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푸른 잔디위로 선명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싱그러운 야외 한정식집, 밥을 먹다말고 할머니가 갑자기 코피를 쏟은 것이다.
어버이날을 앞둔 가족 식사자리였다.
겨우 문을 연 병원을 찾아갔다.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할머니는 연신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걱정스러우면서도 주머니속 꽁꽁 뭉쳐놓은 피 묻은 휴지가 보기 싫었다.
"할머니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데스크 간호사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아무도, 할머니 본인조차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제대로 몰랐다. 그때 퍼뜩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다이어리를 꺼내 맨 뒷장을 펼쳤다. 은행계좌, 비밀번호등 어지러운 숫자들 사이로 낯선 열세자리 숫자가 보였다.
000000... 까마득한 세월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미워했다. 순서를 따지면 할머니가 나를 미워한게 먼저였다. 아들, 손자에겐 봄바람같은, 며느리, 손녀에겐 한겨울 삭풍같은 할머니였다. 내 생애 처음 경험한 지독한 차별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우리가족은 뜻밖의 귀농을 하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매달리며 같이 내려가자 했지만, 할머니는 질색을 했다.
"난 시골가서 못 산다." 할머니에 대한 야속함이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할머니라면, 생떼같은 자식 손주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존재 아닌가. 그후로도 할머니는 우리 시골집에 잘 오지 않았고 온다해도 절대로 축사나 밭근처에 나가는 법이 없었다. 땡볕에 그을린 내 얼굴이 무색하게 할머니의 신발은 늘 깨끗했다. 오야 내새끼, 고쟁이 바지를 입고 손주들을 얼싸안는 시골 할머니들은 볼때마다 그 넉넉한 품이 그리웠고 부러웠다.
그런 할머니와 다시 함께 살게된 것은 내가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스무살의 설레임을 누릴 틈도 없이, 나는 다름아닌 가족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기분을 맛봐야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손녀에게 까칠한 가시를 세웠다. 오천원짜리 티셔츠 한장 사는것도 숨겨야했고, 밥한그릇 더 먹는것도 눈치보며 숟가락을 내려놔야 했다.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던 어느날이었다. 내일 기말고사 시험을 앞두고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했다. 스탠드만 켜놓고 공부를 하는데 할머니가 뒤척거리며 눈치를 줬다. 급기야 신경질적인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책을 들고 부엌으로 나왔다. 보일러가 돌지않는 바닥에 밥상을 펴고 앉았다. 하룻밤 공부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내 신세가 서러웠다. 몸에 점점 한기가 돌았다. 빨랫대에 걸어놓은 옷가지를 가져다가 겹쳐 입었지만 점점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펜을 쥔 손이 감각없이 얼어갔다.
까무룩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시험시간이 코앞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해.... 당장 택시를 타고가야하는데 수중에 돈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돈이 어딨니."
할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미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결국 문닫힌 시험장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그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영원히 할머니를 미워하게 될거라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정확히 1년후 할머니곁을 떠났다.
그 뒤로는 할머니를 자주 찾지않았다. 명절이나 생신에 가끔 보는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할머니쪽에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자꾸 걸려오는 전화가 귀찮다못해 이제와서 왜 이러나 화가 났다. 밖에서 좀 만나자는 할머니 말에 하루는 점심약속을 잡았다. 볼일을 마치고 약속장소에 30분쯤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근처 설렁탕집에서 둘이 어색하게 마주앉은 자리. 할머니는 고기를 내게 다 건져주고 국물만 들이켰다. 그새 이가 다 빠지고 주름이 깊어진 얼굴에는 전과같은 서늘함이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요즘 통 눈이 어둡다며 내게 은행일을 부탁했다. 종이위에 할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꾹꾹 눌러썼다.
한공주, 00년생, 여자....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내옆에서 두손을 모으고있는 할머니를 보자, 세월이 역전시킨 우리 관계가 서글프게 먹먹했다.
은행앞에서 김치 보자기를 내손에 쥐어주고 돌아서는 할머니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시력이 나빠진게 아니라 원래 글을 읽고 쓸줄 모른다는것을, 할머니의 세련된 옷이 사실 부잣집 파출부를 나가며 얻어온 것이라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할머니 치료 다 되셨어요. 이제 코너무 세게 풀지마세요. 손녀분 걱정하시겠어요."
예전에 혹시몰라 적어둔 주민등록번호 덕분에 무사히 진료를 마칠수 있었다. 병원을 나서며 할머니는 고맙다고 내 손을 꼭 잡았다. 아까 밥먹던 식당 마당에 있던 토끼며 꽃이며, 참 좋더라고 이젠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이 찡했다. 도시 변두리에서 가진것 없이 살아남는다는 것. 믿었던 아들은 없고 손녀까지 떠안아야 했던 시절. 그래서 할머니는 그렇게 독해질수밖에 없었던 걸까.
여전히 나는 그 시절의 할머니를 미워한다. 지금도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할머니를 이해한다. 그리고 여전히 내 옆에 있어주심이 고맙다. 비가 내리면, 잔디 위 할머니의 핏자국이 남은 풀잎도 다시 푸르게 깨끗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