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음식
하늘 높이 솟아 먹이를 포획하려는 매 발톱 같이 날카롭던 날씨, 오늘은 모처럼 수은주가 영도에 머물러 있다. 실가지를 덮고 있던 잔설이 햇살에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드리운다. 추위 탓으로 돌리지만 오랜만에 집사람과의 나들이, 두툼한 목도리를 두른 따뜻한 가슴으로 들러볼 곳은 남대문 시장과 덕수궁에서 또 다른 추억을 삼으려 한다.
수차례 와봐 낯익지만은 그래도 재래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고향의 장날에 온 듯 정겨움을 느끼고, 사람 사는 냄새를 물씬 맡을 수 있어서 좋다. 좁은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소박하고, 부드럽고, 온온하고, 풋풋한 푸성귀 같은 시골동네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보는 것 같은 친근감을 옷깃을 스치며 눈길을 마주치며 가슴으로 포근히 느낀다. 무엇이 꼭 필요하기보다도, 꼭 사야 할 목적이 있기보다도 그 물길을 따라 흐르듯 같이 밀려다니며 이것저것 호기심으로 구경하고 만져 보기도 하고 흥정해보기도하고 그래도 다정히 미소지어주는 지긋한 가계 상인들의 마음에서 동장군을 물리칠 수 있는 체온이 상승하는 것이다. 이것이 재래시장의 맛이다.
요즘 기승을 부리듯 우우죽순으로 늘어나는 대형마트를 보면 재력과 권력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이질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정부나 정치가나 재력가들은 앵무새 지저귀듯 상생(相生)을 거듭 거미줄처럼 말하지만 중상층과 서민을 죽이는 행위를 볼 때 미래의 흑막이 보이는 것 같은 서러움에 가슴이 저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 정부를 인수받아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는 대통령 당선자는 지금이라도 작은 자들의 서글픈 소리를 귀담아 들어 서민들과 노인들의 복지와 각 지방의 재래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지방의 향기가 묻은 공산품을 파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곳에 오면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성실히, 활기찬, 신발이 작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지만, 미로처럼 이어진 작은 골목에서 스미어 나오는 매콤하고 부드럽고 담백한 어머니의 손맛에 이끌려서다. 세월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 록 그 향기는 더욱 진해져 푸르다 못해 검은 대양과 같고,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덮치듯 아리게 만드는 내가 좋아하는 갈치조림 음식집들이 있어서다.
어머님은 갈치조림을 얼마나 맛있게 해주셨던지 하얀 살을 발라 밥과 같이 마구 퍼먹던 그 시절은 여전히 퇴색할 줄 모르고 아름답게 남아 있다. 그러나 비록 어머니가 해주시던 정성으로 빚은 그 맛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그나마 그리움에 대한 여운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다.
점심때라 그런지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고 있다. 갈치조림집이 이곳저곳 즐비하게 있는데도 유독 한 두 군데는 더욱 사람들이 꼬인 것을 볼 수 있는데, 비록 기다림이 있다 할지라도 그 집이 맛있게 느껴져 그 집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진짜 그 집이 맛있게 하는 것인지 대중심리인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하나같이 다들 내 집이 전통이라고들 간판에 대문짝처럼 써놓지만 사람의 혀끝은 갈치비늘 같이 날카롭고 까다로와 표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집사람과 같이 50년 전통이라고 하는 한양식당에서 20여분 기다리다 좁은 계단을 타고 2층 다락방으로 안내되어 올라가니 비좁은 곳에 사람들이 올망졸망 삼삼오오모여 풍성스러운 이야기와 함께 갈치조림을 맛있게 발라 먹고 있었다.
우리도 2인분을 시키니 조금 후 세월을 먹은 듯 찌그러지고 희끗희끗해진 노란 양푼이에 무를 깔고, 도톰하게 물이 오른 갈치 두 토막을 올린다음 그 위에 고추가루와 다진 마늘등을 넣고 맛깔나게 끓인 조림이 나오자 집사람이 살을 한 점 발라 내 사라에 먼저 놓아주는 손목이 마치 어머님의 손을 보는 것 같아 잠시 울컥한다. 한 점 한 점 발라 먹으며 지난 세월을 밑반찬으로 삼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올해 아들 장가보낼 이야기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