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내 아이의 문제라는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내 아이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도 있기때문이다.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을 믿지 않지만,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은 잘 믿는다. 그러나 그저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 그것이 행동의 변화로 옮겨지진 않는다.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만 그 진실의 무게감이 비로소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든다.(자신의 아이는 절대로 나쁜 아이가 아니며 가해자가 아니라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법정에서 항변한다고 한다.)
사춘기의 남자아이들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때문에 더 폭력적이 되는 반면, 사춘기 여자아이들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으로 우울증과 자살 시도를 더 많이 한다고 하니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서 딸 가진 부모들은 아들 가진 부모들만큼이나 아이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10대 아이들에게 친구란, 유아기의 엄마나 20대의 사랑, 30대의 성공, 40대의 자식이 그런 것처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적인 존재이다. 친구가 세상 무엇보다 우선의 가치가 되는 10대.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은밀한 세계에서 아이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병들어간다.
학교폭력이 아이들 마음속에 후유장애를 남기지 않으려면 진정한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로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 처벌은 오히려 면죄부가 되어 죄값을 다 치르고 나면 피해자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거나 잘못된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용서와 화해는 언제나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몫(합의금)으로 돌려지고 있다.
10대 아이들은 모두 미숙하다. 그래서 성인보다 더 많은 갈등에 노출되고 누구도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다만 갈등을 줄이거나 해결하려면 그것은 관계 속에서 훈련돼야만 한다. 갈등은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비행청소년일 것이라는 편견처럼 학교폭력 피해자는 대체로 소심하고 우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소년법정에서 학교폭력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우등생이거나 중산층 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폭력 피해 역시, 특정 부류의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 학생 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사하고 상담하는 선생님들조차도 사건의 내용보다 피해 학생의 우울한 모습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되고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그 우울한 모습이 폭력의 결과가 아니라 폭력을 부른 원인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기억의 오류인셈이다.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타인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은 그래도 아직 힘이 남아 있는 아이들의 얘기다. 아이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내면으로 빠져드는 것은 훨씬 위험한 신호일 수도 있다.
어른들은 통제하지만 아이들은 포기할 수 없는 다양한 욕구들 때문에 관계의 폭력은 시작된다. 인터넷 게임, 비싼 스마트폰, 패딩 점퍼, 돈이 그렇다.
언어로 표현할 능력이 부족할 때 아이들은 힘을 사용한다.
지갑 속의 만 원짜리 지폐가 아무리 구겨지고 찢어져도 빳빳한 새 돈과 똑같은 값어치의 물건을 살 수 있다.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나만의 값어치.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수 많은 전문가가 학교폭력의 주범으로 ‘경쟁’을 지목하고 있다. 경쟁은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온 가장 주요한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를 몰락시킬 가장 큰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경쟁은 어쩔 수 없이 차이를 만든다. 강자가 약자를,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이 폭력의 시작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으면서 우열이 가려지지 않는 활동으로 핸드벨을 추천하고 싶다. 박자를 제대로 맞추려면 다른 사람의 종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다. 협동심을 배우기에 이만한 악기가 또 있을까?
10대의 충동성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은 이성을 관장하는 전전두엽 피질이 덜 자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 아이들의 경우 여기에 호르몬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된다. 성인이 되기 위해 분비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바로 그것이다. 신체의 변화뿐 아니라 공포와 공격성, 성적 관심을 높인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호르몬을 줄일 수 없으니 대신 전전두엽 피질이 해야 할 일을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충동을 멈출 수 있도록 연습시킨다.
학교폭력 가 피해는 우울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이다. 우울감을 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풀려고 하면 가해자가 되고, 내면에 쌓아둔 채 스스로를 공격하면 피해자가 된다.
왜 아이들이 원망스럽고 화가 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바로 우리의 욕심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어른들도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사랑의 전쟁이다. 아이의 감정은 들어주되 행동은 바로잡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교사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공급자인 교사 중심에서 수요자인 학생 중심으로 교사의 직무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교사의 권위와 아이의 자존감을 모두 지키는 것은 결국 체벌이 아닌 올바른 대화법이다.
소득불균형은 학교폭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이들은 안전한 학교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다.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