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생활사
요즘 도심을 벗어나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멧돼지고기 전문음식점 간판을 흔히 보게 된다. 계속되는 밀렵과 산림 훼손으로 야생의 멧돼지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지만 멧돼지와 집돼지를 교배시켜 생산된 가축화한 개량 멧돼지를 기르는 농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재래종 집돼지의 원조로 알려진 우리나라 멧돼지는 몸 길이 약 1.5m, 빛은 검은색 또는 검은 갈색이며, 집돼지보다 주둥이가 길고 뾰족하다. 아래턱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밖으로 내밀어 적을 공격하거나 먹이를 찾기 위해 땅이나 나무를 파고 뒤집는데 사용한다.
멧돼지는 정수리에서 등줄기로 길고 검은색의 갈기털이 났는데 성이 나면 빳빳하게 일어난다. 새끼는 다람쥐처럼 머리에서 꼬리 방향으로 10개 내외의 흰색 줄무늬가 있으나 6개월 가량 지나면 없어진다.
수컷은 평소 혼자 생활하다가 교미기가 되면 여러 암컷들과 어울리며, 초겨울에 교미를 하여 3월말~4월초에 한 배에 10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멧돼지는 성깔이 신경질적이고 경계심이 강하며, 후각이 무척 발달해서 반경 500m 이내의 물체도 식별해 낼 정도다. 동이 틀 무렵에 주로 활동하고 낮에는 휴식을 취하다가 해가 질 무렵에 다시 활동한다.
멧돼지는 잡식성 동물로 먹성이 엄청나다. 도토리를 특히 좋아하고 고사리, 이끼, 죽순, 버섯, 나무뿌리와 개구리, 들쥐, 지렁이, 새의 알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이따금 허기진 녀석들은 농가 근처까지 내려와 과일이나 고구마 같은 농작물을 축내어 산골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13세기에 발간된 《향약구급방》에서는 '도토리'를 '돝의밤'[猪矣栗]으로 적고 있다. '도토리'라는 우리말이 '돝알이', 즉 산에 사는 멧돼지가 즐겨 먹는 열매라는 뜻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덥수룩한 모습과 흉폭한 성질이 산적 두목을 연상시키는 멧돼지는 호랑이만큼이나 민첩하게 행동하며 헤엄도 잘 친다. 특히 송곳니를 이용한 공격력은 지금 우리 나라 포유동물 중에서는 천적이 없을 정도다. '저돌적(猪突的)'이란 말의 어원은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돌진하는 멧돼지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한자 속의 멧돼지
한자의 '豕'(돼지 시)는 멧돼지의 머리를 나타내는 '一'과 네 발 모양과 등줄기의 긴 갈기털 및 꼬리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에서 비롯되었다.
'逐'(쫓을 축)은 豕(멧돼지)와 '나아가다'는 뜻의 글자를 합친 글자인데, 주위를 에워싸고 멧돼지를 쫓는 멧돼지 사냥에서 비롯되어 '쫓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豪'(호걸 호)는 豕(멧돼지)와 高(고)가 어우러진 글자로 멧돼지의 갈기가 두드러지게 긴 모양에서 비롯되었다.
호랑이는 멧돼지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이에 따라 '劇'(심할 극)은 호랑이(虎)가 멧돼지(豕)를 덮치면서 격렬하게 다투는 옆에 '刂'[칼]을 붙여서 '심하다'는 뜻을 갖게 되었고, 점차 '재미있는 연극'이란 뜻도 갖게 되었다.
옛날 중국에서는 뱀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무서운 독사도 잘 잡아먹는 멧돼지(豕)를 길들여 사람이 사는 집(宀)에서 기르게 되었고, 돼지를 기르는 곳이 바로 사람이 사는 '집(宀+豕=家)'을 뜻하게 되었다. 멧돼지는 거친 털과 가죽, 더구나 두꺼운 비계층 때문에 독사에게 쉽게 물리지 않는다.
'豬'(저)는 돼지가 서 있는 모양의 '豕'와 '者'를 합친 글자인데, 者는 많을 제(諸)의 생략으로 猪는 '새끼를 많이 낳는 돼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 '猪'라고 흔히 쓰며, 돼지 중에서도 주로 멧돼지를 뜻한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저팔계(猪八戒)는 저돌적인 멧돼지의 화신(化身)이다.
반면 집에서 기르는 살찐 돼지는 '豚'(돈)이다. 토실토실하게 살찐 새끼돼지를 통째로 신에게 희생물로 바친다는 뜻으로, 月(肉:육날월변)을 豕(돼지시변)에 붙여서 만든 문자이다.
납향(臘享)과 멧돼지 사냥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멧돼지고기가 젖이 부족한 산모나 비만증 환자, 고혈압 환자에 좋다고 여겨 왔으며, 피부를 곱게 하는 미용식품, 스태미나 식품으로 알려져서 매우 인기 있는 식용동물이었다. 12월부터 1월 중순 무렵까지 먹이가 풍부한 추운 지방에서 잡히는 무게가 60kg쯤 되는 암놈 멧돼지를 특히 제일로 쳤다.
멧돼지 쓸개는 어혈을 풀어 주고 염증을 없애는 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멧돼지 쓸개에는 간혹 소 쓸개에나 있는 황(黃)이 들어 있는데, 그 값을 같은 무게의 금만큼 쳐 주었다고 한다. 황은 쓸개 주머니 속에 생긴 결석(結石)으로 심한 상처로 인한 출혈을 멎게 하는 데나 간질을 치료하는 특효약으로 쓰인다.
《동국세시기》 12월 납조(臘條)에 보면, 납일에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서 큰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다. 이 제사를 납향(臘享)이라고 하는데, 이는 12월 납일에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형편과 그밖의 일을 여러 신에게 고하는 제사이다. '납(臘)'은 '엽(獵)'의 뜻으로 사냥한다는 의미이다. 곧, 천지만물의 덕에 감사하기 위하여 산짐승을 사냥하여 제물로 드린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 풍속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오행(五行) 신앙에 의해 시대와 나라마다 납일을 정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져 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와서 동지가 지난 뒤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을 납일로 정했다. 지난날에는 납일에 잡은 짐승고기가 사람에게 이롭다고 여겨서 많은 사람들이 사냥한 짐승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집에서 요리해 먹기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납향에 쓰는 고기로는 멧돼지와 산토끼를 많이 사용하였다. 경기도 내 산간의 군(郡)에서는 예로부터 납향에 쓰는 멧돼지를 나라에 바쳤다. 그러기 위해 그곳 수령은 온 군민을 풀어 멧돼지를 잡았다. 그러나 조선조 후기 정조(正祖) 임금이 이 관습을 없애고 한양의 포수에게 명해 용문산과 축령산 등의 산에 가서 사냥을 해서 바치도록 했다고 한다.
남양주시 수동면에 위치한 축령산은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에 사냥을 왔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려는데 몰이꾼이 말하기를 이 산은 신령한 산이라 산에서 고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여 산 정상에서 산신제를 지낸 후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때부터 고사를 올린 산이라 하여 축령산(祝靈山)이라 불린다고 한다.
멧돼지고기 맛의 특징
멧돼지고기는 먹으면 몸이 더워진다고 해서 스태미나 식품으로 불고기 스테이크· 로스구이· 바비큐 등에 이용되고, 고기의 결과 혀에서 녹는 듯한 비계의 맛이 어우러져 감칠 맛이 있다. 집돼지에서 나는 누린내가 거의 없어서 뒤끝이 산뜻하며 부드럽고 소고기에 가까운 멧돼지 고유의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멧돼지고기는 집돼지고기보다 빛깔이 진홍빛으로 더 선명하다. 이것을 양념해서 구워 먹어도 향긋한 맛이 일품이지만 양념을 하지 않고 그냥 구워먹어도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각별하다. 일반적으로 육류는 오래 구우면 고기가 딱딱해진다. 그러나 멧돼지고기는 오래 구워도 단단해지지 않고 부드러움을 그대로 유지한다.
집돼지의 목살은 씹는 감각이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연하다. 좁은 우리에 가두어 길러서 살만 찌운 탓이다. 그러나 야생 근성의 멧돼지는 넓은 우리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길러야 하므로 고기가 부드럽고 연하면서도 근육에 탄력이 있어서 쫄깃쫄깃 씹히는 감이 있고, 지방질이 적어 담백하며 고소하다.
야생의 멧돼지는 새끼 때 죽는 율이 높고 성질이 난폭한데다가 성장이 매우 늦어서 기르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음식점에서 내놓는 멧돼지고기는 대부분 멧돼지와 집돼지의 교잡종인 개량 멧돼지고기다, 멧돼지 수놈을 교배시켜 멧돼지 혈통이 75%인 F2를 기른 것이다.
그러나 멧돼지는 순종에 가까울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F1과 집돼지 암놈을 교배시켜 낳은 새끼를 길러 집돼지나 다름없는 품종을 멧돼지고기라고 내놓기도 하고, 심지어 집돼지의 목살을 멧돼지고기로 둔갑시켜 내놓는 곳도 있다고 한다.
첫댓글 멧돼지고기 파는 정육점이나 마트도 있나요?
멧돼지 괴기는 오래 구워보시면..상당히 질깁니다...턱이 아플정도로... 이글을 어떤 분이 쓰셨는지는 모르지만..
먹어본 사람에 견해를 말할뿐입니다...적당히 익혀 드신다면야 맛이 부드럽고 좋지요.. 지방층처럼 보이는 부위도 아주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