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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에서 보물찾기
2015.09.17. 조선일보
느릿느릿 골목 걷다보면 의외의 반전 망원 유수지를 오가는 이 길을 요즘 서울 산책자들이 부쩍 자주 애용하고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망원동의 보물을 찾기 힘들다.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일상의 여유가 담긴 골목은 얼핏 평범해 보인다. 한 박자 뜸을 들이며 걷다가 마음이 내키는 골목을 찬찬히 돌아보면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편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좁은 옥탑방에 사는 네 남자 이야기이다. 강남도 홍대도 아니고, 망원동의 옥탑방에서 다 큰 남자 넷이서 복닥복닥거리는 이야기라니, 안 봐도 찌질하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우리 사회가 내달리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느리고 평범한 남자들이다. 이런 이들이 망원동에 모여 사는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홍대에서 상수, 상수에서 합정으로 유행처럼 번져가는 높은 월세에 쫓겨가거나, 번잡함을 피해가거나.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망원동으로 나서게 된다. 이 동네는 망원동 브라더스만큼이나 느리고 평범하다. 망원동 골목을 걷다가 간판도 없는 작고 아담한 가게들을 마주칠 때마다 탄성이 터진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서넛 테이블이 오밀조밀 아늑하게 놓여 있고, 자리에 앉으면 창 너머 쏟아지는 가을 햇빛에 마음이 밝아진다. 망원동의 시간이 홍대와 강남의 그것보다 조금 느리게 흐르는 건 맞지만, 이 동네가 평범할 거라고 넘겨짚은 건 억측이다. 보물찾기라지만 보물을 찾지 못해도 좋다. 망원동 골목은 뛰노는 아이들과 장바구니 든 할머니들로 정겹다. 이발소·이불집·지물포·솜틀집 같은 옛 간판에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고, 가끔은 자전거의 낡은 고무 경적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온다. 여유로운 일상의 풍경이 보물과 보물 사이 빼곡해서 발걸음이 가볍다. ① 상호가 적힌 간판은 없지만 입구에 그려진 금붕어를 보고 찾아가는 ‘금붕어 식당’. 메뉴판도 따로 없고 메뉴는 하루 하나씩이다. ② 천연 발효종을 직접 배양해 만든 ‘쁘띠 보뇌르’의 빵들. ③ 이벤트와 전시가 끊이지 않는 ‘책방 만일’. ④ 다른 데서 찾기 힘든,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 ‘소쿠리’. 망원동 나들이는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여도 좋지만 혼자라도 괜찮겠다. 가게들이 작다 해도, 홀로 온 사람을 위한 바 테이블은 다 있으니까. 낮 12시: 망원시장 우선 먹고 길을 나설 일이다. 당연히 망원시장에 먼저 들러야 한다. 시장 인근의 '맛양값(맛있는 음식을 양 많고 값싸게)'이란 식당 이름이 시장의 정체성을 웅변한다. 입구에서부터 고로케(크로켓)가 유혹한다. '20년 전통 망원 수제 고로케 전문점'과 ' 황인호의 원당수제 고로케 망원점'이 나란히 서 있다. 감자·단호박·단팥 고로케 등 기본 고로케가 500원.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고로케를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함과 안에 든 소의 질감이 입안 가득 고인다. 아이라면 하나만 먹어도 배부르겠다. '홍두깨 손칼국수'는 어른 얼굴도 담길 만한 크기의 양은그릇에 손칼국수(2500원)를 가득 내온다. 점심 시간이면 손님들이 가게 밖까지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하나로 둘이 나눠 먹으면 좋겠으나 바쁜 시간엔 1인 1식이 원칙. 손수제비와 잔치국수는 각각 3000원과 1500원. 곱빼기는 500원 추가. 닭강정도 망원시장 명물이다. 시장 중간 즈음에 위치한 '큐스닭강정'과 '하림닭강정'은 록밴드 장미여관의 보컬 육중완이 소개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튀긴 닭똥집과 매콤한 맛·달콤한 맛·화이트 드레싱·과일 닭강정 등 종류가 다양하니 취향 따라 골라 먹으면 되겠다. 작은 컵 3000원. 오징어 튀김은 물론 멸치조림·햄·계란 등 열 가지 재료가 김밥 속을 가득 메운다. 씹으면 먼저 멸치조림의 짭조름함이 입속에 퍼지고 이내 오징어 튀김의 고소함과 쫄깃함이 뒤를 잇는다. 이 외에도 향이 구수한 전과 족발, 떡, 핫바 등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가게가 많으니 입맛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오후 2시: 커피 한 잔 선반에 꽂힌 일본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책들이 이 카페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건 아닐까. ‘수짱 시리즈’로 한국 여성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던 이 작가는 “지금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자”며 생활에 지친 젊은이들을 위로했다. 이 공간이라면 그럴 수 있지 싶다. ‘스몰 커피’ 얘기다. 보사노바 음악을 들으며 옛 LP판, 벽을 메운 일러스트 등 가게에 진열된 소품들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게는 작지만 메뉴는 다양하다. 커피는 물론 생딸기주스(3000원)· 제주당근주스(3000원) 등 과일주스도 맛볼 수 있다. 계절 따라 과일차를 선보이는 것도 특징. 최근엔 청귤차와 청귤에이드를 새로 선보인다. 아메리카노 2500원. 망원동 399-36. 02-323-2483. 가을 햇빛을 만끽하고 싶다면 ‘카페 부부’로 가자. 2층 붉은 벽돌집을 카페로 개조했다. 널찍한 마당에 제각기 놓인 테이블에 앉아 모과나무와 단풍나무를 보고 있으면 꼭 한적한 시골에 놀러온 것만 같다. 안으로 들어서면 널찍한 8인용 테이블과 의젓한 시추 ‘동이’가 손님을 맞이한다. 2층은 전면을 튼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톡 쏘는 맛과 고소한 맛 등 두 종류의 에스프레소를 내놓는다. 미처 망원시장을 들르지 못했다면 여기서 식사를 해도 괜찮겠다. 지난 8월부터 페스토 소스의 부부 파스타, 아보카도와 오렌지 드레싱이 잘 어울리는 부부 샌드위치를 시작했다. 아메리카노 5000원. 망원동 376-15. 070-4527-8080. ‘817 워크샵’은 망원동 유일의 옥상 카페를 표방한 곳. 엘리베이터가 없어 6층 높이를 걸어 올라야 하지만 일단 옥상에 오르면 가을바람이 그 잠깐의 노고를 금세 보상한다. 망원동과 합정동 전경이 시원스레 눈앞에 펼쳐진다. 군데군데 고추를 말리거나 빨래를 널어놓은 옥상의 풍경이 정겹다. 카페를 운영하는 임규범·심호경 부부가 건물을 직접 지었다. 본래 가족만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놨으나 “공간이 아깝다”는 어머니의 말에 기꺼이 카페로 개방했다. 망원동 399-57. 02-712-1723. 오후 4시: 산책 인터넷 서점에 대형 서점도 밀리는 판국에 이름부터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방 만일’은 이제 막 1년을 버텨 낸 소중한 동네 서점이다. 언뜻 보면 북카페가 연상될 정도로 서점 한가운데 손님을 위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만일 나름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보면 이 서점의 독특한 성격이 확연하다. 매리 올리버의 ‘휘파람 부는 사람’,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등등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인디 출판물이 많다. 서가에 꽂힌 ‘안윤 수기’란 제목의 책엔 출판사의 이름도, 가격도 없다. 이벤트와 행사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다. 지금은 ‘주인 없는 책방’ 기간. 일일지기가 공연, 전시, 팝업 스토어 등을 기획한다. 지난 5일엔 ‘6699 프레스’에서 소장 헌책을 전시했다. 그러니 홈페이지(www.facebook.com/manilbooks)에서 미리 일정을 확인하고 방문하는 게 좋겠다. 망원동 399-46. 070-4143-7928. ‘소쿠리’는 닉네임이 모리와 몬스타인 두 친구가 운영하는 아담한 소품 가게. 여행 중에 만나 의기투합했다는 그들답게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부채·성냥갑·브로치·유리컵·공책 등이 선반 위에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다. 물건은 종류별로 많아야 서너 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서둘러야 한다. 다 팔리면 다른 물건으로 채우니까. 모리가 직접 만든 향초와 몬스타가 직접 뜨개질한 모자·화분 덮개 등도 구입할 수 있다. 망원동 414-16.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기 싫다면 빵집 ‘라팡’과 ‘쁘띠 보뇌르’에 들르자. 두 집 다 천연 발효종을 직접 배양해 매일 빵을 만든다. 단 게 싫다면 쁘띠 보뇌르의 ‘올리브 치아바타’(3000원)와 ‘다이어트 쉬폰’(3200원)을 추천. 가게 안에 테이블도 마련돼 있어 커피와 함께 빵을 즐길 수 있다. 라팡은 식빵 전문점으로 우유와 계란을 많이 섞어 부드러운 ‘라팡 식빵’(4500원), ‘밤 식빵’(4500원) 등이 인기다. 치아바타를 갈라 즉석에서 팥 앙금과 버터크림을 잔뜩 채워주는 앙버터빵(3500원)도 꼭 맛보자. 테이크아웃 전문. 라팡은 망원동 404-15, 02-322-2678. 쁘띠 보뇌르는 망원동 420-13, 02-333-8866. 오후 6시: 저녁 식사 ‘금붕어’ 식당엔 제대로 된 간판도, 메뉴판도 없다. 간판엔 그저 앞치마를 두른 귀여운 금붕어만 그려져 있다. 주인에게 물으니 “내 닉네임이 금붕어여서 식당 이름도 금붕어”란 답이 돌아온다. 개성 있는 첫인상답게 메뉴도 하나뿐이다. 대신 매일 바뀐다. ‘통새우 로제 소스와 보코치니, 현미밥’을 내놓는다. 작은 모차렐라 치즈인 보코치니의 쫄깃함과 큼직한 새우의 고소함이 로제 소스의 매콤함과 잘 어울린다. 그날 준비한 식재료가 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손님 10여 명이면 꽉 차는 데다 예약도 할 수 없어 점심과 저녁때면 가게 앞으로 긴 줄이 늘어서곤 한다. 메뉴는 홈페이지(blog.naver.com/goodfood12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업시간 점심 12~3시. 저녁 5시 30분~8시 30분. 망원동 57-429. 02-3142-1213. 본래 포항에 본점이 있는 ‘라멘 베라보’는 최근 망원동에 분점을 냈다. ‘ㅁ’자의 바 테이블이 조리실을 둘러싸고 있어 음식이 준비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주력 메뉴는 소금으로 간을 한 ‘시오라멘’(7000원)과 간장으로 간을 한 ‘소유라멘’(8000원). 눈앞에서 구운 두툼한 삼겹살 차슈와 반숙 계란, 파, 죽순 등을 얹어 내놓는다. 보통 돼지뼈로 육수를 내는 것과 달리 닭뼈와 해산물로 육수를 낸다. 처음엔 맛이 낯설지만 감칠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생맥주(2000원) 한 잔을 곁들여도 괜찮겠다. 휴식 시간 오후 2시 30분~5시. 망원동 385-39. 02-338-3439. 오후 8시: 술 한잔 ‘사는게꽃같네’. 억양과 어조에 따라 정반대의 뜻을 가질 수 있는 이 가게, 이름만큼이나 인테리어도 독특하다. 팝아트풍의 포스터와 아랍식 양탄자가 까만 벽을 장식하고, 사이사이에 놓인 선반엔 인디 뮤지션의 CD, 알록달록한 맥주병 등이 시선을 끈다. 칵테일에 꽂혀 있는 빨대엔 해골 문양이 그려져 있다. 30대 주인장의 태도가 카페 이름과 잘 어울린다. 본래 와플을 전문으로 하려 했으나 에어컨이 고장 나 뜨거운 와플 기계를 도무지 만질 수 없었다. 해서 낮엔 커피를 팔고 밤엔 문 닫고 친구들과 술이나 먹으려 했으나 커피 손님보다 술 손님이 많았다. 지금도 와플과 커피를 팔지만 ‘사는게꽃같네’는 망원동에서 가장 늦게 문을 닫는 술집 중 한 곳이다. 주로 틀어놓는 음악은 레게와 펑크. 음악 선정은 최근 슈퍼스타K7에 출연했던 중식이 밴드의 ‘중식이’가 한다고. 망원동 338-59. 훈남 사장이 운영하는 술집 ‘공작’에 들어서면 꼭 친구네 놀러온 것만 같다. 카운터도, 주방을 분리하는 벽도 없이 가운데 롱테이블을 중심으로 모두 사이좋게 놓여 있다. 창가 선반 위에 놓인, 주인장이 프랑스·인도·모나코 등을 여행하며 직접 찍은 여행 사진을 볼 수 있어 더욱 친밀감이 느껴진다. 함께(共) 마시자(酌)는 뜻의 가게 이름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직접 담근 레몬청과 자몽청으로 만든 레몬생맥주·자몽생맥주(4000원)가 시원하다. 쉽게 미지근해지지 않도록 열전도율이 낮은 주석잔에 내놓는다. 안주류가 저렴한 편. 감자튀김·소시지·수제 육포 등이 5000~6000원 선이다. 망원1동 399-12. 영화인 백종학씨가 운영하는 ‘학쌀롱’은 70~80년대 록과 재즈를 좋아한다면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다. 들어서자마자 바 카운터 뒤편으로 빼곡한 LP판과 CD가 손님을 압도한다. 2층 통창으로 내려다보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의 풍경이 호젓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날로그 댄스 파티’가 열리니, 홈페이지(www.facebook.com/haksaloon)에서 확인하고 찾는 것도 좋겠다. 맥주와 칵테일, 와인 등을 두루 취급한다. 합정동 433-5. 02-323-9154. |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망원동하면 예전에 침수 지역으로만 기억해 왔는데...
한 번 가서 천천히 둘러보고 싶어집니다.
언젠간 가봐야쥐~~^^
읽다보니
더욱 가고싶어지네요
알찬 정보 고맙습니다~~^^
에구이런. . .
등잔밑이 어둡다더니,제가 딱 그러네요.
망원동은 지척에 있는곳인데,
전 이런곳이 있는줄도 몰랐답니다.
마음맞는 친구와 한번 둘러봐야겠어요.
이 가을이 가기전에요(^ 3^)
망원시장 가면 정말 먹거리 볼거리 천지인데
언제 시간내어 하늘공원도 가고 시장구경도 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망원동에 이렇게 멋지고 좋은곳이 있었네요 언제 한번 들려 봐야 되겠네요 정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예전에 조선일보에서 읽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코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