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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9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하나님이 증인되어 주시는 증인
본문 : 빌립보서 1장 8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개역개정>
‘증인’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진실’이란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증인들이 재판장에 들어가서 법정증인이 되려고 하면 이런 선서를 하는 것입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증인은 이 진실에 반드시 한 가지를 더 담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사실은 진실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작은 예수가 되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정체성은 바로, ‘사랑’으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 없이는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 없이는 증인이라 불릴 수도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것은 마치 자격이 없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증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알고 있지만, 기도도 제법 많이 하지만, 말씀도 충분히 읽고 있지만, 예배도 빠지지 않고 드리고 있지만, 증인으로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 2절, 새번역>
아무리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비밀과 지식을 가지고 있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존재 가치가 없는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증언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주신 그 사랑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사랑이 희망이라는 것을 전해야 하는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가 증인이 되는 것을 어려워하고 주저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바로 이 ‘사랑’ 문제 때문에 증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실을 말로 이야기하는 똑똑한 증인, 냉철한 증인은 될 수 있어도,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사랑함으로 증명해야 하는 증인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와 증인이라는 단어를 매치시키고 싶지 않은 우리 심장의 차가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난 후에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소유한 이들이야말로 증인이 맞노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증인이 되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립보서 1장 8절, 개역개정>
사실 바울은 선교 초기, 소위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기에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냉철하고, 차가운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시대로 말하자면 완전 극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떠나긴 했지만 여전히 바울은 사랑보다는 진실에 기반한 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에서 ‘위로자’라고 불리던 바나바와도 마가요한과 함께 선교를 떠나는 문제로 다툰 후 갈라서서 실라와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무엇인가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증인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변화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게 한 사람을 빌립보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 지역을 떠날 때에는 정말로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증인으로 조금이나마 변화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지역을 떠올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는 고백을 사용하며, 그 마음의 진실에 대해서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럼 빌립보에서 과연 어떤 만남이 있었길래 바울이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루디아’와의 만남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 중 가까운 그리스지역의 아시아와 비두니아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막으시고,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 즉 유럽으로 인도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때를 얻거나 못 얻거나 중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서 마게도냐로 인도하신 데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 의도를 통해 만나게 된 사람이, ‘루디아’입니다. 그래서 루디아는 유럽 첫 번째 성도로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그녀를 본래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라고 소개하는데, 그가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대교를 믿는 이방 여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주색 비단은 값이 매우 비싼 옷감이기에 그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는 부자일 가능성이 높으며, 또 바울 일행을 자신의 집에 초청하는 것으로 보아도 넓은 집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온 집안 식구가 세례를 받고 또 사도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는 중요한 결정을 혼자 하는 것을 보면 과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루디아를 한 마디로 ‘자주색 비단을 파는 재산이 넉넉한 과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여인’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루디아를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랑의 여인”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울과의 관계에서 보인 행동을 보면 이런 말을 듣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루디아를 만나게 하셨을까요? 굳이 바울이 가기를 원하는 길까지 막으시면서 빌립보로 와서 루디아를 만나게 하셨을까요? 저는 이 루디아를 통하여 ‘사랑’으로 섬김에 대해서, ‘사랑의 증인’에 대해서 강력하게 배웠을 바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일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통해 루디아와 루디아의 온 집이 함께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시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계속 그래왔듯이 머리 둘 곳 없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갈 것이기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다른 이에게서는 만나보지 못했던 ‘대접’을 만나게 됩니다. 고넬료로부터 대접받은 베드로가 생각이 날 정도로 강력한 대접입니다.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침례를 받고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사도행전 16장 15절, 새번역>
특별히 남편 이야기도 등장하지 않기에 과부로 추측되는 루디아에게 이런 결정이 쉬웠겠습니까? 오로지 조건은 하나였습니다. 자신을 주를 믿는 사람으로 알거든 자기 집에 와서 묵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자, 루디아의 마음은 사랑으로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넘쳐나기 시작하면 어떤 삶이 시작되는 줄 아십니까? 바로 베푸는 삶이 시작됩니다. 주는 손이 받는 손보다 복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바울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기까지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루디아를 보며, 루디아의 집에 거하며,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다마스쿠스에서 자신을 대접해 준 이들 이후로 이런 대접은 정말로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가는 곳곳마다 전쟁이었고, 치열함 속에 비장함이었지 이런 따뜻함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루디아를 통한 이 사랑은 바울로 하여금 많은 생각의 변화를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대접은 단순히 빌립보에 있을 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빌립보의 교우 여러분, 여러분도 아는 바와 같이, 내가 복음을 전파하던 초기에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에게 협력한 교회는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15절, 새번역>
그리고 훗날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변하지 않고 마찬가지의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입증할 때에, 내가 받은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 1장 7절, 새번역>
이 빌립보의 교우 여러분의 시작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루디아였습니다. 루디아로부터 시작된 교회가 바울의 사역에 아주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까지 성장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빌립보라는 복음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루디아의 헌신은 정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고,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빌립보에서 사랑의 루디아를 만난 바울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설명해 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빌립보서 2장 4절, 새번역>
저는 이 구절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반드시 행해야 할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자기 일만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주는 이가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자기 실속만 차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고, 사랑을 시작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은 남의 이익도 신경 쓰기 시작합니다. 다른 이가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헌신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공부해서 남 주고, 자신이 살아났으니 살리는 사명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축복의 통로가 되어, 축복이 자신에게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흘러 다른 이에게 가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증인은 이기심이라는 자신의 심장을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심장을 이식받은 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장을 가진 이의 사랑의 끝은 바로 여기까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 15장 13절, 새번역>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삶입니다. 먼저 이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주는 것을 뛰어 넘어 이제 그 사람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어 줄 수 있는 삶!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삶! 그것이 증인으로 이루어가야 할 최종 목적이라고 먼저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솔직히 이 구절이 차라리 자녀였다면, 부모였다면, 부부사이였다면 조금은 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친구’라고 하는 너무도 넓은 범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무리 넓은 범주로 이야기할지라도 우리는 결국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 죄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따라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하기에, 그 보혈을 통해 나 역시도 구원 받은 증인이 되었기에, 나도 ‘친구’라고 하는 넓은 범주의 누군가를 향해 목숨을 내어 놓을 각오는 당연한 것이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 이렇게 숭고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그 마음을 품으라고 우리를 강력하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 새번역>
이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도저히 증인으로서의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우리 함께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고, 사랑하는, 증인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나를 넘어 다른 이들을 향한 관심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삶의 변화를 시작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큰일부터, 대단한 일부터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만을 향하던 시선을 다른 이들에게 향하기 시작할 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사랑이 자라는 것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자신이 축복의 통로였음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내가 살아난 것보다 다른 이를 살리는 것에 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존재의 가치를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한 가지 간절한 바람은 먼저 우리가, 우리 서로에게, ‘루디아’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이신 분들은 루디아가 되어 가고, 루디아였던 분들은 교회가 되어 가고, 그렇게 바울과 루디아, 빌립보 교우들처럼 서로를 든든히 세워주는 동역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할 때마다 서로를 향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동역자가 되어가길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빌립보서 4장 1절, 새번역>
우리가 서로 이런 동역자가 되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므로 우리가 먼저 살아나서, 수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해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은 증인 여러분!
사랑으로 축복의 통로가 될 증인 여러분!
하나님이 증인 되어주시는 증인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런 당신을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을 나게 하실 것입니다.
가난한 영혼 목마른 영혼이 그런 당신을 통해 주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 사랑의 증인이 된 삶을 살아갈 여러분들을 마음껏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내 삶을 깨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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