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을 것인가? / 통도사 보광선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하순의
영축총림 통도사 보광(普光)선원.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오전 정진과 점심 공양을 마친
스님들은 휴식중이다.
혼자서 정진을 계속하거나 그늘에서 조용히 쉬거나,
개인 사물을 정리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들의 마음 속에 떠나지 않는 하나의 의문이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화두(話頭)다.
선방에 앉아 참선할 때는 물론이요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하거나,
잠을 잘 때에도 화두를 놓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도대체 내 마음의 근본자리는 어디인가,
‘뜰 앞의 잣나무 막대기’
여기 앉아있는 이 "물건"은 무엇인고..
하지만 잡념과 망상은 끊임없이 수좌를 괴롭힌다.
한번 들어온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화두일념을 깨버린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엇나가기 일쑤다.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
화두를 챙겨들어야 하는 것이 수좌의 생활이다.
이곳 선원장 천진(天眞.56)스님은
그래서 참선공부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공부가 안 되는 것"이라고 답한다.
수마(睡魔)라고까지 하는 잠과 육체적 고통은
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천진 스님은 지난 68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한 이후
전국의 선방에서만 수행해온 "골수" 수좌다.
선원이라면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작은 키에 약간 어눌한 말투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있다.
"참선은 과학이나 인간의 머리로는 풀 수 없는
숙제를 풀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 방법이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고요.
산에 올라가는 과정을 거쳐야 꼭대기에서 오르는 맛을 아는 것처럼,
안거(安居)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깨달음이라는
산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과정이지요."
선사는 경봉 스님(1892~1982)에게 "무(無)자" 화두를 탔다고 했다.
"삼라만상 모든 것에 다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왜 조주 선사는 개에게만 불성이 없다고 했는지
그 뜻을 관하라"는 게 경봉선사가 던진 화두.
문제를 다 풀었느냐고 선사에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인이니 전생을 안다느니 하지만
도를 깨쳤는지는 부처님도 당신 입으로 말한 적이 없어요.
낭중지추(囊中之錐)라,
도를 깨쳤다면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게 돼있거든요.
공부를 하다보면 몇 백리 밖의 일도 보이고 들리며
천지가 다 내 것 같은 경계가 오는데
그것은 넘고 또 넘어야 할 단계일 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런 단계가 오면 조실 스님과 같은 어른에게 물어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선사는 지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칭 도인 행세를 하며
외도(外道)로 빠지기 일쑤라는 것.
그래서 괴각(괴짜스님)은 고쳐가며 같이 살 수 있어도
마음이 병든 외도와는 살 수 없다고 한다.
"'산은 산, 물은 물'이 되는 깨달음의 최고 단계는 분명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거기에 올라가지 못해서 보지 못했을 뿐이지요.
경봉 성철 구산 서옹 스님 등은 자기 본성을 다 깨달았기 때문에
선과 생활이 합일하는 경지를 보여주셨지 않습니까.
노력한 만큼 받아가는 게 참선공부입니다"
그래서 천진 스님은 정진, 또 정진을 당부한다.
"스님이 아니라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30분만이라도
경전을 읽거나 참선해보세요.
머리가 맑아지고 판단도 빨라질 겁니다.
종교란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는 겁니다.
참선이 어렵다면 금강경을 읽어도 좋습니다"
선사는 금강경 중에서도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의
"云何應住(운하응주) 云何降伏其心(운하항복기심)"이라는
구절을 잘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마땅히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할 것인가"라는 뜻이다.
보광선원에선 새벽 3시 예불을 시작으로
하루에 10시간 이상 정진하는 게 기본이다.
이번 하안거에 방부(입방 신청서)를 들인 27명의 수좌 가운데
7~8명은 일체 잠을 자지 않은 채 철야정진을 거듭하고 있다.
통도사에는 이렇게 정진하는 선원이
총림선원인 보광선원 외에도 두 곳이 더 있다.
경봉 스님이 평생 주석했던 극락암 호국선원과 서운암 무위선원이다.
그래서 영축총림의 정진 대중은 75명에 이른다.
선사의 말씀에 귀기울이다보니 어느 듯 입선(入禪) 시간이 임박했다.
선방인 보광전에는 수좌 숫자만큼의 밤색 좌복이
두 줄로 가지런히 놓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선원과 대웅전 앞마당 사이로 난 일각문을 나서는데
그 문에 걸린 편액에 눈길이 간다.
"능견난사문(能見難思門.
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 이치를 깨치기 위한 입선의 죽비소리가 정적을 깬다.
서화동 기자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