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은 ‘농가의 결혼식’ ‘눈 속의 사냥꾼’ 같은 농촌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와 성경을 모티브로 한 ‘바벨탑’으로 유명하다.
구약성경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은 교만해진 인간들이 하늘에 닿으려 쌓은 탑으로, 창조주의 진노로 인해 언어가 달라져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졌고 탑의 건설은 미완성으로 끝난다. 브뤼헐의 ‘바벨탑’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한계가 잘 표현된 명작이다. ‘바벨탑’을 보며 생각해본다. 과학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 지금, 인류는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교훈을 잊고 또 다른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23년 11월 WMO(세계기상기구)는 그 해 발생한 엘니뇨 현상이 다음 해 4월까지 지속되리라 전망했는데, 실제로 2024년은 세계 여러 곳이 엘니뇨로 인한 기록적인 폭염으로 허덕였다. 중국 신장의 경우 지표면 온도가 70도를 넘은 곳도 있었다. 2024년 우리나라 여름철 열대야 일수는 서울의 경우 39일이었으며, 6월∼8월의 평균기온은 25.6도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이었다.
엘니뇨(El Niño)는 스페인어로 어린 남자아이를 뜻한다. 엘니뇨는 적도∼위도 30도에서 부는 무역풍의 약화로 발생하는데, 태평양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며 1~2년에 걸쳐 해수의 이상 저온현상인 라니냐로 전환된다. 엘니뇨는 태평양 동쪽에 어획량 감소, 강수량의 증가 및 홍수를 야기하고, 서쪽에는 고기압 형성으로 가뭄과 산불 발생 빈도를 증가시킨다. 특히 올해 인도네시아와 호주 북부 쪽에 산불 피해가 컸다.
라니냐(La Niña)는 여자아이란 뜻으로 엘니뇨와 반대로 무역풍이 강해져서 발생하며 태평양 서쪽에는 강수량 증가, 동쪽에는 가뭄과 산불을 일으킨다. WMO는 2024년 하반기부터 라니냐가 시작되어 겨울철 한파가 지구 곳곳을 강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기상이변을 일으키며 지구 생태계, 농업 생산성 및 세계 경제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
기상이변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지구 공전궤도의 변화, 태양 에너지의 변화, 화산폭발 같은 자연적 원인이고 둘째는 석탄·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 도시화와 산림 파괴 같은 인위적 원인이다. 특히 현대 산업 사회에서 무절제한 자원 소비, 환경파괴 같은 인위적 원인은 기상이변을 가속시키는 주범이다.
인류의 지적 능력이 진보하고 기술이 정교해짐에 따라 공학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발달했으며 첨단 유전자 지식으로 무장한 인간은 생명현상의 신비를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가공하여 산업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과물들에 자아도취돼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면 인류는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또 다른 바벨탑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철학 없는 과학의 진보는 모래 위에 쌓는 성과 같고 인간성과 인류애가 결여된 기술발달은 빛 좋은 독배(毒杯)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른 산업화가 브레이크 없이 막다른 길을 향해 달리는 폭주 기관차가 되지 않도록, 인간의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성찰 그리고 합리적 이성이 빨간색 신호등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전성호 베르나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