중건하였으며, 해성(海城)은 안양암을 중수하였다.
1760년(영조 36) 대웅전과 향각(香閣), 승당이 불 타자 승려들이 협력하여 이듬해
승당을 세웠고, 1762년에 대웅전과 향각을 중건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화성
도한(華城 道閑)이 약사전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주야 21일 동안 올렸는데, 기도가
끝나자 방광(放光)이 뻗쳐 그 빛이 궁궐의 뜰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정조는
제조상궁(提調尙宮) 최(崔)씨를 이 절에 파견하여 도한을 궁궐로 데려 오도록 하여
경위를 듣고 크게 감격하여 이 절을 가순궁(嘉順宮)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요사채
2동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1796년에는 미타암의 화응전(華應殿)을 정조의 원당으로
정하여 관음보살상과 정조의 친필 병풍 6폭, 연(輦)을 하사하고, 절의 사방금표
(四方禁標)를 정해 주었다. 이로써 이 절은 창건 이래 가장 큰 사역(寺域)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60년(철종 11) 산불로 암자까지 모조리 소실했으며, 춘담(春潭)이
중심이 되어 중건에 착수하였다. 전국 여러 곳을 다니며 시주를 모으고 왕실의 도움을
받아 화엄사와 안양암을 중건했으며, 수봉(穗峰)은 탱화를 조성했다.
1864년(고종 1) 다시 산불로 소실하자 불타지 않은 승당에 임시 법당을 마련하고
지내다가 이 해 지장탱화와 신중탱화, 현왕탱화를 조성 봉안하였다. 그리고 화재를
면하고자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남쪽의 화기를 지닌 수암(秀巖)과 북쪽의 코끼리바위의
맥이 상충하는 자리를 피하여 100m 아래에 절을 짓기로 하였다. 1872년수봉이 새 터에
법당과 영각(影閣), 누각, 요사채를 중건했으며, 1882년(고종 19)자허(耔虛)와 선월(船月)이
철원 장구사(長久寺)에서 아미타여래좌상과 약사여래좌상을 모셔와 봉안하였다.1893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안양암이 붕괴되었고, 1894년축성(竺星)이 중수했으며, 1909년영운
(影雲)이 안양암에 칠성각을 건립하였다. 1912년에는 사찰령(寺刹令)에 따라 전국 31본산
중 건봉사(乾鳳寺)의 말사가 된 뒤부터 화암사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1915년 9월 다시 불타서 1917년 중건하였다. 그러나 1950년 6.25 때 크게 파손되어 건물
1동만 남게 되었다.1953년 휴전 뒤에 건봉사 극락암에 있던 한 비구니가 정착하여 머물렀다
. 1986년에는 주지로 부임한 양설(良說)이 중창하여 다시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인법당(因法堂), 금강루(金剛樓), 일주문, 미타암
(彌陀庵), 요사채 등이 있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다.수암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수암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끼니 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세 번 흔들면 2인분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욕심 많은 한 객승이 이를 보고 ‘3번
흔들어 2인분의 쌀이 나오면, 300번 흔들면 200인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팡이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구멍에서는 피가 나왔고, 이후 쌀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전통사찰총서 1- 강원도2-』(사찰문화연구원, 199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설악산의 북설악
설악산의 주능선은 남에서 북으로 향하여 가칠봉(1,165m)에서
점봉산(1,424m), 한계령(1,004m), 대청봉(1,708m), 마등령
(1,327m), 황철봉(1,391m), 미시령(826m) 등을 거쳐 신선봉
(1,204m)에 이른다. 설악산은 남북 주능선을 기준으로 백담사와
수렴동계곡이 있는 내설악과 신흥사 천불동계곡이 있는 외설악
으로 구분된다. 또한 설악산의 남북능선이 교차하는 방향으로
동북동 능선과 서북서 능선이 있어 내설악과 외설악을 각각 다시
가른다. 즉 이 능선은 동쪽의 관모봉(889m)에서 설악산을 지나
대승령(1,210m)에 이르는 구간으로, 여기서 내설악을 북내설악과
남내설악으로, 외설악을 북외설악과 남외설악으로 나눈다.
내설악은 수렴동계곡, 백운동계곡, 백담사계곡, 흑선동계곡
등이 주변의 부드러운 능선과 어우러져 여성적인 우아함을
보여주는 반면에, 외설악은 깊은 협곡인 천불동계곡을 중심
으로 양쪽으로 솟아오른 암봉들이 남성적인 웅장함을 과시
하고 있다. 이러한 내설악과 외설악은 지형뿐만 아니라 기후
에서도 현저한 차이가 나타난다. 외설악 지역인 속초와 양양
은 연평균기온이 11.5℃로 내설악 지역인 인제(9.2℃)보다
따뜻하다. 이러한 원인은 속초나 양양이 설악산 동쪽에 위치
하여 겨울철 쿠로시오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철 기온이 거의
영상에 머무는 해양성기후를 보이는데 반해, 설악산 서측 즉,
내륙에 위치한 인제는 겨울철 내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대륙성기후의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출처:한국지질자원연구원
▼신선봉(神仙峰)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방면의 설악산에 있는 봉우리
설악산 북주능선(北主稜線)에 있는 봉우리로서 해발 1204m이다.
북주능선은 대청봉에서 북쪽으로 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
~신선봉을 거쳐 진부령으로 이어진다. 남쪽 백두대간의 최북단에
위치하여 설악산과 금강산을 연결하는 중간 통로 구실을 하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정상 주변은 험한 바위 너덜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 아래에 신라 때 창건된 화암사(禾巖寺)가 있다.
2003년 8월에 설악산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으며, 화암사~상봉~
신선봉 구간은 멸종위기 1급인 산양과 2급인 삵의 서식지로서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참조항목=설악산, 설악산국립공원
출처:두산백과
▼낙산해수욕장(洛山海水浴場)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해맞이길 59
* 관동팔경 중 하나, 장엄한 낙산 해돋이 일품인 낙산 해수욕장 *
매년 여름 전국 각지에서 100만 이상의 인파가 다녀가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해변으로 1963년에 개장했다. 깨끗하고 넓은 백사장과 얕은 수심, 다양한
편의시설, 빽빽이 들어선 송림, 그리고 주위에 자리한 명찰과 고적지로 인하여
많은 관광객 및 피서객이 찾고있는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낙산비치호텔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진항은 작은 어선들이 모여있는 조그마한 항구와 방파제로 어촌
으로서의 풍치를 물씬 느끼게 하며, 무척 싼값에 싱싱한 횟감을 구할 수 있으며
, 유람선과 각종 유선을 즐길 수 있고, 매년 새해에는 해맞이 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염원하는 명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천년고찰 낙산사가 인근에
있어 문화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며, 낙산사 의상대에서 맞이하는
일출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물치항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물치천로 28 (강현면, 물치리마을회관) 일대
설악산 진입구에 위치하여 가을 단풍철 설악산 여행이나 여름 피서에 나선
많은 관광객들이 물치항을 찾는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조망하여 동해 연안
청정해역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활어를 저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물치리. 물치항 주변에는 민박 및 각종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침실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어 연인과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설악산의 노래
박일호 작사
배상태 작곡
배 호 노래
푸른 바다 마주 잡고 솟은 설악산
백리길을 山水 따라 가는 나그네
석가천불 삼천년에 목탁소리 저문데
흔들바위 장한 풍경 천하명산이로세
*태백산맥 오랜 터전 오색 백담사
하늘 높이 솟아지는 무지개 폭포수
못 잊겠는 수령동아 사리탑은 어디메냐
천봉을 밟고 서니 약수온천 그립다
2017-02-20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