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텅 빈 들 끝,
산 아래 작은 마을이 있다.
어둠이 온다.
몇개의 마을을 지나는 동안
지나온 마을보다
다음에 만난 마을이 더 어둡다.
그리고 불빛이 살아나면
눈물이 고이는 산을 본다.
어머니가 있을 테니까, 아버지도 있고,
소들이 외양간에서
마른풀로 만든 소죽을 먹고,
등 시린 잉걸불 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며
고구마가 익는다.
비가 오려나보다.
차는 빨리도 달린다. 비와
낯선 마을들,
백양나무 흰 몸이
흔들리면서 불 꺼진 차창에 조용이 묻히는
이 저녁
지금 이렇게 아내가 밥 짓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런 까닭 없이
남은 생과 하물며
지나온 삶과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비밀도 없어졌다.
나는 비로소 내 형제와 이웃들과 산비탈을 내려와
마을로 어둑어둑 걸어들어가는 전봇대들과
덧붙일 것 없는 그 모든 것들에게
이렇게 외롭지 않다.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이 하찮은, 이유가 있을 리 없는
이 무한한 가치로
그리고 모자라지 않으니 남을 리 없는
그 많은 시간들을 새롭게 만들어준, 그리하여
모든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사랑이 이렇게
외롭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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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2008년 8월까지 교직에 있었으며,
교직 기간에 자신의 모교인 임실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셨다고 합니다.
"섬진강" 연작으로 일명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독자에게 맑은 서정을 선물하는 시인이며, 전라북도 임실 진매마을에서 태어나
21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예담출판사) 후반부에 김용택 시인의 10편이 있습니다.
시골 풍경이 그려지는 시.
삭막하고 야멸차고 날카로운 현대 생활에서
잠시 고향의 정겨운 풍경과
따듯한 인정을 가득 담은 시 한 수로
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오늘이 대설이지만, 눈 소식은 없군요.
눈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적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