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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출 33:18-23절
제 목 :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일 시 : 2018. 8. 1.
출33:18-23/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히 베푸느리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만 있다면 보고 싶습니다. 모세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요구했습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라고 했습니다. 주의 영광이란 지금까지 나타난 바 있는 임시적이고 부분적인 영광의 모습(가시떨기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영광과 같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과 본체의 모든 것이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단지 그 영광의 잔영만을 보여 주셨습니다(23절). 그러나 그렇게 하신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한계성을 감안한 은혜스런 조치였습니다(20절). 죄성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육체가 감당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그러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선한 것이란 하나님 자신의 본체적 속성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를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들어내어 보여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고 했습니다. 반포하다란 카라라고 하는데 선언하다, 선포(공포)하다라는 뜻으로 자신을 (공식적으로)드러내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리라 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거룩성과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특성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곧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셔서 자신을 알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은혜를 베풀다(be gracious)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하난은 호의를 베풀다, 은혜롭게 대하다 라는 뜻으로 윗 사람이 아무런 자비도 요구치 않는 아랫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베푸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은혜를 받는 사람보다는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께 더 강조점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서는 은혜를 베풀다(하난)이라는 동사의 주어가 대부분 하나님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사로부터 많은 사람의 이름들이 파생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요하난(남자 이름)과 한나(여자 이름)라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서구의 이름 중에 죤(John), 요한(Johann), 쟝(Jean), 얀(Jan), 후안(Jaan) 등은 요하난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앤(Anna), 낸시(Nancy)등은 한나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했는데 자비를 베풀다, 측은히 여기다라는 뜻의 동사 라함의 기본 의미는 귀여워하다, 사랑하다입니다. 그래서 선지사 이사야는 젖먹이에 대한 어미의 사랑을 언급할 때 이 단어(라함)를 사용하였으며, 시편 기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리킬 때 이 단어(라함)를 사용하였습니다(시103:13).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1)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과 맺고 있는 강한 결속의 개념(시103:13)과 (2) 본절과 같이 무조건적 사랑의 개념을 합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항상 사랑스러운 은혜를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죄인된 인간이, 즉 타락 후 죽을 수 밖에 없는, 육신을 덧입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본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 거룩하신 영광의 빛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딤전6:16).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 라고 고백한 사실(사 6:1-5)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을 본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 표현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 혹은 그 상징적 형태를 보았다는 뜻이지 결코 하나님의 본체(18절)를 보았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본체를 본적이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사자)나 하나님의 영광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영광이 주로 구름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에 구름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항상 하나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나 하나님의 상징적인 형태를 보는 것조차도 그냥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장소를 보여 주시면서 거기에 서면 하나님의 뒷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안전하게 볼 수 있는 그 장소는 어떤 장소입니까? 바로 반석입니다. 그래서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곁에 있는 한 장소는 바로 반석입니다. 반석이란 쭈-르 라고 하는데 절벽, 바위, 둥근 돌, 상징적으로 피난처라는 뜻입니다. 찬송가 488장 1절 가사를 보시면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후렴, 주 나의 반석 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굳건한 반석이라는 찬송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곁에 있는 한 장소가 바로 반석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고전10: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여행할 때 항상 그들을 따라 다니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마를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쳤을 때 반석이 갈라져서 물이 솟아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셨습니다.
출17:6/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했습니다. 호렙산은 여호와의 산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산인데 거기에 반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말라서 물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은 호렙 산에 있는 반석, 즉 그들을 따라 다니는 반석을 가리키면서 그 반석을 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그 반석은 다름 아니라 그들을 따라 다니는 반석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20:11/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시면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셨던 내용이 나옵니다.
요4:10-1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영원한 구원이 생수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셨던 그 생수는 곧 예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수를 마시면서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인 줄 몰랐습니다.
시18:46/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라고 했으며, 시77:15/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라고 했고, 시77:20/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시94: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라고 했으며, 시18: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32:2/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고 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반석 되시고 피난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32:2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을 가리켜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이 반석에서 솟아나는 샘물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반석이십니다. 동시에 피난처가 되십니다.
목마른 사람들에게는 생수를 주시는 반석이 되시고 광풍과 폭우와 같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대피하려는 사람에게는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 곁에는 한 장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는 반석이 있습니다. 그 반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다니는 반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반석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구원의 생수를 제공하시는 깨어진 반석이시며, 우리는 재앙과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주시는 피난처가 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의 일 부분이나 하나님의 뒷모습만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은 반석 사이에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반석 위에 섬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세처럼 반석 위에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감사한 것은 반석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 다녔던 것처럼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부르면 언제든지 만나 주시고, 우리가 찾으면 언제든지 찾은바 되시고, 우리가 두드리면 언제든지 열어 주시는 반석이십니다. 반석 대신 예수님 위에 서십시오. 예수님만을 바라 보십시오. 피난처이신 예수님 안에서 숨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반석이십니다. 예수님만 바라 보면 됩니다. 예수님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구원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요 부요한 자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 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