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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빅토르 위고의 연극 <환락의 왕>
대본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초연 1851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배경 16세기 이탈리아 만토바와 그 주변
<1981 오페라 시네마 / 116분 / 한글자막>
빈 필 연주 / 리카르도 샤이 지휘 / 장 피에르 포넬 감독
(1981년 12월 17~23일 녹음 / 1982년 4월 25일 ~ 5월 30일 만토바, 크레모나, 파르마에서 촬영)
만토바 공작.......만토바 공국의 영주..........루치아노 파바로티(테너)
리골레토...........만토바의 궁정 광대..........잉그바르 빅셀(바리톤)
질다.................리골레토의 딸.................에디타 그루베로바(소프라노)
스파라푸칠레.....살인청부업자..................페루치오 푸를라네토(베이스)
마달레나...........스파라푸칠레의 여동생.....빅토리아 베르가라(콘트랄토)
조반나..............질다의 하녀....................페도라 바르비에리(소프라노)
마룰로..............궁정의 신하....................베른트 바이클(바리톤) - 연기 : 루이스 오테이
보르사..............궁정의 신하....................레미 코라짜(테너)
체프라노 백작........................................롤란드 브라흐트(베이스)
체프라노 백작부인..................................캐슬린 쿨만(메조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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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16세기 만토바에서 펼쳐진 난봉꾼 만토바 공작과 그의 광대 리골레토, 그리고 리골레토의 딸 질다의 슬픈 운명을 그린 베르디의 오페라로, 너무도 유명한 1981년 파바로티 주연의 영상
잉그바르 빅셀, 루치아노 파바로티, 에디타 그루베로바의 명연은 물론,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빈 필과 장 피에르 포넬의 고전적 연출에 이르기까지, 어느하나 흠잡을 곳 없는 절대 명연
=== 작품 해설 === <2010년 3월 26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베르디, 리골레토
빅토르 위고의 희곡 <왕의 환락>을 각색한 대본으로 작곡
1851년 3월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이런 노래 아시죠? 원래 이탈리아어 가사에서는 ‘깃털’이었는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 ‘갈대’가 되었네요. 이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이라는 아리아는 아주 가볍고 명랑하게 들리지만, 이 노래가 들어있는 오페라 [리골레토]는 베르디의 여러 걸작 오페라 가운데서도 가장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한 작품입니다.
16세기 프랑스 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와 그의 궁정 광대였던 트리불레를 주인공으로 삼아 권력자의 부도덕성과 횡포를 고발한 원작 드라마 [왕의 환락 Le Roi s'amuse]은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희곡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군주와 귀족들이 벌 받을 위험 없이 온갖 방탕하고 못된 짓을 저지르는 신분사회 시스템에 대한 도발적인 비판이었죠. 1832년 프랑스 초연 당일, 곱추 광대가 왕의 암살을 계획했다는 전복적인 설정을 두고 귀족과 평민 관객의 격한 충돌을 불러온 이 연극은, 그 후 오랜 세월 상연이 금지되었답니다. 베르디는 위고의 희곡을 읽고 흥분한 나머지 이 작품을 꼭 오페라로 만들기로 작정하고는,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대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는군요.
만토바 공작의 궁정광대 리골레토는 젊은 공작의 호색적인 성격을 부추겨 궁정귀족들의 부인이나 딸을 농락하게 하면서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숨겨두고 곱게 기르던 자신의 딸마저 공작이 유혹해 겁탈하자 분노한 그는 자객을 시켜 공작을 죽이려 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리골레토의 딸 질다는 사랑하는 공작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칼에 대신 뛰어들고, 리골레토는 자루에 든 공작의 시신을 강에 버리려다가그것이 공작이 아닌 자기 딸임을 알게 됩니다. 농락당한 딸의 명예를 위해 싸우다 리골레토에게 조롱을 당한 귀족이 그에게 퍼부은 저주가 실현된 것입니다.
검열 때문에 제목과 주인공이 달라진 오페라
그러나 오페라 무대 위에서 왕의 암살을 보여주는 일은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불가능했습니다. 원작에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대본가 피아베가 미리 다 삭제했는데도, 그 무렵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검열 당국은 이 대본에 ‘혁명적’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당연히 공연 허가는 받을 수 없었지요. 고민하던 베르디는 누군가의 조언을 얻어 원작의 무대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프랑스 궁정은 이탈리아 만토바 궁정으로 둔갑했답니다. 어디선가 대가 끊겨 베르디 시대에는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게 된 이 만토바 공작의 가문이 오페라 무대에 오른 것이죠. 실재하지도 않는 이 공작을 비난하는 일에 대해서는 검열관들도 별 말이 없었습니다. 베르디는 오페라의 제목도 원래 ‘저주 (La Maledizione)’라고 붙였지만 검열 당국과의 마찰 때문에 결국 주인공의 이름을 따 ‘리골레토’로 바꿔야 했습니다. ‘저주’라는 제목이 훨씬 더 관객을 끌 것 같았지만 말입니다.
위고의 원작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베르디의 오페라는 구구절절이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검열 당국의 감시 때문이기도 하고 오페라라는 무대예술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오페라의 탁월한 극적 효과는, 긴 대사 없이도 오페라로 사회비판극이 가능함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자신의 이 희곡이 오페라로 작곡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원작자 빅토르 위고까지도 [리골레토] 3막에 나오는 4중창을 보고 나서는 “내 연극에서도 오페라처럼 네 명이 동시에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효과적일까”라는 말로 감탄을 표했다고 합니다. [리골레토]는 도니체티와 벨리니의 ‘벨칸토 오페라’(서정적인 선율과 가수의 목소리 기교가 핵심을 이룬 오페라)를 계승했던 베르디의 초기 오페라 끝 부분에 해당하는 작품이면서,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 중기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오페라이기도 합니다. 음악적인 면에서 볼 때 실제로 [리골레토]는 벨칸토적 선율미가 넘치는 동시에, 벨칸토 오페라에서 흔히 부족하게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설득력을 함께 지니고 있거든요.
경박한 테너, 순수한 소프라노, 극적인 바리톤
베르디의 여러 오페라가 그러하듯 [리골레토]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세 명의 핵심인물이 있습니다. 테너 주인공인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에게 베르디는 경쾌하고 표피적인 음악을 만들어 주었습니다(‘이 여자나 저 여자나 Questa o quella,’ ‘여자의 마음’ 등).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 주인공인 ‘돈 조반니’의 노래들이 그러하듯, 공작의 아리아들은 유려하고 매혹적이지만 별 깊이가 없습니다.
소프라노 주인공인 10대 처녀 질다의 노래는 세상과 단절되어 새장에 갇혀 사는 듯한 그의 삶에 걸맞게 순수하고 단조롭지만, 공작과의 사랑을 경험하고 난 뒤로 아버지 리골레토와 함께 부르는 2중창은 소녀에서 여인으로 하룻밤새 성숙한 질다의 변모를 음악으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질다 역의 소프라노는 벨칸토 스타일의 아리아 ‘사랑스런 그 이름 Caro nome’과 격정적이고 극적인 ‘복수의 이중창 Si, vendetta’을 동시에 다 제대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젊고 매력 있는 소프라노와 테너에 가려져 바리톤 주인공 리골레토의 비중이 약해져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 오페라의 타이틀 롤인 리골레토는 이 격정의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존재인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가장 깊이 있고 에너지 넘치는 가창을 들려주는 배역이기 때문입니다(‘가신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Cortigiani, vil razza dannata’).
주인공이 곱추라는 장애를 지녔다는 설정 자체가 세상에 대한 그의 분노와 저항을 암시하는데요, 자신을 인간으로 존중해주지 않는 공작과 귀족들을 향해 리골레토는 “내가 사악하다면 그건 다 너희들이 못돼먹어서다”라고 독백합니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질다의 죽음은 사랑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아닙니다. 질다는 꼭 첫사랑에 눈이 멀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에 절망한 나머지, 어른이 되는 문턱에서 삶을 포기했는지도 모릅니다. 젊은 시절에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어야 했던 베르디의 깊은 우울이 이 드라마 속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도 역시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다시 ‘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면요, 베르디는 초연 전날까지 테너 가수에게 이 곡을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부르지 말라고 해놓고 꼭꼭 숨겨두었답니다. 마침내 공연 당일, 무대에서 테너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르자 이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반한 관객들은 오페라가 끝난 뒤 다들 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갔고, 이 노래는 다음날 당장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리골레토-질다-만토바 공작 순
[음반) 티토 곱비/마리아 칼라스/주세페 디 스테파노 등, 툴리오 세라핀 지휘,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1955년 녹음, Decca
[음반] 셰릴 밀른즈/존 서덜랜드/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리처드 보닝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암브로시언 오페라 합창단, 1971년 녹음, EMI
[DVD] 잉그바르 빅셀/에디타 그루베로바/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리카르도 샤이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장 피에르 포넬 연출, 1983년 영화판, Decca
[DVD] 파올로 가바넬리/크리스티네 쉐퍼/마르셀로 알바레스 등, 에드워드 다운즈 지휘,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 1996년 공연 실황, 데이비드 맥비카 연출, BBC-Opus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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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4월 22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그리운 그 이름
베르디, <리골레토>
딸을 빼앗긴 아버지의 원한
[리골레토]는 다른 두 개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와 함께 베르디 중기의 3대 걸작으로 꼽힌다. 16세기, 북 이탈리아의 만토바이다. 방탕한 만토바 공작의 문란(紊亂)한 생활을 부추기고 충동질을 일삼는 광대이며 꼽추인 리골레토는 정신(廷臣) 모두가 혐오하는 인간이며 그를 저주하는 귀족들이 많다. 리골레토가 의도적으로 감춰두고 사는 사랑하는 딸 질다를 그의 정부(情婦)라고 오해하고 있는 정신(廷臣)들은 평소 그에 대한 보복 심리에서 그녀를 유괴하여 공작에게 상납하자고 합의하고 결행한다.
한편 질다는 만토바 공작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 리골레토는 궁지에 몰려 살인 청부업자인 스파라후칠레(Sparafucile)에게 공작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살인 청부업자의 여동생인 맛달레나(Maddalena)도 공작을 사모하고 있어 다른 사람을 죽여서 공작을 살리려고 한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질다는 자기가 대신 죽으리라고 마음먹는다. 강에 버리려고 넘겨받은 주머니 속을 열어 보고 놀라는 리골레토. 그 속에서 죽어 가는 딸의 모습에 절규(絶叫) 한다.
속은 것도 모르고 남자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여심
만토바 공작을 가난한 학생 ‘괄티에르 말데’라고 알고 있고 그를 사모(思慕)하게 된 질다는 다음 만날 때를 꿈꾸며 [그리운 이름]을 애타게 되풀이 하지만 만토바 공작은 리골레토의 딸임을 알고 있다. 그녀의 순진함에 비해 호색한의 사랑은 일시적인 희롱에 지나지 않는다는 상황을 이 아리아는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사는 짧지만 내용은 처음과 마지막에서 “그리운 그 이름 때문에”를 되풀이 하며 사랑의 눈 뜸에서 단숨에 그 사랑 때문에 죽는 것(caro nome, tuo sarà)까지 간결하게 예견하고 있다.
베르디, <리골레토>, '그리운 그 이름'
괄티에르 말데!
내가 사랑하는 그 이름
내 가슴 속에 새겨진 이름
그리운 그 이름 때문에
처음으로 가슴 두근거리고
사랑의 기쁨을 늘
되새기는 원인이 되네!
생각할 때마다 내 사무치는 마음은
언제나 그대에게 날아 가,
그리운 그 이름 때문에
목숨도 그대 것이 되리.
생각할 때 마다… (중략)…
괄티에르 말데!
괄티에르 말데!
초연까지 갖가지 수난이 많았던 <리골레토>
[리골레토]는 원작이 빅토르 위고의 희곡 [일락(逸樂)의 왕]을 피아베(Francesco Maria Piave)가 3막의 오페라 대본으로 만든 비극이다. 처음에는 원작대로 파리를 무대로 삼았으나 불란서 당국으로부터 왕의 위신을 손상하는 작품이라 하여 공연 정지 처분을 받을 우려가 있어 무대를 이탈리아의 만토바로 옮겼다. 또 처음에는 이 오페라의 제목을 [저주(咀呪)]라고 할 예정이었으나 이번에는 이탈리아 정부가 국민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겠다고 우려하여 고치라는 명령이 내려 불란서어의 “장난치다”라는 동사(rigoler)를 비꼬아 [리골레토]로 고치는 등 갖가지 사연이 많았지만 간신이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 자체는 높은 기품과 아름다운 선율이 넘치는, 가장 이탈리아 적인 작품의 하나로 전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얻었다.
추천할 만한 음반과 DVD
[CD] 세라휜(세라핀, Serafin) 지휘, 밀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5) 칼라스(S) EMI
칼라스가 1950년대에 EMI에 녹음한 베르디의 오페라는 5가지가 있다. 그 중 [리골레토]는 [일 트로바토레]와 함께 가장 완성도가 높은 음반으로 꼽힌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세라휜의 지휘 아래 당시 절정기에 있던 곱비(티토 고비, Tito Gobbi), 디 스테화노(디 스테파노, Giuseppe di Stefano), 칼라스(maria Callas)의 명 트리오가 눈부신 목소리의 향연(饗宴)을 펼친다. 칼라스가 노래하는 질다는 그저 청초하고 순진한 인형 같은 성격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 대신 목숨을 던질 수 있는 강한 의지를 지닌 여인으로 부각되고 있어 뜨거운 감명을 준다. 그리고 곱비의 정평 있는 개성적인 리골레토, 디 스테화노의 눈부시게 낭랑한 칸타빌레, 여기에 세라휜의 극적인 긴장과 명확한 양식관(樣式觀)이 주관하는 통솔력을 첨가하여 [리골레토]의 결정반을 만들어 놓았다. 숱한 [리골레토]녹음 중에서도 이 음반은 불후의 명반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CD] 숄티(솔티, Georg Solti) 지휘, 이탈리아 RCA 관현악단/합창단(1963) 모포(S) RCA
숄티의 베르디 연주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음반이다. 그의 빠른 템포와 솔직 과감한 다이너미즘이 단지 음향적인 효과만으로 끝나지 않고 베르디의 열기에 찬 극적인 드라마 표현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있다. 세라휜 같은 극장적인 큰 스케일과 눈부신 화려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깊은 성격적 조탁(彫琢)과 열기에 찬 밀도 높은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메릴(Robert Merrill)을 비롯한 성악진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하자가 없다. 특히 메릴은 리골레토 역을 맡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최고의 명창을 들려준다. 제3막 끝 부분에서 질다 역의 신선한 모포(Anna Moffo)와의 열창(熱唱)은 듣는 이의 가슴에 숨이 막히도록 아프게 다가든다. 당시 38세의 크라우스(Alfredo Kraus)도 그 전의 달콤함과는 다른, 품위와 팽팽한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듣는 이를 압도한다.
[DVD] 샤이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극장 합창단(1983) 그루베로바(S) 폰넬 연출 DECCA
1982년에 제작된 이 오페라 영화는 우선 시각적으로 가장 큰 만족을 준다. 실제로 만토바에 남아 있는 호화로운 공작 궁전을 무대로 삼고 현지에서 리골레토의 집이라고 하는 건물을 모델로 하는 등 그 영상은 생생한 현실성을 살린 아름다운 존재를 구현한다. 무대의 제약을 벗어났지만 폰넬(Jean-Pierre Ponnelle)의 연출은 양식감을 잃지 않고 드라마의 일관된 흐름과 극적인 응축력(凝縮力)을 고스라니 지키고 있다. 서두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고 제1막 서두의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잔치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쓰고 있으나 그것이 조금도 음악을 훼손하지 않고 이 오페라의 극적 효과를 한 층 더 인상 깊게 마련해주고 있다. 연주도 영상 못지않게 충실하다. 당시 28세였던 샤이(Riccardo Chailly)가 세부에 이르기까지 명쾌하게 잘 정돈된 극적인 표현으로 생생하게 음악을 살렸으며 전성기의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의 공작은 호탕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스웨덴 출신의 빅셀(Ingvar Wixell)도 정확한 성격 묘사와 안정된 노래로 리골레토의 내면의 모순과 갈등을 훌륭히 살리고 있다. 그루베로바(Edita Gruberova)의 질다가 부르는 순결한 노래도 역시 들으면 깊은 감동을 받는다. 영상도 호화로운 무대의 색조(色調)를 아름답게 전하고 있고 목소리의 중심에 초점을 두고 세부에 이르기까지 균형감 있게 잘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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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9월 29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
베르디, <리골레토>
꼽추 리골레토는 위고(Victor Hugo)의 원작에서는 불란서 국왕 밑에 있던 것을, 검열 당국에서 국왕을 주인공으로 하면 안 된다는 지시가 내려 북 이탈리아의 만토바 공작 밑에 있는 것으로 고쳤다. 리골레토만큼 흉측한 역할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기형(畸形)이고 등에 커다란 혹이 달렸으며 그 추악한 모습을 역이용하여 광대라는 직업을 가지고 날카로운 한 치 혀끝으로 궁중(宮中)의 중신(重臣)들을 헐뜯고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공작(公爵)의 비위를 맞춘다.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리골레토도 아버지의 사랑은 깊다
그러나 비뚤어진 그의 마음에도 남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성실한 마음을 쏟는 데가 있다. 그것은 이성(理性)으로는 가누지 못하는, 뜨거운 아버지의 사랑이다. “몹쓸 악당 놈의 중신들!”하고 딸을 공작에게 넘겨준 그들을 저주하며 그 동안의 체면 따위를 깡그리 벗어 던진 채 절규하듯 호소한다. 드디어 그는 딸을 구출하기 위해 공작 암살을 결심한다. 고귀하지도 청렴결백하지도 않은, 사회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추한 사나이가 그 진심을 밝혔기 때문에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위고 원작을 음악화한 베르디의 힘이며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사회가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리골레토의 매력은 조금도 감소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리골레토의 딸 질다는 어떠한가? 구태여 한마디로 말한다면 ‘천사’와 같은 여자이다. 그녀는 흉측한 광대인 아버지가 이 험난한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시킨 환경에서 자랐다. 이상하리만큼 아버지의 사랑에 감싸여서 자라난 질다는 의심할 줄을 모르는 맑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녀가 호색가(好色家)인 공작에게 능욕(凌辱)당했으나 그 사나이를 굳게 믿는 그녀는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다. 어리석은 삶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의 거친 마음을 위로하고 공작을 살려달라고 비는 그 따뜻한 마음씨에 청중은 깊이 감동한다.
인간의 사상과 행동을 극적 음악으로 표현하는 길을 연 걸작
바리톤의 주인공에게 폭넓은 표현력을 주어 극적 구성(劇的構成)의 중심에 두는 등, 목소리를 듣게 하는 데 주력(注力)했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인간의 사상이나 행동을 극적 음악으로 표현하는 길을 연 걸작이다. 그러기 위해 전통적인 형식을 크게 뜯어고쳐 갖가지 목소리의 조합(組合)에 의한 2중창을 축(軸)으로 하여 드라마와 음악이 밀접하게 결부된 전개(展開)를 보일 수 있게 했다.
베르디, <리골레토>,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여자의 마음)'
*바람에 날리는 깃털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말투가 바뀌고
생각도 바뀐다.*
언제나 애교(愛嬌) 있고
정숙한 얼굴,
눈물도 웃음도,
거짓으로 꾸민 것.
언제나 불쌍한 건
그걸 믿는 남자,
조심은 하기커녕
쉽사리 마음을 내 줘!
절대 아는 체를 않는
여자의 가슴에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
그것만으로 행복해.
여자란 변하기 쉬운 것,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유명한 곡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이라고 번역되어 있다([오페라 아리아 앨범], 세광음악출판사). 원어는 “La donna è mobile qual piuma al vento,"(여자란 변하기 쉬운 것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이다. donna는 ‘여자’이지 ‘여자의 마음’은 아니다. 또 piuma는 ‘깃털’이고 ‘갈대’는 아니다. 그러나 결국 변덕스러운 여자는 그 마음이 그런 것이므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종래의 관습 그대로 불러도 운치가 있다. 그러나 ‘갈대’는 좀 지나치다. 이 통쾌한 가사(歌詞)와 발랄한 리듬을 탄 경쾌한 멜로디에는 베르디 자신도 꽤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리허설 때 이 노래를 부를 가수에게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했으나 초연(初演) 다음 날에는 온통 거리에 퍼져 나갔다고 한다. 이 노래는 제1절의 4행까지가 8행 뒤에 되풀이되고 제2절 8행이 끝난 뒤에 또 다시 한번 불러 흥겨운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추천 음반 및 DVD
[CD] 보닝 지휘, 런던 교향악단/앰브로지안 오페라 합창단(1971) 파바로티(T) Decca
출연진의 충실함은 이 음반이 최고이다. 서덜랜드(Joan Sutherland)의 질다,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의 공작, 밀른즈(Sherill Milnes)의 리골레토 등 막강한 가수들로 이루어젔다. 또 보조역인 스파라후칠레 역으로 탈벨라(Martti Talvela), 체프라노 부인 역에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를 기용한 호화 캐스트이며 특히 파바로티는 공작의 복잡한 성격을 훌륭히 노래하고 있다. 보닝(Richard Bonynge)의 지휘는 오페라의 극적인 파악에 깊이가 좀 부족한 데가 있다.
[CD] 쥴리니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오페라단 합창단(1979) 도밍고(T) DG
엄선한 가수진으로 열연을 펼찬다. 성격적인 역할을 과시하는 베르디 바리톤을 눈부시게 발휘하는 카푸칠리(Piero Cappuccilli)는 앙양(昻揚)된 전성기의 충실한 목소리로 완벽하게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도밍고(Placido Domingo)도 가장 걸출한 시기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CD] 몰리나리-프라델리 지휘,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합창단(1977) 보니솔리(T) Acanta
주역인 파네라이(Rolando Panerai)가 뛰어나다. 당시 52세의 전성기인 그의 하이 바리톤의 낭랑(朗朗)한 목소리에 연기력도 뛰어나, 제4막에서의 아버지의 사랑이 넘치는 연기력이 가슴을 친다. 공작 역의 보니솔리(Franco Bonosolli)의 테너도 감칠맛이 있다. 넘치는 성량, 뛰어난 고음역(高音域) 등 그의 특징이 남김없이 발휘된다. 이 날의 공연을 TV용 오페라 휠름(필름)으로 만든 것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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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8월 26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문학과 클래식
희곡 <환락의 왕>과 오페라 <리골레토>
아버지의 웃음에는 눈물이 어려 있다
역사에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16세기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François I, 1494~1547)가 아니었다면 [모나리자]는 지금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아니라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모나리자]를 그리고 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스에서 말년을 보내기로 결심한 건, 1516년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고서였다. “여기서 당신은 자유롭게 구상하고 사색하며 작업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왕의 정중한 초대에 다 빈치는 프랑스 행을 마음먹었다. 이때 모나리자도 함께 가지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수아 1세는 다 빈치를 왕실 화가 겸 건축가로 임명했고,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 다 빈치는 앙부아즈 성 인근의 저택인 르클로뤼세에서 생애 마지막 3년을 보냈다. 현재 이 저택은 다 빈치의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1519년 다 빈치가 사망하자 프랑수아 1세는 당시 금화 4000냥을 지급하고 [모나리자]를 구입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으로 [모나리자]를 옮겨온 건 프랑스 혁명 직후였다.
모나리자의 가치를 누구보다 일찍 알아보았던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의 대표적 르네상스형 군주로 꼽힌다.
그리 빼어난 수준은 아니었다고 해도 국왕 자신이 시인이었으며, 1530년에는 왕립 독서회를 창설했다. 이 독서회는 오늘날 고등 교육 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모태가 됐다. 1539년 빌레르 코트레 칙령을 반포해 라틴어 대신 프랑스어를 행정 문서의 공식 언어로 채택한 것도 프랑수아 1세였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서 르네상스 시기의 걸작들을 볼 수 있는 건, 그의 예술적 안목 덕분이기도 하다.
프랑수아 1세는 '환락의 왕'?
이처럼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거꾸로 문제적 탕아(蕩兒)로 남아 있다. 이는 19세기의 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85) 때문이다.
이전에도 프랑수아 1세를 인간적 결점을 지닌 인물로 묘사하는 희곡이나 회고록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위고는 한걸음 더 나아가 1832년 희곡 『환락의 왕(Le Roi S’amuse)』에서 프랑수아 1세를 신이나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악한으로 묘사했다. 실제 프랑수아 1세가 방탕하기는 해도 마구잡이로 능욕을 일삼은 적은 없었고, 빼어난 시인은 아니었지만 예술의 보호자를 자처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다분히 섭섭한 평가였다.
『환락의 왕』에서 위고는 왕의 궁정을 어떠한 욕망과 감정도 제어되지 않는 ‘환락의 수라도(修羅道)’로 묘사했다. 궁정은 신하를 징벌하고 그의 여인을 취하며, 신하의 석방을 대가로 흥정을 벌이는 곳이다. 당초 작가가 구상했던 제목도 『환락의 왕』이 아니라 ‘권태의 왕(Le Roi S’ennuie)’이었다. 왕에게 가장 두려운 건 욕망이 아니라 욕망을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권태인 것이다. 작품 속에서 왕의 환희와 신하의 탄식은 대비를 이루고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을 원하며, 모든 것을 가지련다! 세상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즐거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 프랑수아 1세
“왕은 누군가의 집에서든 모든 즐거움을 앗아간다. 유혹당할 수 있는 누이와 아내, 딸이 있는 자는 누구든 조심하라. 권력자는 오로지 해칠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 신하
곱사등이 간신배의 비극
이 희곡에서 왕에게 여인을 소개하는 채홍사이자 여흥을 돋우는 광대, 왕이 저지른 사건의 뒤처리를 도맡은 해결사이면서 동시에 ‘입속의 혀’처럼 구는 간신배가 곱사등이 광대 트리불레(Triboulet, 1479~1536)다. 그는 루이 12세와 프랑수아 1세의 궁정 광대였던 실존 인물이었다. 작품 속에서는 왕정을 거역하기 힘든 궁정의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그려진다.
왕에게 딸을 빼앗기고 치욕과 고통을 호소하는 신하 앞에서도 트리불레는 “언젠가 건장한 손주를 보게 되어서 네 수염을 잡아당기고 무릎에 기어오르게 될 터인데 무슨 고민이냐”라고 면박을 준다. 그의 혀에는 분명 독이 들어 있다.
하지만 동이 트고 파티가 끝날 즈음, 유쾌했던 지옥도는 비극으로 변한다. 곱사등이 광대도 왕정에서 물러나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에는 무거운 가면을 벗고 평범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험한 세상에서 끝끝내 보호하고 싶은 딸이 그에게도 있다.
“내 딸, 하늘이 내게 허락한 단 하나의 행복이여. 남들은 부모 형제와 친구, 남편과 아내, 신하와 수행원, 조상과 여러 아이들이 있지만, 내게는 오로지 너뿐이구나! 너는 내 유일한 보물이고 행복이란다! 다른 사람들이 신을 믿을 때, 나는 너만을 믿을 뿐이란다.”
- 『환락의 왕』
비운의 작품이 된 사연
『레미제라블』이나 『노트르담의 꼽추』와 비교하면, 『환락의 왕』은 위고의 방대한 작품 중에서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비운의 작품에 속한다. 1832년 11월 22일 초연 직후 이 희곡은 사후(事後) 검열로 인해 상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훗날 위고는 아내 아델을 통해 정치적으로 미묘했던 당시 상황을 기록으로 남겼다. 1830년 7월 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루이 필리프(Louis Philippe, 1830~48)는 다르구 백작을 상공부 장관의 비서로 임명했다. 다르구 백작의 비서가 [카르멘]의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였다.
메리메는 한 살 연상의 위고에게 작품 원고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위고는 변형된 형태의 검열로 여기고 여기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위고는 “검열이 존재하지 않을 때만이 작가 스스로 자신을 정직하고 양심적이며 혹독하게 검열하게 된다”라고 썼다.
하지만 정부의 요청이 거듭되자 위고는 결국 다르구 백작과의 만남에 응했다. 당시 백작과 위고의 대화는 지금 읽어도 흡사 고승의 선문답처럼 흥미롭다.
“위고씨, 저는 원칙주의자는 아닙니다만 존중해야 할 것들도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작품에는 왕에 대한 암시가 있다고 합니다.” - 다르구 백작
“뭐라고요? 루이 필리프에 대해서라고요? 프랑수아 1세에 대한 작품이 어떻게 루이 필리프에 대한 것으로 읽힐 수 있죠? 더구나 저는 암시를 남발하는 자들을 언제나 경멸해왔어요. 내 작품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오.”
- 위고
초연 사흘 전에는 루이 필리프에 대한 테러 기도가 일어나는 불운마저 겹쳤다. 작품 초연 당일, 극장 객석에서는 [라 마르세예즈]가 울려 퍼지는 등 불온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환락에 빠진 왕이 젊은 처자를 능욕하거나, 광대가 왕의 살해 음모를 꾸미는 희곡의 줄거리는 자칫 왕의 시해를 선동하는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다분했다. 위고의 희곡을 전공한 연극학자이자 기호학자인 안느 위베르스펠드는 이 작품에 대해 “당대의 도덕과 문학적 관례, 역사적 관습이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모두 도발로 받아들여졌다”라고 분석했다.
불운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환락의 왕』은 수차례 상연 금지 끝에 초연 반세기 이후인 1882년 재공연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냉담한 혹평이 쏟아지는 바람에 프랑스의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의 상연 목록에서 빠지고 말았다. 그 뒤 80년간 파리의 극장가에서 사라지면서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재평가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잊힌 작품에서 불멸의 걸작으로
잊힌 작품으로 남아 있던 위고의 불운한 희곡을 불멸의 걸작으로 되살린 공신이 작곡가 베르디다. 그는 대본 작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환락의 왕』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자 아름다운 희곡”이라며 “왕의 광대인 트리불레는 셰익스피어에 비견할 만한 인물상”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베르디와 피아베는 1844년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에르나니]부터 호흡을 맞췄던 사이였다.
“이런 주제라면 결코 실패할 리 없다”라면서 확신에 찼던 베르디는 40여 일 만에 작곡을 마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검열이 문제였다. 당시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당국이 작품의 개작을 요구한 것이었다. 결국 원작의 배경인 파리는 이탈리아 북부의 만토바로 옮겼다. 프랑수아 1세는 만토바의 공작, 트리불레는 프랑스어의 ‘익살꾼(Rigolo)’에서 유래한 리골레토로 각각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오페라는 1851년 3월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됐다.
당시 작곡가 베르디는 “온몸을 던져서라도 공연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유력 인사를 찾아달라”는 편지를 대본 작가에게 보낼 정도로 초조한 심경을 드러냈다.
빅토르 위고의 연극과 베르디의 오페라 사이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는 이윽고 1861년 프랑스 파리에도 상륙했다. 당초 위고는 “내 희곡을 서툴게 흉내 내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진력이 난다”라면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작 오페라의 3막 4중창을 본 뒤에는 “가능하다면 나도 희곡에서 등장인물 4명이 동시에 말하게 하고 싶다.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감정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텐데”라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연극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동시에 말하면 소음으로 전락하지만, 반대로 오페라에서는 매혹적인 화음을 빚어낸다는 점을 꿰뚫어본 것이었다.
연극과 오페라의 차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왕과 광대의 대비를 통해서 블랙 코미디의 성격을 강조했던 원작과 달리, 오페라 [리골레토]는 광대의 고뇌에 초점을 맞추면서 신하의 의무와 부정(父情) 사이에 짙은 음영을 드러냈다. 이전까지 악당이나 하인 같은 평면적 역할에 머물렀던 바리톤에 애끊는 부성애(父性愛)와 비극적 주인공의 면모를 부여해 복합적 성격과 입체감을 살려낸 ‘베르디 바리톤’의 탄생이었다.
“신하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 얼마나 받고 내 보물을 팔아먹었나. 네놈들은 돈밖에 모르겠지만 내 딸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보물. 돌려다오, 그렇지 않으면 이 손에 너희들의 피를 묻히겠다. 딸의 명예를 지키려는 자에게 세상에 두려울 것은 없다.” - 베르디의 [리골레토] 가운데 아리아 「신하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
이렇듯 리골레토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정작 딸의 정절과 목숨마저 빼앗는 왕의 만행에 나약하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만다. “왕을 위해 다른 여인들을 납치했지만 정작 자신의 딸을 빼앗기고, 왕을 암살하고자 하지만, 딸을 죽음에 빠뜨리고 만다”라는 위고의 해설처럼, 리골레토는 ‘이중의 역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원작의 마지막 대사도 “내가 내 아이를 죽였구나”라는 처절한 통곡이다.
하지만 왕은 리골레토의 딸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여전히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즐겁게 흥얼거린다. 이처럼 죄지은 자는 회개하기는커녕 잘못을 깨닫지조차 못하고, 가벼운 희극으로 출발했던 이야기는 처절한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리골레토, 아버지의 초상
이 광대의 비극에는 부조리와 고된 노동, 불안한 미래에도 지친 육신을 누일 곳마저 쉬이 찾지 못하는 아버지의 형상이 어려 있다. 가정을 위해서라면 울음을 기꺼이 삼키고 거짓 웃음을 지어 보이는 아버지의 마음이야말로 작품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동력이다. 그렇기에 [리골레토]는 우리들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작품의 현실성과 비극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첫댓글 <불멸의 오페라 1 / 박종호> ★★★
가장 교과서적이고 최고의 <리골레토> 영화로 꼽힌다. 장 피에르 포넬의 영화 중에서도 대표적인 수작이다. 그의 연출은 섬세하다 못해 교묘하고, 그의 감각은 천재적이다 못해 악마적이다. 젊은 파바로티의 강렬한 눈빛은 광채가 나는 음성과 함께 최고의 만토바임을 보여준다. 포넬이 카메라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잉바르 빅셀을 리골레토와 몬테로네의 1인 2역의 원수지간으로 만든 연출은 놀랍다. 빅셀의 음성이 너무 부드러운 것이 단점이다. 모든 촬영은 만토바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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