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동학 공부를 제안했을 때, "기독학생청년단체에서 왜 동학을 공부해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예상했던 질문이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조선말, 조선을 이끌었던 성리학이 그 시효를 다하고 서양세력이 동양을 점령하는 서세동점西勢東漸 상황에서 나라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때에 새로운 시대와 문명을 모색했던 한 사람 수운水雲은 서양문명의 중심에 천주를 주목하고, 간절함으로 탐구하고 뜻을 구하여 깨달았다. 그렇게 동학을 만들고 전했다. 상제, 천주, 한울, 하나님이라 부르는 존재와의 만남과 깨달음은 서양의 천주교, 기독교와 같지만 그 모습은 조선 땅의 것이었다. 서양 기독교의 문제점을 직시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살자는 깨달음이 동학이다. 그렇기에 동학은 서학, 즉 기독교와 관련성이 있다. 오죽하면 당시에도 동학을 하는 사람들이 서학쟁이로 몰렸을까?
놀라운 주체성과 창조성을 지닌 우리 땅에서 일어난 운동을 모른채 운동하며 산다면 그것은 무지한 것 아니면, 게으른 것이다. 운동은 생명과 같기에 시간이 지나면 초기의 창조성과 역동성이 쉬이 쇄하는 모습을 본다. 때에 맞는 성숙과 변화를 이루지 못하면 그리된다. 마지막 3번째 모임에 읽었던 한살림선언을 낳은 한살림운동은 동학이나 천도교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명의 변화를 감지하고 새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시작했다.
인류의 위대한 추축시대(樞軸時代)에 예수와 붓다가 점화한 ‘사랑’과 ‘자비’의 등불은 2000년 이상 인류를 어둠에서 인도해 왔다. 그러나 산업문명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빛이 희미해졌다. 죽임의 어둠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오늘날 사랑과 자비가 생명의 등잔 위에 더욱 큰 불꽃으로 다시 점화되어야 할 것이다. 1848년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을 통해 인간해방을 선포하면서 혁명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어 온 세계의 억압받고 소외된 계급과 민족의 길잡이가 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혁명의 깃발은 그 빛깔이 바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물질의 생산, 분배, 소유를 혁명적으로 재편함으로써 인간해방을 실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빵만 아니라 생명인 빵의 의미와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생명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는 시천의 각성이다.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고 이를 준비하고 있는 각성하고 해방된 인간의 정신은 ‘자기 안에 있는 우주 안에 자기가 있음’을 깨닫고 있다. 진화의 분기점에 방황하고 있는 이 시대는 ‘우주 속의 인간’, ‘인간 안의 우주’라는 자기 이미지를 지닌 새로운 이념이 나와야 할 때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생명의 이념과 활동인 한살림을 펼친다.
-한살림 선언 중-
한살림선언의 마지막 문단을 읽으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했던 예수의 말이 떠오른다. 하나님을 모시어 생명된 삶 자각하고 각자 안의 하나님이 있음을 인식하며 관계하면, 평화는 필경 따라오기 마련이다.
선언보다 위대한 것은 선언의 내용을 구현하는 삶이다. 종로의 녹두장군이 돌아가신 터와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을 밟고, 찻집에서 나눈 우리의 이야기는 한살림선언 내용의 위대함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한살림선언을 알지 못했는데, 그렇게 살고 있으니 그 얼마나 놀랍나! 이 삶의 여정 중에 만난 선언은 반갑기도 하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이 옳구나 라는 확신이 생긴다.
시천의 각성, 하나님나라로 사는 삶이 때로는 고단하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나? 관건은 참된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보니,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 행복의 꽃이 자리 자리에서 피어나니 온 세상에 봄이 온다!
風過雨過枝 바람 지나고 비 지난 가지에
風雨霜雪來 바람 비 서리 눈이 오는구나.
風雨霜雪過去後 바람 비 서리 눈 지나간 뒤
一樹花發萬世春 한 나무에 꽃이 피니 온 세상이 봄이로다.
-동경대전, 우음-
첫댓글 저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 알아가면서 자본론만이 정답인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 안에 담겨야 할 더 소중한 것이 있네요! 저도 오늘 하루 제 안에 계신 한울님을 깨닫고 내 옆 지체 안에 있는 한울님 모시며 사는 삶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