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본 세상이야기 Ⅶ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이야기
정두환 (문화유목집단동행 예술감독)
19세기 오페라 작곡가로는 바그너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흐르는 역사의 시간은 생각의 흐름보다 조금 느리게 흘러서 그렇지 항상 앞으로 진보하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을 중요시하던 계몽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본의 시간이 도래한다. 자본과 계급이 동일시되듯 흐르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때, 또 다른 한쪽의 흐름은 낭만주의라는 흐름이 일어난다. 여기에 바그너가 있다.
바그너는 자본에 의한 시민사회의 저속성을 예술로 풀어내고자 한사람이다. 예술의 자율성으로 정치와 사회의 분열과 혁명 대신 예술의 혁명을 이야기하게 된다. 바그너의 사고에 깊은 영향을 준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정신이 예술을 통한 사회의 흐름을 밝은 쪽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극복의 힘으로 나타나게 된다.
평소 우리는 작곡가 바그너를 어려운 음악, 심오한 음악, 특히 그의 오페라는 무거운 음악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적으로도 그의 오페라는 보기 힘든 작곡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연주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난제다. 바그너의 음악, 특히 오페라 공연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의 작품은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공연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너의 이름이 낫설지 않은 것은 <로엔그린(Lohengrin)>에 나오는 결혼행진곡이 대한민국 대부분의 결혼식장에서 울려퍼지는 곡으로 우리들에게 매우 친숙하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누군지, 출처가 어딘지, 어떤 내용인지는 몰라도 선율만큼은 익숙하다. 우리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려운 작곡가의 한 곡 정도는 친숙한 셈이니 어찌보면 성공한 셈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바그너 음악, 그것도 자신들의 생애 가장 축복받는 자리에 울려퍼지는 결혼행진곡이 시작하면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의 첫걸음을 시작하니 말이다. 바그너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축복의 작곡가로 충분하다.
공연장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의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을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은 볼프감 폰 에션바흐(Wolfram von Eschenbach. 1170년경에서 1220년경)의 독일 중세시대 작가의 작품을 바그너 자신이 대본을 작성하고 작곡한 독일어 오페라이다. 이 작품을 우리나라 무대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이유는 먼저, 독일의 바이로이트에서만 독점적으로 공연하였다. 혹여 독일 바이로이트로 공연을 보러 갔다고 해도 언어가 독일어다. 그리고 독일어를 잘 알고 있다고 하여도 총 공연시간이 4시간 30분. 이 정도 되면 보통 사람들은 이미 포기 할 것이다. 바그너를 정말 좋아해서 오페라 <파르지팔 (Parsifal)>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또 다른 난관이 있다. 우선 오케스트라 편성이 4관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대 뒷편에 별도로 6대의 트럼펫과 트럼본이 연주한다. 이러한 엄청난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뚫고 성악가는 노래하여야 하기에 아주 뛰어난 오페라 가수가 아니면 바그너의 오페라를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어려운 조건들을 뚫고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관객층이 두텁다. 우리는 이들을 ‘바그레리안(Wagnerian)’이라 따로 명칭 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모두 있다는 이 매니아 팬도 이스라엘에서는 아니다. 반 유태주의자였던 바그너, 히틀러가 특히 좋아했다는 음악가였으며, 그의 음악을 자주 연주하게 했다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 음악을 금기시할 정도였기에 연주가 잘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바그너 음악을 비공식적으로 금지해 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도 지난 2011년에 이스라엘 챔버오케스트라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에 참가하며서 70년만에 금기를 깨고 연주하였다. 이스라엘 챔버오케스트라가 바그너 음악을 연주하는 기적같은 일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당시 인터뷰를 한 지휘자 로베르토 파테르노스트로는 이제는 바그너의 세계관과 그의 음악을 분리할 때가 됐다고 봤다며, 그는 “바그너의 이념과 반유대주의는 끔찍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그너는 위대한 작곡가였다.”면서 “2011년의 목표는 그 인물과 예술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밝히는 뉴스를 접한 기억이 있다. 이는 세상 변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바그너 최초의 오페라는 <혼례 Die Hochzeit)>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분실되었는지, 스스로 파기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현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바그너의 완벽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1842년에 초연한 <리엔치, 최후의 호민관(Rienzi, der Letzte der Tribunen)>에 이어 1841년 작곡하여 1843년에 초연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 1845년 <탄호이저 (Tannhäuser)>, 1848년 <로엔그린 (Lohengrin)>으로 큰 줄기로 이어진다.
일반 음악 애호가들은 바그너 음악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들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우선 그는 16년간 외국으로 망명 생활을 하였다. 누가 보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망명자의 생활을 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활적인 면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생활과 사고의 체계를 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이 기간에 음악보다 깊은 사유를 통한 자신을 바로 세우는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때 가장 탐독한 사람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다. 이 망명은 1848년 드레스덴 궁정 가극장의 지휘자였을 때 터진 혁명에 참여하여 체포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스위스로 망명한 것이다. 이때 그의 깊은 고뇌는 <예술과 혁명 Die Kunst und Revolution. (1848)>과 <미래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der Zukunft>, <오페라와 드라마 Opera und Drama> 그리고 자서전 등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보낸 결과물을 남긴다.
바그너의 대표적 오페라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을 일명 낭만적 오페라의 대명사로 이야기한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젠타, 엘리자베트, 엘자라는 여성들이 세계를 구제한다는 ‘여성성’에 대한 주제이다. 또한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신화를 많히 등장시킨다. 신화를 통하여 독일 민족, 그 중에 게르만 민족의 상징으로 삼는 것이다. 이는 그의 오페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오페라를 통하여 바그너가 표현하고자 하였던 대표적인 것은 독일 민족의 집단성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오페라 작품들은 바그너 사후에 초연된 <요정(Die Feen)>을 비롯하여 <연애 금지(Das Liebesverbot)>, <리엔치(Rienzi)>,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änder)>, <탄호이저(Tannhäuser)>, <로엔그린(Lohengrin)>,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발퀴레(Die Walküre)>, <지그프리트(Siegfried)>,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 <파르지팔(Parsifal)> 등 있다. 특히, <라인의 황금>은 <니벨룽의 반지>의 전야이며 대서사시의 시작을 알리는 오페라이다. 이어지는 <발퀴레>는 <니벨룽의 반지> 제1일, 신의 좌절 그리고 <지그프리트>는 <니벨룽의 반지> 제2일, 영웅의 탄생, <신들의 황혼>은 <니밸룽의 반지> 마지막으로 세계멸망과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대서사시이다.
4부작으로 구성된 <반지>는 원래 나흘간 이어지며 공연되는 작품이다. 하루에 한 작품씩 4일 동안 올려지는 작품의 시간을 보면 <라인의 황금> 2시간 40분, <발퀴레> 5시간, <지그프리트> 4시간 45분, <신들의 황혼> 5시간 30분 등 한 작품당 공연 시간만 보더라도 보통의 애호가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과 방대한 규모다. 이렇다 보니 4부작 전막은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 Festival)에서나 만날 수 있고, 일반 애호가들이 만나기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오페라의 길, 낭만주의 오페라를 만나게 한 작곡가라는 점이다. 자본이 예술로 흘러와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지만, 수준을 논하기가 어려운 가운데, 예술성을 강조하며 예술을 통해 보다 수준 높은 가치 중심의 사회를 만들고자 한 바그너를 우리는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오페라를 통해 시대 읽기는 사회를 새롭게 보는 거울이 된다.
(사)부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artpusan.or.kr)