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하지만 이 바람 속엔 차가운 기운이 없다. 옷깃을 푼 채 마음 놓고 바람을 맞
을 수 있게 한다.
마당에 나서니 여기저기 노란 민들레의 얼굴들이 보인다. 꽃샘추위에 땅 속을 비집고 숨어
있던 얼굴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하나하나 들여다 보며 인사를 한다. 그러다가 옆에서 조
그마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끼어드는 아기 꽃을 만난다. 그러고 보니 이 아기 꽃
들은 초록의 싱싱한 이파리들을 데리고 지천으로 깔려 있다. 이들에겐 ‘아기 별꽃 무리’라
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작은 아기 별꽃은 혼자 있는 것 보다 이처럼 무수히 많은 꽃들이 함
께 모여 시냇물처럼 흐르는 것이 더 아름답다. 마치 은하수와 같다. 하긴 이 세상에, 이 우
주에 따로 혼자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다들 서로의 배경이 되어 주며 무엇인가와 어울려
있다.
이 작은 은하수 사이사이에는 키 크고 가냘픈 허리의 냉이 꽃들이 서 있다. 하얀 불꽃놀이
를 연상케 하는 족두리를 쓰고 바람에 수줍은 고갯짓을 하고 있다.
향나무 잎이 봄의 햇살을 받아 더욱 화사하고 싱그러운 초록이 되었다. 이파리를 이룬 세
포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이 세포는 하나의 나라와 같다. 그 속을 들여다보
면 정부도 있고 기업도 있으며 노동자 공무원 무역업자도 있다. 노약자도 있고 도둑도 있고
의사도 있다. 어쩌면 나무나 꽃도 있을 법하다. 학창시절 작은 세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
며 느꼈던 경이가 다시금 떠오른다.
향나무 한 그루는 도대체 몇 개의 나라로 이뤄져 있을까? 또 인구는 얼마나 될까?
‘이제 보니 나는 무딘 눈으로 별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향나무에서 작은 생명체들의 수런거림이 들리는 듯 하더니, 풀잎에서도, 꽃잎에서도, 흙 속
에서도, 돌덩이에서도...... 온 천지에서 소곤소곤 소란이 일어난다. 내 안에서도 숙덕숙덕
소리가 들린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한꺼번에 일어나 반갑다고 인사하는 것 같다. 별들
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나도 또한 별이다.
우리 별들은 서로의 전생을 품고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나를 이루는 원소와 정기가 이
아름다운 별들에게 가고 있다는 것, 이 아름다운 별들을 이루는 원소와 정기가 나에게로 오
고 있다는 것은 무한한 행복이다.
나의 빛이 더욱 가볍고 투명해져서 지금은 가려져 있는, 밤에 뜨는 별들 사이로 순간 날아
오를 때 나를 이루던 원소와 정기가 하나도 남김없이 낮에 뜨는 별들 속으로 흐르리라는 생
각은 더욱 나를 즐겁게 한다.
첫댓글 자연 속에서 맘껏 자연과 친구가 된 당신은 무척 행복하군요.
신희의 목소리를 여기서 들으니 참 행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