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보이는 사진 자료들은 태극문양과 팔괘가 있는 생활도구들입니다.

태극문 사괘문 연화문 기와
기와의 중심에 태극문이, 주변에는 사괘문이 있다. 이를 통하여 태극기가 조선의 국기로 공식 선포된 1883년 이전에도 태극기와 같은 도안이 분명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기와는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팔괘문 원형 청동거울

백제 바람개비문양 수막새
기와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굽은 모습 때문에 파문 또는 바람개비문양이라고 한다. 이 문양은 연화문에서 표현되는 기운과 생명탄생을 상징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다른 표현으로 보고 있다.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문양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백제 연꽃무늬 기와
연화문은 기원과 생명 탄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의 또 다른 표현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화백자 팔괘문 연적
19세기에 만들어진 작은 연적으로 뒷면에는 파도 위에 머리를 내민 고기 두 마리가 표현되어 있고, 옆면에는 팔괘문을 원 안에 각각 그려 넣었다. 각 면 모서리마다 아래도 돌출되게 하여 8개의 다리를 만들었다.

시가 있는 청화백자 연적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작은 연적의 윗면에는 팔괘가 그려져 있고 8면으로 된 몸체에는 각기 시가 쓰여져 있다.

청화백자 연화문 태극문 팔괘문 연적
18세기에서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연적으로 윗면의 태극문은 보기 드문 형식이다. 이 형식의 태극문은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가 지은 태극도설에서 최초로 나타난다. 이후 주로 유학자들이 우주만물 및 심성 등을 설명할 때 자주 거론하였다. 검은 부분이 음, 밝은 부분이 양을 의미한다.

청화백자 연화문 태극문 팔괘문 연적 윗면

철제 연화문 팔괘문 향로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뚜껑 부분을 위에서 내려다 볼 경우 손잡이를 포함한 중앙은 하나의 꽃 모양이다. 이 중앙의 꽃 주위를 다시 투각한 8송이의 꽃이 둘러싸고 그 밖을 팔괘로 둘렀다. 팔괘의 사이사이에는 투각된 삼태극, 사태극이 엇갈리게 배치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사괘문 백자 향로
*아래 사진들은 조선후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사용된 태극문양과 태극기가 그려진 훈장과 여권, 독립신문, 황성신문의 모습입니다.

대한제국시대의 훈장(사진 왼쪽부터 3등 팔괘장, 3등 태극장, 7등 태극장)
훈장 제도는 광무 4년(1900)에 훈장조례를 공포하면서 시행되었다. 훈장의 종류는 금척대수정장, 이화대수정장, 태극장, 자운장 등이 있었다. 이후 팔괘장, 서성대수정장, 서봉장 등이 추가되었고, 훈장의 모양은 앞면에 태극문양과 팔괘문양이 있고, 훈장에 따라 오얏꽃과 잎모양으로 모양을 만들었다.

태극도설
이 태극도설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태극도설이란 사람의 성품과 우주의 생성에 관한 근본 구조, 논리를 축약한 그림과 설명이다. 이 태극도설은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가 만들었다. 이는 독창적인 학설이 아니라 이전부터 내려오던 동북아시아의 우주관과 도가사상 등을 참고하고 종합한 것이다. 여기에 실린 본문 내용을 요약하면 "태극은 음과 양의 두 기로 나위고, 다시 수, 화, 목, 금, 토의 오행이 생겨난다. 이들이 다양하게 조합되어, 건도(乾道)는 남(男)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女)를 이룬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교감에 의해 만물이 생겨나고, 만물은 생생하여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이다.

대한제국 여권
여권은 외국에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의 신분과 국적을 증명하고 그의 보호를 의뢰하는 문서이다. 이 여권은 1904년 12월 19일 대한제국의 외교를 담당한 관청인 외부에서 박기오에게 발행한 것이다. 왼쪽에는 영어와 불어로, 오른쪽에는 한자로 여권의 내용이 기입되어 있고 1년의 유효기간이 명시되어 있다. 여권 위쪽에 태극기가 보인다.

독립신문
1899년 5월 16일자 독립신문이다. 독립신문은 1896년 4월 7일 창간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신문이며, 독립신문 위쪽에 있는 태극기는 1883년 1월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기의 모양과 비슷하다.

황성신문
황성신문은 1898년 9월 5일 창간되었고, 한글과 한문을 함께 썼다. 신문 맨 위쪽에 교차된 두 태극기 문양이 있는데, 사괘의 위치가 다른 태극기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태극기는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로 태극기 특별전에 실제 전시되고 있는 태극기들이다.

한국 광복군들의 친필이 적힌 태극기
독립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태극기는 한국광복군 제3지대 대원으로 활약한 문수열이 1945년 1월 광복군과 협약을 맺고 있던 미국 특수부대로 옮겨가자 전우들이 이를 아쉬워하며 선물한 것이다. 특히 이 태극기에 있는 글씨들은 광복이 된 뒤인 1946년 1월에 중국에서 적은 것인데, 여기에는 70여 광복군 대원들이 조국의 완전한 주권을 찾아 진정한 광복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주관이 되어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충칭에서 조직한 항일무장단체이다.

6.25참전요사 이철희가 지녔던 태극기
독립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태극기는 6.25참전용사인 특무상사 이철희의 유품이다. 태극 주위에는 이철희가 1950년 6월 25일부터 동년 10월 5일까지 머물렀거나 참전했던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네 귀퉁이에는 '事變爆發' 즉 전쟁이 났음을 의미하는 글자가 있다.

고종이 외교고문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일반적으로 데니 태극기로 알려져 있으며, 이 태극기는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미국인 데니가 1890년 5월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고종에게 하사받은 태극기이다. 이 태극기는 데니 사후 데니 누이의 가족이 간직하고 있다가 누이의 친손자인 윌리암 롤스턴이 1981년 6월 23일 우리나라에 기증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보고 있으며, 등록문화재 제382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국인 목사 윌리엄 아서 노블의 손녀가 대여한 태극기
1890년 경에 만들어진 태극기로 아래 태극기와 더불어 2점의 태극기는 1892년부터 1934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선교 활동을 했던 미국인 목사 윌리엄 아서 노블 목사가 소장하였던 것이다. 이후 미국에 거주하는 그의 손녀인 엘렌 맥카스클이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 태극기 특별전에 공개 전시하게 된 것이다.

미국인 목사 윌리엄 아서 노블의 손녀가 대여한 태극기
국립중앙박물관 태극기 특별전에 전시되고 있는 이 태극기는 1900년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미국인 목사 윌리엄 아서 노블 목사가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우리나라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태극기들은 도안의 형식, 명주 바탕의 재질, 색채 등으로 볼 때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두 점 모두 박음질로 천을 덧대어 태극과 사괘, 문양을 만들었다. 이 태극기에는 'korea Flag up to Japanese Occupation'이라는 기록이 적혀 있어 일본의 지배기 이전의 한국국기라는 뜻을 알 수 있다. 노블 목사 부인의 자필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