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제 목 : “7가지 더하기(7) :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 본 문 : 베드로후서 1장 2절 - 11절 (신약성경 384쪽)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아멘!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 “잘 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면 잘 됩니다.” “믿고 기도한 대로 됩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아멘!
우리의 믿음이 믿음다운 믿음이 되려면, 우리의 믿음에 가장 먼저 더하여야 할 것은 덕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덕을 더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덕을 더하여야 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시에 절제를, 절제에 경건을 더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에 더하여야 할 경건의 실제적인 삶의 모습은 바로 형제우애 - 보이는 바 형제 사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더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믿음이 시작이라면, 사랑은 끝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납니다. 형제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사랑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은 물론 불의한 이에게도 태양빛을 주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선한 사람에게만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까지도 비를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똑같이 남에게 보여줌으로 끝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 우리 믿음에 더하여야 하는 사랑은 아카페 사랑을 말합니다.
아카페 사랑이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할 사랑의 상식이지, 특별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사랑이야기 하나 해 드릴께요. 천국에서 있었다는 재미있는 유머어입니다.
천국에서는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섣불리 성경을 읽었다고 말하다가는 챙피를 당합니다.
보통 성경을 100번 정도 읽은 사람들은 수두룩하기 때문에, 감히 성경을 읽었다고 명함도 못 꺼냅니다.
한 200번 정도 읽었다고 말하면 천사들이 말했습니다. "성경을 공부시키면, 쫌 알아들을 만 하겠구먼"
한 300번 정도 읽은 사람이 좀 읽었다고, 천사와 성경 이름 알아 마치기를 하다가 챙피만 당하였습니다.
한 600번 정도 성경을 읽었다고 하는 사람이 성경을 암송하다가 틀렸습니다. 천사에게 혼줄이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 하나를 앞에 놓고 성경을 너무나 잘 안다고 크게 칭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예수님! 저 아이가 성경을 잘 안다고 그렇게 칭찬하시는 것을 보니,
성경을 한 천독을 했나 보지요?"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성경을 겨우 한번 읽은 아이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아이에게 "너 성경에 대하여 말해 보아라." 예수님의 명령에 그 어린아이가 대답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중국 연변에서 온 조선족 아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 없음네다. 성경은 고저 사랑입네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천국이 진동할 정도로 칭찬하셨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지신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영수증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복음은 사랑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고, 예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사랑을 아카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사랑하는 것이 아카페 사랑일가요?
첫째로, 지극히 적은 소자 하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카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모든 천사와 함께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에,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이 그의 오른편에는 양과 같은 성도들을 두십니다.
그리고 그 오른편의 두신 양과 같은 성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내가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나를 보았느니라.”
이에 오른편에 있는 성도들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그런 일을 해드린 적이 없는데요?”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그리고 그 오른편의 염소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에 왼편에 있는 불신자들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런 일을 해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안한 것이 곧 내게 안한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아멘! (마 25;31-4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 주변에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극히 작은 자들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극히 작은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 사랑입니다.
성 프란시스가 꿈에 주님께서 나타셔서, 내일 너를 찾아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튿날 성 프란시스는 하루 종일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추운 겨울 밖으로 나간 성 프란시스는 예수님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거지가 추운 데 옷도 입지 못 하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보니 너무나 추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프란시스는 달려가서 자기 외투를 벗어 입혀 주었습니다. 그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날이 저물어 버렸습니다. 프란시스는 집으로 들어와서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 오늘 나에게 오신다고 하시더니 왜 오시지 않았습니까? 온 종일 나는 주님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갔었다.” 프란시스는 놀라서 “주님 언제 오셨습니까?”
“네가 나에게 외투를 벗어 입혀 주더구나. 네가 거지에게 외투를 벗어 준 것이 곧 나에게 준 것이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하늘에서 천사들이 나타나서 성 프란시스가 한 일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서민들에게 소망과 자유를 진실 되게 노래하였던 미국의 윌트 휘트먼이라는 사람이(1819-1892)
어느 날, 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의사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의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의사가 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처방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픈 사람에게 가장 좋은 처방 약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휘트먼도 크게 감동하면서 물었습니다. “만일 사랑이라는 약을 투약하여도 잘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요?”
의사가 말했습니다. “그 때는 두 배로 사랑하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최고의 치료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 사랑입니다.
영국 미들랜드 지방에는 두 개의 무덤이 있고, 무덤 앞에는 오른 손이 없는 여인 동상이 있습니다.
이 동상에 얽힌 이야기 때문에, 이 동상을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이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두 개의 무덤 앞에 선 오른 손이 없는 여인의 동상에 얽힌 이야기는, 십자군 시대로 올라갑니다.
회교도들이 성지 이스라엘을 점령하자, 십자군들이 출동하여 회교도들과 치열하게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 전쟁에서 십자군 병사 중에 한 병사가 회교도 정복자 살라딘에게 포로로 잡히게 되었습니다.(1138-1193)
그런데 그 병사에게는 사랑하는 약혼녀 있었습니다. 그 약혼녀는 담대하게 회교도 장군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살라딘 장군에게 자기 애인을 석방시켜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지쳐버린 약혼녀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살라딘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그 여인이 얼마나 자기 약혼자를 사랑하는가를 시험하여 보려고 쓴 편지였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진심어린 사랑에 감동을 느낍니다. 그래서 당신의 간청을 듣고 생각한 결과 당신의 오른손을,
잘라서 보내주면, 당신의 애인을 당신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 갈 수 있도록 하여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읽고, 그 약혼여는 당장 오른 손을 잘라 종이에 싸서, 정복자 살라딘 장군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병사는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사람들은 두 사람은 나란히 묻어 주었으며, 여인의 사랑을 기려 오른 손 없는 동상을 세워 주었다고 합니다.
남자 분들, 괜히 옆에 있는 아내의 오른손을 보지 마세요. “오른 손을 자를 만큼 나를 사랑할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오른 손을 기꺼이 내어주므로 약혼자를 살렸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카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 사랑에 은혜로 보답하는 길은, 내 주변의 사람들, 특히 지극히 작은 소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카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인 저와 여러분의 믿음 생활이란? 예수님을 사랑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생활이란 무엇일가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생활이란 교회사랑을 말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가요? 바울의 말을 들어 보십시다.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25절 말씀입니다.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슴 뜨겁게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소속된 해남중앙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한국의 초대 선교사 최치량 장로님은 어느 비 오는 날 교회에 갔더니, 교회당이 비가 샙니다.
장로님은 그걸 보고서 급히 자기 집으로 달려가서, 자기 집 기왓장을 떼어내더니 교회로 날랐습니다.
자기 집은 새도 좋으나, 하나님의 집이 새서는 안 된다는, 초기 한국교회 장로님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은 하루도 빼지 않고, 교회에 와서 기도를 한 후 교회 한 바퀴를 돈 후 집에 간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 사랑하는 것임을 아는 귀한 장로님들입니다.
여러분! 이걸 꼭 기억하십시오. 이 지구상에 많은 건물이 있고, 많은 단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들림 받는 기관은, 오직 교회 하나밖에 없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기관은 가정과 교회 둘 뿐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존재하는 기관은 교회뿐입니다.
천국에는 결혼도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가정이라는 기관도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시온성과 같은 교회” 교회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몸이신 우리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신 우리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시온성과 같은 천국교회에서 주님을 예배하며 찬양하게 됩니다.
세 번째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카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사역하는 주의 종들 - 목회자들을 사랑하고,
함께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카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2-15)
그렇습니다. 주님의 계명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법도를 지켰음이라.”(창 26;5)
이처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복음적인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 말씀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말씀 완전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아멘! (누가복음 10:27)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어떤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많은 하객들이 축복을 받는 신랑 신부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모든 결혼예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랑 신부의 모습들을 지켜보는 하객들도 모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 축하객들 중의 한 부부가 데리고 온 아이가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결혼이 뭐야?" 그 엄마는 아이가 결혼에 대해서 묻자 조금은 당황하면서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면 하는 거란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면,
서로 싸우지 않고, 이해하고, 잘못에 대해 감싸주고, 또 모든 힘든 일을 나누어서 도와주게 되지."
그러자 그 꼬마 아이가 엄마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결혼한 것이 아니구나."
이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여러분의 입장에서, 여러분이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고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흘러간 유행가 중에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노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맘에 들어.
어쩐지 나는 좋아.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란 색을 좋아합니다. 말없는 것을 좋아합니다. 씩씩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자기가 좋아 하는 것들이 그 사람 속에 들어 있기에, 그 사람을 그렇게 좋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 하실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을 좋아 하십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베드로후서 1:4-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천국문에 들어서면, 하나님은 꼭 한 가지만 물으십니다.
“어느 대학 나왔느냐?” 묻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 직업이 무엇이었느냐?” 도 묻지 않으십니다.
“몇 살 살다가 왔느냐?” “건강이 어떠냐?” “어느 나라에서 살다 왔느냐?” 도 묻지 않으십니다.
오직 한 가지 “예수 믿느냐?” 이 한 가지만 묻습니다. 왜요? 오직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느냐?” 이 한 가지 질문에 우리가 “예 믿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라.” 여러분! 얼마 쉽습니까? “참 쉽죠 이~잉" 그렇습니다.
구원받는 것은 참 쉽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됩니다. 쉽습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려면, 하나님 축복을 받아 누리려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잘 되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 믿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려면, 신의 성품에 참예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구원받는 우리의 믿음에 7가지를 더하여야 함을, 오늘까지 일곱 번에 걸쳐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4절부터 7절 말씀까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더하기를 잘 해야 신의 성품에 참예합니다.
십자가는 바라보면 구원을 더하는 표시이지만, 내가 짊어지면 곱하기의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믿음의 더하기와 십자가의 더하기와 곱하기를 잘 하셔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은혜가 임하고,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삶에 100배의 축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