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칼럼]
준공영제 20년, 왜 소유 구조 앞에서 멈추는가
- 김상철 정책센터장
현재 버스시스템은 ‘2004년 체제’라 할 수 있다. 지하철의 개통과 자가용 보급의 증가로 인해 일제시대부터 유지되어온 버스의 민영 운영체제는 한계에 직면한다. 90년대 적자 노선에 대한 보조금 근거를 마련하긴 했으나 이는 기존 영세하고 부실한 개별 사업자들의 생존을 보장하진 않았다. 이런 버스 체제가 2004년 서울시의 준공영제 도입을 통해서 독점적인 면허사업에서 배타적인 지대보장 사업으로 전환된다.
일각에선 현행 버스 준공영제가 90년대 후반 버스 개혁이라는 기조로 논의되어온 것의 결과물이라 말하지만, 실제 2004년 준공영제 도입 시기에 밝힌 영세 사업자의 통합을 통한 규모화, 사업운영의 투명성 보장 그리고 시민들의 정책 참여라는 맥락은 사라지고 오로지 사업자의 사업보장만 남은 현실에 비춰보면 한심한 소리다. 문제는 사실상 민간사업자에 대한 경상 보조를 넘어서 사실상 자본보조까지 확대된 준공영제 체제가 전국적인 버스 운영체계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울시의 준공영제 도입 이후, 인천이나 대전 등 광역지방자치단체부터 도입되더니 최근까지 창원이나 청주 등 중소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명시적으로 준공영제를 도입하였다. 명시적으로 준공영제를 도입하지 않은 곳도 기존 ‘적자 노선에 대한 지원’이라는 법적 한계를 임의로 확대해서 주요 운송사업의 비용 항목별 지원을 하고 있다. 유사 준공영제라고 할 수 있는 형태인 셈이다.
지원을 비용으로, 상대적 기준을 절대적 규칙으로
사실 현재 버스 현황 특히 준공영제 지역의 상황을 보면 애초 제도 도입의 목적이 실현되었냐는 부분에서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는 매년 평가항목의 배점 조정을 통해서 억지로 만족도 조사 결과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체되어 가는 중이고 오히려 사모펀드와 같은 비산업 자본의 유입을 통해서 ‘버스는 민간의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서울시의 일관되어온 입장을 경험적으로 반박한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서울시는 2023년부터 버스 운영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버스준공영제 평가 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실제로 올해는 2004년 버스 준공영제 체제가 만들어진 지 20년이 된 해다. 그 사이, 매년 서울시 버스사업자에게 주는 보조금은 8천억 원 수준이 되었고 부실해서 폐업 위기에 놓인 버스 회사들은 배당하고 이익금을 적립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버스 서비스의 제공을 ‘비용’으로 간주하기 시작했고 ‘수익자 부담 원칙’의 유일한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서울시가 선택한 방식은 버스의 총량을 정하는 것이다. 한쪽에 버스 서비스를 확대하려면 다른 쪽에선 줄여야 한다. 도시 구조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어야 하는 버스 노선은 사업자가 이익에 따라 넣고 빼는 레고블럭이 되었다(최근 논란이 되는 의정부, 파주, 양주 등의 노선 감소가 이를 보여준다). 사업자는 이익을 보장받고 서울시는 보조금을 줄일 수 있지만 정작 버스 이용자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교통 요금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은 극히 선택적이다. 서울시는 해당 서비스의 생산비용과 요금을 직접적으로 대비하는 방식으로 비교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공공요금과의 비교이고 같은 요금 내에서의 계층별 차이에 대한 것이다. 이를테면 자동차 이용자가 부담하는 주차 비용의 현실화율은 어떤가? 단지 자동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시의 공용공간을 부당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물론 2001년 이후 부분적인 변화 이외의 눈에 띄는 요금 인상도 없었다. 문제는 이것이 교통수단의 차이가 아니라 계층별 차별로 나타난다는 것인데, 버스사업자에게 제공하는 유가보조금이나 자가용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유류세 감면과 같은 재정지원 효과는 정작 대중교통 이용자의 편익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즉 공공재정의 지원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상위계층이나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지원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수익자 부담의 원칙은 매우 앙상한 논리에 불과하고 사회적 편익이나 형평성을 고려하면 별다른 설득력을 제공하지도 않는 개념이다.
현상유지형 담론의 등장: 학회와 언론의 경우
서울시가 준공영제라는 제도의 함정에 빠져 별다른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을 때 구원으로 나선 것은 역설적이게도 학회 등 전문가 집단이다.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한교통학회는 지난 7월 1일 ‘서울 시내버스의 지속 가능한 발전방안’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주 발제자인 황보연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나 임삼진 한국환경조사평가원 원장은 모두 현재 버스 준공영제를 만드는데 행정 담당자로, 시민사회의 대표로 참여했던 당사자이다. 그래서일까? 둘 다 현행 버스 준공영제에 대해서는 ‘현행 유지’를 전제로 해서 보완대책을 제안하는 수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통으로 좋은 제도가 운영 과정에서 다소 오작동이 있었던 것, 수준으로 접근한다.
우선 서울시 버스 준공영제 도입의 행정 측 실무자였던 황보연 교수는 2004년 버스 준공영제의 도입을 불가피하고 또 혁신적인 노력의 결과로 본다. 문제는 이런 평가가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인데, 그도 그럴 것이 현행 ‘운수사업법’ 상의 면허 체계 문제나 버스보조금의 관리 감독에 대한 서울시의 책임을 포기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버스 준공영제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같은 것이다. 여기에 민간사업자의 유인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확대하자고 한다.
팩트 체크와 같은 형식으로 그간 준공영제에 대해 제기된 문제에 대해 검증에 나선 임삼진 원장의 발제문은 더욱 흥미롭다. 임삼진 원장은 90년대 말 버스개혁시민위원회 당시 도시연대와 함께 시민사회의 대표성을 바탕으로 참여한 녹색교통운동 출신이다. 7개의 신화와 7개의 사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챗GPT로 ‘서울버스는 세계적 수준이다’라고 검증하는 수준의 팩트 체크 실력을 보인다. 버스 요금 비교에서도 여전히 1회권/정기권 구조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앙한 계층별/대상별 할인 수준을 통해 ‘실질적 부담’을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요금이라는 것은 소득 수준 더 정확하게는 가처분 소득에서 차지하는 부담 가능성을 기준으로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접근법이고 그나마 작년에 나온 그린피스의 보고서를 참조하면 좋았을 것이다(이에 따르면 서울의 요금은 중간 정도가 된다). 요금 체계 개편도 요금변경으로 간주해서 평가한 것이나 사업자에 대한 재정지원과 공공운송기관에 대한 재정지원을 같은 것으로 놓고 “재정지원금은 적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황당하기까지 하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행 준공영제가 최선이라는 말이다. 고쳐서 쓸 문제이지 아예 폐기할 것은 아니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경향은 언론 보도에서도 확인되는데, 최근 강갑생 교통 전문기자가 작성한 <중앙일보> 기사 ‘MB표 버스 준공영제 20년 … 속도 저하, 재정부담 난제 풀어야’라는 기사는 여전히 준공영제가 ‘민간 자율의 민영제와 공영제의 장점을 합친 것이 준공영제’라고 말한다. 이 기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준공영제를 이야기하면서 사실 준공영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버스전용차로제를 들고나온다는 점이다. 이건 운영체계로서 준공영제와 전혀 별개의 내용이다. 기사에서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라는 버스시스템은 교통카드와 버스전용차로제 그리고 지·간선 체계의 노선 구조/ITS 기술이지 준공영제가 아니다(상식적으로 면허나 노선권을 민간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주요 국가가 없는데 이 운영체계를 어디서 모방한단 말인가).
결국, 소유 구조의 문제
한국의 버스체계는 사실상 경쟁이 부재한 독점적 시장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성해놓은 체제다. 이미 노선 조정이나 운영에 대한 연구 비용을 모두 공공이 부담하는데도 노선에 대한 배타성이 민간사업자의 것으로 보장되는 건, 노선의 특허권적 원천성을 의심하지 않는 게으름의 결과다. 보조금이 회사의 회계와 분리되어 관리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해당 회사의 회계 구조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역으로 그렇기에 민간회사의 회계 내용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용자가 급감한 코로나19 시기에도 배당을 실시할 정도였던 버스 업체를 두고 ‘경영난’ 운운하는 모습은 안쓰러운 촌극이다. 현행 버스 준공영제는 행정이 막대한 버스보조금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능력의 증명이자 우연히 얻은 노선권 하나가 대를 이어서 지대수익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전근대적인 특권의 결합일 뿐이다.
그래서 대한교통학회에서의 토론회에서도 교통 전문기자가 작성하는 기사에서도 유독 한국에만 존재하는 운수사업법 상의 노선권과 면허권의 사유재산화 경향을 짚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준공영제가 사실은 개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존 민영제 제도를 연명시킨 제도적 야합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경쟁이 중요하다면 다수의 민영제 속에서도 준공영제와 공영제 등 복수 체계를 두고 효율성을 평가해야 한다. 민간사업자를 보호하면서도 경쟁을 배제하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정실주의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버스 준공영제 20년은 흥미로운 사태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서울시는 해당 연구용역을 차일피일 미루고 약속했던 공청회니 의견수렴이니 다 패싱하고 있다(내부적으론 했을 수 있지만, 자문과 공론은 분명 다르다. 이 정도는 구분하자). 서울시가 방향을 못 잡는 사이 과거 준공영제를 도입하는데 앞장섰던 이들이 나선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준공영제라고 써놓고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둘 다 준공영제의 가장 현안인 사모펀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다.
이들 준공영제 세력이 지키고자 하는 건 버스 민영체계 하나밖에 없다. 이용자 시민도, 재정의 효율성도 기후위기 대응도 사실은 현행 버스 준공영제 하에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침묵하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