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동북아에 평화를 묻다
윤봉길 의사는 대한민국의 독립의 방향을 만드신 분이다. 그 이후 독립운동이 아주 순조롭게 될 수 있었다.
윤봉길은 19살의 나이에 그는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든 윤봉길 의사는 야학당을 개설하여 한글 교육 등 민족의식의 심혈을 기울였다. 그곳에서 백범 김구를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 1930년 윤봉길 의사는 장부출가 생불환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라든 비장한 글은 남긴 채 정든 가족을 뒤로 하고 중국으로 떠난다. 거사를 위해 치밀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3일전에 윤봉길 의사는 이 의거가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 의사의 대변이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백범 선생이 주도 하던 한인애 국단에 가입하고 조국의 독립과 자유다 라는 선서를 하고 최후의 준비를 했다. 홍쿠공원을 답사하여 거사를 하였다. 상해 병공창의 주임이었던 김홍일 장군의 주선으로 폭탄을 마련하였고 , 거사 장소는 눈이 시리도록 익혀두었다. 거사일 아침에 백범선생과 마지막으로 조반을 들고서도 시계를 바꾸어 갖는 여유를 잃지 않은 윤봉길 의사는 거사 후 자결하기 위해 자결용 폭탄까지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