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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4 편
진리의 영을 수여하다
(Paper 194 :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 중도자 위원회
. 서기 30년 5월 27일(토)
. 예루살렘, 마가의 집
194:0.1 약 1시경, 신자 120명이 기도에 전념하고 있을 때, 그들은 모두 방 안에 이상한 존재가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동시에 이 제자들은 모두 새롭고 심오한 영적 기쁨, 안전, 자신감을 의식하게 되었다. 영적 힘에 대한 이 새로운 의식은 곧바로 나가서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하늘나라 복음을 대중에게 선포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뒤따랐다.
194:0.1 About one o'clock, as the one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were engaged in prayer, they all became aware of a strange presence in the room. At the same time these disciples all became conscious of a new and profound sense of spiritual joy, security, and confidence. This new consciousness of spiritual strength was immediately followed by a strong urge to go out and publicly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the good news that Jesus had risen from the dead.
194:0.2 베드로가 일어나서, 주(主)가 그들에게 약속했던 진리의 영이 오신 것이 틀림없다고 선언하고, 그들이 성전으로 가서 그들의 손에 맡겨진 좋은 소식의 선포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베드로가 제안한 그대로 하였다.
194:0.2 Peter stood up and declared that this must be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which the Master had promised them and proposed that they go to the temple and begin the proclamation of the good news committed to their hands. And they did just what Peter suggested.
194:0.3 이 사람들은 그들이 전해야 할 복음이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아들이라는 것을 훈련받고 교육받았지만, 영적 환희와 개인적 승리를 느낀 바로 이 순간에, 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식, 가장 큰 소식은 주(主)가 부활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높은 곳에서 능력을 받고, 떠나가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예수를 통하여 구원받는 것까지도―전파했지만, 그들은 뜻하지 않게 복음에 관련된 그 자체 복음 메시지의 일부를 바꾸는 잘못에 빠지고 말았다.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이 실수에 앞장섰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바울에 이르기까지 그의 뒤를 따랐으며, 바울은 새로운 버전의 좋은 소식을 듣고 새로운 종교를 창조했다.
194:0.3 These men had been trained and instructed that the gospel which they should preach was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sonship of man, but at just this moment of spiritual ecstasy and personal triumph, the best tidings, the greatest news, these men could think of was the fact of the risen Master. And so they went forth, endowed with power from on high, preaching glad tidings to the people-even salvation through Jesus-but they unintentionally stumbled into the error of substituting some of the facts associated with the gospel for the gospel message itself. Peter unwittingly led off in this mistake, and others followed after him on down to Paul, who created a new religion out of the new version of the good news.
194:0.4 하늘나라의 복음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과 아들 신분-형제 사랑의 결과적 진리로 연결된다. 그날부터 발전된 바와 같이 기독교는 다음과 같다: 부활하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와 함께, 신자-친교의 체험과 함께 연합된 가운데, 하나님이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194:0.4 The gospel of the kingdom is: the fact of the fatherhood of God, coupled with the resultant truth of the sonship-brotherhood of men. Christianity, as it developed from that day, is: the fact of God as the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in association with the experience of believer-fellowship with the risen and glorified Christ.
194:0.5 영을 받은 이 사람들이 주(主)를 죽이고 그의 가르침의 영향을 말소하려고 애썼던 세력에 대한 승리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 기회를 잡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때에, 예수와 함께 가졌던 개인적 관계를 기억하고, 주(主)가 아직도 살아 계시고, 그들의 우정이 끝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주(主)가 약속하신 대로 그 영이 정말로 그들에게 임했다는 확신에 감격하는 것이 더 쉬웠다.
194:0.5 It is not strange that these spirit-infused men should have seized upon this opportunity to express their feelings of triumph over the forces which had sought to destroy their Master and end the influence of his teachings. At such a time as this it was easier to remember their personal association with Jesus and to be thrilled with the assurance that the Master still lived, that their friendship had not ended, and that the spirit had indeed come upon them even as he had promised.
194:0.6 이 신자들은 그들 자신이 갑자기 다른 세상, 즉 기쁨, 능력, 영광의 새로운 존재로 변했다고 느꼈다. 주(主)는 그들에게 하늘나라가 능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그들 중 일부는 그의 뜻을 알아채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194:0.6 These believers felt themselves suddenly translated into another world, a new existence of joy, power, and glory. The Master had told them the kingdom would come with power, and some of them thought they were beginning to discern what he meant.
194:0.7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어떻게 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이 형제라는 이전의 메시지 대신에 예수에 관한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4:0.7 And when all of this is taken into consideration, it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how these men came to preach a new gospel about Jesus in the place of their former message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1. 오순절 설교 (The Pentecost Sermon)
194:1.1 사도들은 40일 동안 숨어 있었다. 이날은 마침 유대인의 오순절 축제일이었고, 세계 각지에서 수천 명의 방문객이 예루살렘을 찾았다. 많은 사람이 이 축제에 참석했지만, 대다수는 유월절 후에 도시에서 머물러 있었다. 겁이 난 이 사도들은 몇 주 동안의 은둔에서 벗어나, 이제 대담하게 성전에 나타났고, 거기서 부활한 메시아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제자들 또한 그와 같이 새로운 영적인 통찰력과 능력을 받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194:1.1 The apostles had been in hiding for forty days. This day happened to be the Jewish festival of Pentecost, and thousands of visitors from all parts of the world were in Jerusalem. Many arrived for this feast, but a majority had tarried in the city since the Passover. Now these frightened apostles emerged from their weeks of seclusion to appear boldly in the temple, where they began to preach the new message of a risen Messiah. And all the disciples were likewise conscious of having received some new spiritual endowment of insight and power.
194:1.2 2시쯤에, 주(主)가 이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바로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일어서서 열렬한 호소를 전했을 때, 그 결과로 2천 명의 혼들이 승리했다. 주(主)는 떠났지만, 그들은 갑자기 주(主)에 관한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이전에 예수에게 헌신한 것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동시에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이야기를 더욱 선포하도록 계속 마음이 이끌린 것은 당연하다. 이 모임에 참여했던 사도들은 다음 여섯이었다; 베드로ㆍ안드레ㆍ야고보ㆍ요한ㆍ빌립ㆍ마태이다. 그들은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이야기했고, 말씀을 그리스어ㆍ히브리어ㆍ아람어로 전했으며, 또한 말할 만큼 익숙한 다른 언어로도 몇 마디 하였다.
194:1.2 It was about two o'clock when Peter stood up in that very place where his Master had last taught in this temple, and delivered that impassioned appeal which resulted in the winning of more than two thousand souls. The Master had gone, but they suddenly discovered that this story about him had great power with the people. No wonder they were led on into the further proclamation of that which vindicated their former devotion to Jesus and at the same time so constrained men to believe in him. Six of the apostles participated in this meeting: Peter, Andrew, James, John, Philip, and Matthew. They talked for more than an hour and a half and delivered messages in Greek, Hebrew, and Aramaic, as well as a few words in even other tongues with which they had a speaking acquaintance.
194:1.3 유대인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대담함에 경악했지만, 사도들의 이야기를 믿는 큰 무리 때문에 그들을 건드리기가 두려웠다.
194:1.3 The leaders of the Jews were astounded at the boldness of the apostles, but they feared to molest them because of the large numbers who believed their story.
194:1.4 4시 반이 되어서, 2천 명이 넘는 새로운 신자들이 사도들을 따라서 실로암의 못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베드로ㆍ안드레ㆍ야고보ㆍ요한은 주(主)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군중에게 세례 주기를 마친 것은 어두워졌을 때였다.
194:1.4 By half past four o'clock more than two thousand new believers followed the apostles down to the pool of Siloam, where Peter, Andrew, James, and John baptized them in the Master's name. And it was dark when they had finished with baptizing this multitude.
194:1.5 오순절은 세례받는 큰 축제요, 대문에서 전향자, 즉 야웨 섬기기를 소망하는 이방인과 사귀는 때였다. 따라서 큰 무리의 유대인과 이방 신자들이 이날에 세례받는 것이 더 쉬웠다. 이렇게 하면서 그들은 결코 유대 신앙과 자신들을 단절하지 않았다. 이 후에도 얼마 동안, 예수를 믿는 자들은 유대교 안에 있는 한 종파였다. 사도들을 포함하여, 그들 모두는 유대교 의식 제도의 기본적인 요건에 여전히 충실했다.
194:1.5 Pentecost was the great festival of baptism, the time for fellowshipping the proselytes of the gate, those gentiles who desired to serve Yahweh. It was, therefore, the more easy for large numbers of both the Jews and believing gentiles to submit to baptism on this day. In doing this, they were in no way disconnecting themselves from the Jewish faith. Even for some time after this the believers in Jesus were a sect within Judaism. All of them, including the apostles, were still loyal to the essential requirements of the Jewish ceremonial system.
2. 오순절의 중요성 (The Significance of Pentecost)
194:2.1 예수는 이 땅에 살면서, 인간이 악마의 자식이라는 미신에서 구원해 주었고, 하나님의 아들, 믿음의 아들의 위엄까지 올려놓은 복음을 가르쳤다. 예수가 전한 말씀은 당대에 그가 전도하고 실천한 바와 같이, 말씀했던 시절에 사람의 영적 문제에 대한 효과적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는 진리의 영을 자기 자리에 보내고 있다. 이 영은 사람 안에 살도록, 그리고 새로운 각 세대를 위해, 예수의 말씀을 다시 진술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래서 땅 위에서 나타날 새로운 집단의 필사자마다 새롭고 최신 해석의 복음을 가지게 될 것이며, 바로 그러한 개인적 깨우침과 집단 지도는 인간의 새롭고 다양한 영적 어려움들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방안으로 증명될 것이다.
194:2.1 Jesus lived on earth and taught a gospel which redeemed man from the superstition that he was a child of the devil and elevated him to the dignity of a faith son of God. Jesus' message, as he preached it and lived it in his day, was an effective solvent for man's spiritual difficulties in that day of its statement. And now that he has personally left the world, he sends in his place his Spirit of Truth, who is designed to live in man and, for each new generation, to restate the Jesus message so that every new group of mortals to appear upon the face of the earth shall have a new and up-to-date version of the gospel, just such personal enlightenment and group guidance as will prove to be an effective solvent for man's ever-new and varied spiritual difficulties.
194:2.2 이 영의 첫번째 사명은, 당연히, 사람 안에 진리가 자라 성격화하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최고의 자유 형태를 구성하는 것이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이 영(靈)의 목적은 고아라는 믿는 자들의 감정을 없애는 것이다. 예수가 사람들과 함께 계셨고, 진리의 영(Spirit of Truth)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깃들지 않았다면, 모든 믿는 자들이 고독감을 체험했을 것이다.
194:2.2 The first mission of this spirit is, of course, to foster and personalize truth, for it is the comprehension of truth that constitutes the highest form of human liberty. Next, it is the purpose of this spirit to destroy the believer's feeling of orphanhood. Jesus having been among men, all believers would experience a sense of loneliness had not the Spirit of Truth come to dwell in men's hearts.
194:2.3 아들의 영을 이렇게 수여한 것은 온 인류에게 나중에 아버지 영(조절자)의 보편적 수여를 위하여 모든 정상 인간의 지성을 효과적으로 준비시켰다. 어떤 의미에서, 이 진리의 영은 우주의 아버지와 창조 아들(Creator Son), 이 두 분의 영(靈)이다.
194:2.3 This bestowal of the Son's spirit effectively prepared all normal men's minds for the subsequent universal bestowal of the Father's spirit (the Adjuster) upon all mankind. In a certain sense, this Spirit of Truth is the spirit of both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Creator Son.
194:2.4 퍼부어진 진리의 영을 지적으로 강하게 의식하기를 기대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그 영은 결코 영 자신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들 미가엘에 대한 의식만 하게 만들 뿐이다. 처음부터 예수는 진리의 영이 자기 자신을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너희가 진리의 영과 친교 한다는 증거는 이 영의 의식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가엘과의 향상된 친교의 체험 속에서 발견된다.
194:2.4 Do not make the mistake of expecting to become strongly intellectually conscious of the outpoured Spirit of Truth. The spirit never creates a consciousness of himself, only a consciousness of Michael, the Son. From the beginning Jesus taught that the spirit would not speak of himself. The proof, therefore, of your fellowship with the Spirit of Truth is not to be found in your consciousness of this spirit but rather in your experience of enhanced fellowship with Michael.
194:2.5 그 영(靈)은 또한 사람들이 주(主)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땅에서 사신 주(主)의 삶을 조명하고 재해석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왔다.
194:2.5 The spirit also came to help men recall and understand the words of the Master as well as to illuminate and reinterpret his life on earth.
194:2.6 다음에 진리의 영은 예수가 육신 안에서 살아온 것처럼, 영(靈)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세대를 거치는 개개인의 신자 각자가 다시 새롭게 살도록,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삶의 실체를 다시 목격하도록 신자들을 돕기 위해 왔다.
194:2.6 Next, the Spirit of Truth came to help the believer to witness to the realities of Jesus' teachings and his life as he lived it in the flesh, and as he now again lives it anew and afresh in the individual believer of each passing generation of the spirit-filled sons of God.
194:2.7 그래서 진리의 영은 정말로, 모든 신자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해 왔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상승하는 아들들의 영원한 실체에 대하여, 살아 있고 성장하는 영적 의식에 대한 체험 지식을 확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194:2.7 Thus it appears that the Spirit of Truth comes really to lead all believers into all truth, into the expanding knowledge of the experience of the living and growing spiritual consciousness of the reality of eternal and ascending sonship with God.
194:2.8 예수는, 어떤 인간이 문자 그대로 따르기 위해 시도하는 본보기가 아닌,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 사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 육체로 산 이 삶은, 십자가에서 죽고 나중에 부활한 것과 함께, 당장에 사람을 악마의 손아귀로부터―기분 상한 하나님으로부터 죄가 있다고 판결받지 않도록―사람을 도로 사려고 이처럼 몸값을 지불했다는 새로운 복음이 되었다. 그러나 비록 그 복음이 크게 왜곡되었어도, 예수에 대한 이 새로운 소식이 초기의 하늘나라 복음의 근본적 진리와 가르침을 많이 지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형제라는 이 감추어진 진리가 나타나 온 인류의 문명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194:2.8 Jesus lived a life which is a revelation of man submitted to the Father's will, not an example for any man literally to attempt to follow. This life in the flesh, together with his death on the cross and subsequent resurrection, presently became a new gospel of the ransom which had thus been paid in order to purchase man back from the clutch of the evil one-from the condemnation of an offended God. Nevertheless, even though the gospel did become greatly distorted, it remains a fact that this new message about Jesus carried along with it many of the fundamental truths and teachings of his earlier gospel of the kingdom. And, sooner or later, these concealed truth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will emerge to effectually transform the civilization of all mankind.
194:2.9 그러나 이러한 지적인 잘못은 어떤 면에서도 신자가 영적으로 크게 진보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진리의 영이 내린 뒤 한 달이 채 안 되어, 주(主)와 함께 직접적인 사랑에 넘친 관계를 가졌던 거의 4년 동안 보다, 사도들 하나하나가 영적으로 더 진보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유익한 복음의 진실을 예수의 부활로 이렇게 대체한 것은 그들의 가르침의 급속한 확산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반대로, 예수의 인물과 부활에 관한 새로운 가르침에 의해 예수의 메시지를 이렇게 가려버린 것은 복음을 전파를 크게 촉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194:2.9 But these mistakes of the intellect in no way interfered with the believer's great progress in growth in spirit. In less than a month after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the apostles made more individual spiritual progress than during their almost four years of personal and loving association with the Master. Neither did this substitution of the fact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for the saving gospel truth of sonship with God in any way interfere with the rapid spread of their teachings; on the contrary, this overshadowing of Jesus' message by the new teachings about his person and resurrection seemed greatly to facilitate the preaching of the good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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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2.10 이 시기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영의 세례”라는 용어는, 단지 이 진리의 영의 선물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혼들에 의해서 그들이 이전에 체험했던 모든 영적 영향이 강화되는 것으로서, 이 새로운 영적 능력의 개인적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4:2.10 The term "baptism of the spirit," which came into such general use about this time, merely signified the conscious reception of this gift of the Spirit of Truth and the personal acknowledgment of this new spiritual power as an augmentation of all spiritual influences previously experienced by God-knowing souls.
194:2.11 진리의 영이 수여된 이후로 사람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영의 가르침과 안내에 지배된다: 아버지의 영인 생각 조절자, 아들의 영인 진리의 영, 영의 영인 성령이다.
* 사람은 삼위일체 세분 하나님의 영, 즉 아버지의 영, 영원한 아들의 영, 무한한 영의 영에 의해 지배됨.
194:2.11 Since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man is subject to the teaching and guidance of a threefold spirit endowment: the spirit of the Father, the Thought Adjuster; the spirit of the Son, the Spirit of Truth; the spirit of the Spirit, the Holy Spirit.
194:2.12 어떤 면에서, 인류는 일곱가지 우주의 영적 영향력 나타나는 이중의 영향력에 지배된다. 초기의 진화 종족의 필사자는 지역 우주의 어머니 영인 일곱 보조 지성 영의 점진적인 접촉에 지배받는다. 지능과 영적 인식의 눈금에서 사람이 위로 올라감에 따라서, 궁극에 일곱 가지 높은 영적 세력이 사람 위에 떠돌고 그 안에 거하게 된다. 그리고 진보하는 세계들에 있는 이 일곱 영은 다음과 같다.
194:2.12 In a way, mankind is subject to the double influence of the sevenfold appeal of the universe spirit influences. The early evolutionary races of mortals are subject to the progressive contact of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As man progresses upward in the scale of intelligence and spiritual perception, there eventually come to hover over him and dwell within him the seven higher spirit influences. And these seven spirits of the advancing worlds are:
1. 우주의 아버지가 수여한 영―생각 조절자.
194:2.13 The bestowed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the Thought Adjusters.
2. 영원한 아들의 영적 계심―온 우주의 영 인력이고, 모든 영의 소통에 쓰이는 확실한 경로.
194:2.14 The spirit presence of the Eternal Son―the spirit gravity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and the certain channel of all spirit communion.
3. 무한한 영의 영적 계심―모든 창조의 보편적 영 지성(spirit-mind), 모든 진보하는 지성 존재가 가진 지적능력의 유사한 영적 근원.
194:2.15 The spirit presence of the Infinite Spirit―the universal spirit-mind of all creation, the spiritual source of the intellectual kinship of all progressive intelligences.
4. 우주의 아버지와 창조 아들의 영―진리의 영,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주 아들의 영으로 간주된다.
194:2.16 The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Creator Son-the Spirit of Truth, generally regarded as the spirit of the Universe Son.
5. 무한한 영과 우주 어머니 영의 영―성령(Holy Spirit),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주 영의 영으로 간주된다.
194:2.17 The spirit of the Infinite Spirit and the Universe Mother Spirit-the Holy Spirit, generally regarded as the spirit of the Universe Spirit.
6. 우주 어머니 영의 지성 영―지역 우주의 일곱 보조 지성 영.
194:2.18 The mind-spirit of the Universe Mother Spirit-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7. 아버지(Father), 아들들(Sons), 영들(Spirits)의 영―영에서 태어난 필사자의 혼이 파라다이스의 생각 조절자와 융합한 뒤에, 그리고 나중에 파라다이스 최후 군단에서 신적이고 영화로운 지위에 이른 후에, 그 영역에서 상승하는 필사자가 가지는 새로운 이름의 영.
194:2.19 The spirit of the Father, Sons, and Spirits-the new-name spirit of the ascending mortals of the realms after the fusion of the mortal spirit-born soul with the Paradise Thought Adjuster and after the subsequent attainment of the divinity and glorification of the status of the Paradise Corps of the Finality.
194:2.20 그리고 그렇게 진리의 영이 수여된 것은 상승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을 도우려고 계획된 그 마지막 영 자질을 세상과 민족들에게 가져온 것이다.
194:2.20 And so did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bring to the world and its peoples the last of the spirit endowment designed to aid in the ascending search for God.
3. 오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What Happened at Pentecost)
194:3.1 많은 기묘하고 이상한 가르침들이 오순절 날의 초기 이야기들과 연관되어 있다. 이후 새로운 선생인 진리의 영이 인류와 함께 살게 된 이날의 사건들은 걷잡을 수 없는 어리석은 과격한 감동적 감격이 일어나면서 혼란스럽게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 쏟아지는 영의 주요한 사명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로운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이것들은 모든 다른 신성한 성품의 특질보다 인간이 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신성의 진리들이다. 진리의 영은 주로 아버지의 영 본성과 아들의 도덕적 성품을 드러내는데 관련이 있다. 창조 아들(Creator Son)은 육신 가운데서,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드러냈다; 진리의 영은 마음속에서 사람에게 창조 아들(Creator Son)을 드러낸다. 인간이 그의 삶 속에서 “영의 열매”를 맺을 때, 그는 단지 주님이 땅에서 나타내신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는 하나의 성격자―나사렛 예수―로서 그의 삶을 살았다. 오순절 이후로, 사람에게 깃드는 “새로운 선생”의 영으로서, 주는 진리를 배운 각 신자의 체험 속에서 새롭게 그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194:3.1 Many queer and strange teachings became associated with the early narratives of the day of Pentecost. In subsequent times the events of this day, on which the Spirit of Truth, the new teacher, came to dwell with mankind, have become confused with the foolish outbreaks of rampant emotionalism. The chief mission of this outpoured spirit of the Father and the Son is to teach men about the truths of the Father's love and the Son's mercy. These are the truths of divinity which men can comprehend more fully than all the other divine traits of character. The Spirit of Truth is concerned primarily with the revelation of the Father's spirit nature and the Son's moral character. The Creator Son, in the flesh, revealed God to men; the Spirit of Truth, in the heart, reveals the Creator Son to men. When man yields the "fruits of the spirit" in his life, he is simply showing forth the traits which the Master manifested in his own earthly life. When Jesus was on earth, he lived his life as one personality-Jesus of Nazareth. As the indwelling spirit of the "new teacher," the Master has, since Pentecost, been able to live his life anew in the experience of every truth-taught believer.
194:3.2 인간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진리가 지배하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이 우주 안에서의 개념과 조화시키기가 어렵다. 비방ㆍ거짓말ㆍ부정직ㆍ불의―죄―가 너무 자주 나타난다. 믿음이 결국 악ㆍ죄ㆍ불의를 이길 수 있을까? 그렇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진실과 영이 이끄는 생명존재의 믿음이 항상 정당화되리라는 영원한 증거이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조롱하면서 “하나님이 와서 그를 구원하실지 보자” 라고 말했다. 십자가에 처형되는 그날은 어두워 보였지만, 부활의 아침은 찬란하게 밝았다. 오순절 날은 여전히 밝고 더 기뻤다. 비관적 절망의 종교들은 삶의 짐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한다; 그들은 끝없는 잠과 휴식 속에서 종결되기를 갈망한다. 이것들은 원시적인 두려움과 공포의 종교들이다. 예수의 종교는 허덕이는 인류에게 선포해야 할 새로운 믿음의 복음이다. 이 새 종교는 믿음, 희망, 그리고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
194:3.2 Many things which happen in the course of a human life are hard to understand, difficult to reconcile with the idea that this is a universe in which truth prevails and in which righteousness triumphs. It so often appears that slander, lies, dishonesty, and unrighteousness-sin-prevail. Does faith, after all, triumph over evil, sin, and iniquity? It does. And the life and death of Jesus are the eternal proof that the truth of goodness and the faith of the spirit-led creature will always be vindicated. They taunted Jesus on the cross, saying, "Let us see if God will come and deliver him." It looked dark on that day of the crucifixion, but it was gloriously bright on the resurrection morning; it was still brighter and more joyous on the day of Pentecost. The religions of pessimistic despair seek to obtain release from the burdens of life; they crave extinction in endless slumber and rest. These are the religions of primitive fear and dread. The religion of Jesus is a new gospel of faith to be proclaimed to struggling humanity. This new religion is founded on faith, hope, and love.
194:3.3 예수에게, 필사의 삶은 가장 힘들고, 아주 잔인하고, 아주 쓰라린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이 사람은 믿음, 용기,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변함없는 결심으로 이 절망적인 사역들에 직면했다. 예수는 모든 끔찍한 실체 가운데서 삶을 살고―죽을 때에도―삶을 통달했다. 그는 삶의 해방으로 종교를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의 종교는 또 다른 존재로서의 기다림의 행복을 즐기기 위해 이 삶을 도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수의 종교는 인간이 지금의 육신의 삶을 고귀하게 높이기 위하여 다른 영적 존재의 기쁨과 평화를 제공한다.
194:3.3 To Jesus, mortal life had dealt its hardest, cruelest, and bitterest blows; and this man met these ministrations of despair with faith, courage, and the unswerving determination to do his Father's will. Jesus met life in all its terrible reality and mastered it-even in death. He did not use religion as a release from life. The religion of Jesus does not seek to escape this life in order to enjoy the waiting bliss of another existence. The religion of Jesus provides the joy and peace of another and spiritual existence to enhance and ennoble the life which men now live in the flesh.
194:3.4 종교가 사람들에게 아편이라면, 그것은 예수의 종교가 아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감각을 마비시키는 약을 마시기를 거부했고, 모든 육체에 쏟아진 그의 영은 사람을 위로 이끌고 앞으로 재촉하는, 힘찬 세계적 영향력이다. 앞을 향하는 영적 욕구는 이 세상에 있는 가장 힘있는 원동력이다; 진리를 배우는 신앙인은 이 땅에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혼이다.
194:3.4 If religion is an opiate to the people, it is not the religion of Jesus. On the cross he refused to drink the deadening drug, and his spirit, poured out upon all flesh, is a mighty world influence which leads man upward and urges him onward. The spiritual forward urge is the most powerful driving force present in this world; the truth-learning believer is the one progressive and aggressive soul on earth.
194:3.5 오순절 날에 예수의 종교는 모든 국가적 규제와 인종적 구속을 깨뜨렸다. “주(主)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이다, 이날에 진리의 영은 주(主)가 모든 필사자에게 친히 주시는 선물이 되었다. 이 영은 신자들이 하늘나라 복음을 더욱 효과 있게 전할 수 있도록 자질을 주는 목적으로 부여했지만, 그들은 쏟아진 영을 받는 체험이,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형성하는 새로운 복음의 일부로 착각했다.
194:3.5 On the day of Pentecost the religion of Jesus broke all national restrictions and racial fetters. It is forever true,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On this day the Spirit of Truth became the personal gift from the Master to every mortal. This spirit was bestowed for the purpose of qualifying believers more effectively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but they mistook the experience of receiving the outpoured spirit for a part of the new gospel which they were unconsciously formulating.
194:3.6 진리의 영이 모든 성실한 신자들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영 선물은 사도들에게만 내린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의 정직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위층 방에 모인 120명의 남녀 모두 새로운 선생을 받았다. 이 새로운 선생은 인류에게 수여되었고, 진리를 사랑하는 데 따라서, 그리고 영적 실체를 깨닫고 이해하는 능력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받았다. 마침내, 진정한 종교는 사제들과 모든 신성한 계층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인간 개인의 혼 속에서 그 진정한 표현을 발견한다.
194:3.6 Do not overlook the fact that the Spirit of Truth was bestowed upon all sincere believers; this gift of the spirit did not come only to the apostles. The one hundred and twenty men and women assembled in the upper chamber all received the new teacher, as did all the honest of heart throughout the whole world. This new teacher was bestowed upon mankind, and every soul received him in accordance with the love for truth and the capacity to grasp and comprehend spiritual realities. At last, true religion is delivered from the custody of priests and all sacred classes and finds its real manifestation in the individual souls of men.
194:3.7 예수의 종교는 가장 높은 유형의 영적 성격을 창조하고 그 사람의 신성함을 선언한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유형의 인간 문명을 육성한다.
194:3.7 The religion of Jesus fosters the highest type of human civilization in that it creates the highest type of spiritual personality and proclaims the sacredness of that person.
194:3.8 오순절에 진리의 영이 온 것은 급진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은 종교를 가능하게 했다; 그런 종교는 낡은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다; 늙은이나 젊은이에게 지배되어서도 안 된다. 예수가 땅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시간을 표시하는 닻을 내리기 위하여 고정된 점을 마련해 주며, 한편 진리의 영을 수여한 것은 그가 실천한 종교와 선포한 복음을 영구히 확장하고 끝없이 성장하게 만든다. 그 영은 모든 진리로 안내한다; 영은 끝없이 진보하고 신성하게 펼쳐지는 종교, 확대되고 늘 성장하는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이 새 선생은 진리를 찾는 신자에게 사람의 아들(Son of Man)의 성격과 본성 안에 아주 거룩하게 접혀 있던 것을 언제까지나 펼쳐줄 것이다.
194:3.8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on Pentecost made possible a religion which is neither radical nor conservative; it is neither the old nor the new; it is to be dominated neither by the old nor the young. The fact of Jesus' earthly life provides a fixed point for the anchor of time, while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provides for the everlasting expansion and endless growth of the religion which he lived and the gospel which he proclaimed. The spirit guides into all truth; he is the teacher of an expanding and always-growing religion of endless progress and divine unfolding. This new teacher will be forever unfolding to the truth-seeking believer that which was so divinely folded up in the person and nature of the Son of Man.
194:3.9 “새 선생”을 주신 것과 관련된 징후와 예루살렘에서 모인 여러 인종과 민족이 함께 사도들의 설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예수 종교의 보편성을 말해준다. 하늘나라 복음은 특정한 민족, 문화, 언어와 관련 없이 찾게 된다. 이 오순절 날은 예수의 종교를 물려받은 유대인의 속박에서 해방시키려고 영이 크게 노력했음을 입증했다. 모든 육체에 영이 쏟아지는 이 증명 이후에도, 처음에 사도들은 개종한 사람들에게 유대교의 요구 사항을 강요하려고 애썼다. 바울조차도 이방인을 이 유대 관습에 종속시키려 하지 않아서 예루살렘의 형제들과 다툼이 있었다. 어떤 계시된 종교도 어떤 민족 문화에 젖게 되거나, 아니면 기존의 종족, 사회 또는 경제 관행과 연결되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를 때 온 세계로 퍼질 수 없다.
194:3.9 The manifestations associated with the bestowal of the "new teacher," and the reception of the apostles' preaching by the men of various races and nations gathered together at Jerusalem, indicate the universality of the religion of Jesus. The gospel of the kingdom was to be identified with no particular race, culture, or language. This day of Pentecost witnessed the great effort of the spirit to liberate the religion of Jesus from its inherited Jewish fetters. Even after this demonstration of pouring out the spirit upon all flesh, the apostles at first endeavored to impose the requirements of Judaism upon their converts. Even Paul had trouble with his Jerusalem brethren because he refused to subject the gentiles to these Jewish practices. No revealed religion can spread to all the world when it makes the serious mistake of becoming permeated with some national culture or associated with established racial, social, or economic practices.
194:3.10 진리의 영의 수여는 어떤 형태와 예식과 신성한 장소에도, 그 영이 충분히 나타난 것을 맛본 자의 특별한 행위에도, 달려 있지 않다. 그 영이 위층 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닥쳤을 때, 그들은 말없이 기도에 막 들어갔으니까, 그저 거기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 영은 도시 뿐 아니라 시골에도 내렸다. 사도들이 그 영을 받기 위하여, 몇 년 동안 혼자서 명상하려고 외로운 곳으로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영구히, 오순절은 영적 체험이 특별히 유리한 환경에서 얻는다는 개념을 끊어버린다.
194:3.10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was independent of all forms, ceremonies, sacred places, and special behavior by those who received the fullness of its manifestation. When the spirit came upon those assembled in the upper chamber, they were simply sitting there, having just been engaged in silent prayer. The spirit was bestowed in the country as well as in the city. It was not necessary for the apostles to go apart to a lonely place for years of solitary meditation in order to receive the spirit. For all time, Pentecost disassociates the idea of spiritual experience from the notion of especially favorable environments.
194:3.11 오순절은, 그날 영적으로 부여된 것과 함께, 언제까지나 주(主)의 종교를 물리적 세력에 전혀 의존하지 않도록 해방하려고 고안되었다; 이 새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이제 영적 무기를 갖추었다. 그들은 어김없는 용서, 견줄 데 없는 선의, 풍부한 사랑으로, 나가서 세상을 정복해야 한다. 그들은 선으로 악을 이기고, 사랑으로 미움을 정복하고, 진리 속에서 용감하고 살아있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길 장비를 갖추었다. 예수는 그의 종교가 결코 소극적이 아니라고 이미 추종자들에게 가르쳤다; 제자들은 봉사를 베푸는데, 사랑을 드러내는데, 언제나 활발하고 적극적이었다. 이 신자들은 이제 더 야웨를 “만군의 주(主)”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제 영원한 신(Deity)을 “하나님이요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여겼다. 하나님이 또한 누구에게도 영적 아버지라는 진리를 충분히 깨닫는 데 어느 정도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적어도 거기까지 진보했다.
194:3.11 Pentecost, with its spiritual endowment, was designed forever to loose the religion of the Master from all dependence upon physical force; the teachers of this new religion are now equipped with spiritual weapons. They are to go out to conquer the world with unfailing forgiveness, matchless good will, and abounding love. They are equipped to overcome evil with good, to vanquish hate by love, to destroy fear with a courageous and living faith in truth. Jesus had already taught his followers that his religion was never passive; always were his disciples to be active and positive in their ministry of mercy and in their manifestations of love. No longer did these believers look upon Yahweh as "the Lord of Hosts." They now regarded the eternal Deity as the "God and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They made that progress, at least, even if they did in some measure fail fully to grasp the truth that God is also the spiritual Father of every individual.
194:3.12 오순절은 개인적 상처들을 용서하고, 가장 지독한 불의 한가운데서도 부드러움을 유지하며, 끔찍한 위험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과 관용의 두려움 없는 행동으로 증오와 분노의 악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필사 인간에게 부여했다. 유란시아는 그 역사 속에서 파괴적인 여러 대전쟁의 상처를 겪었다. 이러한 끔찍한 투쟁에 참여했던 모든 가담자들이 패배했다. 오직 한 분의 승자가 있었다; 이 모진 투쟁에서 평판이 높아져 솟아난 유일한 승자가 있었으니―그분은 나사렛 예수였고, 그의 복음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었다. 더 좋은 문명을 세우는 비결은 인간의 형제 사랑, 사랑의 선한 의지와 서로 간의 신뢰라는 주(主)의 가르침 안에서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다.
194:3.12 Pentecost endowed mortal man with the power to forgive personal injuries, to keep sweet in the midst of the gravest injustice, to remain unmoved in the face of appalling danger, and to challenge the evils of hate and anger by the fearless acts of love and forbearance. Urantia has passed through the ravages of great and destructive wars in its history. All participants in these terrible struggles met with defeat. There was but one victor; there was only one who came out of these embittered struggles with an enhanced reputation―that was Jesus of Nazareth and his gospel of overcoming evil with good. The secret of a better civilization is bound up in the Master's teachings of the brotherhood of man, the good will of love and mutual trust.
194:3.13 오순절 전까지, 종교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을 드러냈다; 오순절 이후에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하나님이 또한 사람을 찾고 있고,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내고 나서 그 사람 안에서 거하라고 자신의 영을 보내는 광경이 온 세상에 빛나고 있다.
194:3.13 Up to Pentecost, religion had revealed only man seeking for God; since Pentecost, man is still searching for God, but there shines out over the world the spectacle of God also seeking for man and sending his spirit to dwell within him when he has found him.
194:3.14 오순절에 절정에 이른 예수의 가르침이 있기 전에, 더 오래된 종교들의 교리에는 여자에게 거의 또는 아무런 영적 지위가 없었다. 오순절 이후에, 하늘나라의 형제 단체에서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게 하나님 앞에 섰다. 이렇게 영의 특별한 방문을 받은 120명 가운데 여인 제자가 많이 있었고, 그들은 이 축복을 남자 신도와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 예배 의식을 주관하는 성직을 이제 더 남자가 감히 독점할 수 없다. 바리새인은 “여자나 문둥병자나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계속 감사드릴지 모르지만, 예수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여자는 성에 근거를 둔 온갖 종교적 차별에서 영원히 해방되었다. 오순절은 종족의 특징, 문화의 차이, 사회 계급, 또는 성 편견에 근거를 둔, 모든 종교적 차별을 없애버렸다. 새 종교를 믿는 이 신자들이 “주(主)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하고 늘 외쳤던 것이 당연하다.
194:3.14 Before the teachings of Jesus which culminated in Pentecost, women had little or no spiritual standing in the tenets of the older religions. After Pentecost, in the brotherhood of the kingdom woman stood before God on an equality with man. Among the one hundred and twenty who received this special visitation of the spirit were many of the women disciples, and they shared these blessings equally with the men believers. No longer can man presume to monopolize the ministry of religious service. The Pharisee might go on thanking God that he was "not born a woman, a leper, or a gentile," but among the followers of Jesus woman has been forever set free from all religious discriminations based on sex. Pentecost obliterated all religious discrimination founded on racial distinction, cultural differences, social caste, or sex prejudice. No wonder these believers in the new religion would cry out,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194:3.15 예수의 어머니와 아우가 120명의 신자들 사이에 있었고, 이 보통 제자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또한 쏟아부은 영을 받았다. 이들은 좋은 선물을 동료들보다 더 많이 받지 않았다. 땅에서의 예수의 가족 구성원들에게 특별하게 선물이 내려지지 않았다. 오순절은 특별한 사제직과 신성한 가족에 대한 모든 신념의 끝을 표시했다.
194:3.15 Both the mother and brother of Jesus were present among the one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and as members of this common group of disciples, they also received the outpoured spirit. They received no more of the good gift than did their fellows. No special gift was bestowed upon the members of Jesus' earthly family. Pentecost marked the end of special priesthoods and all belief in sacred families.
194:3.16 오순절 이전에, 사도들은 예수를 위하여 많은 것을 버렸다. 집과 가족과 친구, 속세의 물건과 지위를 바쳤다. 그들은 오순절에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들을 사람에게 줌으로―사람 안에서 살라고 그들의 영(靈)을 보내어―응답했다. 자아를 버리고 영(靈)을 얻는 이 체험은 감정적 체험이 아니었다; 지적으로 자아를 포기하고, 아낌없이 거룩하게 바치는 행동이었다.
194:3.16 Before Pentecost the apostles had given up much for Jesus. They had sacrificed their homes, families, friends, worldly goods, and positions. At Pentecost they gave themselves to God, and the Father and the Son responded by giving themselves to man-sending their spirits to live within men. This experience of losing self and finding the spirit was not one of emotion; it was an act of intelligent self-surrender and unreserved consecration.
194:3.17 오순절은 복음을 믿는 자들 사이에 영적 단결의 부름이었다. 그 영(靈)이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 내려왔을 때, 똑같은 일이 필라델피아와 알렉산드리아에, 참 신자들이 거하는 모든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신자 무리 가운데 오로지 한 마음과 혼이 있었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진실이었다. 예수의 종교는 세상이 일찍이 본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합적인 영향력이었다.
194:3.17 Pentecost was the call to spiritual unity among gospel believers. When the spirit descended on the disciples at Jerusalem, the same thing happened in Philadelphia, Alexandria, and at all other places where true believers dwelt. It was literally true that "there was but one heart and soul among the multitude of the believers." The religion of Jesus is the most powerful unifying influence the world has ever known.
194:3.18 오순절은 개인ㆍ집단ㆍ나라ㆍ종족들의 자기주장을 줄이려고 예정된 것이다. 긴장이 너무 고조되어 이따금 파괴하는 전쟁으로 터져나오는 것은 이 자기 주장의 정신이다. 인류는 오직 영적 접근으로 통일될 수 있고, 진리의 영은 세계의 보편적 영향력이다.
194:3.18 Pentecost was designed to lessen the self-assertiveness of individuals, groups, nations, and races. It is this spirit of self-assertiveness which so increases in tension that it periodically breaks loose in destructive wars. Mankind can be unified only by the spiritual approach, and the Spirit of Truth is a world influence which is universal.
194:3.19 진리의 영이 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받는 자를 오직 하나님의 뜻과 사람들의 평안에 마음을 다하는, 삶의 목적을 표현하도록 인도한다. 이기심이라는 물질적 정신은 영적으로 새로이 내려준 이 사심 없는 영(靈)에 먹혀 사라졌다. 그때에도 지금도, 오순절은 역사 속의 예수가 실제로 체험하는 신성한 아들이 되었음을 가리킨다. 쏟아진 이 영을 받는 기쁨을 인간 생활에서 의식하며 맛보았을 때, 이는 건강을 위한 좋은 강장제요, 지성을 위한 자극이요, 혼을 위한 한없는 에너지이다.
194:3.19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purifies the human heart and leads the recipient to formulate a life purpose single to the will of God and the welfare of men. The material spirit of selfishness has been swallowed up in this new spiritual bestowal of selflessness. Pentecost, then and now, signifies that the Jesus of history has become the divine Son of living experience. The joy of this outpoured spirit, when it is consciously experienced in human life, is a tonic for health, a stimulus for mind, and an unfailing energy for the soul.
194:3.20 기도가 오순절 날에 영(靈)을 데려오지 않았지만, 기도는 각 신자의 특징을 나타내는, 영을 받는 능력을 결정하는 데 많이 관련된다. 기도는 신성한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않지만, 아낌없이 영을 내리도록 아주 흔히 더 크고 더 깊은 길을 파며, 그래서 그 길로, 신실한 기도와 참된 예배를 통해서, 잊지 않고 창조주와 끊임없는 소통을 유지하는 사람의 마음과 혼으로, 신성한 수여들이 흐를 수 있다.
194:3.20 Prayer did not bring the spirit on the day of Pentecost, but it did have much to do with determining the capacity of receptivity which characterized the individual believers. Prayer does not move the divine heart to liberality of bestowal, but it does so often dig out larger and deeper channels wherein the divine bestowals may flow to the hearts and souls of those who thus remember to maintain unbroken communion with their Maker through sincere prayer and true worship.
4. 기독교 교회의 시작 (Beginnings of the Christian Church)
194:4.1 예수가 그렇게 갑자기 적들에게 붙잡히고, 그렇게 빨리 두 도둑 사이의 십자가에 달렸을 때, 사도와 제자들은 완전히 사기가 꺾였다. 체포되고, 묶이고, 채찍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힌 주(主)에 대한 생각은 사도들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과 경고를 잊어버렸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과 모든 사람 앞에서 행위와 말씀이 강한 선지자”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희망했던 대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할 메시아는 도저히 될 수 없었다.
194:4.1 When Jesus was so suddenly seized by his enemies and so quickly crucified between two thieves, his apostles and disciples were completely demoralized. The thought of the Master, arrested, bound, scourged, and crucified, was too much for even the apostles. They forgot his teachings and his warnings. He might, indeed, have been "a prophet mighty in deed and word before God and all the people," but he could hardly be the Messiah they had hoped would restore the kingdom of Israel.
194:4.2 다음에 부활이 오고, 절망에서 벗어나 주(主)의 신성 안에서 그들의 믿음이 회복된다. 거듭해서 주(主)를 만나고 주(主)와 함께 이야기하며, 주(主)는 그들을 올리브산으로 데리고 나가서, 거기서 작별을 고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진리의 영이 와서 능력을 부여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머물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이 새로운 선생이 오고, 그들은 바로 새 힘을 얻어 복음을 전파하러 나간다. 죽어서 패배한 지도자가 아니라, 살아 계신 주(主)를 대담하고 용감하게 따르는 사람들이다. 주(主)는 이 전도자들의 마음 속에 살아 계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지성 안에 있는 교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혼속에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194:4.2 Then comes the resurrection, with its deliverance from despair and the return of their faith in the Master's divinity. Again and again they see him and talk with him, and he takes them out on Olivet, where he bids them farewell and tells them he is going back to the Father. He has told them to tarry in Jerusalem until they are endowed with power-until the Spirit of Truth shall come. And on the day of Pentecost this new teacher comes, and they go out at once to preach their gospel with new power. They are the bold and courageous followers of a living Lord, not a dead and defeated leader. The Master lives in the hearts of these evangelists; God is not a doctrine in their minds; he has become a living presence in their souls.
194:4.3 “그들은 날마다 변함없이 성전 안에서 한마음으로 모였고 집에서 빵을 나누었다. 먹을 것을 기쁨으로, 한마음으로 받았고, 저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사람의 지지를 얻었다. 저희 모두가 영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으며, 믿은 군중은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졌고, 저희 가운데 한 사람도 무엇을 가졌든지 제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함께 썼다.”
194:4.3 "Day by day they continued steadfastly and with one accord in the temple and breaking bread at home. They took their food with gladness and singleness of heart, praising God and having favor with all the people.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spirit, and they spoke the word of God with boldness. And the multitudes of those who believed were of one heart and soul; and not one of them said that aught of the things which he possessed was his own, and they had all things in common."
194:4.4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하늘나라 복음을 나가서 전도하라고 예수가 세웠던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새로운 복음을 가졌다; 그들은 새로운 체험으로 불이 붙었다; 그들은 새로운 영적 에너지로 가득 찼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살아나신 주(主)를 선포하는 것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나사렛 예수, 막강한 행적과 이적으로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이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살해한, 그는, 하나님의 결정된 조언과 선견에 의해 인도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자의 입으로 예언하신 것들을 이루셨다. 하나님이 이 예수를 살렸고, 하나님은 그를 주(主) 그리스도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임을 받고, 아버지로부터 영(靈)의 약속을 받았으므로, 그는 너희가 보고 듣는 영을 퍼부었다. 회개하라, 너희 죄를 씻어내라; 아버지께서 곧 모든 만물이 회복될 때까지 하늘이 마땅히 받아둘 분, 예수, 너희를 위하여 정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이다.”
194:4.4 What has happened to these men whom Jesus had ordained to go forth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They have a new gospel; they are on fire with a new experience; they are filled with a new spiritual energy. Their message has suddenly shifted to the proclamation of the risen Christ: "Jesus of Nazareth, a man God approved by mighty works and wonders; him, being delivered up by the determinate counsel and foreknowledge of God, you did crucify and slay. The things which God foreshadowed by the mouth of all the prophets, he thus fulfilled. This Jesus did God raise up. God has made him both Lord and Christ. Being, by the right hand of God, exalted and having received from the Father the promise of the spirit, he has poured forth this which you see and hear. Repent, that your sins may be blotted out; that the Father may send the Christ, who has been appointed for you, even Jesus, whom the heaven must receive until the times of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194:4.5 하늘나라 복음, 예수가 가르친 말씀은, 갑자기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이제 예수가 살다가 죽고 부활한 사실을 선포했고, 그가 시작한 일을 마치려고 이 세상으로 빨리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전파했다. 그래서 초기 신자들이 전한 소식은 그가 처음에 오셨던 사실에 관하여 전도하는 것, 그리고 그가 다시 오신다는 희망을 가르치는 것과 관련되었고, 그들은 그의 두 번째 오심이 아주 가까이 다가올 사건이라고 생각하였다.
194:4.5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message of Jesus, had been suddenly changed into the gospel of the Lord Jesus Christ. They now proclaimed the facts of his life, death, and resurrection and preached the hope of his speedy return to this world to finish the work he began. Thus the message of the early believers had to do with preaching about the facts of his first coming and with teaching the hope of his second coming, an event which they deemed to be very near at hand.
194:4.6 그리스도는 이제 막 급속히 형성되는 교회의 신조가 되려고 했다. 그는 살아 있고, 사람들을 위해 죽었으며, 영(靈)을 주었고, 다시 오신다. 예수는 신자들의 모든 생각을 채웠고, 하나님과 그밖에 모든 다른 것에 대하여 모든 새로운 개념을 좌우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 예수의 아버지”라는 새 교리에 너무 열중해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아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의 아버지이다”는 예전에 전하던 말씀에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형제 사랑과 전례 없는 선의가 신자들의 이 초기 공동체에서 놀랍게 표현된 것은 참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친교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족 국가에 속하는 형제들의 친교가 아니었다. 그들의 선의는 예수가 수여되었다는 개념에서 태어난 사랑에서 솟아났고, 필사 인간이 형제임을 인식한 데서 생겨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쁨으로 충만하였고, 모든 사람이 예수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에 이끌리는 그러한 새롭고 독특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하늘나라 복음을 위해 그 복음에 관한 살아있는 예증적 해설을 사용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것조차도 인류가 일찍이 알게 된 가장 위대한 종교를 대표했다.
194:4.6 Christ was about to become the creed of the rapidly forming church. Jesus lives; he died for men; he gave the spirit; he is coming again. Jesus filled all their thoughts and determined all their new concept of God and everything else. They were too much enthused over the new doctrine that "God is the Father of the Lord Jesus" to be concerned with the old message that "God is the loving Father of all men," even of every single individual. True, a marvelous manifestation of brotherly love and unexampled good will did spring up in these early communities of believers. But it was a fellowship of believers in Jesus, not a fellowship of brothers in the family kingdom of the Father in heaven. Their good will arose from the love born of the concept of Jesus' bestowal and not from the recognition of the brotherhood of mortal man. Nevertheless, they were filled with joy, and they lived such new and unique lives that all men were attracted to their teachings about Jesus. They made the great mistake of using the living and illustrative commentary on the gospel of the kingdom for that gospel, but even that represented the greatest religion mankind had ever known.
194:4.7 분명, 세상에 새로운 친교가 생겨나고 있었다. “믿은 군중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 빵을 같이 먹고 기도하기를 꾸준히 계속하였다.” 그들은 서로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다;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보살폈다. 그것은 예배할 때뿐 아니라 삶의 친교였다. 그들은 법령에 의한 공동체가 아니었으며, 재물을 동료 신자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 열망에 의한 것이었다. 자기 세대 안에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마치려고 예수가 돌아올 것이라 자신 있게 기대했다. 땅에 있는 소유물을 자진하여 이렇게 나누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의 직접적인 특징이 아니다; 할 일을 마치고 하늘나라를 완성하려고 그가 언제라도 돌아오리라고, 이 남녀들이 아주 진지하고 자신 있게 믿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생각이 모자라는 이 형제 사랑을 좋은 의도로 이렇게 실험한 마지막 결과는 비참했고 슬픔을 낳았다. 수천의 성실한 신자들이 재산을 팔고 그들의 자본이 되는 상품들과 다른 생산적 자산을 처분해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기독교인들의 “똑같이 나누는” 재산은 줄어들어 끝에 이르렀다―그러나 세상은 종말에 이르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안티옥의 신자들은 예루살렘의 동료 신자들이 굶주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다.
194:4.7 Unmistakably, a new fellowship was arising in the world. "The multitude who believed continued steadfastly in the apostles' teaching and fellowship, in the breaking of bread, and in prayers." They called each other brother and sister; they greeted one another with a holy kiss; they ministered to the poor. It was a fellowship of living as well as of worship. They were not communal by decree but by the desire to share their goods with their fellow believers. They confidently expected that Jesus would return to complete the establishment of the Father's kingdom during their generation. This spontaneous sharing of earthly possessions was not a direct feature of Jesus' teaching; it came about because these men and women so sincerely and so confidently believed that he was to return any day to finish his work and to consummate the kingdom. But the final results of this well-meant experiment in thoughtless brotherly love were disastrous and sorrow-breeding. Thousands of earnest believers sold their property and disposed of all their capital goods and other productive assets. With the passing of time, the dwindling resources of Christian "equal-sharing" came to an end - but the world did not. Very soon the believers at Antioch were taking up a collection to keep their fellow believers at Jerusalem from starving.
194:4.8 이 시절에 그들은 주(主)의 만찬을 제정된 방식에 따라서 축하했다. 즉 그들은 친목을 위한 친교적 식사로 모였고, 식사가 끝날 때 성찬을 들었다.
194:4.8 In these days they celebrated the Lord's Supper after the manner of its establishment; that is, they assembled for a social meal of good fellowship and partook of the sacrament at the end of the meal.
194:4.9 처음에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거의 20년이 지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 세례가 신자의 친교에 가입하는 데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아무런 조직이 없었고, 단지 예수를 믿는 형제 단체였다.
194:4.9 At first they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it was almost twenty years before they began to baptize in "the name of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Baptism was all that was required for admission into the fellowship of believers. They had no organization as yet; it was simply the Jesus brotherhood.
194:4.10 이 예수 종파는 급속히 성장했고, 다시 한 번 사두개인들이 그들을 주목했다. 그 가르침 가운데 아무것도 전혀 유대 율법의 준수를 방해하지 않는다고 보고 바리새인들은 그 상황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예수 종파의 지도자들을 감옥에 넣기 시작했고, 이것은 유력한 랍비들 중의 한 사람, 가말리엘의 조언을 받아들이라고 설득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가말리엘은 이들에게 조언하였다, “이 사람들을 멀리하고 내버려두라. 이 회의나 이 일이 사람에게서 생겨났다면 뒤집힐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에게서 생겨났다면, 너희가 뒤집어엎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이 발견되지 않도록 하라.” 그들은 가말리엘의 조언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예루살렘에서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이 뒤따랐으며, 이 동안에 예수에 관한 새로운 복음은 빨리 퍼졌다.
194:4.10 This Jesus sect was growing rapidly, and once more the Sadducees took notice of them. The Pharisees were little bothered about the situation, seeing that none of the teachings in any way interfered with the observance of the Jewish laws. But the Sadducees began to put the leaders of the Jesus sect in jail until they were prevailed upon to accept the counsel of one of the leading rabbis, Gamaliel, who advised them: "Refrain from these men and let them alone, for if this counsel or this work is of men, it will be overthrown; but if it is of God, you will not be able to overthrow them, lest haply you be found even to be fighting against God." They decided to follow Gamaliel's counsel, and there ensued a time of peace and quiet in Jerusalem, during which the new gospel about Jesus spread rapidly.
194:4.11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인들이 큰 무리를 지어 올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만사가 순조로웠다. 로단의 생도 두 명이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헬라파 사이에서 사람을 많이 개종시켰다. 그들이 초기에 개종한 사람들 가운데 스테반과 바나바가 있었다. 이 유능한 그리스인들은 그다지 유대인의 관점을 가지지 않았고, 유대인 형태의 예배와 기타 예식 절차를 잘 따르지 않았다. 이 그리스인 신자들의 행위 때문에, 예수 단체와 바리새인 및 사두개인들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가 종결되었다. 스테반과 그리스인 동료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더 가깝게 전도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 권력자들과 직접 충돌하게 만들었다. 스테반의 한 대중 설교에서, 그가 강연의 못마땅한 부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모든 재판 형식을 걷어치우고, 나서서 그 자리에서 그를 돌로 쳐 죽였다.
194:4.11 And so all went well in Jerusalem until the time of the coming of the Greeks in large numbers from Alexandria. Two of the pupils of Rodan arrived in Jerusalem and made many converts from among the Hellenists. Among their early converts were Stephen and Barnabas. These able Greeks did not so much have the Jewish viewpoint, and they did not so well conform to the Jewish mode of worship and other ceremonial practices. And it was the doings of these Greek believers that terminated the peaceful relations between the Jesus brotherhood and the Pharisees and Sadducees. Stephen and his Greek associate began to preach more as Jesus taught, and this brought them into immediate conflict with the Jewish rulers. In one of Stephen's public sermons, when he reached the objectionable part of the discourse, they dispensed with all formalities of trial and proceeded to stone him to death on the spot.
194:4.12 스테반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 중에서 그리스 거류민의 지도자였고, 이렇게 새로운 신앙의 첫 순교자요, 초기 기독교회를 정식으로 조직하는 구체적 원인이 되었다. 이 새로운 위기로 인하여 신자들은 이제 더 유대 신앙 안에 있는 한 종파로서 계속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불신자들과 따로 독립해야 한다고 모두 찬성했다. 스테반이 죽은 지 한 달 안에,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지도 아래 조직되었고, 예수의 아우 야고보가 그 교회에서 이름으로는 우두머리로 임명되었다.
194:4.12 Stephen, the leader of the Greek colony of Jesus' believers in Jerusalem, thus became the first martyr to the new faith and the specific cause for the formal organization of the early Christian church. This new crisis was met by the recognition that believers could not longer go on as a sect within the Jewish faith. They all agreed that they must separate themselves from unbelievers; and within one month from the death of Stephen the church at Jerusalem had been organized under the leadership of Peter, and James the brother of Jesus had been installed as its titular head.
194:4.13 그리고 나서 유대인들의 새롭고 무자비한 박해가 터졌고, 예수에 관한 이 새로운 종교를 안티옥에서 나중에 기독교라고 불렀으며, 그래서 이 종교를 활발하게 가르치는 선생들은 떠나가면서 예수를 선포하며 제국의 끝까지 갔다. 바울의 시절 이전에, 이 소식을 가지고 가는 주도권은 그리스인의 손에 있었다; 이 첫 선교사들은 후일의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옛날에 알렉산더가 행진한 길을 따라서, 가자와 티레를 거쳐, 안티옥, 다음에 소 아시아를 지나서 마케도니아까지, 그런 뒤에 계속 로마까지, 그리고 제국의 가장 먼 구석까지 갔다.
194:4.13 And then broke out the new and relentless persecutions by the Jews, so that the active teachers of the new religion about Jesus, which subsequently at Antioch was called Christianity, went forth to the ends of the empire proclaiming Jesus. In carrying this message, before the time of Paul the leadership was in Greek hands; and these first missionaries, as also the later ones, followed the path of Alexander's march of former days, going by way of Gaza and Tyre to Antioch and then over Asia Minor to Macedonia, then on to Rome and to the uttermost parts of the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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