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파의 비둘기
김 문 수
마을 뒤로 밋밋이 펼쳐진 산을 갈미봉이라 불렀다. 산의 능선은 꼭 갈매기의 쫘악 펼친 날개 꼬락서니였다. 해서 그 이름이 갈미봉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갈매기 날개 모양의 능선 한복판을 헬리콥터 한 대가 한껏 늑장을 부리며 넘고 있었다.
“이게 뭔 소리여?”
장죽을 길게 늘이고 봉당으로 내려서려던 뒷들댁은 사방을 휘이둘러보았다.
“어디서 명 잦는 소리가 난다지?”
헬리콥터의 고동 소리를 물레질하는 소리로 잘못 들은 뒷들댁은 입에 물린 장죽을 뻑, 뻑, 빨아대며 소리를 찾아 다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때마침, 울 밖을 온통 연분홍 일색으로 뒤덮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살구꽃을 지우며 밀려와서는 수수깡이 바자를 조용히 흔들고 달아나는 바람결에 묻어온 헬리콥터의 고동 소리가 다시 한 번 뒷들댁의 귀에 선명했다. 그제야 뒷들댁은 비행기가 뜬 모양이라는 뒤늦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고개를 잔뜩 꺾어올리고 하늘 구석구석까지 살펴보았으나 늙은 눈엔 그저 뿌우연 안개 같은 것만 서릴 따름, 꺼먹 점 하나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늙었지 늙었어, 쯧쯧.”
뒷들댁의 가래 낀 목소리가 가깝하도록 흔들렸으나 지금 그녀의 말대꾸를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늙은 양주가 조석으로 불편하대서 끼니 때마다 와서 부엌일을 봐주는 아랫마을에 사는 질녀(姪女) 아이가 하나 있긴 했으나 그 아이는 설거지를 끝내기가 무섭게 뿌르르 제 집으로 달아났고, 영감은 영감대로 힘에 겨운 지게질이 탈이 되어 며칠 전부터 허리가 결린다고 꼼짝을 못 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절간도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원, 망할 것들 같으니라구, 쯧쯧쯧…….”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한갓 버릇일 뿐이었다. 하기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이런 원망섞인 푸념은 으레 두 아들놈이 눈앞에 선히 버터어야만 내뱉던 것이었다. 이런 뒷들댁의 기척이라도 알아차렸음인지 지붕에 올라있던 비둘기 떼가 요란한 날개짓과 함께 마당을 허옇게 뒤덮으며 쏟아지듯 내려앉았다.
“이런 망한 정신 좀 보라지. 글쎄 이런 정신머리가 있나.”
뒷들댁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봉당으로 되올라섰다.
방에서 나올 때부터 줄곧 보리를 한 줌 쥐고 나가야겠다고 벌려놓고선, 비둘기가 눈에 띈 지금에야 깜짝 잊었던 생각을 돌이킨 것이었다.
“글쎄 이런 망한 정신머리가 있나.”
방으로 들어선 뒷들댁은 누운 채로 이쪽을 돌아보는 영감의 눈길과 마주치자 다시 이렇게 중얼거리며 윗목으로 가서 시렁에 매달렸다. 그러나 키가 모자라 냉큼 찾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까치발을 만들고 굽은 허리를 폈다. 아무래도 키가 모자랐다.
“뮐 찾는겨?”
영감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글쎄, 이런 정신머리 좀 보라니께. 일끈(일껏) 비둘기 모시(모이)를 갖구 나간다구 해놓구설랑…….”
“그까짓 건 왜 키우능겨, 성가시게시리!”
볼멘 말투완 달리, 영감은 냉큼 베고 있던 목침을 뒷들댁 쪽으로 밀어 보냈다. 허리가 아픈 자기는 일어날 수가 없으니 목침이라도 밟고 서서 키를 키우라는 뜻이었다.
“내 원, 비둘기라면 그렇게 사죽을 못쓰는 건 생전 처음 본다니께.”
영감의 투덜대는 소리엔 아랑곳도 않고 뒷들댁은 쪽박에 보리를 절반이 실하게 담아 내렸다. 그리곤 목침을 집어 영감에게 되베어주곤 방을 나왔다.
“사내들이란 백지 뭘 알아야 말이지. 쯧쯧쯧.”
마당에 나와서야 비로소 영감을 향해 이렇게 말대꾸를 보내는 것이었다.
뒷들댁은 마당 한가운데에 보리를 쫙 뿌려주었다. 그리곤 모이를 둘러싸고 허이옇게 모여든 비둘기 떼를 지켜보며 만족스런 얼굴이 되어 흐물흐물 웃음짓는 것이었다.
“허, 고놈들.”
뒷들댁은 양지바른 곳을 찾아 쪼그리고 앉아 비둘기 떼에게 눈을 돌릴 줄 몰랐다.
어느 누가 본대로 비둘기들이 모이를 줍는 꼴이란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뒷들댁에겐 그것이 더없는 즐거움이었다. 쉴새없이 대구 고개를 주악거리는 품이라든지 잽싼 걸음걸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녀는 그만 비둘기들이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여워 죽겠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즈음. 뒷들댁의 단 한 가지 낙(樂)이란 이렇게 비둘기를 지키는 것뿐,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 하기야 뒷들댁도 애초부터 이토록 비둘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비둘기란 말할 수 없이 귀찮기 만한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는 딴판인 것이다.
비둘기마냥 정답던 두 아들을 싸움터에서 잃은 그녀는 아들을 거느리고 있듯, 그렇게 비둘기를 키우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것말고도 뒷들댁이 비둘기라면 남달리 끔찍스레 여기는 데는 또 한 가지 다른 까닭이 있었다. 두 아들놈들이 그렇게도 정신 못 차리게 좋아하던 비둘기를 정성스레 키우기만 하다면 그 보람으로 두 아들이 시퍼렇게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도 있는 것이다. 작은 놈인 만식(萬植)이도 제 형 못지않게 비둘기를 좋아했지만 큰놈 만복(萬福)이는 비둘기라면 정말 죽고 못 살았다. 애당초 비둘기를 갖다 키우기 시작한 것도 그 놈이 읍내 농업학교 다닐 때의 일이었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어두워서 돌아와 본 일이 없는 만복이가 그날은 까만 밤중에야 돌아왔다. 책보를 끼지 않은 다른 쪽 옆구리에도 무엇인가 소중하게 끼어 있는 것이 있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보기만해도 어지러울 지경으로 칠해진 상자였다. 그 상자 속에는 비둘기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한 쌍이라 했다. 그 한 쌍이 이태도 채 못 되어 마당을 온통 뒤덮을 수 있도록 불었다. 그런 것이 만복이에겐 여간 대견스럽지 않은 모양이었으나 뒷들댁에겐 더없이 성가시기만 했다. 보리 때와 가을 추수 때면 더욱 그랬다. 멍석에 곡식을 널어놓기가 무섭게 마구 해집어놓곤 해서 무던히도 뒷들댁의 성화를 바쳤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껏 끓어오른 역정은 모두 아들놈에게 뒤집어 씌워지곤 했다. 난리(6·25)가 터진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 해 여름, 큰놈 만복이가 학병(學兵)으로 뽑혀갔고 그런지 두 달도 채 못 되어 또 작은놈이 의용군이라는 것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 해 겨울이었던가, 그 많던 비둘기 떼가 건사해줄 손이 없었던 탓인지 시나브로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집 안에는 비둘기라곤 씨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노상 그렇게 되길 바랐던 뒷들댁의 마음은 달라졌다. 무작정 시원하기만 하던 마음이 곧 서운한 마음으로 바뀐 것이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어도 두 아들놈은 깜깜 소식이었다. 필경은 그 엄청난 포탄 속에 휩쓸려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뼈가 깍이는 듯했다.
‘그 녀석들이 억세게도 비둘기를 좋아했지.’
없어진 비둘기들에 대한 생각도 이제는 단순한 서운함만은 아니었다.
‘그때 녀석들이 하고 싶은 짓이나 실컷 하게 둬둘걸.’
앉으나 서나 아들놈들이 키우던 비둘기를 성가시게만 생각했던 지난 일들이 늘 이렇게 마음에 걸리기만 했다. 늙은 부모뿐인 친정이 못내 걱정스러워서 틈틈이 드나드는 읍내 딸에겐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서서 그 마음 걸리는 얘길 늘어놓으면서 눈물을 질금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읍내 딸이 어떻게 구했는지 비둘기 한 쌍을 들고 왔다. 그 비둘기를 받아들었을 때 뒷들댁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이 컸다. 아들이라도 살아 돌아온 듯싶었던 것이다. 문득 송 구장네 일이 생각났다. 죽었노라고 유골까지 돌아온 송 구장네 막내아들이 거짓말처럼 살아서 돌아왔던 일이었다. 비록 오늘, 내일로 그렇게 빨리 돌아오진 않는다 해도 두 아들놈들이 비둘기를 키울 때처럼, 이 한 쌍의 비둘기가 온통 마당을 뒤덮을 수 있게 늘어나면 그때까진 꼭 두 아들이 시퍼렇게 살아서 돌아오리라 싶었던 것이다.
국, 구욱, 구룩, 국, 구욱…….
비둘기의 울음소리에 뒷들댁은 얼핏 허망한 생각에서 깨어나 다시 쪽박에 담긴 보리를 모두 털어 쥐고서 마당 가운데로 휙 뿌려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순식간에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그놈들 참 먹성도 좋지, 하마 다 처먹구…….”
비둘기들은 아무래도 냉큼 양이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연신 구룩거리며 모이를 찾기에 바빴다. 내키는 마음대로라면 보리를 한 줌 더 갖다 뿌려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뒷들댁은 양지 쪽에 쪼그리고 앉은 채 일어서질 않았다. 영감의 핀잔이 듣기 싫었던 것이다.
‘사람 먹을 곡식도 없는데 그깐 비둘기가 뭐라고…….’
보리를 가질러 다시 방으로 들어선다면 영감은 필경 이런 핀잔을 해댈 것이다.
‘사내들이야 뭘 알아야지…….’
뒷들댁은 모이를 찾노라 쑤알거리며 마당 구석구석까지 헤집고 다니는 비둘기들이 안쓰럽게 생각되자 영감을 향해 눈을 홀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영감에 대한 역한 마음이 일자,
“우여, 워잇. 이 녀석들아 좀 있다 또 줄게시니 그만들 나가 놀거라.”
눈에 띄는 대로 새끼오라기를 주워들고 비둘기를 후렸다. 이렇게 후리는 시늉을 해보이기가 무섭게 비둘기들은 푸득푸득 잽싼 날개짓을 하며 다시 지붕 위로 날아가버렸다.
“원 못난이들, 시상(세상)에 겁낼 것두 많지.”
뒷들댁의 본심은 비둘기 떼가 언제까지라도 눈앞에 있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놈들은 통 눈치도 없는 것이었다.
“무정한 놈들…… 겁두 많지.”
뒷들댁은 공연히 왈칵 서러운 생각이 들어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었다.
꾀죄죄하니 땟국에 절은 옷고름으로 손가락을 싸서 눈두덩을 닦고 있던 뒷들댁은 난데없는 소리에 털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할머니’ 라고 들은 것도 같고 ‘어머니’라고 들은 것도 같았다. 눈을 키워 사립부터 살폈다. 웬 여인네가 흐릿한 눈길에 잡혔다. 사립문에서도 한참 떨어진 거리였다.
“망할년 같으니라구 쯧쯧.”
뒷들댁은 또 못마땅한 얼굴을 지어 눈길을 거두며 혀를 찼다. 지금 저만큼 올라오고 있는 것은 보나마나 윤 노인네 둘째 딸일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보리쌀은 돌절구라야 잘 벗겨진다면서 때만 되면 노상 올라와서 수다를 떨고 가는 윤 노인네 둘째 딸. 무엇인가 머리에 이고 있는 푼수로 봐도 윤 노인네 둘째 딸이 절구질거리를 이고 오는 것이 분명했다. 뒷들댁은 노상 그 젊은것이 마땅치 못했다. 언젠가 한 번은,
“할먼네는 내외할 총각이 없어 드나들기가 좋아유.”
이렇게 버릇없이 지껄였던 일이 있었다. 사실 크게 생각해서, 젊은 것이 아직 철이 없어 그렇다고 홀려버리면 그만이기도 했지만 뒷들댁은 그 말이 여간 노엽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아들놈들이 싸움터에 끌려간 채 소식이 없어 뼈가 깎일 판인데 아무리 철이 없기로 그런 말버릇이 어디 있으랴 싶었다.
“저년은 언제든지 버르장머리 없이 굴드라I
뒷들댁이 이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차고 있는데,
“할머니!”
이번엔 앳된 쇳소리가 쨍 귓전을 흔들었다. 사립문 안으로 웬 코흘리개 사내애가 쪼르르 달려오며 지른 소리었다. 그제야 그놈이 읍내 외손자인 것을 알아차리고 뒷들댁은 벌떡 일어섰다. 이때 방문이 벌컹 열리며 뭐라고 묻는 영감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이 녀석 이럼(이름)이 뭐드라?”
뒷들댁은 우선 달려드는 외손자의 손목부터 잡고 보았다.
“어머님.”
얼핏 보아도 힘에 겨워보이는 보퉁이를 인 딸이 뒤이어 들이닥쳤다.
“돌담이지 뭐여, 할머닌 바보여, 그때두 알켜줬는데.”
어린것이 때때거리며 치맛자락에 감겼으나 뒷들댁은 허둥지둥 딸에게로 달려가며,
“어짠 일이냐, 응? 그 짐, 이리다구.”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괜찮아유.”
“글쎄 니가 어짠 일이냐? 그거 이리줘.”
“어먼님은 못 드셔유, 무거워서.”
“니가 어짠 일루 이렇게 갑자기…….”
뒷들댁은 딸의 뒤를 바싹 따르며 반갑다는 말을 자꾸만 웬일이냐고만 물어 대는 것이었다.
“이게 뭔 소리여 ?”
“뭐가유?”
“아까부터 명잦는 소리가 들려.”
“비행기 소리유.”
딸은 하늘을 가리켰다. 뒷들댁은 그제야 열린 방문 밖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나 웬 비행기냐는 듯,
“평난(平亂)됐는데 비행기가 뭐할라고 댕기지?”
했다. 만나기만 하면 아들 타령인 그녀를 위안하기 위해 ‘이제 평난이 됐으니 댁 아드님도 멀잖아 돌아올 것’ 이라고 한 구장의 말을 뒷들댁은 꼭 믿고 있는 것이었다.
“평난은 무슨 평난이 됐다구 그래유.”
“구장이 그라던걸.”
이때 비행기의 고동 소리가 갑자기 커지며 얕게 뜬 헬리콥터가 열려진 방문을 통해서 내다보였다.
“또 난리가 난 모양이지?”
이번엔 뒷들댁의 눈에도 얕게 떠 날아가는 헬리콥터가 보였던 것이다.
“아니유, 용고개 밑에 예비훈련소 터 닦느라구 그라는 거유.”
“무슨 터를 닦어?”
“훈련소 말이여.”
“훈련소라니?”
“저런 숙맥같으니라구. 군대 키우는 데가 훈련소지 뭐여.”
듣고 있기에도 답답하다는 듯 영감이 불쑥 얘기에 끼여들며 내뱉는 핀잔이 었다.
“구장 말로는 평난됐다던데 군대는 왜 키울라고…….”
“평난된 게 아니라 휴전한 거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지금은 싸우지 않구 쉬구 있는 거유.”
“쌈두 쉬었다 하나?”
“그럼유.”
“왜 ? 대통령이 쉬었다 하랬나?”
딸은 어머니의 말에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쉬라고 한 게 아니구…….”
환하게 다 아는 얘기지만 이런 어머니에게 간단히 깨우쳐줄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얘길 딴데로 돌리기 위해 딸은,
“얘, 넌 거기서 뭘하는 거냐?”
공연히 밖에서 잘 놀고 있는 아들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놈은 제 어머니의 말에는 아랑곳도 않고 봉당에서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너 그거 가만두지 못할래 엉?”
딸은 다시 버력 소리를 내질렀다.
뒷들댁도 고개를 빼어 밖을 내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 외손자 녀석이 만지며 놀고 있는 것은 비둘기가 아닌가? 글쎄 그 날랜 비둘기를 또 어떻게 붙잡았는가 말이다. 더구나 그 비둘기를 새끼로 묶어놓고 욕을 뵈고 있으니 말이다.
“아서 ! 이놈, 그 비둘기 풀어놔.”
뒷들댁은 급한 마음에 소리부터 질러댔다.
“비둘기 아니유.”
“그럼?”
“집에서 가져온 병아리유.”
“병아리?”
“예. 허리 편찮으신 데는 횡계닭이 좋대유.”
영감은 흐뭇한 마음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어짠 병아리가 꼭 비둘기같구나.”
뒷들댁이 이렇게 말하며 놀란 마음을 풀고 있는데 어느새 달려왔는지 외손자가 그 병아리를 품에 끼고 와서 까불어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바보여, 비둘기배끼 (밖에) 모르구. 그래 이게 비둘기여? 병아리지.”
“옳지, 그래 니 말이 맞다. 할미가 눈이 어두워서 그랬지.”
뒷들 이 이렇게 응석을 받아주자 외손자 녀석은 더욱 신바람이 나서,
“널, 비둘기란다. 할머니 눈 썩었다, 썩었어! 콕 찍어라, 콕!”
그 잿빛 병아리의 부리를 얼굴로 바싹바싹 들이대며 까부는 것이었다.
“너, 이놈 새끼! 왜 까부니? 어디 한번 맞아볼래? 엉?”
딸이 외손자의 품에서 묶인 병아리를 휙 채뜨려 봉당에다 놓고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그러자 어린것은 금방 양볼이 딴딴하게 부어가지곤 바람벽 에 기대서서 등을 비비작거리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왁, 울음보를 터뜨릴 기세였다.
“아가, 꼬까에 흙 칠할라.”
“…….”
“아이 착하지, 일루(이리로) 온.”
뒷들댁의 부드러운 소리에 외손자는 대답을 하진 않았으나 조금은 성깔이 누그러졌음인지 금세 부어올랐던 볼이 풀리는 것이었다.
“아가, 너 이럼(이름)이 뭐랬지?”
“내가 뭐 애긴가?”
“그럼?”
“돌식이가 애기지.”
녀석은 제 아우인 돌식이가 아기라는 소리를 들어야 옳다는 생각인 것이다.
“옳지, 할미가 또 잘못했구나I
“그때두 알켜 줬는데…….”
언젠가 제 어머니를 따라와 이름이며, 주소, 나이…… 할 것 없이 모조리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서 외워댄 기억이 아직도 이 어린것에겐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할민 늙어서 등신됐다.”
“돌남이지 뭐여.”
“응?”
“자앙, 도올, 나암.”
귀가 먹먹하도록 소리를 질러놓곤 할머니의 얼굴 찡그린 꼴이 좋다고 손뼉까지 치며 깔깔거리는 외손자를 멍청하니 바라보고 있던 뒷들댁은, 문득 이런 재롱꾼이라도 하나 데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저 그녀 자신을 더욱 서글프게 만 들었을 뿐이었다.
“옳지, 돌냄이랬구나.”
“돌냄이가 아니구 돌남, 돌남.”
“그래 돌남, 나이는?”
녀석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다 펴고 왼쪽을 한 개만 펼쳐보이는 것이었다.
“학교에는 언제 가지?”
“내년에.”
“옳지, 참 착하구나.”
녀석은 이제 좀전에 제 어머니에게 꿀밤 얻어먹은 것 같은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학교 댕기면 가방 사준댔어, 엄마가.”
“그래, 돌냄인 후제 커서 뭐가 될래?”
“군인.”
“군인이 뭐지?”
녀석은 까르르 웃고 나서,
“할머닌 군인도 모른다. 칼 차고 총 쏘는 게 군인이지 뭐여!”
손은 칼과 총을 다루는 시늉을 냈고 발은 땅이 꺼지라고 탕탕 구르며 걷는 시늉을 했다. 뒷들댁은 그제야 군인이라는 말귀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그런 병대는 못쓴다.”
“병대가 뭐여?”
이번에는 어린것이 병대라는 말귀를 냉큼 알아듣지 못했다.
“칼 차고 총 쏘는 사람.”
“왜?”
“그런 병대는 나쁜 거여.”
“왜 나빠?”
“응?”
여태까지 제 놈의 말끝마다 추켜세워주곤 하던 할머니가 이번만은 어쩐 일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키운 채 영문을 몰라했다.
“글쎄, 칼 차고 총 쏘는 병대는 못써!”
“왜?”
“누가 묻거든 면장한다고 해야 착한 사람이지.”
“면장이 군인보다 더 높아?”
“아 ㅡ 암.”
그제야 뒷들댁은 흡족한 얼굴이 되며 흐물흐물 웃음짓는 것이었다.
“얼마나?”
“하늘보다 더 높아?”
녀석은 할머니의 대답이 냉큼 떨어지지 않자 양팔을 크게 휘저어 둥그런 원형을 그리며 이렇게 때때거리는 것이었다.
“암, 높구말구.”
“그래두 난 칼 차고 총 쏘는 게 더 좋아.”
끝내 군인이 더 좋다는 외손자를 바라보는 뒷들댁의 얼굴엔 알 수없는 어두움이 드리워지는 듯했다.
이 때였다.
콰, 콰광, 우르르…….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한 난데없는 폭음이 일었다.
순간, 맥을 놓고 있던 뒷들댁은 필경 또 난리가 터진 모양이라는 엉뚱한 생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자 옆에 섰던 외손자를 와락 쓸어안았다.
쾅, 콰르르.
또다시 폭음이 일면서 바람벽이 부르르 떨었다. 뒷들댁은 틀림없이 난리가 터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쩐지 오늘따라 비행기가 자주 뜨고 하더라니. 뒷들댁의 생각이란 이런 것이었다.
뒷들댁은 문득 비둘기들이 염려스러워졌다. 큰일이라 싶었다.
“이놈들이 어딜 갔어!”
“누가유?”
그러나 뒷들댁은 비척비척 일어서며 봉당으로 내려설 뿐 딸의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겁 많은 놈들이…….”
“훈련소 터 닦는 데서 남포를 놨내비유.”
“그런 모양이구먼.”
영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뒷들댁만은 필시 전쟁이 터진 모양이라는 변함없는 생각으로,
“비둘기들이 맬짱(모두) 어디 갔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맨발인 채 마당으로 내려서서 지붕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나 비둘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이 겁 많은 놈덜이…….”
“원 걱정두 팔자지!”
영감이 뒷들댁에게 이렇게 핀둥이를 했으나 그녀는 그 말에 아랑곳도 않고 사립 쪽으로 비척거리며 나가서 사방으로 눈을 주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비둘기는 보이지 않았다.
“구우, 구우, 구우…….”
가까스로 목청을 돋구어 이렇게 비둘기 떼를 불러댔으나, 때마침 잇달아 터지기 시작한 남포의 폭음에 그 소리는 힘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1961년 〈충청일보〉
2016년 12월 28일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